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68
1168회. 마의 해역에는 머무르지 않는 게 오랜 관습입니다
하데스 항.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돌아오자마자 엘리오 일행은 부두로 나갔다.
정박해 있던 고깃배들이 대거 빠져나간 부두는 한적하고 고요했다.
따로 설치된 선박 계류장에 중형 마력범선 한 척이 우아한 자태로 떠 있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거침없이 중형 마력범선을 향해 걸어갔다.
“한 달간 임대한 마력범선입니다. 혹시 몰라서 월 단위로 임대 계약을 했습니다. 일거리가 없는지 좋아하더군요.”
“한 달이나 걸리겠어요? 내가 뱃길만 익히면 토르누비스(운종술)로 다녀도 되는데.”
엘리오의 말에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답했다.
“구름에서 식사를 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루 종일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려면 구름보다는 배가 나을 겁니다.”
“아, 그건 또 그렇네요.”
엘리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먹고, 쉬고, 싸려면 구름보다 배가 나았기 때문이다.
파비안도 백작을 거들고 나섰다.
“맞습니다. 구름에서 에너지 볼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국물 요리도 좀 먹고 그래야죠. 언제 발견할지 모르는데 자작님도 힘들어서 안 됩니다. 기껏 천공성을 발견했는데 자작님이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그건 좀 심했다. 아무렴 내가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로 토르누비스를 사용하겠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자작님도 길게 보십시오. 수천 년간 누구도 찾지 못했잖습니까.”
“알아, 알아. 하루 이틀 새에 찾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아.”
선박 계류장에 도착하자 선장이 마중을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백작님.”
선장이 인사하자 오마르 백작은 그를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소개했다.
“라고아 경, 이 사람이 선장입니다. 선장, 인사드려라. 내가 모시는 라고아 경이시다. 이번 탐사의 인솔자시니 잘 모셔야 한다.”
선장은 백작의 입에서 ‘모신다’는 말이 나오자 깜짝 놀라 허리를 숙였다.
“마력범선의 선장인 알트헬름입니다.”
“엘리오 라고아입니다. 오늘부터는 좀 멀리 나갈 생각인데, 준비됐습니까?”
“예, 일단 열흘치의 식량을 실어 두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성큼성큼 마력범선으로 다가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알트헬름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잠시 후 마력범선이 미끄러지듯 선박 계류장을 빠져나갔다.
선수에서 망망대해를 응시하던 엘리오가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우라지게 넓네.’
바다로 나오니 ‘왕들의 하늘’이 떠오른다.
무량하와 백리하는 비록 강에 불과했지만 그 크기가 바다와도 같았다.
하계의 강도 그렇게 컸는데 그보다 상계인 이세계 바다는 얼마나 넓을까!
마의 해역을 통과하면 정말 천공성이 나타날까?
천공성이 정말 그곳에 있기나 한 것일까?
그가 바다를 보며 회의에 잠겨 있을 때 파비안이 다가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천공성 말야. 마의 해역을 지나서 발견했다잖아. 그런데 왜 그 뒤로는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거지? 그것도 수천 년간이나.”
“제가 들었던 이야기 중에 이상한 게 하나 있었습니다. 마의 해역이 항상 날뛰는 건 아니랍니다.”
“항상이 아니라고?”
“평소에는 잠잠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답니다. 마의 해역이라는 말이 거짓말인 것처럼요.”
“그럼 언제 이상해진다는 거야?”
“그냥 그럴 때가 있답니다. 갑자기 파도가 거칠어지고, 안개가 끼고, 그때부터 마의 해역이 되는 거죠.”
“그건 날씨가 나쁜 거잖아.”
“날씨가 나쁜 것과는 다르답니다. 직접 경험해 보면 안다고 하더라고요?”
“가만, 가만, 그럼 하루 뒤에도 마의 해역이 잠잠할 수 있다는 거네?”
“그렇죠. 선장이 흔쾌히 가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항상 마의 해역이 지랄맞게 뒤집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쯧! 마의 해역이 뒤집어지기를 바라야 된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래야 천공성이든 뭐든 발견할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말야. 이런 생각 안 해 봤어?”
“무슨 생각요?”
“수천 년간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을까?”
“많았겠죠. 태양신과 만나고 싶은 사람이 어디 한둘이었겠습니까?”
“그들도 마의 해역에서 죽치고 있었을 텐데……. 왜 지금까지 천공성을 봤다는 사람이 없을까?”
“그러게요?”
“그들도 우리처럼 작정하고 마의 해역을 들쑤시고 다녔을 거 아냐. 그런데 천공성을 발견했다는 사람이 없어. 수천 년간이나.”
“어쩌면 운 좋게 발견한 사람은 다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이렌들에 의해서요.”
“세이렌들이 문제네. 그게 천공성에서 추방된 사람들이라고 했지?”
“예,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럼 사람이라는 거잖아? 바닷속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지?”
“바닷속에 살 수 있는 수인(獸人)일 수도 있습니다. 아가미가 있으면 물속에서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인어(人魚)를 말하는 거야?”
“예, 머메이드라면 얼마든지 물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이렌이 머메이드의 일종일 수가 있다는 거지?”
“뭔가 다른 점이 있으니까 그렇게 불렀겠죠?”
“흠! 여하튼 마의 해역에 마법사와 기사를 싹 다 죽일 수 있는 뭔가가 있다 이거지? 그게 세이렌이든 뭐든.”
“그렇게 말씀하시니 갑자기 무섭네요.”
파비안이 가볍게 진저리를 쳤다.
옆에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지금이라도 배를 돌리자고 할 정도로 두려웠다.
방향타를 잡고 있는 선장에게 조타수 딜로스가 다가갔다.
“선장님. 우리 배가 마의 해역으로 간다는 게 사실입니까?”
“누가 그래?”
“브루노가 갑판에서 귀족들이 하는 말을 들었답니다.”
알트헬름이 눈을 찌푸렸다.
항해사인 브루노가 돛을 점검하다가 귀족들의 이야기를 엿들은 모양이다.
“요란 떨 거 없어. 그냥 구경만 하러 가는 거니까.”
“구경만 하고 바로 빠지는 거 맞습니까?”
“그럼, 귀족들이 거기서 뭘 한다고? 고기라도 잡을까 봐 그래? 바다 외에 볼 게 없으니 금방 가자고 할 게다.”
“천공성 어쩌고 했다는데요?”
“우리가 마의 해역 한두 번 지나 봤냐. 거기 천공성이 있더냐?”
“없었죠. 그걸 찾겠다고 마의 해역을 돌아다닐까 봐 그럽니다.”
“좀 돌아다니면 어때서? 설마 마의 해역이 무서워서 그러나?”
“무서운 건 아니지만, 만만하게 볼 곳도 아니지 않습니까?”
“바다에 만만한 곳은 없어. 그만한 각오도 없이 배를 탔나?”
“그런 뜻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타수 딜로스가 눈에 힘을 주었다.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뻔히 알면서 저러니 짜증이 난 것이다.
“알아, 알아. 마의 해역에서 오래 있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쓸데없는 말 나돌지 않게 항해사 입단속이나 좀 해 둬.”
“약속했습니다?”
“알았으니까 가서 항해사가 허튼소리 못 하게 하라고.”
“예.”
그제야 딜로스는 조용히 물러났다.
다시 바다로 시선을 돌린 알트헬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마의 해역이 뭐라고 바다의 사나이가 저렇게 겁을 집어먹는지 모르겠다.
그날 저녁.
엘리오 일행은 갑판에서 선장이 준비한 성대한 만찬을 즐겼다.
뭐가 그리 급한지 파비안이 입안 가득 해산물을 머금고 말했다.
“와아! 바다에서 이런 만찬이라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러게. 이거도 운치 있네. 전에도 몇 번 배를 탔는데 그때와는 너무 다르다.”
“전에는 뭘 하셨게요?”
“낚시 구경?”
“고깃배를 얻어 타셨던 겁니까?”
“아니, 그냥 여객선 같은 거였는데 낚시를 하게 해 줬어. 값비싼 고기를 낚으라고.”
“선장이 아주 호인이었나 봅니다?”
“낚싯대 대여료를 받으려고 그런 거야.”
“아하! 수완이 좋은 사람이었네요. 그나저나 매일 밤 이렇게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럼 하데스 항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흘치 식량만 싣고 나왔다고 하잖냐.”
“열흘이면 오가는 데 이틀 빼면 칠팔일 정도 조사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문득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보았다.
그런 식으로 반년 만 운항해도 경비가 꽤 나올 것 같았다.
항해 도중에 사고라도 나면 돈이 더 들어가게 될 게다.
마탑에서 탐사를 포기한 것도 이해가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젠장, 지금 요리가 훌륭하다고 좋아할 때가 아닌데…….’
분명히 입맛은 싹 달아났는데 손이 자꾸 해산물로 갔다.
식사를 마칠 즈음 선장 알트헬름이 찾아왔다.
“요리는 입에 맞으십니까?”
“잘 먹었네.”
파비안이 일행을 대신해 만족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귀족들의 반응을 살피던 알트헬름의 입이 귀에 걸렸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희 요리사는 제도에서 요릿집을 하다가 왔습니다. 다른 선박의 요리사들과는 격이 다르지요.”
“분위기가 좋아서 그런가? 제도의 요릿집보다 더 맛이 있었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의 해역은 내일 아침에 도착할 겁니다. 마의 해역을 종과 횡으로 관통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마의 해역을 지나는 데 얼마나 걸리나?”
“반나절이면 지날 수 있습니다.”
“그럼 종으로 한번 횡으로 한번 지나는 게 가능하겠군?”
“바람이 도와주면 가능합니다. 가끔 역풍이 불거나, 바람이 없으면……. 종이든 횡이든 한 번 이상은 어렵습니다.”
“한 번뿐이라고?”
“역풍이나 바람이 없으면 마력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가볍게 뛰는 정도의 속도라…….”
“결국 내일 바람에 달려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알겠네. 내일 상황을 보고 말해 주게.”
“그런데 마의 해역을 종횡으로 가로지른 다음에는 어찌합니까?”
“자작님, 그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물었다.
뚱한 얼굴로 듣고 있던 엘리오가 답했다.
“어쩌긴? 뭐가 나올 때까지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거지.”
순간 알트헬름이 뜨악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목적지가 마의 해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의 해역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니?
그건 그냥 마의 해역에 눌러앉아 있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저어, 자작님. 마의 해역에는 머무르지 않는 게 오랜 관습입니다.”
“법으로 정한 건 아니죠?”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마의 해역이 어떤 곳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마의 해역을 지나가는 건 괜찮은데,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는 건 안 된다?”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위험할 수도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백작님에게 들으니 선장님은 그런 거 안 믿는다고 했다면서요? 마의 해역을 조사하려고 배를 빌린 건데,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 모양이군요?”
엘리오가 선장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자 알트헬름이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어이쿠! 아닙니다. 저는 미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원들 중에 그걸 믿는 사람들이 있어서요. 마의 해역을 단순히 미신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고 해서…….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알트헬름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의 해역을 조사하는 것’과 ‘마의 해역에 죽치고 있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조사는 마의 해역을 들락거리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마의 해역을 돌아다니라니…….’
북부에서 온 무식한 귀족들이 그럴 계획임을 알았다면, 더 많은 보수를 요구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