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2
1152회. 불멸의 방패 샤스트라 헤드나르
스티븐 아에토스 백작이 미심쩍은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찬찬히 뜯어보니 마나에 비해 열등하다고 알려진 영기가 느껴진다.
‘소드마스터의 농담인가?’
하지만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농담을 할 상황도 아니거니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태도가 너무도 정중해서다.
게다가 그의 영기는 한눈에 봐도 비범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드마스터의 말이 믿어진 것도 아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각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결과적으로 믿겠다고 했지만 서두에 한 말이 진심이었다.
엘리오는 못 들은 척 딴청을 했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피식 웃어넘겼다.
절망에 빠져 있던 아에토스 백작가의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했다.
백작가의 영지전에 소드마스터가 참전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피데스 마텔로 자작의 사망 이후 외부로 통하는 길도 열려 아에토스 백작령은 영지전 이전의 활발함을 되찾았다.
아에토스 백작군은 에스쿠도 백작가로 연결된 도로에 임시 초소를 설치하고, 에스쿠도 백작가의 동태를 감시했다.
한편 에스쿠도 백작군은 아에토스 백작령에 대한 봉쇄를 풀고 병력을 뒤로 뺐다.
북부의 소드마스터가 아에토스 백작군에 합류한 이상 봉쇄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아에토스 백작군을 향한 산발적인 공격도 멈추었다.
덕분에 두 영지의 접경지는 영지전이 일어나기 전의 평화를 되찾았지만, 그게 폭풍 전의 고요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
6일 후.
에스쿠도 백작령 플로랜스.
에스쿠도 백작가.
정오 무렵.
에스쿠도 백작가의 정문에 아홉 필의 인마(人馬)가 멈춰 섰다.
이윽고 선두에 있던 기사가 오연한 얼굴로 경비병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문을 열어라!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 각하시다.”
깜짝 놀란 경비병들은 감히 되묻지 못하고 서둘러 성문을 열었다.
아홉 명의 기사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고 백작가로 진입했다.
에스쿠도 백작가의 집사인 실라스 루노 남작은 마당을 가로지르는 한 무리의 기사를 발견하고 헐레벌떡 뛰어 나갔다.
지체 높은 대귀족이 아니면 저택까지 말이나 마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다.
본래는 경비병들이 저택으로 손님들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는데, 간혹 지금처럼 성질 급한 귀빈들이 먼저 저택 앞까지 치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집사가 손님들의 정체를 파악해서 적절하게 응대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실라스 루노 남작은 인근 공국의 문양을 외우고 있었다.
기수가 든 깃발에 정교하게 그려진 히터 실드(Heater Shield)는 헤드나르 후작가의 문양.
소드마스터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그의 기사들이 분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저는 집사인 실라스 루노 남작입니다.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말에서 내린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은 말고삐를 가까운 사람에게 넘기고 집사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뒤로 일곱 명의 기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실라스 루노는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을 내성의 중앙 홀로 안내했다.
내성 중앙 홀.
한발 빠르게 중앙 홀에 나가 있던 에스쿠도 백작은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 일행이 우르르 들어오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런 제길. 호위기사들까지 전부 중앙 홀로 데리고 오면 어쩌자는 거야.’
내성 중앙 홀까지 동행이 가능한 호위기사는 하나, 혹은 둘이다.
그런데 후작은 여덟 명이나 되는 기사를 몽땅 데리고 들어왔다.
대귀족의 관습에 어긋난 행동이지만 에스쿠도 백작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후작은 소드마스터.
그가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 백작가 하나 초토화시키는 건 일도 아닌 까닭이다.
‘누가 후작이지?’
50년 전 제국전쟁 이후로 공국 간 왕래가 뜸해 피차 이름만 알지 얼굴을 모른다.
머뭇거리던 에스쿠도 백작은 일단 선두에 선 두 기사에게 꾸벅 머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로무알 에스쿠도 백작입니다.”
그러자 후작의 참모인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소. 내 옆에 계신 분이 ‘헤드나르를 수호하는 불멸의 방패’,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님이시오. 그리고 나는 후작님의 참모인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오.”
에스쿠도 백작은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렸다.
“후작님,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초대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영지전 중에 황망한 일을 당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무심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해하네. 아에토스 백작가가 영지전에 북부의 개들을 끌어들였다고?”
후작이 북부 귀족들을 ‘북부의 개’라고 칭하자 에스쿠도 백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습니다. 백작은 소드마스터, 자작은 마검사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 정도면 백작군이 상대하기 어렵지.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도록 하세.”
“예.”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빨리 끝내고 돌아갈 마음에 다음 날 바로 싸우기를 원했다.
타국의 소드마스터를 접대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에스쿠도 백작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에스쿠도 백작가에서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그의 기사들을 위한 연회가 열렸다.
내일 전쟁을 시작할 예정이지만 분위기는 여느 때의 연회와 다르지 않았다.
연회장 중앙에서 헤드나르 후작 일행과 담소를 나누던 에스쿠도 백작이 슬쩍 물었다.
“그런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라는 소드마스터를 아십니까? 저도 소드마스터는 어느 정도 아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라서요.”
그러자 후작의 참모인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북부 사정에 밝은 자들에게 들으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베일럼의 호랑이’로 불리는 소드 익스퍼트라 하더이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게요.”
“아!”
에스쿠도 백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다면 더더욱 안심이다.
소드마스터들 간에도 우열이 있다. 헤드나르 후작이 소드마스터가 된 것은 십 년 전이니 라르바 오마르 백작보다 강할 터였다.
성대했던 연회는 헤드나르 후작 일행이 숙소로 돌아가면서 끝났다.
***
다음 날.
에스쿠도 백작군은 아침 일찍 아에토스 백작령으로 진군했다.
백여 명의 기사와 이천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도로를 가득 메웠다.
정오 무렵, 에스쿠도 백작군이 아에토스 백작령에 도착했다.
그런데 멀리서 에스쿠도 백작군을 발견한 아에토스의 병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에스쿠도 백작군은 화살 한번 날리지 않고 달아나는 아에토스의 병사들을 비웃었다.
문득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에스쿠도 백작을 힐끔 돌아보았다.
“아에토스에 전면전을 치를 적당한 지역이 있나?”
“없습니다. 정면 대결이 안 될 것 같으니 성에 틀어박힌 것 같습니다.”
“그렇군.”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상대보다 병력이 열세일 경우 성 안에서 싸우는 게 나았다.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 한마디 했다.
“아무래도 후작님의 참전 소식이 아에토스에도 흘러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이동하는 내내 헤드나르 후작가의 깃발을 감추지 않았고, 지난밤에는 백작가에서 연회까지 열렸으니 알려지고도 남음이 있었다.
헤드나르 후작은 발로 가볍게 백마의 배를 툭 건드렸다.
기다렸다는 듯 백마가 천천히 아에토스 백작령으로 진입했다.
***
오후 3시경.
아에토스 백작령 에드문트.
백작성.
성루(城樓)에서 도로를 주시하던 감시병 하나가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적들이 보입니다!”
그의 외침에 아에토스 백작과 엘리오 일행이 성탑 위로 올라갔다.
성과 연결된 도로 위로 에스쿠도 백작가의 기사와 병사 들이 꾸역꾸역 몰려오고 있었다.
검은 독수리 기사단장 젝 퍼셀 자작이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헤드나르 후작가의 깃발입니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온 게 틀림없습니다.”
순간 아에토스 백작과 그의 참모들 얼굴이 굳었다.
북부의 소드마스터가 아에토스를 돕는다니 적은 헤드나르의 소드마스터를 끌어들인 모양이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젝 퍼셀 자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입니다.”
“…….”
성탑 위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에토스 백작이 착잡한 표정으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후작이 백작의 영지전에 참가할 정도면 이미 영지전이라 할 수도 없었다.
이제 영지는 물론 목숨까지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잠시 후 에스쿠도 백작군이 성문 앞에 도착했다.
이윽고 황금 방패 기사단장 얼 그레이 자작이 성탑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아에토스 백작과 그의 기사들은 들어라! 너희는 부끄럽게도 에스쿠도 백작가와의 전쟁에 북부의 귀족을 끌어들였다! 용병이라면 모를까! 영지전에 북부의 귀족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반역과도 같다! 순순히 나와서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라!”
성안에 있던 아에토스 백작군이 술렁거렸다.
영지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역이라니 놀란 것이다.
얼 그레이 자작이 연이어 말했다.
“아에토스의 병사들은 들어라! 너희 영주인 아에토스 백작의 반역을 응징하기 위해 샤스트라 헤드나르 각하께서 친히 참전하시었다! 반역에 동참할 뜻이 없다면 무기를 버리고 나와라! 투항하는 병사들의 죄는 묻지 않겠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이름에 성안의 소란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아에토스 백작이 인심을 잃지 않았는지 소란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얼 그레이 자작은 투항을 권유해도 별반 소득이 없자 에스쿠도 백작에게 돌아갔다.
‘이런 제길. 끝까지 해보겠다는 건가?’
에스쿠도 백작은 슬쩍 헤드나르 후작의 눈치를 살폈다.
공성전이 벌어지면 공격하는 쪽도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된다.
최선은 후작이 일대일 대결로 북부의 소드마스터를 제압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아에토스 백작도 버티지 못하고 성문을 열고 나올 터였다.
하지만 후작이 스스로 나선다면 모를까? 먼저 대전사를 요청할 수는 없었다.
그런 그의 바람이 전해졌는지 헤드나르 후작이 말했다.
“벤투라.”
“예.”
“북부의 개에게 전해라. 결투에 응하지 않으면 백작가를 몰살시키겠다고.”
“예.”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 천천히 말을 몰아 성문으로 다가갔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 각하의 전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후작님과의 결투에 응하라! 거부하면 백작가를 몰살시킬 것이다! 준비할 시간 10분 주겠다!”
말을 마친 그는 다시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옆으로 돌아갔다.
성탑 위에 나와 있던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아에토스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헤드나르 후작은 십 년 전부터 소드마스터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무리하게 결투에 응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각하께서 후문으로 떠나시면……. 헤드나르 후작에게 투항하도록 하겠습니다.”
음탕하고 무자비한 에스쿠도 백작의 손에 운명을 맡기느니 헤드나르 후작에게 투항하는 게 백번 나았다.
대답에 앞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오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
“왜요? 싸워 보고 싶어요?”
“예. 다른 소드마스터는 얼마나 강한지 궁금합니다.”
소드마스터의 대련 상대로 소드마스터보다 좋은 건 없다.
하지만 소드마스터 간의 결투는 전시에나 가능한 것이어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해봐요. 뒷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예, 감사합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허락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성벽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렸다.
아에토스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힐끔거렸다.
소드마스터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그의 허락을 받고 움직이다니?
‘어젯밤의 이야기가 농담이 아니었다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