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44
1144회. 악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마법사들은 자신을 ‘대비하는 자’라 말한다.
그들은 습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가올 위험에 대비한다.
물론 그것도 성격에 따라 덜한 사람이 있고, 더한 사람이 있다.
4서클 메이지인 린다 켈리는 대비에 강박적인 사람이었다.
그녀는 틈날 때마다 수인 소녀에게 경고에 가까운 주의를 주었지만, 언제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에밀리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라고 했지만 린다 켈리는 눈앞의 어린 수인이 미덥지 않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렇다.
오늘날 골리앗은 마탑의 핵심 연구라 할 수 있다.
어린 수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내뱉을 단어가 아니었다.
그런데 어린 수인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골리앗에 대해 떠벌렸다.
‘위험해.’
린다 켈리는 어린 수인을 힐끔 보았다.
역시 이대로 그냥 보내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았다.
***
그 시간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노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라고 해 봐야 평평한 곳에 모포를 까는 게 전부였지만 말이다.
두 사람은 마법사들 때문에 모닥불도 피우지 않고 마주 앉았다.
잠들기까지 딱히 할 일이 없던 두 사람은 동시에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를 돌렸다.
먼저 눈을 뜬 것은 파비안이었다.
그는 부러운 눈으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작은 하늘 회로’를 가르쳐 준 사람은 자신이지만, 명상에 잠겨 있는 시간은 백작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길었다.
잠시 후 눈을 뜬 백작과 파비안의 시선이 마주쳤다.
파비안이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작은 하늘 회로’를 어제보다 더 오래 돌리신 것 같습니다?”
“그런가? 나에게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이라. 길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하군.”
“자작님이 안전한 장소에서만 하라고 했습니다. 백작님을 보니 왜 그런지 알겠습니다.”
“내가 얼마나 오래 하던가?”
“제가 명상을 끝내고도 15분은 더 하셨습니다. 아마 30분 정도 하셨을 겁니다.”
“무방비하게 30분이라. 이제는 안전을 생각하면서 해야겠군.”
“그나저나 오늘은 자작님이 합류를 하실 것 같았는데……. 내일 오시려나 봅니다?”
“모르지. 워낙 바람 같으신 분이니까.”
그때 일진광풍과 함께 밤하늘에서 구름 한 덩어리가 내려앉았다.
구름 속에서 나온 이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었다.
파비안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정말 찾아오셨네요? 어떻게 한 겁니까? 길눈도 어두운 분이 오밤중에.”
엘리오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롱소드를 뽑아 파비안에게 던졌다.
“말했잖아. 내 칼과 나는 연결되어 있다고.”
파비안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엘리오의 롱소드를 돌려주었다.
이윽고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나무 의자 세 개와 탁자를 차례로 꺼냈다.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들이 깔고 앉았던 모포를 털어 배낭에 집어넣었다.
파비안이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자작님과 함께 다니면 이런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맨바닥에서 못 지낼 것 같습니다.”
“마차에 싣고 다녀도 돼.”
“그건 사람들 눈에 너무 띄잖습니까.”
“여행 중에 안락함을 추구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그, 그런가요?”
둘의 잡담이 시들해질 즈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물었다.
“북구의 탑주들에게 천공성에 대한 정보는 좀 얻어 내셨습니까?”
“디오니시 마탑의 초대 탑주가 동해에서 천공성을 목격한 기록이 있다더라고요.”
“동해요?”
“고대에는 대륙 동쪽 바다를 동해라고 했다네요. 지금은 피에스트라해(海)랍니다.”
“천공성이 대륙 동쪽의 바다에 있기는 한 모양입니다? 타불라 마탑에서 얻은 시에도 아우로라이라는 지명이 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 같아요. 피에스트라해의 ‘마의 해역’과 관계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순간 백작의 얼굴에 긴장이 어렸다.
“‘마의 해역’요? 거기는 정말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왕국은 물론 제국의 해군들도 피해 다닙니다.”
“군함도 피해 다녀요?”
“그곳에서 실종된 군함이 수십 척입니다. 상선은 백 척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고깃배는 아예 세지도 않습니다.”
“그곳에서 천공성을 봤다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러자 백작은 오히려 마탑을 의심했다.
“그 정보를 준 곳이 디오니시 마탑이라고 하셨지요? 그 전에 디오니시 마탑과 무슨 일은 없었습니까?”
“어떤 일을 말하는 건가요?”
“타불라 마탑처럼 충돌했다거나 하는…….”
“디오니시 마탑 탑주와 싸우기는 했어요. 사람이 삐딱하게 굴어서요.”
“어쩌면 ‘마의 해역’은 라고아 경을 해치기 위해 꺼낸 말인지도 모릅니다. ‘마의 해역’은 죽음의 바다로 알려져 있습니다.”
“거짓말을 했다는 건가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엘리오는 최근 들어 조금씩 자라나는 턱수염을 잡아 뜯었다.
백작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알렉시오 베르타는 선의나 호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없는 소리를 한 건 아닐 겁니다. 정말 동쪽 바다에 천공성이 있다면……. ‘마의 해역’을 의심해 볼 만도 합니다. 수천 년간 숨어 있을 곳은 거기밖에 없지 않습니까?”
엘리오와 백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뭔가를 숨기기에 ‘마의 해역’보다 좋은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우로라이, 피에스트라해, ‘마의 해역’……. 목적지는 확실해진 것 같군요.”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에밀리에게 별일은 없고?”
“예, 지금까지는 마법사들도 별다른 수작을 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거리가 먼 거 아냐?”
“이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탐색 마법에 걸리면 누군지 확인하러 올 겁니다.”
“여긴 괜찮고?”
“우리만 오가는 건 아니니까요.”
파비안이 손가락으로 주변을 가리켰다.
마을이 없어서 그런지 군데군데 야영하는 무리가 보였다.
저런 건 북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상인들이야?”
“짐 실은 마차를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네.”
무심코 엘리오가 중얼거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힐끔 돌아보았다.
야인 부족은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기에 상단과 거리가 먼 까닭이다.
전방을 감시하던 파비안이 물었다.
“에밀리는 언제까지 지켜볼 생각이십니까?”
“수인 마을에 도착하는 것까지만 보고 갈 거야.”
파비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정도면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거 아닙니까?”
“네 딸이 이렇게 험한 세상을 헤매고 있다 생각해 봐.”
“혹시 자작님 따님이 에밀리 또래입니까?”
“에밀리보다 조금 어려.”
“그렇군요.”
파비안은 미혼이지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
제국 군주령.
포메른부르크 공국.
오비도스 백작령.
석양을 받으며 한 무리 여행자들이 오비도스 백작령으로 진입했다.
타불라 마탑의 마법사들과 에밀리다.
오비도스 백작령의 표지판을 본 뒤로 에밀리의 표정은 눈에 띄게 밝았다.
백작령에 접어들면서 길은 한산해져서 마법사들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해가 지자 마법사들이 노숙을 준비하느라 분주히 돌아다녔다.
그동안 린다 켈리는 탐색 마법을 펼쳤다.
파아앗―!
자신을 중심으로 사방 1킬로미터 안쪽에 외부인의 반응이 없자, 가슴이 한차례 두근거렸다.
‘지금이 수인에게 손을 쓸 마지막 기회인데…….’
이 자리에서 죽이는 건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참아야 했다.
가장 깔끔한 건 저주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으면 누구도 마법사들을 의심하지 않으리라.
‘앓는 기간이 너무 길어도 안 된다.’
죽기 전에 다른 마법사가 보면 저주라는 게 들통날 수도 있었다.
‘한 달이면 적당하겠지.’
그 정도면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간이다.
죽고 난 다음이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아니라 누구라도 저주를 알아볼 수 없다.
린다 켈리는 쉬고 있던 에밀리를 자신의 막사로 불러들였다.
“부르셨어요?”
“이제 내일이면 고향의 숲으로 돌아가겠구나. 기분이 어떠냐?”
“좋아요.”
“2년간의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 너에게 선물을 줄까 한다.”
“선물요?”
고향을 지척에 두고 긴장이 풀린 에밀리가 순진무구한 눈으로 마법사를 보았다.
린다 켈리가 품에서 청동 반지 하나를 꺼냈다.
그냥 저주를 거는 것보다 매개체를 사용하는 게 더 확실했다.
그녀는 흔한 청동 반지를 매개체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래, 손을 다오.”
에밀리가 청동 반지를 보며 손을 내밀었다.
수인은 액세서리를 좋아했기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린다 켈리가 청동 반지를 에밀리의 손가락에 끼우며 나직이 주문을 외웠다.
“페르나 토레스(고통 속에 죽으라).”
청동 반지가 붉게 물들었다가 천천히 본래의 색으로 돌아갔다.
순간 에밀리가 아찔한 현기증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어지러움은 이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린다 켈리는 에밀리가 눈을 뜨자 그녀를 밖으로 내보냈다.
***
초저녁부터 침상에 누워 졸던 엘리오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에 깜짝 놀란 파비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악몽이라도 꾸셨습니까?”
“에밀리가 죽었다.”
“예에? 진짜요? 마법사들이 죽였습니까?”
느긋하게 앉아서 쉬던 파비안이 벌떡 일어나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벗어 두었던 옷을 꿰입었다.
그런데 정작 엘리오는 침상에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출발 준비를 마친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말했다.
“복수하러 안 가십니까?”
“지금 죽었다는 게 아니야. 죽는 걸 봤다는 거지.”
그러자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악몽이라도 꾸신 겁니까?”
“꿈이 아니라……. 여섯 개의 마법적인 능력[六神通]으로 보는 게 있어.”
“그런 것도 있습니까?”
“있어.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하면 돼.”
“그러니까 미래에 에밀리가 죽었다는 겁니까?”
“어, 피를 토하며 고통 속에 죽었다.”
“다친 데는 없고요?”
“외견상 다친 데는 없어 보이더라. 그런데 왜 피를 토하고 죽었지?”
“독살당한 거 아닐까요?”
“중독의 징후는 보이지 않았어. 그보다는……. 아픈 것 같았어. 피를 토하면서 죽을 만큼 아픈 병이 있나?”
그사이 무장을 해제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대화에 참여했다.
“지금으로부터 어느 정도나 시간이 지난 것 같았습니까?”
“얼굴이나 뿔을 보면 헤어질 때와 똑같았어요.”
“그렇다면 병은 아닙니다. 그 정도로 빠르게 죽음에 이르는 병은 없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독도 아니고, 병든 것도 아니면 뭐죠? 피를 토하며 고통 속에 죽는 게?”
“저주라면 가능하네.”
“저주요?”
“살인 주문이라 불리는 저주라면……. 병들어 죽은 것처럼 사람을 죽일 수가 있지. 대귀족들이 배우자의 불륜 상대를 죽일 때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라네. 증거가 없어서 열이면 열, 병사로 처리되거든.”
“와아! 섬뜩하네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말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저주는 마법사들만이 걸 수 있습니다.”
타불라 마탑 마법사들의 짓이라는 소리다.
파비안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법사들이 여관으로 너무 일찍 찾아와 조금 이상하다 했는데……. 순순히 보내 줄 마음이 없나 봅니다.”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물었다.
“에밀리에게 걸린 저주를 확인할 방법이 있나요?”
“탐색 계열의 마법인 ‘에피베오 카타라스’를 쓰면 확인이 가능합니다. 저도 오래전에 마법사에게 찾아가 저주의 유무를 확인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