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72
1172회. 여자라고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
다음 날.
석양 무렵 마력범선의 주돛 교체 작업과 갑판 수리가 끝났다.
옥토퍼스 호의 선장 아르코스 아달은 꼼꼼하게 주덫과 갑판 상태를 확인한 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찾아갔다.
“백작님. 주돛 교체가 끝났습니다. 부서진 갑판도 깨끗하게 복구했습니다.”
“너희가 부순 것이니 수고했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앞으로는 상대를 잘 봐 가며 일을 하도록.”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무심한 눈으로 아르코스 아달을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체포해 제국 치안대에 넘기고 싶지만 남부 왕국에서 사략 면허를 받은 해적들에게 그럴 수는 없었다.
북부 왕국과 남부 왕국이 동맹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유명무실한 상태라 해도 그걸 자신이 훼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제국을 견제하려면 훼손해서도 안 되지.’
그러니 사로잡은 해적들이라도 놓아주는 게 당연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그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참, 자네의 배를 개조한 상선이라고들 하던데……. 요즘 해적들은 다들 그런가?”
“그건 아닙니다. 치고 빠지기 쉽게 하려고 선수에만 함포를 장착한 겁니다. 아직 대부분이 측면에 함포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마의 해역 주변에서 활동하는 다른 해적들이 있나?”
“없습니다. 해적들도 마의 해역을 꺼려 해서요.”
“그런데 용케 우리 배를 따라왔군? 우리 배의 선원 중에 정보를 판 자가 있나?”
“없습니다. 항구의 선술집에서 소문을 듣고 준비한 것뿐입니다.”
아르코스 아달은 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물론 내통한 선원이 있지만 그런 걸 가르쳐 줄 이유는 없었다.
“그런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더 묻지 않았다.
여기서 더 파고들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어서다.
이윽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무쪼록 마나 프트라스님의 가호가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아르코스 아달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잠시 후 수리를 위해 건너와 있던 해적들이 사략선 옥토퍼스로 돌아갔다.
두 배를 결속시켰던 갈고리가 해체되고, 옥토퍼스 호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뱃전에서 멀어져 가는 옥토퍼스 호를 보던 엘리오가 중얼거렸다.
“예의가 없는 것들이네.”
그러자 파비안이 물었다.
“왜요? 해적들이 우리 쪽으로 욕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저 배의 앞머리가 이쪽을 향해 있잖아.”
“그게 어때서요?”
“모르겠어? 마력포가 이쪽을 겨누고 있는 형국이라고.”
“어? 그러네요?”
그제야 파비안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기들이 애써 수선한 배에 다시 마력포를 쏘려고?
그렇게 생각하던 파비안이 손가락으로 옥토퍼스 호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 해적들이 위장막을 걷고 있습니다!”
곧이어 옥토퍼스 호 선수에 있던 두 문의 마력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깜짝 놀란 마력범선의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녔다.
선원들은 살겠다고 접었던 보조돛들을 죄다 올렸다.
그러자 옥토퍼스 호의 돛도 하나둘씩 펼쳐졌다.
처음 만나던 날처럼 다시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되고 만 셈이다.
점점 따라붙는 옥토퍼스 호를 보던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저것들이 왜 저러죠?”
“그러게. 훔쳐 갈 것도 없는데 왜 마력포를 꺼냈지?”
두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해적들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쾅!
마력포 소리와 함께 마력범선의 후미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선원들은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몰라 했다.
쾅!
이번에도 후미에서 물기둥이 솟구쳤다.
옥토퍼스 호를 노려보던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힐끔 돌아보았다.
“이대로라면 어두워지기 전에 피격당할 겁니다.”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님, 선원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배에 떨어지는 거 한두 번만 막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즉시 선미로 이동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롱소드를 뽑았다.
마력 포탄을 막아 달라니?
확실히 라고아 경은 보통 사람들과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마력 포탄을 베어 본 적은 없지만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벨 자신이 있었으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가만히 마나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우우웅―!
검붉은 노을 아래 그의 검이 희미하게 빛을 발했다.
옥토퍼스 호의 포술장 우리엘이 전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나 블레이드의 불빛이다! 미련한 놈들! 죽여 달라고 사정을 하는구나! 포수들! 저 불빛을 향해 쏴라! 소드마스터의 칼은 우리에게 닿지 않지만, 우리 마력포는 저 배에 닿는다! 쉬지 말고 쏴라! 퍼부으란 말이다!”
어차피 침몰시키는 게 목적인 만큼 목표물에 맞기만 하면 된다.
사기가 오른 해적들은 아낌없이 마력포를 쏘아 댔다.
쾅! 쾅!
마력에 의해 발사된 포탄 하나가 마력범선의 선미로 떨어졌다.
기다리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벼락처럼 롱소드를 휘둘렀다.
쩡―!
묵직한 쇳소리와 함께 이등분된 포탄이 마력범선의 좌우로 비껴 났다.
일격에 포탄을 양단한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다시 마나 블레이드를 뽑아 올렸다.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숨소리도 거칠었다.
‘하아! 하아!’
한 번 정도를 더 베면 집중력이 흐트러질 느낌이다.
라고아 자작이 한두 번만 막아 달라고 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후우!’
힘들게 호흡을 조절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바다 위를 달리고 있다?
‘헉!’
눈에 힘을 주고 다시 봐도 발로 물결 위를 툭툭 차며 나아갈 뿐이다.
해적들도 그걸 봤는지 마력포 소리가 멎었다.
옥토퍼스 호 옆에 멈춰 선 엘리오가 천둔검을 뽑아 휘둘렀다.
천둔검에서 쏘아져 나간 오라 블레이드가 옥토퍼스 호를 직격했다.
콰드드득―!
단 일 검에 옥토퍼스 호의 허리가 반듯하게 잘렸다.
엘리오는 침몰하는 옥토퍼스 호를 뒤로하고 다시 마력범선으로 돌아갔다.
등평도수보다 뛰어나다는 무력답수의 신법이다.
자신의 몸을 허공에 붙들어 두어야 하는 만큼 어마어마한 공력이 필요하지만, 엘리오에게 그 정도 공력은 티도 나지 않는다.
그가 막 선미에 발을 디딘 순간, 옥토퍼스 호는 흔적도 없이 가라앉았다.
해적들이 널빤지를 부여잡고 노을 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방향타를 놓고 선미로 달려간 알트헬름 선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해적들은…… 어떻게 할까요?”
엘리오가 시큰둥한 얼굴로 답했다.
“마나 프트라스의 가호에 맡겨야죠. 그게 맞죠? 백작님?”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물음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구조해서 항구로 돌아가면 치안대에 넘겨야 하는데……. 나중에 남부 왕국에서 분명히 물고 늘어질 겁니다.”
“들었죠? 기회를 주면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어딜 뒤통수를 쳐. 죽을라고.”
“예!”
눈앞의 젊은 자작이 바다 위를 뛰어다니는 걸 본 선장은 두번 묻지 않았다.
그는 선원들에게 돛을 내리라고 명한 뒤 조타실로 돌아가 마력 구동 장치를 껐다.
마력범선이 천천히 물살을 따라 흘러갔다.
그 사건 이후로 선원들은 마의 해역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마의 해역을 두려워하는 항해사 브루노도 마찬가지였다.
바다 위를 두 발로 뛰어다니고, 일검에 대형 범선을 두 동강 내는 사람 앞에서, 무슨 깡으로 불만을 말한단 말인가!
게다가 불안과 공포도 바다가 날뛸 때에나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마의 해역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잠잠했다.
사흘간 마의 해역을 떠돌던 마력범선은 다시 뱃머리를 하데스 항으로 돌렸다.
옥토퍼스 호와 처음 만나던 날 부상당한 선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다.
해적들이 주돛을 노려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부상자에게 힘든 뱃일을 시킬 수 없으니 재정비를 하기로 한 것이다.
***
피에스트라.
하데스 항.
이른 아침.
마력범선이 항구로 돌아온 날은 때마침 아침 안개가 짙게 낀 날이었다.
엘리오 일행은 짐을 챙겨 닷새 전에 묵었던 숙소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린 알트헬름 선장이 감회 어린 눈으로 마력범선을 보았다.
비록 닷새에 불과한 짧은 항해지만 그가 평생 경험한 항해보다 더 짜릿했다.
해적선에 포격을 받아 본 적도 없고, 그토록 오랫동안 마의 해역에 머문 적도 없다.
심지어 기사가 바다 위를 달려가 해적선을 양단하는 것까지 봤다.
평생에 그와 같은 광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아마도 없겠지.’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때 뒤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알트헬름 선장.”
알트헬름은 천천히 뒤로 돌아섰다.
너무도 놀라운 경험을 해서인지 누군가 갑자기 찾아왔어도 무덤덤했다.
“그렇습니다만.”
알트헬름은 상대가 비록 여자였지만 경시하지 않았다.
그녀가 영주의 기사들만 입는다는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보리스 기사단의 벤젤이다.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다.”
“저에게요? 저는 평범한 마력범선의 선장일 뿐입니다.”
“네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다. 나는 북부 귀족들에 대해 물으려고 왔다.”
“아, 예.”
알트헬름은 눈을 내리깔았다.
그런 북부 귀족들이라면 영주님이 관심을 갖는 게 당연했다.
“놀라지 않는군?”
“북부 귀족님들은 그럴 만한 분들이시니까요.”
“묘하군. 너는 이번에 처음으로 북부 귀족들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럴 만한 분들이시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아, 말씀하신 대로 이번에 처음 만난 분들이십니다. 닷새간 함께 항해하는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봐서 말입니다.”
“그래? 그 이야기는 조금 후에 듣기로 하지. 그 전에 북부 귀족들의 항해 목적을 알아야겠다. 그들과 간 곳이 어디냐?”
“마의 해역에 갔습니다.”
“출항한 이후 계속 마의 해역에 있었단 말이냐?”
“예, 사흘간 마의 해역을 빙빙 돌다가 왔습니다.”
“왜지?”
“천공성을 찾는다고 했습니다.”
알트헬름 선장은 그게 비밀도 아닌지라 감추지 않았다.
“하데스 항과 피에스트라의 근해를 조사했을 가능성은 없느냐?”
기사들에게 피에스트라는 해전(海戰)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런 만큼 적국에서 얼마든지 염탐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없습니다. 출항하자마자 로도스 섬을 향해 일직선으로 항해했으니까요. 근해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마의 해역은 하데스 항과 로도스 섬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런 만큼 피에스트라 근해를 염탐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알겠다. 천공성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사흘간 마의 해역에 머물렀다. 맞나?”
“그렇습니다.”
“그렇게 보고하도록 하지. 이제 네가 봤다는 얘기를 들어 보자.”
“예, 그게 그러니까…….”
알트헬름 선장은 마의 해역에서 만난 해적선에 대해 털어놓았다.
“……그 해적들이 가는 척하다가 돌아와 우리 배에 마력포를 쏘아 댔습니다. 백병전으로 안 될 게 뻔하니까 바다에 우리를 수장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 것치고 배가 멀쩡하던데?”
“백작님이 배에 떨어지는 포탄을 칼로 베셨습니다. 그동안 자작님이 바다 위를 달려가 뒤에 있던 해적선을 두 동강 내 버리셨지요.”
순간 벤젤의 눈썹이 위로 솟구쳤다.
“지금 여자라고 나를 희롱하는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