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57
1157회. 좋지 않은 시기에 동쪽으로 가는군
쏴아아아―!
퉁퉁퉁퉁―!
갑자기 쏟아진 폭우는 시간이 지나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낮임에도 어두컴컴한 창밖을 보던 엘리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거 금방 멈출 비가 아닌데?”
“그러게요.”
파비안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나가는 비라면 하늘이 저토록 어두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차 안의 세 사람은 말없이 창밖을 내다보며 상념에 잠겼다.
석경장을 생각하던 엘리오가 문득 파비안에게 물었다.
“파비안, 너는 집이 어디에 있냐?”
“아나톨리아요.”
“아나톨리아?”
“베르나르도 후작령 동부에 있는 도시입니다.”
“집에 연락은 하고 지내냐?”
“무소식이 희소식 아닙니까?”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뻔뻔한 파비안의 대답에 엘리오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세라 양에게는?”
“사나흘에 한 번씩 편지를 보냅니다.”
“세라 양에게는 왜 보내냐?”
“아직 가족이 아니니까요.”
명쾌한 그의 답에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이해가 갔다.
자기가 말하고도 찔렸는지 파비안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가족 생각이 나시나 봅니다?”
“어, 비가 와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보고 싶네.”
“자작님 고향 말입니다.”
“어, 왜?”
“거기도 마수와 마물 같은 게 있습니까?”
“없어.”
“그럼 걱정은 덜 되시겠습니다?”
“덜 되겠다고? 내가 보니 마수와 마물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이더라.”
“그건 또 그렇네요.”
파비안은 고집부리지 않고 선선히 인정했다.
히르헤라의 흑마법사, 푸토코아 백작가, 타불라 마탑, 에스쿠도 백작가 등을 떠올리면 반박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슬쩍 끼어들었다.
“마수와 마물이 없는 곳도 있습니까?”
로디나 대륙은 본래 마수와 마물의 땅이었다.
고대에 마수와 마물이 대거 타메이온으로 이동했지만, 아직도 미개척지에는 마수와 마물이 득시글거렸다.
야인들이 살고 있는 깊은 산도 예외는 아니다.
아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일수록 마수와 마물이 더 많았다.
그런데 마수와 마물이 없다니 의아했던 것이다.
“예. 있어요, 그런 곳이.”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표정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아차!’ 싶었다.
뒤늦게 그의 부족이 푸토코아 백작가에 몰살당했음을 떠올린 것이다.
‘그런 곳’을 ‘죽은 자들의 세계’로 착각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더 묻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 빗소리만 요란했다.
쏴아아아―!
퉁퉁퉁퉁―!
묵직한 빗소리를 뚫고 가끔씩 ‘꽈르릉!’ 하고 번개 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럴 때마다 파비안은 어린아이처럼 어깨를 움찔거렸다.
그런 그를 보던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파비안, 번개가 무섭냐?”
“당연히 무섭죠.”
“푸하핫! 어린애도 아니고 어른이 왜 번개를 무서워해?”
“어른이니까 무서워하는 겁니다. 번개가 사람을 가려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재수 없으면 한 방에 훅 가는데 당연히 무섭죠.”
엘리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죄 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소리보다 더 그럴듯해 보여서다.
“에스쿠도 백작군을 박살 낸 자작님의 그 벼락 마법 말입니다.”
“그게 왜?”
“다른 마법사들은 마법봉이나 지팡이를 사용하는데……. 자작님은 종이를 사용하시는 것 같아서요.”
“종이가 어때서?”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면 못 쓰지 않습니까?”
“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구나?”
“제가 모르는 게 뭡니까?”
그러자 엘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친김에 그는 마부와 말들의 상태까지 둘러보고 마차로 돌아왔다.
폭우 속을 돌아다녔음에도 그의 몸에는 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뒤늦게 그걸 알아차린 파비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건 무슨 기술입니까?”
“영기를 몸 밖으로 발출해서 빗방울을 차단하는 거야. 오라 실드라고나 할까? 소드마스터쯤 되면 할 수 있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말에 파비안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돌아보았다.
“정말입니까?”
잠시 생각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해 본 적은 없지만……. 연습하면 가능할 것 같네.”
그러자 엘리오가 말했다.
“연습하세요. 마나 실드가 마력탄은 모르겠지만, 화살 정도는 막아 줄 거예요. 마나를 운용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혼자만 뒤처진다고 생각한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자작님, 소드 비기너는 못 합니까?”
“마나 실드?”
“예.”
“못 할 건 없지.”
“정말입니까?”
파비안이 반색을 했다.
하지만 그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표시도 안 날 거야. 느낌도 없을 테고. 먼지도 못 막아 낼걸?”
“에이, 그게 무슨 마나 실드입니까? 안 된다는 거네요.”
“안 되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 되는데 효과가 미미하다는 거지.”
“효과는 그렇다 치고, 마나의 운용에는 도움이 됩니까?”
“큰 도움은 안 될 거야. 마나 실드의 느낌이 없으니까…….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아닌지 누가 알겠어?”
“아!”
파비안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하기야 마나 실드를 느낄 수 없는데 수련은 무슨 수련…….’
그는 부러운 눈으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힐끔거렸다.
처음에는 분명 물주에 불과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가장 큰 혜택을 받고 있었다.
정작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가신인 자신은 제자리걸음인데 말이다.
입이 삐죽이 튀어나온 파비안을 본 엘리오가 말했다.
“욕심내지 마라. ‘천 킬로미터 여행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냐. 높은 데를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올라가야 하는 법[登高自卑]. 소드 비기너는 소드 비기너의 수련법에 집중하는 게 좋아.”
“예.”
파비안은 부러운 마음을 털어 냈다.
자신도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많은 것들을 배웠으니 배 아파할 이유가 없었다.
비는 해가 진 뒤에도 그치지 않았다.
마치 둑이 터진 것처럼 쉬지 않고 물줄기를 쏟아 냈다.
마차 안에 있기가 답답했던 엘리오 일행은 하비가 있는 나무 아래로 이동했다.
언덕을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숲속에 도랑처럼 흘렀지만, 약간 고지대인 나무 아래까지는 침범하지 않았다.
귀족들이 다가오자 하비가 허리를 굽실거렸다.
“송구합니다. 어떻게든 마을까지 갔어야 하는데……. 빗줄기가 너무 세서 그만…….”
그건 진심이었다.
빗줄기가 너무 굵고 거세서 잠시 피했는데, 해가 지도록 계속 내리니 그냥 비를 맞고라도 갔어야 하나 후회가 됐다.
그러자 엘리오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비가 너무 내려서 어차피 움직이기 어려웠어요. 이런 때도 있고 저런 때도 있는 거죠. 신경 쓰지 마세요.”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본래 아랫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달랐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수인을 저주했다는 이유로 마탑의 마법사를 죽이고, 벼락으로 에스쿠도 백작군 수백 명을 죽였다.
그런 그가 한낱 마부에게 저토록 친절하다니?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보통의 귀족들은 이런 경우 마부를 걷어차거나, 채찍으로 때리는데, 그는 마부의 편에서 생각하고 말했다.
‘어느 게 진짜 모습이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가급적 지금의 모습이 진짜이기를 바랐다.
그랜드 마스터 같은 절대자가 잔혹하면 세상이 피에 잠기기 때문이다.
그동안 엘리오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커다란 나무 아래로 달려간 뒤, 파비안 등에게 손짓을 보냈다.
“하비 씨! 파비안! 이리 와! 여기에 천막을 치자!”
잠시 후 백작과 파비안, 하비가 건너오자 엘리오는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천막을 꺼냈다.
네 사람은 번개처럼 무성한 나뭇가지 아래 천막을 세웠다.
하비는 천막 주변에 배수로를 팠다.
천막이 완성되자 엘리오는 간이침대들과 탁자, 의자를 꺼냈다.
하비는 다시 말들을 본다고 나가고, 세 사람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말들의 상태를 보기 위해 열어 둔 출입구로 하비가 분주히 돌아다니는 게 보였다.
엘리오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으아아! 피곤해! 하비 씨가 존경스럽다. 마나 유저도 아닌데 안 지치나?”
그러자 파비안이 입을 놀렸다.
“제가 어디서 들었는데요. 검술의 근육과 일하는 근육이 다르답니다. 하비 씨는 우리보다 덜 지쳤을 겁니다.”
“그런 걸 개소리라고 하는 거야. 돈 때문에 이 악물고 일하는 거지 덜 지치긴 뭐가 덜 지쳐. 하비 씨 일당 얼마 주기로 했지?”
“하루에 200코퍼요.”
“100코퍼 올려 드려.”
“300코퍼요?”
“어.”
“……예.”
즉흥적인 임금 인상에 반대하려던 파비안은 빗속에서 고생하는 하비를 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매일이 오늘 같지는 않지만, 당장 눈앞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을 보니 그럴 마음이 사라진 탓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비가 멎었다.
가을의 뜨거운 햇살에 젖어 있던 천막은 금방 바짝 말랐다.
엘리오 일행이 점심을 마치고 출발 준비를 할 때다.
도로 위로 기사단처럼 보이는 수백 명의 말에 탄 기사들이 나타났다.
기수가 귀족가 문양이 새겨진 커다란 깃발을 들고 있었지만, 북부 귀족인 엘리오 일행은 그게 어느 가문을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선두에서 행군하던 기사들 중에 셋이 말 머리를 돌려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왔다.
그들 중 한 사람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나는 포메른부르크 공국 람파스 기사단의 케에른 카델 자작이오. 그대들은 어디의 기사들이오?”
기사들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나는 북부 베일럼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오.”
케에른 카델 자작은 백작을 유심히 살폈지만 증명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모두 북부의 귀족들이시오?”
그러자 이번에는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대신해 소개했다.
“이분은 북부 슬래시 랜드의 영주이신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시고, 저는 슬래시 랜드의 기사인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그제야 케에른 카델 자작의 눈에서 경계의 빛이 사라졌다.
“남작, 여행 목적지가 어딘가?”
“로렌 공국입니다.”
“좋지 않은 시기에 동쪽으로 가는군.”
의미심장한 케에른 카델 자작의 말에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남부에서 전쟁이 났네. 일차 원정군이 제도로 집결 중이지. 영지에 진입하는 절차가 이전보다 까다로워졌을 걸세.”
케에른 카델 자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묵례를 한 후, 왔던 길을 돌아갔다.
도로를 가득 메운 기사단을 보던 엘리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결국 전쟁이 터졌나 보네.”
그에 깜짝 놀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물었다.
“혹시 전쟁이 난 이유를 아십니까?”
“대수림의 어비스에서 강철 골렘의 집단 매장지가 발견됐답니다. 그걸 남부 왕국들이 독식하려고 대수림의 통행을 제한하자, 제국이 군대를 파병해 대치하던 중이었습니다.”
“허! 북부가 히르헤라의 균열을 막고 있는 동안 그런 일이 일어났었습니까?”
“예. 코르보 마법 병단이 히르헤라에 잠시 주둔한 적이 있는데, 그때 킬리언 헤일 공작님에게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분명하겠군요.”
가만히 듣고 있던 파비안이 불쑥 끼어들었다.
“그럼, 아에토스 백작가의 일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