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3
1153회. 사도라면 증거를 보여라!
장자인 빈센트 아에토스가 둘째인 테리 아에토스에게 속삭였다.
“지금 오마르 백작님이 라고아 자작님의 허락을 구한 거 맞지?”
“예.”
“소드마스터시잖아?”
“그러게요.”
테리 아에토스도 놀란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곰곰 돌이켜 보니 처음부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존대를 사용했던 것 같다.
백작의 인격이 훌륭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인격이 아니라 상하 관계다.
형제만 놀란 것이 아니다.
성탑에 나와 있던 아에토스 백작가의 기사들은 미지의 생명체를 보는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힐끔거렸다.
한편 성문 앞에 도열해 있던 에스쿠도 백작군과 헤드나르 후작의 기사들은 성벽에서 뛰어내린 기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실상 몇몇 소드 익스퍼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사와 병사 들은 소드마스터의 능력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소드마스터는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한다’ 정도다.
그런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자신의 무력을 과시하듯 무려 십 미터 높이의 성벽 위에서 깃털처럼 떨어져 내린 것이다.
소드마스터가 없는 에스쿠도 백작군은 겁을 집어먹었는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에 비하면 헤드나르 후작의 기사들은 여전히 여유 만만한 표정이다.
그들은 ‘불멸의 방패’라 불리는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저 북부의 소드마스터보다 강하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피하지 않는군요.”
“용기는 가상하다만, 그래도 개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10분의 시간을 주었으니 바로 나가지는 마십시오.”
“기다림은 개의 본분이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분노와 달리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눈빛은 차분하기만 했다.
문득 그의 뇌리로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아버지의 음성이 스치고 지나갔다.
―샤스트라, 사자처럼 강해지거라.
그러나 정작 아버지는 사자처럼 강하지 못했다.
소드 익스퍼트였던 그는 제국전쟁이 끝나기 직전 북부에서 목숨을 잃었다.
제국전쟁 초기만 해도 제국과 왕국은 대귀족 포로를 정중히 대했다.
상대를 포용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몸값을 받는 게 더 유리해서다.
그러나 그런 규칙은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점차 무너졌다.
죽음은 대귀족이라고 피해 가지 않았다.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대귀족들의 사망 원인을 마력총에 돌렸다.
기사들 간에 칼을 맞댄 승부에서는 강자가 살의를 품어야 죽는다.
그러나 마력총은 다르다.
사수들은 기사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부었고, 그 과정에서 대귀족들이 죽어 나갔다. 몸값을 흥정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아버지. 저는 사자가 됐습니다.’
소드마스터가 되면 마력총 따위에 당하지 않는다.
소드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소드마스터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살피던 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상대가 벽처럼 느껴지지 않아서다.
사자들 간에도 서열이 있다.
본능적으로 후작은 자신이 상대보다 위에 있음을 알았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10분을 꽉꽉 채운 뒤, 말에서 내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앞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두 소드마스터가 마주 보고 섰다.
제국전쟁 이후로 제국과 왕국의 소드마스터가 실전에서 마주치기는 처음이었다.
“베일럼의 호랑이라고 하던데. 내 눈에는 그저 개로 보이는 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대귀족은 체통을 중시해서 어지간하면 예의를 지킨다.
그런데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만나자마자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혹 우리 사이에 내가 모르는 원한이 있소?”
“없다. 그저 내가 북부의 개들을 싫어할 뿐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소.”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반말에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정중함을 잃지 않았다.
제국전쟁은 오십 년 전에 끝났지만, 아직 그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귀족들이 있었다.
그는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도 그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을 상대로 감정 소모를 해 봐야 자신만 손해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롱소드를 뽑은 뒤 오른쪽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후작은 롱소드의 끝이 지면을 향하게 하고 서 있었다.
후작과 눈이 마주친 순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강하다.’
후작은 롱소드를 늘어트리고 있었지만 도무지 치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허점을 찾으려고 할수록 후작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다.
위험을 감지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후작에게 호랑이처럼 몸을 날렸다.
뒤이어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칼이 맞부닥쳤다.
챙!
두 소드마스터는 롱소드를 교차시킨 상태에서 잠시 힘겨루기를 하더니, 이내 기사들의 눈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상대를 베어 갔다.
채채채챙―!
두 사람 사이에서 쉬지 않고 불꽃이 튀었다.
귀청을 찢는 쇳소리가 아에토스 백작성 주변에 쉬지 않고 울렸다.
두 자루 검이 만들어 내는 소리에 귀가 얼얼해진 병사들은 얼굴을 찡그렸다.
그래도 누구 하나 소드마스터들의 싸움에서 눈을 떼는 사람은 없었다.
십 분쯤 지나자 우열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전히 평화로운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과 달리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숨은 거칠어져 있었다.
패배를 직감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뒤로 물러나며 마나 블레이드를 끄집어냈다.
우우웅―!
그의 롱소드가 파란색 광망에 휩싸였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검도 오렌지색 광채를 뿜어 댔다.
서로를 노려보던 두 소드마스터가 다시 맞붙었다.
쾅! 쾅! 쾅! 콰앙―!
조금 전의 쇳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마력포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그뿐 아니다.
마나 블레이드가 맞부닥칠 때마다 충격의 여파로 땅거죽까지 들썩거렸다.
쾅! 쾅! 쾅! 쩡―!
마력포 소리 끝에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 조각 하나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파란 빛 광망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검격을 나누던 중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검이 잘려 나간 것이다.
에스쿠도 백작군의 입에서 ‘와아아!’ 하고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자고로 무기란 한 뼘이라도 긴 쪽이 우세하다.
그것은 소드마스터 간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팽팽하던 무게 추가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에게로 확 기울었다.
힘과 기술에서 밀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상대를 몰아붙이는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에스쿠도 백작군이 내지르는 함성도 점점 고조됐다.
“와아아아!”
무방비하게 열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어깨를 베어 가던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기이한 느낌에 멈칫했다.
‘왜 조용하지?’
방금까지 마나 블레이드의 폭발음 사이사이로 들려오던 함성 소리가, 뚝 끊어졌다?
그가 잠깐 멈칫한 순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다시 거리를 벌리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의 시선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뒤로 향했다.
정확히는 에스쿠도 백작군의 선두다.
기수와 일반 기사들이 입을 쩍 벌리고 위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헤드나르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벤투라 아리우스 백작은 얼빠진 얼굴로 뒤쪽 하늘을 가리켜 보이기까지 했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충분히 거리를 벌린 뒤,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하늘에서 태양을 등에 지고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플라이 마법인가?’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플라이 마법은 하늘을 날아가는 건데, 상대는 계단을 밟듯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그를 위한 투명한 계단이 있는 것 같았다.
‘영기로군.’
뒤늦게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그의 주변이 영기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거미처럼, 주변에 영기를 방사해 그걸 밟고 내려오는 것 같았다.
‘저게 가능한가?’
그러다 그는 자신이 상대에게 압도당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고작 영기 수련자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그는 이를 빠드득 갈며 그런 자신을 부정했다.
“너도 북부의 개냐? 하나로 안 되니 둘이 덤비겠다는 것이냐?”
그 순간 헤드나르의 기사들이 바람처럼 달려와 후작의 뒤에 섰다.
땅에 내려선 엘리오가 후작을 빤히 보며 말했다.
“어이, 이름이 뭐라고 했지?”
건들건들한 용병의 말투에 분노한 헤드나르 기사들의 손이 일제히 검 손잡이로 향했지만, 한 사람도 먼저 뽑지 않았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끓어오르는 노기를 누르며 답했다.
“나는 헤드나르 공국의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다. 너는 누구냐?”
“샤스트라 파라크티와 어떤 관계야?”
엘리오는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이세계의 구천현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헤드나르 후작이 샤스트라라는 이름을 사용하니 궁금해 물은 것이다.
새파랗게 어린 북부의 기사가 취조하듯 묻자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짜증이 났지만 일단 질문에 답했다.
“헤드나르 후작가는 대대로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신도다. 선친께서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가호 속에 살라고 지어 준 이름이다. 너는 누구냐? 왜 그런 걸 나에게 묻는 거지?”
“왜냐고? 그건 내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라서 그런다고나 할까.”
“헛소리! 샤스트라 파라크티 신에게는 사도가 없다!”
“당신이 모른다고 없는 건 아니야.”
“증거가 있느냐?”
“당연히 있지.”
“네가 정말 샤스트라 파라크티님의 사도라면 증거를 보여라!”
“정말? 후회할 텐데.”
“증거를 보이지 않으면 네놈을 신성모독으로 체포할 것이다.”
“뭘 체포한다고 그래? 북부의 개들을 죽이겠다고 떠들던 사람이. 왜? 갑자기 나를 보니까 자신이 없어졌어? 소드마스터가 그렇게 겁이 많아도 돼? 쫄보야?”
샤스트라 헤드나르가 차갑게 말했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말뿐이라면 네놈을 아에토스 백작가와 함께 죽이겠다. 증거는?”
“분명히 당신이 보여 달라고 한 거야. 나중에 딴소리하면 죽는다.”
말과 함께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벽력부를 꺼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샤스트라 파라크티님! 다만 의지하오니 신의 권능으로 벼락을 드러내 주십쇼[九天玄女 但憑霹靂威神力]!”
전에는 구천현녀라 발음했지만 이젠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입에 붙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째 술법이 더 강력해진 느낌이다.
부적이 에스쿠도 백작군을 향해 팔랑팔랑 날아가더니, 이내 불길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황당한 눈으로 북부의 기사를 볼 때다.
돌연 에스쿠도 백작군 머리 위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꾸물꾸물 일어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에스쿠도 백작군을 뒤덮었다.
“뭐, 뭐야!”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
“바람이 불면 지나갈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에스쿠도 백작군이 일대 혼란에 휩싸였다.
엘리오의 술법을 처음 보는 에스쿠도 백작과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시간이 지나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먹구름은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우르르릉―! 쿠르르릉―!
갑자기 먹구름 속에서 은은한 우렛소리가 울려 퍼졌다.
왠지 불길한 예감에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은 북부의 기사에게 소리쳤다.
“멈춰라!”
그러자 엘리오가 늦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미 늦었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후회할 거라고.”
곧이어 시커먼 먹구름 속에서 폭발음과 함께 섬광이 번득였다.
콰콰콰쾅―! 꽈광―!
겨우 안정을 찾아 가던 에스쿠도 백작군 속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분노한 샤스트라 헤드나르 후작이 자신의 뒤에 정렬해 있던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놈을 죽이면 마법도 풀어질 것이다! 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