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43
1143회. ‘마의 해역’과 천공성
엘리오는 말끝에 이를 악물었다.
속이 배배 꼬인 사람과의 대화는 피곤하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참은 건 순전히 아브락사스 마탑의 탑주 때문이다.
선의로 초대한 사람 앞에서 깽판을 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디오니시 마탑의 탑주는 말했다.
―자작의 정보가 시중에 떠도는 소문 수준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손해 아니오?
그 말은 즉, 자신이 가진 정보가 꽤나 고급이라는 뜻이다.
엘리오는 서두르지 않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거짓이나 허풍은 통하지 않을 테니까.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천공성에 대한 정보를 찾고 있습니다. 아브락사스 마탑의 탑주님과 만난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때 탑주님께서 북구 탑주님들의 정례 모임에 초대해 주겠다고 하시더군요. 그 뒤로 페르모사 에스텔라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바르도스의 공연을 보러 온 타불라 마탑의 탑주님과 만나게 됐죠.”
지루한 얼굴로 듣던 탑주들은 타불라 마탑의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엘리오는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의 초대로 타불라 마탑에 갔다가 벌어진 일들을 차례로 들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타불라 마탑이 6층만 남고 다 부서졌던 겁니다.”
탑주들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에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율리아나 레올라 후작은 6서클의 메이지로 소드마스터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거기다 타불라 마탑에는 5서클 마법사도 수두룩하다.
어지간한 왕국 하나와도 맞먹는 전력이 단 한 사람에게 패했다니?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자기가 한 일이라고 했지만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디오니시 마탑 탑주를 향해 말했다.
“나는 약속대로 타불라 마탑이 부서진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제 탑주님의 차례군요. 천공성에 대한 정보를 말씀해 주십시오.”
“…….”
순간 탑주들의 시선이 일제히 디오니시 마탑 탑주 알렉시오 베르타를 향했다.
머뭇거리던 알렉시오 베르타가 애매한 얼굴로 운을 뗐다.
“그 전에 자작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엘리오는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우우웅―.
롱소드 끝에서 백색의 광망, 오라 블레이드가 뻗어 나갔다.
“어떻게? 여기도 부수면 믿어 주시겠습니까?”
탑주들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겉보기는 유약해 보이는데 소드마스터라니 의외다.
하지만 북구의 탑주들은 모두 5서클, 검사로 치면 소드마스터에 육박하는 터라 오라 블레이드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래 봐야 상대는 하나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타불라 마탑을 파괴한 사람이라면 경계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탑주들은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나이와 그가 영기 수련자임을 고려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도발적인 발언에 디오니시 마탑의 탑주인 알렉시오 베르타가 발끈했다.
여기도 부수다니?
누가 들어도 그건 디오니시 마탑을 얕잡아 보는 소리였다.
“자작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지만, 마탑을 공격하면 반격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아 두게.”
그나마 상대가 소드마스터라서 경고를 하는 것이다.
만약 소드 익스퍼트 주제에 저런 소리를 했으면 벌써 마법으로 응징했을 터였다.
엘리오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힘깨나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 봐야 안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떠먹여 드리지요. 반격이든 뭐든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갑니다?”
엘리오가 가볍게 롱소드를 휘둘렀다.
슈아아악―!
번개처럼 날아간 오라 블레이드가 전면의 돌벽을 강타했다.
콰아앙―!
귀청을 찢는 폭발음이 났지만, 역시나!
각종 보호 마법진의 효과로 석벽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디오니시 마탑 탑주인 알렉시오 베르타가 예고한 대로 반격에 나섰다.
그가 지팡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가리키자,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주변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5서클 마법 익스플로전이었다.
쾅! 쾅! 쾅! 콰앙―!
불꽃과 연기에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탑주들이 기대 어린 눈으로 연기를 응시했다.
연기가 가라앉자 알렉시오 베르타는 신경질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렀다.
화르르륵!
화염의 벽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향해 밀려갔다.
역시 5서클 마법인 파이어 월이다.
두 번 연속으로 5서클 마법을 펼친 알렉시오 베르타의 얼굴에 땀방울이 맺혔다.
이제 5서클 마법 한 번이면 그의 마나홀은 텅 비게 될 터였다.
엘리오가 다가오는 화염의 벽을 향해 롱소드를 세차게 휘둘렀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사방으로 튀었다.
일격에 파이어 월을 파괴한 엘리오는 지체 없이 한 번 더 롱소드를 휘둘렀다.
츠츠츠츠―!
수백 개의 검영이 다시 한번 전면의 벽으로 쇄도했다.
구천구검 오 식 산검멸지(散劍滅地)였다.
쿠쿠쿠쿠쿠쿵―!
수백 개의 검영에 강타당하자 탑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엘리오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번졌다.
디오니시 마탑의 마법진은 타불라 마탑보다 약한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구천구검의 검식으로도 충분하겠는데?’
그의 주변으로 수백 개의 검영이 생성됐다.
엘리오가 막 검결지로 전면의 석벽을 가리키려 할 때다.
“그만하시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던지 알렉시오 베르타가 소리를 내질렀다.
수백 개에 이르던 산검멸지의 검영이 스르륵 사라졌다.
“믿습니까?”
엘리오가 확인하듯 묻자 알렉시오 베르타는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들은 이성적이다.
그는 상대가 5서클 마법을 가볍게 흘려 버리니 더 이상 싸울 엄두도 나지 않았다.
“우리 디오니시 마탑이 알고 있는 천공성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 드리겠소. 초대 탑주가 남긴 기록물에 ‘천공성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소.”
“설마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무, 물론이오. 동해를 항해하던 중에 천공성을 목격했다고 적혀 있소.”
“동해요?”
“고대에는 대륙 동쪽의 바다를 동해라고 불렀소. 지금은 피에스트라해(海) 라고 불리지만.”
“그러니까 피에스트라해에서 천공성을 목격했다? 짧네. 그걸로 끝이에요?”
“그, 그건 내가 요약한 거고……. 동해에서 태풍을 만나 항로를 잃고 사흘간 떠돌아다니다, 어느 날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천공성을 목격했다고 하오.”
“천공성이 하늘에 있다고요?”
“그야 태양신의 거처이니 당연하지 않소?”
“아, 그런가? 천공성에 대한 다른 기록은 없고요?”
“섬이 에메랄드처럼 빛났다고 하더이다.”
“흐음!”
엘리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생각해 보니 타불라 마탑에서 얻은 시에도 ‘녹색 섬’이라는 구절이 있었다.
에메랄드[翠玉]가 녹색이니 진짜 천공성을 목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 기록이면 디오니시 마탑에서 피에스트라해를 샅샅이 뒤져 봤을 것 같은데……. 아무런 소득도 없었어요?”
“피에스트라해에서 동쪽으로 하루 정도 항해하면 ‘마의 해역’이라 불리는 지역이 나오는데, 그곳은 비공정과 선박이 실종되기로 유명한 곳이오.”
“실종요? 추락하거나 침몰된다는 건가요?”
“그렇소. 초대 탑주가 태풍을 만나 항로를 잃었다는 것도 그 지점일 게요. 지금은 비공정도 선박들도 ‘마의 해역’을 돌아서 다니고 있소.”
“그럼, 그 ‘마의 해역’에 천공성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알렉시오 베르타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지난 수천 년간 ‘마의 해역’을 통과한 사람이 없었겠소?”
“있었나요?”
“어쩌다 운 좋게 ‘마의 해역’을 통과한 사람들이 있었소. 하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소. 그 뒤로 ‘마의 해역’은 그냥 ‘마의 해역’으로 남게 되었소.”
“운 좋게 통과한 사람들이 있다고 했잖아요? ‘마의 해역’이 그렇게 위험한데 그들은 왜 거기로 들어간 거예요?”
“‘마의 해역’이 위험하니 수천 년간 고깃배들도 피해 다녔고, 그러다 보니 그 근방에 어족 자원이 풍부해졌기 때문이오.”
“고기를 잡다가 모르고 들어갔다는 건가요?”
“그렇소. 바다에 ‘마의 해역’이 표시되어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데 ‘마의 해역’에 천공성이 없었다는 거죠?”
“봤다는 사람이 또 나왔다면…… 제국과 왕국에서 ‘마의 해역’으로 탐사대를 계속 보냈을 게요. 태양신을 만나기 위해서.”
“그랬겠네요. 잘 들었어요. 확실히 풍문보다는 낫네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칭찬에 알렉시오 베르타는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제길. 왜 타불라 마탑이 쉬쉬하는지 알겠군.’
일개 자작에게 칭찬을 받으니 안도와 함께 모멸감이 밀려왔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디오니시 마탑 탑주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아브락사스 마탑 탑주, 발테르 오드가 알렉시오 베르타에게 말했다.
“자자, 좋게 끝났으니 얼굴들 폅시다. 이번 일로 타불라 마탑의 명성이 땅에 떨어졌으니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오. 더욱 노력해서 우리도 오대마탑 소리를 들어 봅시다.”
입에 발린 말이었지만 탑주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엘리오는 자연스럽게 회의실을 떠났다.
***
제도 서남쪽.
헤드나르 공국.
일단의 무리가 석양을 받으며 대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과 그들이 호위 중인 수인 소녀 에밀리다.
인솔자인 4서클 메이지 린다 켈리가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오늘 밤은 이곳에서 묵을 것이니 노숙할 준비를 해라.”
“예.”
네 명의 마법사가 한목소리로 답한 뒤 제 할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린다 켈리가 에밀리에게 손짓했다.
에밀리가 불안한 눈으로 자신을 부른 중년의 여자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긴장할 것 없다. 몇 가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러는 거니까.”
“네에.”
마법사의 말에 더욱 긴장한 에밀리는 어깨를 움츠렸다.
“2년간 마공학 연구소에서 일을 했다고?”
“예.”
“무슨 일을 했느냐? 내가 마공학 연구소의 일을 잘 몰라서 묻는 것이다.”
“야수를 길들이는 일을 했어요.”
“마탑에서 야수를 길들여 무엇에 쓴다고?”
린다 켈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골렘의 핵에 길들인 야수의 영혼을 넣어야 골리앗이 완성되거든요.”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하구나.”
린다 켈리가 기이한 눈으로 수인을 보았다.
저 정도 지식이면 알 만한 건 다 알고 있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마공학 연구소에 수인이 너 하나뿐이었느냐?”
“아니요. 한 분이 더 계셨어요.”
“이름을 아느냐?”
“에바 멜레스 님요.”
“그 수인도 치안대를 통해 인계받은 수인이었느냐?”
“그렇다고 들었어요.”
“그는 순순히 자기 죄를 인정하더냐?”
“네.”
“오호. 둘이 꽤나 친했나 보구나. 그런 이야기까지 해 줄 정도면.”
“수인이 둘밖에 없었으니까요.”
“에바 멜레스는 그곳에서 무슨 일을 했느냐? 그도 골리앗을 만들었느냐?”
“아뇨. 골리앗에 필요한 야수는 제가 길들였어요.”
“그럼 그는 무엇을 했느냐? 테이머가 할 만한 일이 또 있었느냐?”
린다 켈리의 눈에 음험한 기운이 어렸지만 에밀리는 감지하지 못했다.
“그건 모르겠어요. 그분은 외부로 출장을 다니셨어요.”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가르쳐 주지는 않더냐?”
“어딜 다녀오셨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몰라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모른다?”
“네.”
에밀리는 마법사가 조사하듯 파고들자 가슴이 철렁했다.
마공학 연구소의 일을 괜히 떠벌렸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다행히 마법사는 그 부분을 가지고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당부하듯 주의를 주었다.
“마공학 연구소는 마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그곳의 일을 말하면, 그때는 정말 죄인이 된다. 치안대에 잡혀가고 싶지 않다면……. 마탑에서 경험한 것을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