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0
1160회. 제국이 고전하고 있다고요?
다음 날 아침.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발견한 파비안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 진짜 시간 맞춰 오셨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엘리오가 눈을 떴다.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내가 한번 갔던 곳은 칼같이 찾아간다.”
“신기하네요. 저는 밤도 늦었고 해서 당연히 못 찾아오실 줄 알았습니다.”
“겨우 여기 찾아온 걸 가지고 신기하다고? 너 나를 뭐로 본 거야?”
엘리오는 구시렁거리며 침상에서 내려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밤새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그런지 몸이 찌뿌드드했다.
문득 그의 눈에 텅 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침상이 들어왔다.
“오마르 백작님은?”
“산책이라도 나가셨겠죠.”
“칼도 안 보이는데?”
“검술 연습하러 나가셨나?”
파비안의 혼잣말에 엘리오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소드마스터보다 게으른 소드 비기너라니!
슬래시 랜드의 영주 된 입장에서 한숨이 절로 났다.
“왜 한숨을 쉬십니까?”
“그러게 왜 한숨이 나올까?”
엘리오가 빤히 쳐다보자 파비안이 변명하듯 말했다.
“저는 자작님을 기다리다가 새벽에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오마르 백작님은 자작님이 떠나자마자 바로 주무셨고요.”
“누가 뭐래냐?”
“자작님 눈빛이 ‘소드마스터도 검술 연습을 하는데 넌 왜 자빠져 자고 있냐?’ 묻는 것 같아서요.”
때마침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돌아왔다.
얼굴이 땀에 젖은 걸 보니 격하게 검술 수련을 한 모양이다.
염치를 모르는 파비안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이쿠! 백작님 오셨습니까? 소드마스터가 되면 아침잠이 없어지나 봅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묵례를 했다.
“일어나셨습니까?”
“예.”
“새벽에 들어오시는 건 알았습니다. 피곤하실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에스쿠도 백작의 일은 잘 처리하신 겁니까?”
“일단은 ‘북부 귀족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게 입단속하겠다’는 마나의 맹세를 받아 뒀어요. 칼을 쓰는 건 아무 때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잘하셨습니다. 포메른부르크 공국에 소드마스터가 없으니 이번 일은 조용히 넘어갈 겁니다.”
“그런데 에스쿠도 백작의 눈빛이 영 불손한 게……. 그런 사람이 꼭 나중에 사고를 치더라고요?”
“그때는 베어 버리십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단호했다.
자신의 맹세를 어긴 기사는 죽어 마땅하다 생각한 때문이다.
잠시 후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만들어 왔다.
어제저녁처럼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마을 규모에 비해 과하다 생각될 정도로― 대단한 상차림이다.
엘리오는 그런 대접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의아했다.
‘뭐지? 우리가 뭐 해 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잘해 줘?’
세상에서 공짜로 아낌없이 퍼 주는 사람은 부모밖에 없다.
아무래도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게 있는 모양이다.
식사를 마칠 즈음 엘리오는 더 참지 못하고 파비안을 불렀다.
“파비안.”
“예?”
“원래 시골 마을에 기사가 방문하면 이렇게 대접해 주냐?”
“어느 마을이 그런답니까?”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이거 다 계산해야 됩니다.”
“어쩐지. 젠장. 시골 인심인 줄 알고 좋아한 내가 바보지.”
“공짜인 줄 아셨습니까?”
“공짜라기보다……. 외부 손님이라 대접해 주는 줄 알았지.”
강호에서는 분명히 그랬다.
외진 마을일수록 어쩌다 찾아오는 외부 손님들을 후하게 대접했다.
이세계에도 그런 낭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니 실망이다.
“자작님 고향에서는 손님을 공짜로 재워 주고 먹여 줬습니까?”
“어.”
“야아! 사람들이 엄청 착하네요. 아니면 물자가 풍족하든지.”
“여기나 거기나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해. 풍족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 손님을 공짜로 대접한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파비안은 영 믿어지지 않는 얼굴이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점잖게 한마디 했다.
“마을 구성원들의 도덕성이 뛰어나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자작님이 여기나 거기나 사람들은 다 고만고만하다고 하셨는데요?”
“아…….”
뒤늦게 그 말을 떠올린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뛰어난 도덕성도 아니라면 뭘까?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자 백작은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끝냈다.
식사를 마치자 귀신처럼 촌장이 찾아왔다.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두 사람을 남겨 두고 자리를 떠났다.
사두마차 한 대가 천천히 목책을 빠져나갔다.
마차가 본격적으로 도로를 달릴 때쯤 파비안이 툴툴거렸다.
“와아! 무슨 이런 깡촌에서 음식값을 그렇게 많이 청구한대요? 대도시 요릿집보다 더 비싸.”
“얼마 달래?”
“숙소로 3실버, 식비로 20실버요.”
“미쳤다. 그 정도면 제도의 고급 여관하고 똑같잖아!”
흥분한 엘리오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퀴퀴하고 냄새나는 마을 회관의 숙박비가 페르모사 에스텔라와 같다니,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식비는 페르모사 에스텔라보다 비쌉니다. 완전 바가지도 저런 바가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달라는 대로 다 줬어?”
“아뇨, 숙소 2실버, 식비 15실버 줬습니다.”
“와 씨! 그것도 많다.”
엘리오는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엎을 것처럼 방방 뛰었다.
“그것도 적다고 눈물을 글썽거리길래……. 먹고 떨어지라는 마음으로 그냥 줬습니다.”
“미쳤어. 미친 거야. 무슨 깡촌에서 두 끼에 15실버를 받아?”
“그래도 요리는 맛있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십쇼.”
“못 해! 안 해! 무슨 돈을 그렇게 물 쓰듯 쓰고 다니냐! 너 그러다가 금방 거지 된다? 돈 떨어지면 어쩔려고? 용병 일 하면서 가게?”
“에이, 백작님이 계신데 무슨 그런 걱정을 하십니까? 안 그렇습니까? 백작님?”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펄펄 뛰자 파비안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끌어들였다.
“라고아 경, 경비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그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반색을 했다.
“들으셨죠? 그리고 이번에나 바가지를 썼지, 조금만 규모가 커도 그런 거 없습니다. 비싸다고 소문나면 다들 피해 다니거든요.”
그건 그의 말이 맞았다.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일수록 바가지가 기승을 부렸다.
그들은 마을 평판에 신경 쓰지 않고 기회가 왔을 때 최대한 뜯어냈다.
이러나저러나 외부인이 오지 않으니 제멋대로 하는 것이다.
여하튼 그일 이후 엘리오 일행은 가급적 큰 마을에서 쉬어 갔다.
마을이 작으면 차라리 노숙을 했다.
다행히 말라시아 공국 내의 다른 마을들은 바가지를 씌우지 않았다.
여관과 음식점의 가격도 왕국과 달리 제국은 어디를 가나 엇비슷했다.
덕분에 바가지를 쓴 기억은 오래지 않아 잊혀졌다.
제국과 남부 왕국들 간에 전쟁이 발발했지만 말라시아 공국은 조용했다.
***
일직선으로 뻗은 도로 위를 거침없이 달리던 마차가 돌연 속도를 줄였다.
파비안이 머리를 밖으로 쭉 빼고 마부 하비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라곤 공국 검문소 앞에 줄이 좀 밀려 있습니다. 도로가 기다리는 사람으로 꽉 차 있습니다.”
원하는 답을 얻자 파비안은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검문이 심한 모양입니다. 검문소 앞이 꽉 막혔다는데요?”
엘리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라곤 공국은 제도에서 한참 떨어져 있잖아. 말라시아도 조용한데, 왜 그런대?”
“그러게요?”
그러자 책을 읽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한마디 했다.
“전쟁이 치열해지면 국경의 검문 검색도 까다로워집니다. 남부 왕국과의 전쟁이 쉽게 풀리지 않는 모양이네요.”
“제국이 고전하고 있다고요?”
엘리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북부에 있을 때 그런 소리를 들으면 그런가 보다 했을 게다.
하지만 제도의 크기와 그 힘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지금은 다르다.
남부 왕국들이 제국군과 대등하게 싸운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남부 왕국들이 대수림의 출입을 통제한다고 할 때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제국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으니까요.”
‘그게 뭐 어때서?’
고개를 갸웃하던 엘리오는 백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남부 왕국들에게 제국에 맞설 무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기요? 마력포와 마력총 말고 다른 게 더 있다는 건가요?”
마력포와 마력총의 생산지는 마탑이다.
마탑은 대륙에 퍼져 있지만 제국의 마탑이 가장 앞선 기술을 가졌다.
그 말은 제국의 마력포와 마력총이 가장 우수하다는 뜻이다.
“애초에 대수림을 통제하는 이유가 강철 골렘의 발견 때문이라고 하셨죠?”
“예, 그렇게 들었어요.”
“남부 왕국들이 강철 골렘의 일부를 실전 배치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조만간 소문이 날 겁니다.”
“백작님 생각은요?”
“갑자기 강철 골렘의 이름이 튀어나온 데는 반드시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비스의 보물들은 바로 사용해도 될 만큼 상태가 좋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흐음…….”
엘리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백작은 강철 골렘 때문에 제국군이 밀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듣고 있던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제국의 마력포에 직격당하면 강철 골렘도 박살 나지 않습니까?”
“강철 골렘을 대상으로 실험한 적이 없으니 그건 아직 모르네. 하지만 쉽지 않을 걸세.”
“쉽지 않다고요? 마력포의 파괴력이면 강철 골렘의 외골격도 찢어질 것 같은데요? 그래 봐야 강철 아닙니까?”
“마력포의 본질은 마나를 응축한 힘일세. 만약 골렘의 외골격에 반마력 마법진이 있다면, 마력포는 제구실을 하지 못할 걸세.”
“반마력 마법진이 있을까요?”
“내가 골렘 제작자라면 물리 저항과 반마력 마법진부터 새겨 넣었을 걸세. 자기가 만든 물건이 파괴되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참고로 마탑의 스톤 골렘에는 물리 저항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네.”
“아…….”
파비안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면 강철 골렘에 반마력 마법진이 있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점점 느려지던 마차는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마차 뒤쪽으로도 사람들이 제법 늘어섰다.
창밖을 내다보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앞을 보면 답답한데, 뒤를 보면 뿌듯하네.”
“이런 거 보면 제국도 좀 이상합니다. 같은 제국 안에서 국경 검문소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가 너무해? 왕국은 영지와 영지 사이에도 검문소가 있구만.”
“아, 그런 또 그렇네요.”
파비안은 고집부리지 않고 이내 수긍했다.
대화가 시들해지자 세 사람은 약속한 듯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지가 아닌 국경 검문소라서 그런지 마차도 많이 보였다.
그때 문에 귀족가 문양이 그려진 사두마차가 옆으로 휙 지나갔다.
‘대귀족인가?’
엘리오는 문양을 봤지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시선이 무심코 맞은편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향했다.
하지만 그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가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파비안이 화가 가득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기껏 줄을 섰는데 누군가 새치기를 하니 울컥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느리게라도 꾸준히 가던 마차가 완전히 멈춰 섰다.
엘리오 일행은 창밖으로 머리를 길게 빼고 정면을 주시했다.
조금 전 그들을 추월해 간 마차 앞에 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성질 급한 마부가 기어코 사고를 낸 모양이다.
“뭘 보고만 있어! 끌어내! 치료비는 파가누스 백작가로 청구하고! 경비병! 경비병!”
사두마차에서 내린 중년 남자가 검문소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