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75
1175회. 11시 방향에 안개가 보입니다!
벨라누스 백작성.
보리스 기사단.
기사단으로 돌아간 카밀로 쿠스만 기사단장은 모든 기사들을 소집했다.
“……그렇게 해서 하데스 항의 관리를 당분간 특무대가 맡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겠지? 한 사람이 하데스 항에 남아 특무대와 북부 귀족들의 동태를 감시해 줘야겠다. 지원자는 손을 들어라.”
하지만 지원자는 없었다.
그것이 명예로운 임무가 아닌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제국 특무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제국 특무대에는 ‘즉결 심판권’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살인 면허’라고 불렀다.
설사 귀족이라해도 특무대에게 찍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그러니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맡기 어려운 임무였다.
“없나?”
기사단장이 재차 묻자 기사들은 슬며시 그의 눈을 피했다.
그때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벤젤이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그녀를 외면한 채 다시 기사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원하는 기사에게 상여금으로 하루에 500코퍼를 지불하겠다.”
하루 500코퍼면 한 달에 15실버니 혹할 만한 조건이다.
그럼에도 기사들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벤젤이 거세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를 악물고 기사들을 노려보던 기사단장이 다시 말했다.
“상여금으로 하루에 1실버씩 지급하겠다.”
하루 1실버면 한달에 30실버니 남작의 월급과 맞먹는 금액이다.
몇몇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그래도 손을 들지 않았다.
기사단장의 호명을 기다리다 지친 벤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제가 할게요!”
못마땅한 눈으로 벤젤을 쏘아보던 기사단장이 말했다.
“벤젤만 남고, 모두 나가라. 부단장은 치안대를 항구 밖에 재배치시켜라. 유사시 치안대를 즉시 투입할 수 있는 위치로 선정해야 할 것이다.”
“예.”
이윽고 부단장과 기사들이 회의실 밖으로 우르르 나갔다.
벤젤을 응시하던 카밀로 쿠스만 자작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제국 특무대에게 즉결 심판의 권한이 있다는 건 알고 있느냐?”
“예.”
“그들은 그 권한을 항상 정의롭게 행사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기준에서는 옳겠지만 남들이 볼 때 그릇된 일도 많다.”
기사단장의 잔소리가 길어지자 벤젤이 울컥했다.
“저는 어린애가 아니에요.”
“그래서 하는 말이다. 하데스 항에서 너는 너무 눈에 띈다.”
금발의 미녀가 항구에 머무르면 이목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
특무대를 감시하려다 자칫 특무대의 장난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벤젤을 특무대 손에 잃고 싶지 않았다.
“항구 관리 책임자에게 아카데미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있어요. 그들을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가면 문제없을 거예요.”
“흐음.”
카밀로 쿠스만 자작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항구 관리 책임자인 깁슨 캐넌은 몰락한 귀족으로 성씨만 가진 라무스다.
라무스들은 작위를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자녀들을 아카데미에 보냈다.
아카데미에서 열심히만 하면 기사나, 마법사, 아니면 하다못해 서기관으로라도 작위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유한 라무스들은 자녀들의 아카데미 입학을 앞두고 기사나 마법사를 초빙해 미리 가르치기도 했다.
어쭙잖게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느니 그편이 안전할 수도 있었다.
“깁슨에게는 내가 사람을 보내 지시해 두겠다. 임무는 실패해도 좋으니 특무대의 의심을 살 만한 일은 하지 마라. 알겠느냐?”
기사단장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벤젤의 눈빛도 부드러워졌다.
“조심할게요. 허락해 줘서 고마워요.”
“돌아가 준비하고, 깁슨의 집에는 5시까지 가도록 해라.”
“네.”
벤젤은 기사단장에게 꾸벅 묵례를 한 후 회의실을 떠났다.
잠시 후 카밀로 쿠스만 자작은 기사단 집사장이자 자신의 오른팔인 타이스 플루티 남작을 불렀다.
“타이스.”
“예.”
“나는 벤젤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하데스 항의 관리 책임자인 깁슨에게 아카데미 입학을 앞둔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군. 그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하데스 항으로 보낼 계획이다. 지금 즉시 깁슨을 만나, 그가 벤젤을 고용하게 해라. 벤젤은 5시까지 깁슨의 집으로 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특무대에서 깁슨을 조사할 수 있으니 우리 계획까지 알려 줘서는 안 된다. 그냥 벤젤을 아이들의 임시 교사로 고용하게 만들어라.”
“예.”
“벤젤의 안전이 달려 있는 일이니 빈틈없게 처리해야 할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묵례를 하고 돌아서는 타이스 플루티 남작의 표정은 어두웠다.
벤젤은 기사단장의 혼외자(婚外子).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데…….’
기사단은 물론 치안대까지 철수시키라는 상황에서 잘 통할지 모르겠다.
***
마의 해역.
정오 무렵, 알트헬름 선장은 방향타를 딜로스 조타수에게 넘기고 조타실을 빠져나갔다.
곧이어 뱃머리의 차양막으로 다가간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백작님, 자작님, 바람이 약해 조금 늦었습니다. 이제부터 마의 해역입니다.”
그러자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헉! 이제부터라고요? 나는 아침부터 눈 빠지게 주변을 살폈는데!”
“자작님, 저도 그랬습니다. 어쩐지 파도가 약하다 싶더라니. 맥이 빠지네요.”
알트헬름 선장이 계면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부터 마의 해역에 도착하거나, 벗어나게 되면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래요. 가서 일 봐요.”
엘리오가 손을 흔들자 알트헬름은 허리를 조아린 후 조타실로 돌아갔다.
천천히 바다를 살피던 파비안이 탄식했다.
“하아! 오늘도 우라지게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 파비안, 너 천공성의 시 외웠다고 했지?”
“예. 저는 검술만큼이나 문학에도 진심인 사람입니다.”
“읊어 봐.”
그러자 파비안은 망설임 없이 천공성의 시를 암송했다.
천공성.
누가 그곳에 있느냐?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곳, 아우로라이에서 태양이 떠오른다.
히페리온의 사자는,
바다로 둘러싸인 녹색 섬을 지키고 있다.
오 낯선 자여,
모든 신들에 맞서 홀로 싸우라.
텔레마, 불멸의 힘이여!
땅끝에서 온 너는, 어둠이 내려와도 머리 둘 곳을 찾지 못하리.
“캬하! 좋다. 저는 ‘텔레마, 불멸의 힘이여!’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더라고요. 강한 의지야말로 힘의 원천 아니겠습니까? 의지(텔레마)가 곧 불멸의 힘이라니! 기사의 심장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헛소리 그만하고 녹색 섬이나 찾아봐.”
“마의 해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은 로도스 섬밖에 없습니다. 혹시 로도스 섬을 녹색 섬이라고 한 건 아닐까요?”
“그랬으면 그냥 로도스 섬이라고 했겠지. 로도스 섬은 고대에도 로도스 섬으로 불렸다잖아.”
“아, 그런가요? 녹색 섬이라. 폭풍에 산호초가 살짝 떠올랐나?”
“시를 외우고 다니면 생각도 좀 해라. 히페리온의 사자가 지키고 있다잖아. 물속에 있으면 불가능하다고.”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이렇게 툭툭 연상되는 걸 던지다 보면 큰 게 걸려듭니다. 아카데미에서 ‘안 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그렇게라도 해 보라’고 배웠습니다.”
“잘난 척 그만하고 결과를 좀 내 봐. 내가 늘 느끼는 건데, 넌 말하는 거에 비해 결과가 시원치 않아. 기대가 안 된다고.”
“히페리온의 사자가 그리핀이라는 것도 하나의 설에 불과합니다. 그리핀이 아니라 뿔고래나 범고래를 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녹색 섬은 바다 밑에…….”
“야이씨! 태양신이 왜 바닷속에 사냐고! 그냥 나오는 대로 씨불이지 말고, 뇌를 거친 뒤에 말을 하라고.”
“아카데미에서…….”
“한 번만 더 아카데미라는 말 꺼내 봐. 바다에 던져 버릴 테니까.”
“교수님이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니까요.”
“이게 진짜.”
엘리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파비안 남작의 말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작전들도 많고요. 답답하시겠지만 걸러서 들으시는 게 더 나을 듯합니다. 그러다가 정말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오마르 백작까지 그렇게 말하자 엘리오는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파비안이 입을 삐죽였다.
“똑같은 소리를 했는데, 왜 백작님 이야기는 받아들이십니까?”
“몰라서 물어? 백작님은 너처럼 잘난 척하지 않잖아. 뭐라고 안 할 테니까 아무 말이나 계속 씨불여 봐.”
“씨불이는 게 뭡니까? 의견 개진입니다.”
“개든 소든 떠들어 보라고.”
“안개네요.”
“뭐라고?”
“안개가 보인다고요.”
파비안이 손을 들어 먼바다를 가리켰다.
과연!
수평선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하얀 안개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기상이변이 시작되려는 것일까?
주돛 꼭대기의 탑캐슬에 있던 견시 선원이 큰 소리로 외쳤다.
“11시 방향에 안개가 보입니다!”
뱃머리가 천천히 좌측으로 돌더니 이내 안개와 일직선이 되었다.
무덤덤하던 선원들의 얼굴에 살짝 긴장이 감돌았다.
미신을 믿지 않는다고 한 사람들이지만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1시간쯤 지나 마력범선이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바람은 약했고, 파도도 잠잠했다.
약한 바람 탓에 마력범선은 꽤 오랫동안 안개 속을 항해해야 했다.
인간은 쉽게 적응한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선원들의 얼굴이 차츰 풀어졌다.
마의 해역에서 만난 안개도 일반 바다와 별단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그런 선원들과 반대로 엘리오 일행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엘리오는 뻔뻔한 파비안조차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안개 속을 항해한 지 3시간쯤 지났을까?
답답함을 참지 못한 엘리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뱃머리 난간에 올라섰다.
이윽고 그는 안개 속으로 영기를 풀어 냈다.
바다가 온통 그의 영기로 가득 찼다.
엘리오는 영기를 통해 먼바다까지의 상황을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바람은 약했고, 파도도 잔잔했다.
‘하아!’
엘리오는 속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의 해역에서 일어난 기상이변이 아니라 평범한 안개였다.
그는 영기를 거두어들이고 자리로 돌아가 눈을 감았다.
파비안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평범한 안개입니까?”
“어, 쉬어.”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방귀 끝에 똥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러다 보면 진짜 기상이변도 일어날 겁니다.”
“그래.”
엘리오는 조바심을 버리기로 했다.
마의 해역까지 왔으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천공성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마나 프트라스나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잘못한 거다.
‘자아,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까 이제부터 알아서 하라고.’
엘리오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카마 데비아스(천자마)건 샤스트라 파라크티(구천현녀)건 누구 하나는 책임을 지게 만들 것이다.
마력범선이 안개를 뚫고 나갔을 때는 해거름 무렵이었다.
일상으로 돌아간 선원들은 안개 속에서 바다에 빠트린 도구가 없는지 점검하고 다녔다.
잠시 후 수평선 너머로 검붉은 해가 서서히 모습을 감췄다.
뒤이어 뱃머리와 후미에 등불이 걸렸다.
알트헬름 선장은 엘리오 일행을 위해 뱃머리에 저녁 식사를 차렸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고기 스튜에 빵을 찍어 먹던 엘리오가 문득 입을 열었다.
“파비안, 넌 가족들이 보고 싶지 않냐?”
“보고 싶죠.”
“너도 집 나온 지 좀 됐지?”
“예, 이 년요.”
“난 일 년도 안 됐는데 왜 이렇게 오래 지난 것 같지?”
입맛이 없는지 엘리오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안 드십니까?”
“배불러. 입맛도 없고.”
엘리오는 두 사람을 떠나 터덜터덜 마력범선의 후미로 걸어갔다.
히르헤라에 있을 때는 이렇게까지 조급하지 않았는데 왜인지 참기가 어렵다.
‘심마 때문인가.’
그는 차라리 심마 때문이기를 바랐다.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라면 존재하는 모든 신들과 싸워야 하니까.
문득 천공성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오 낯선 자여,
모든 신들에 맞서 홀로 싸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