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1
1161회. 공국의 천재와 후작령의 천재
중년 남자의 지휘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두 사람을 끌어냈다.
노인과 청년이었다.
노인을 살피던 사내들 중에 하나가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나리, 노인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뭐?”
중년 남자가 쏘아보자 사내는 쭈뼛쭈뼛 뒤로 물러났다.
다행히 청년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중년 남자는 팔이 부러진 그에게 1실버를 던지며 구시렁거렸다.
“미련한 놈. 귓구멍이 막혔나. 마차가 달려오면 알아서 피해야지.”
팔이 부러진 청년은 성한 한쪽 팔로 땅에 떨어진 1실버짜리 은화를 집어 들고는 황급히 자리에서 멀어졌다.
그러는 동안 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다가왔다.
중년 남자, 키넌 가이어 남작이 그들에게 소리쳤다.
“마차가 오는 걸 봤으면 미리미리 길을 텄어야지! 네놈들 때문에 시간만 지체되지 않았느냐!”
억지스러운 주장이지만 경비병들은 도리어 잘못했다고 빌었다.
“시간이 없어 넘어가 주겠다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용서하지 않겠다.”
경비병들을 쥐 잡듯 몰아세우던 키넌 가이어 남작이 선심 쓰듯 말하고 돌아섰다.
그가 막 마차에 오르려 할 때다.
줄지어 선 사람들 뒤쪽에서 불만 가득한 외침이 들려왔다.
“어이! 선생님! 여기 줄 서서 기다리는 거 안 보입니까? 그쪽만 바쁜 거 아니니까 차례대로 갑시다!”
이어지는 말이 더 가관이었다.
“눈이 아니라 옹이구멍이야. 그러니 사람을 치어 죽이고도 저 지랄이지. 아유! 뭐 이런 썅놈의 세상이 다 있지? 가는 데마다 쓰레기들 천지야. 카마 데비아스(천자마)나 우샤스 운드라(금사)보다 사람이 더 나쁘다니까. 샤스트라 파라크티(구천현녀)님! 보고 있습니까!”
“…….”
키넌 가이어 남작이 옆을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울컥!’했지만 신들의 이름을 듣는 순간 묘하게 진정이 됐다.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는 결코 악신이 아닌 까닭이다.
‘뭐지? 미친놈들인가?’
아니, 어쩌면 광대인지도 모르겠다.
자극적이고 과장된 말투는 딱 어릿광대들의 대화였다.
이윽고 중년의 키넌 가이어 남작과 파비안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선생님, 좋은 말로 할 때 뒤로 가십쇼. 5분 먼저 가려다가 50년 먼저 가는 수가 있습니다.”
순간 키넌 가이어 남작은 상대가 어릿광대가 아닌 기사임을 알았다.
사두마차와 기사.
대귀족과 관계된 기사일 확률이 높았다.
‘어느 가문의 사람들이지?’
키넌 가이어 남작은 상체를 뒤로 기울여 상대편 마차 출입문을 보았다.
아쉽게도 귀족의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차를 구입하자마자 끌고 나왔거나 임시로 대여했다는 뜻이다.
‘내가 파가누스 백작가를 밝혔는데도 저런단 말이지…….’
파가누스 백작은 아라곤 공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검문소가 자리한 에스파나의 영주는 파가누스 백작의 오른팔인 베른 부르크 자작.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꿀릴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손짓으로 아직 남아 있던 경비병들을 불렀다.
경비병 둘이 황급히 달려왔다.
“예, 남작님.”
“저 마차가 수상쩍다. 누가 타고 있는지 조사해 보도록.”
키넌 가이어 남작이 정체불명의 기사가 탄 마차를 가리켜 보였다.
“예!”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까!
두 사람의 경비병은 즉시 뒤쪽에 서 있는 사두마차로 다가갔다.
그중 하나가 창문 밖으로 머리를 빼내고 구경하는 젊은 기사에게 물었다.
“어디의 누구십니까?”
척 봐도 일반인 복장이 아닌지라 경비병의 대도는 정중했다.
“하아! 나는 북부 슬래시 랜드의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다.”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파비안은 작위 증명서를 꺼내 건넸다.
그동안 자주 사용한 탓에 증명서의 접힌 부위가 너덜너덜했다.
증명서를 확인한 경비병이 다시 물었다.
“일행 분들은 누구십니까?”
“북부 베일럼 왕국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과 슬래시 랜드의 영주이신 엘리오 라고아 자작님이시다. 귀찮게 하지 말고 가라.”
파비안이 노려보자 경비병은 증명서를 돌려준 뒤 키넌 가이어 남작에게 뛰어갔다.
“남작님, 젊은 기사는 북부 슬래시 랜드의 남작입니다. 그와 동행 중인 사람들은 북부의 백작과 자작이랍니다.”
순간 키넌 가이어 남작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어떤 대단한 신분이기에 큰소리를 치나 했더니 북부의 귀족이란다.
‘간첩으로 몰아 체포할까?’ 생각했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았다.
백작과 자작이 승계받은 작위가 아니라면 검문소 인원으로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없던 일로 털어 버리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내부 수색을 확실히 하도록. 남부 왕국과 관계된 불순분자들일 수도 있으니까.”
대귀족이 탄 마차를 조사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욕이다.
그는 그렇게라도 상대를 골탕 먹이고 싶었다.
경비병은 전시 상태라 키넌 가이어 남작의 말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시 북부 귀족들의 마차로 돌아간 경비병이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에게 말했다.
“남작님, 마차 내부를 조사할 수 있게 협조해 주십시오.”
새치기한 중년 귀족을 노려보던 파비안이 마차 밖으로 나갔다.
“어이, 경비병.”
“예?”
“얼굴에 개기름 흐르는 저 남자, 누구야?”
“파가누스 백작가의 키넌 가이어 남작님이십니다.”
“조금 전에 저 사람이 탄 마차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 봤나?”
“못 봤습니다.”
경비병은 복잡한 귀족들의 다툼에 얽히기 싫어 일단 발을 뺐다.
“못 봤다고? 여기 있는 사람들이 다 목격자다. 키넌 가이어 남작의 마차가 사람을 치어 죽였다고. 왜 체포하지 않나?”
“그건…….”
경비병은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해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보다 못한 키넌 가이어 남작이 북부 귀족의 마차로 걸음을 옮겼다.
“제국 귀족은 공무 수행 중 일어난 사고에 면책 특권이 있다. 그런데 북부의 귀족이 왜 제국의 병사를 취조하나? 남부 왕국들처럼 그대도 제국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인가?”
노련한 키넌 가이어 남작의 역공에 파비안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자 마차 안에 있던 엘리오가 말했다.
“어이, 남작 놈. 면책이고 지랄이고 다 좋은데, 내 앞에 끼어들지만 마. 나도 엄청 바쁜데 줄 서 있는 거거든?”
갑작스러운 욕설에 울컥한 키넌 가이어 남작이 마차를 노려보았다.
“에스파나 영지에서 파가누스 백작가의 남작에게 욕을 한 사람은 누구요?”
“너는 내 이름을 알 자격도 없어. 면책특권이라니 봐줄게. 마차나 뒤로 빼. 안 그러면 마차를 박살 내 버릴 거야.”
이를 악물고 있던 키넌 가이어 남작이 경비병들을 쏘아보았다.
하지만 경비병들은 나서지 않았다.
키넌 가이어 남작이 그들의 직속상관이라면 혹 모를까?
그것도 아닌데 동참하기에는 상대의 작위가 너무 높았다.
백작과 자작은 ―그게 아무리 북부의 귀족이라 해도― 평민 경비병들이 노려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지만 끝내 키넌 가이어 남작은 마차를 빼지 않았다.
에스파나에서 그렇게 했다가는 파가누스 백작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가 누구라도 감히 파가누스 백작가의 마차에 손대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아라곤 공국에서 파가누스 백작가는 그 정도 위치였다.
“흥!”
키넌 가이어 남작은 냉소를 치고 돌아섰다.
잠시 후 키넌 가이어 남작이 돌아오자 파가누스 백작가의 마부가 물었다.
“남작님, 어떻게 할까요?”
“출발해.”
뒤이어 그는 보란듯 마차에 올라탔다.
벨벳으로 덧씌운 마차 의자에 그가 엉덩이를 걸칠 때다.
돌연 ‘꽝!’ 하는 폭발음과 함께 마차가 박살 났다.
비명과 함께 사람들이 달아나고, 검문소의 경비병들이 몰려왔다.
키넌 가이어 남작은 멍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산산조각 난 마차 파편을 보니 가슴이 아려 오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미친놈이…….’
진짜 파가누스 백작가의 마차를 박살 내다니!
방금 자신이 당한 일이지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그에게 마부가 비틀비틀 다가왔다.
“남작님? 괜찮으십니까?”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키넌 가이어 남작은 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북부 귀족들의 사두마차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가까이 서 있던 경비병에게 소리쳐 물었다.
“북부 놈들의 마차는?”
“조금 전에 검문소를 통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마차가 왜 갑자기 그렇게 된 겁니까?”
“보지 못했나?”
“예?”
경비병이 되묻자 키넌 가이어 남작은 얼른 질문을 바꿨다.
“아니다. 북부 귀족들이 어디로 간다고 하던가?”
“로렌 공국이라고 했습니다.”
“말, 말을 가져와라!”
“예!”
급히 검문소로 달려간 경비병이 전마 한 필을 끌고 왔다.
키넌 가이어 남작은 말에 오르자마자 바람처럼 파가누스 백작가로 달렸다.
***
아라곤 공국.
파가누스 백작가.
“지금 북부의 귀족들이 내 마차를 부쉈다고 했느냐?”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 황당한 눈으로 키넌 가이어 남작을 보았다.
아라곤 공국은 제국 내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강국이다.
그런 아라곤 공국에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있는데, 그중 하나가 ‘홍염의 검’이라 불리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이었다.
키넌 가이어 남작이 에스파나 영지의 검문소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했다.
“……그때 마차 안에 있던 북부의 귀족이 마차를 박살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직후 폭발음과 함께 마차가 부서졌습니다.”
“베일럼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라고 했더냐?”
“그렇습니다.”
“흐음!”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하필 2차 소집령이 떨어졌을 때 이런 일이라니!
하지만 백작가의 명예가 실추된 것을 그냥 두고 남부로 갈 수는 없었다.
그는 즉시 기사단을 소집해 북부 귀족들의 뒤를 추격했다.
***
달리는 사두마차 안.
창밖을 내다보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파가누스 백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아는 사람이에요?”
엘리오가 백작을 힐끔 보았다.
“직접 만나 본 적은 없지만 그가 누군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유명해요?”
“카디널 파가누스 백작은 ‘홍염의 검’이라 불리는데, 제국을 떠받치는 일곱 기둥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홍염의 검요? 롱소드에서 붉은빛이 나나?”
“마검사로 소드마스터에 오른 자입니다.”
“오! 마검사라고요?”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나에 전념해도 대성하기 어려운데 마법까지 익힌 소드마스터라니! 제국을 떠받치는 기둥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파비안도 흥미진진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상대가 소드마스터에 오른 마검사라니 왠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다른 소드마스터들과 싸우는 방식이 다를 겁니다.”
“몇 서클까지 올랐대요?”
“마검사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4서클은 넘겨야 합니다.”
4서클 이상이라는 소리다.
“와아! 4서클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을 텐데……. 누구와 달리 진짜 천재인가 보네요?”
그러자 파비안이 변명하듯 말했다.
“저도 천재가 맞습니다. 파가누스 백작이 아라곤 공국의 천재라면, 저는 후작령(아나톨리아)의 천재라고 생각해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