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0
1150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소드 익스퍼트 중급인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에스쿠도 백작의 오른팔로 유명하다.
그는 황금 방패 기사단장인 얼 그레이 자작보다 검술 실력이 뛰어나지만, 인맥이 없다시피 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러니 백작의 후계자인 락토 에스쿠도가 눈독 들인 여자를 제멋대로 취했다가는 무슨 일을 당하게 될지 몰랐다.
백작도 강제로 범한 여자가 많으니 당장 목숨을 위협받지는 않겠지만, 백작의 눈 밖에 나게 될 것은 확실하다.
소드 익스퍼트 중급은 애매한 위치다.
소드 익스퍼트 초급에 실력 좋은 소드 비기너 한두 사람만 가세해도 목숨이 위태롭다.
영지의 기사들 대부분이 락토 에스쿠도를 따르고 있으니 아무리 자신이 소드 익스퍼트 중급이라 해도 몸을 사려야 하는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눈은 좀처럼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아나이스 양을 좀 묶어야겠네. 아나이스 양을 감시할 인원이 많지가 않거든. 아나이스 양을 백작가로 데리고 가야 할 내 입장을 고려해 주게. 밧줄을 가져와라.”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명에 병사 하나가 밧줄을 구해 왔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밧줄을 들고 아나이스 아에토스에게 다가갔다.
아나이스 아에토스가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자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돼지나 치던 병사들에게 백작가 영애의 몸을 만져 볼 영광된 기회를 주고 싶지 않다면, 나를 피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왕 결박당해야 한다면 귀족이 해 주는 게 낫지 않겠나.”
아나이스 아에토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귀족은 설사 전쟁 포로라 해도 결박하지 않는데 결박한다니 기가 막혔다.
“달아나지 않을 테니 그쯤 해 주시죠.”
“평소라면 그럴 테지만 영지에서 달아날 생각까지 한 아나이스 양이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네. 선택할 기회를 주지. 병사들에게 맡길 건가, 아니면 내가 해 줄까?”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던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입이 열렸다.
“자작님이 해 주세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병사들보다는 기사가 나았다.
그래도 기사는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결박하는 과정에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손이 여러 차례 그녀의 가슴을 스치듯 건드린 것이다.
아나이스 아에토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그런 사실을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그랬다가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게 뻔해서다.
거칠게 숨을 내뿜는 그녀를 능글맞은 미소로 지켜보던 자작이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 땀을 닦아 주려는 거라면 사양하겠어요.”
“그럴 리가 있나. 이건 영애가 자결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사용할 걸세.”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소리다.
실제로 자결을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닌지라, 그녀는 반박하지 못했다.
“…….”
“입을 벌려 주게.”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입이 벌어지자 자작은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묶었다.
코끝으로 역겨운 손수건 냄새가 밀려오자 아나이스 아에토스는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했다.
음탕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몸 냄새를 맡고 있으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준비를 마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기사와 병사 들에게 ‘목책을 지키라’ 명했다.
기사와 병사 들이 흩어졌을 때다.
갑자기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곁으로 성큼 다가갔다.
깜짝 놀란 아나이스 아에토스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더 빨랐다.
그는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허리를 휘감아 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아나이스 아에토스가 버둥거리자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더욱 강하게 그녀를 안았다.
“흐읍! 냄새가 좋군. 어떤가? 망나니 락토 에스쿠도보다는 내가 더 낫지 않겠나?”
아나이스 아에토스는 더욱 거세게 몸을 틀었지만, 소드 익스퍼트인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버둥거리는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목덜미에 다시 코를 박더니, 급기야 혀를 내밀어 목선을 핥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완전히 선을 넘은 셈이다.
분노하던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어 갔다.
욕정에 사로잡힌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끝내 아나이스 아에토스를 두 손으로 번쩍 안아 올렸다.
백작과 락토 에스쿠도에 대한 걱정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잔뜩 달아오른 그가 막 숲으로 들어가려 할 때 멀리서 기사들이 외쳤다.
“자작님! 마차가! 마차가 돌아오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성을 상실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멈추지 않았다.
‘마차? 마차가 뭐 어때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를 향해 기사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뭐 하십니까! 백작의 마차가 오고 있다니까요!”
그제야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얼굴을 찌푸리며 돌아섰다.
그의 시선이 통나무를 깎아 만든 거마창(拒馬槍)으로 향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에스쿠도 백작이 온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반대편요! 북부의 백작입니다!”
‘…….’
순간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드마스터가 돌아오고 있다니? 왜?’
그는 아나이스 아에토스를 잡목림에 감추고 목책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허리를 빳빳이 세우고 정면을 응시했다.
옆에 있던 기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그의 어깨로 손을 뻗었다.
“뭔가?”
기사가 자작의 어깨에 붙어 있던 ―아나이스 아에토스의 것으로 보이는― 머리카락을 떼어 그에게 내밀었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머리카락을 받고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는 동안 목책 앞까지 다가온 마차가 멈춰 섰다.
이윽고 백작과 그의 일행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마차에서 내렸다.
지휘관인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서둘러 백작의 앞으로 나아갔다.
“두고 가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백작에게 물었는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앞으로 나섰다.
“아, 나, 바쁜데, 왜 이렇게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
“무슨 소리요?”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갑자기 돌아와서는 뜬금없이 짜증을 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소리냐고? 귀싸대기 때리는 소리다!”
말과 함께 엘리오가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얼굴이 돌아갔다.
순간 분노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손이 검 손잡이를 향했다.
그러나 엘리오의 손이 더 빨랐다.
철썩! 철썩! 철썩―!
피데스 마텔로의 얼굴이 바쁘게 좌우로 돌아갔다.
반격하려던 그는 어쩐 일인지 두 팔을 늘어트린 채로 맞기만 했다.
입술이 터지고, 두 개의 콧구멍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래도 엘리오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철썩! 철썩! 철썩―!
급기야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볼이 터져 피가 튀었다.
그제야 엘리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시궁창의 쓰레기 같은 새끼. 어떻게 할 거야? 네놈의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고! 뭐? 남자는 다 그래? 남자가 다 너처럼 발정 난 개새낀 줄 알아?”
“…….”
깜짝 놀란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입을 벌리자,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마차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건 그렇다 치고 살기등등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사여 주시시오(살려 주십시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은 체면 불고하고 무릎을 꿇었다.
자신이 욕정에 눈이 멀어 아나이스 아에토스를 가지려 했던 것처럼, 상대도 홧김에 자신을 죽일 수 있겠다 싶어서다.
엘리오는 대답하지 않고 파비안에게 시선을 돌렸다.
“가서 아나이스 양을 풀어 줘.”
“예.”
파비안이 바람처럼 잡목림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안 엘리오는 피데스 마텔로의 기사들에게 물었다.
“여어! 기사님들! 솔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에스쿠도 백작가와 아에토스 백작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사람, 말해라.”
기사들은 후환이 두려운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엘리오가 차가운 눈으로 기사들을 훑어보았다.
“어차피 아나이스 양이 오면 알게 될 거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잘 잡으라고.”
기사들 중에 선임인 폴 메스 남작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저는 폴 메스 남작입니다. 제가 말씀 올리겠습니다. 아나이스 양의 성인식 날 락토 공자가 아나이스 양을 추행했습니다. 뒤늦게 그걸 알게 된 아에토스 백작의 둘째인 테리 공자가…… 손님들 앞에서 락토 공자에게 손찌검을 했습니다. 그 일로 저희 에스쿠도 백작님이 테리 공자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했으나, 아에토스 백작이 거절하면서……. 양측 영지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기사들도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엘리오가 에스쿠도의 기사들을 쏘아보았다.
그 서슬에 놀란 에스쿠도의 기사들이 슬그머니 눈을 내리깔았다.
폴 메스 남작이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답했다.
“저희는 영주님의 기사라……. 영주님의 명에 따랐을 뿐입니다.”
“영주가 반역을 하자고 해도 따랐을까?”
“그,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하! 반역만 아니면 어떤 쓰레기 같은 짓도 다 할 수 있다?”
“저희는 말단 기사에 불과합니다.”
“개소리. 너희도 은근히 즐긴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너희 중에 누가 그러더라? 마텔로 자작이 횡재를 했다고. 아나이스 양 정도면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한다나?”
그러자 폴 메스 남작은 황급히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건 기사들의 저급한 농담일 뿐입니다.”
“아니야. 실제로 너희들은 아나이스 양을 잡아서 피데스 뭐시기 자작에게 바쳤어. 너희도 시궁창 속에 있는 쓰레기였던 거지.”
“요, 용서해 주십쇼.”
때마침 파비안이 아나이스 아에토스를 데리고 돌아왔다.
아나이스 아에토스는 무릎 꿇은 피데스 마텔로 자작을 노려보다가, 이내 젊은 기사에게 눈을 돌렸다.
처음 보는 앳된 얼굴의 기사다.
그가 누구이기에 피데스 마텔로 자작 같은 이가 무릎까지 꿇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냉랭해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문득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던 엘리오의 시선이 피데스 마텔로 자작에 이르렀다.
“피데스 어쩌고 자작.”
“에(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피데스 마텔로 자작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사형.”
말과 함께 엘리오가 손가락을 튕겼다.
‘퍽!’ 소리와 함께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이마에 구멍이 뚫렸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몸이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에스쿠도 백작가의 기사들이 황망한 눈으로 피데스 마텔로 자작을 보았다.
고작 북부 왕국의 귀족이 제국의 자작이자, 에스쿠도 백작의 오른팔을 죽이다니?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가 계속해서 말했다.
“내가 볼 때는 말이지, 마나 프트라스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왜 시궁창에 있는 쓰레기들에게 마나의 축복을 내려 주느냐 이 말이야. 아니, 마나 프트라스님을 의심하면 안 되지. 사람들 본성이 너무 더러워서 축복으로 정화가 안 된 걸 거야. 그렇다면 나라도 마나 프트라스님의 축복을 거둬 줘야겠지?”
돌연 엘리오의 신형이 사라지더니, 에스쿠도 백작가 기사들 앞에 유령처럼 솟아났다.
뒤이어 ‘윽!’ 하는 묵직한 비명과 함께 기사들이 풀썩풀썩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