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
118회. 타오르는 사람들
하남성.
란고현(兰考县).
누런 황하 강변 위쪽의 관도로 사두마차가 달그락달그락 차분하게 달리고 있다. 연적하 일행을 태우고 태산 광풍채로 가는 마차다.
마차 안의 여섯은 세 사람씩 서로 마주 보며 앉았는데 어깨가 딱 붙어 있었다. 여름이면 견디기 어려웠을 테지만 다행히 겨울이라 온기를 나누기에 적당했다.
창밖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황톳빛 물을 보던 진설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굉장하네요. 겨울에도 볼거리가 많은 것 같아요. 아쉽다. 바쁘지만 않으면 잠깐 강가에 세워 두고 술이라도 한잔하는 건데.”
마부석 옆에 있다가 설차수와 자리를 바꿔 안으로 들어온 유근식이 말했다.
“사매, 따뜻한 실내에 있으니까 그런 생각 하는 거야. 나가 봐. 얼어 죽어.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와. 그저 추울 뿐이야. 설 사형도 지금 빨리 도착하기만 바라고 있을걸?”
“어머, 그 생각은 못 했네요. 다음 번에는 내가 교대할게요.”
무덤덤한 얼굴로 듣고 있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나하고 심 노인도 교대해 줄게요.”
“적하야. 그럼 우리도 교대로 나가마.”
남궁천의 말에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형님만 교대해 주세요. 연 누님은 안 돼요.”
“왜?”
“추우니까요.”
“…….”
연적하가 너무도 당연한 듯 말하자 남궁천은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추워서 다들 교대해 주는 분위기인데 남궁연만 안 된단다.
동생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 진설하의 눈치가 보였다.
그때 남궁연이 짧게 말했다.
“괜찮아.”
당사자가 괜찮다니 연적하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지만 진설하는 속이 쓰렸다.
얼마 전 연적하와 남궁세가의 관계에 대해서 알게 됐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다.
남궁연과 달리 배려받지 못한 것에 대한 씁쓸함이랄까?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조금 더 연적하와 친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진설하의 바람이 통했는지 마차가 강변에 멈춰 섰다.
점심때가 되자 마부가 이름도 없는 노천 객잔에 마차를 세운 것이다.
연적하 일행은 객잔에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한 뒤 제각기 축 늘어졌다. 장시간의 마차 생활에 피로해진 몸을 쉬게 하는 것이다.
잠시 후 황하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였다는 뜨거운 생선탕과 돼지고기 볶음, 청채, 밥에 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면까지 나왔다.
“연 소협, 이것 좀 드셔 보세요.”
진설하가 접시에 생선탕을 덜어 연적하에게 내밀었다.
얼떨결에 받아 든 연적하가 멋쩍은 얼굴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 뒤로도 진설하는 고기볶음과 야채 등을 적당히 덜어 연적하의 앞에 놓아 주었다.
마치 집주인이 귀한 손님에게 하듯 친절하고 정중했다.
설차수와 유근식은 부럽다는 듯 몇 번이고 연적하를 힐끔거렸다.
연적하는 태어나서 처음 받아 보는 대접에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그걸 보고 심통이 실실 웃자, 연적하는 괜히 그에게 눈을 부라렸다.
생각 없이 생선탕을 떠서 후루룩 마시고 있는 남궁천의 앞으로 뭔가 불쑥 다가왔다.
뭔가 싶어 내려다보던 남궁천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진설하처럼 남궁연이 돼지고기 볶음을 담아 그의 앞에 밀어 준 것이었다.
‘헉!’
남궁천은 안 하던 동생의 행동에 놀라 눈만 끔뻑였다.
감동이 되면서도 ‘이건 무슨 꿍꿍이일까?’ 하는 의아심을 떨칠 수가 없다.
망설이던 남궁천이 돼지고기 볶음으로 젓가락을 막 내밀 때다.
남궁연이 음식을 먹다 말고 갑자기 접시를 홱 하고 가져가 버렸다.
‘응?’
남궁연의 변덕에 남궁천은 머리만 긁적였다.
단 한 번도 오락가락한 적 없는 동생이 오늘은 왜 저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가벼운 긴장 속에서 식사를 마친 연적하 일행은 다시 마차로 돌아갔다.
연적하는 마차가 움직이고 나서야 남궁연이 빠졌다는 걸 알았다.
남궁연의 자리에는 심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설차수, 유근식, 진설하가 모두 앞줄에 나란히 앉아 있다. 괜찮다던 남궁연이 아무도 모르게 설차수와 교대를 해 준 모양이다.
그때 연적하와 마주 보고 앉은 진설하가 생글생글 웃으며 물었다.
“연 소협은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딱히 좋아하는 건 없어요.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라서.”
“아, 그러시구나. 그럼 좋아하는 계절은요?”
“가을?”
“왜 가을이 좋아요?”
“춥지도 덥지도 않으니까.”
창고에 있을 때 더운 날은 더워서 힘들었고, 추운 날은 추워서 힘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선선해지는 가을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응? 연 소협은 무위가 높아서 더위와 추위를 못 느끼시지 않나요?”
“어릴 때는 그게 좋았어요.”
“아…….”
진설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연적하의 과거를 알았다면 좀 더 깊이 들어갔을 테지만 거기서 끝났다.
한편 자청해서 마부석 옆자리로 나온 남궁연은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진설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게 불편했다.
아니, 납득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다.
진설하의 잘못은 아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귀여운 여자다.
마음 씀씀이까지 괜찮은, 흠잡을 곳 없는 천생 여자다.
쾌활하고, 친절하며, 심지어 자상하기까지 하다.
생각해 보면 자신과는 정반대인 것 같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아! 왜 그랬을까!’
자신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진설하 흉내를 냈다가 그런 자신이 한심해 보여 바로 그만두었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분명히 이상한 짓으로 보였을 것이다.
***
산동성.
태산.
두가장촌(杜家庄村)
정오 무렵. 오십여 명의 무장한 녹림도들이 마을로 향하는 길에 나타났다.
선두의 광풍채 채주 귀영도살 사마단이 뒤따르던 수하들에게 소리다.
“가라! 걸리적거리는 건 쳐 죽이고! 돈 되는 건 싹 쓸어 담아라!”
“킬킬! 알겠습니다요!”
“흐흐.”
녹림도들이 음산한 웃음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곧이어 비명과 함께 집에서 튀어나온 마을 사람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한 식경(약 30분) 만에 두가장촌은 폐허로 변했다.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아 올랐고, 길거리에는 십여 구의 시체가 쌓였다.
잠시 후 약탈을 끝낸 도적들이 마을 어귀에 다시 모였다.
한 보따리 짐을 진 자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기도 했다. 심지어 남자를 묶어서 질질 끌고 다니는 자도 있었다.
그런 수하들을 둘러보는 사마단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가자!”
사마단이 앞장서자 오십여 명의 도적들이 각자의 노획물을 이거나 끌고 그 뒤를 따랐다.
도적들 중에 유일하게 빈손인 오십 대 남자가 가장 뒤에서 느릿느릿 걸었다. 삼 년 전까지 광풍채의 채주였던 태산일괴 구문범이다.
그는 잔뜩 찡그린 눈으로 앞서가는 사마단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미친놈! 아무리 겨울에 수입이 없다 해도 산채에서 가까운 마을을 폐허로 만들다니. 제정신이 아니야.’
겨울에 상단이 뜸하면 가끔 마을을 털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예컨대 산채에서 먼 마을을 습격한다거나, 가급적 약탈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말이다.
산채에서 가까운 마을의 인심을 잃으면 이모저모로 불편해진다. 일차적으로 생필품을 조달하기 어렵고, 그들이 관에 하소연하면 관군까지 동원된다.
하지만 저 사마단이라는 놈은 산채 주변의 마을을 약탈하고 있다. 그것도 재물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 살인 방화도 서슴지 않았다.
‘토벌대가 와 달라고 사정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생각으로 저 지랄인지.’
사마단은 내일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는다.
하는 짓을 보면 딱 오늘만 살고 말 놈이다. 도적들은 당장 시원하게 칼질을 하고, 재물을 약탈해 기분이 좋겠지만, 저래서는 몇 년 가지 못한다.
‘병신 같은 놈들. 오늘만 살고 죽을 거야? 작작들 좀 하지 이거야 원 불안해서 살 수가 있나…….’
관군에게 작살나기 전에 총채주 파천마군이 먼저 해결해 주기만 바랄 뿐이다.
***
이월 중순.
산동성.
태안.
해거름 무렵, 연적하 일행을 태운 마차가 마침내 태안에 도착했다. 태안에서 태산까지 마차로 반나절이면 간다니 거의 다 온 셈이다.
일행은 일단 가까운 객점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남궁천이 대표로 비어 있는 방 세 개를 모두 얻은 뒤 연적하와 심통, 남자와 여자로 방을 분배했다. 연적하와 심통이 녹림도인 것을 감안해서 배려를 해 준 셈이다.
연적하와 심통은 짐을 풀어 놓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출출했던지 벌써 식당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일반 손님들 때문에 정의맹의 세 사람과 남궁천 남매는 떨어져 앉은 것 같았다.
연적하를 발견한 진설하가 웃으며 손짓을 했다.
그러나 연적하와 심통은 진설하를 지나쳐 남궁천 남매의 탁자로 갔다.
갑자기 풀이 죽은 진설하에게 설차수가 넌지시 한마디 했다.
“사매. 여기는 자리가 없잖냐. 심 노선배까지 생각하면 저쪽으로 가는 게 맞는 거야.”
“아, 그렇겠다.”
그제야 진설하의 얼굴이 조금 펴졌다.
유근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내색을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밀고 당길 줄도 알아야지.”
“저 아직 좋아하는 거 아닌데요?”
“뭐? 아닌데도 그 정도라고? 좋아하면 아주 큰일 낼 사람일세.”
“훗! 큰일은 기본이죠. 청춘 남녀가 좋아하는데 큰일이 문제일까요.”
“어우, 야. 예쁘장한 얼굴로 그런 말 좀 하지 마. 진짜 걱정된다.”
유근식이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사제, 말려들지 마. 네가 받아 주니까 자꾸 더 그러는 거잖아. 사매는 그냥 가만 내버려 두면 돼. 그럼 혼자 타올랐다가 혼자 꺼진다고.”
정의맹에 세 청춘 남녀가 시답지 않은 얘기로 시간을 보낼 때다.
근처의 손님들이 심각한 얼굴로 수군거렸다.
“그 소식 들었나? 어제는 두가장촌이 당했다는구먼.”
“또 광풍채 놈들 짓인가?”
“그럼 누가 있겠어? 이번에도 저항하는 사람들은 싹 죽였대. 여자는 물론 남자들도 꽤 여럿 끌려갔나 봐.”
“아니, 그놈들이 미쳤나?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런데? 벌써 태산 인근에서 몇 번째야? 다섯 번인가?”
“어제까지 일곱 번이야. 채주 놈이 바뀐 뒤로 아주 미쳐 날뛰는 것 같아.”
“관에서는 구경만 한대? 지난해 봄부터 그랬잖아? 지난여름에 한참 토벌하네 마네 그러더니, 그때 왜 안 했지?”
“돕겠다던 제갈세가에서 갑자기 발을 뺐잖아. 그 바람에 흐지부지 넘어간 거지.”
“그 사람들은 왜 바람만 잔뜩 집어 넣었대? 처음부터 나서지 않았으면 현령이 혼자라도 밀어붙였을 텐데.”
“모르지. 요즘 정의맹 쪽 사람들은 하도 오락가락해서, 알 수가 있나.”
듣고 있던 설차수의 얼굴에 씁쓰름한 미소가 떠올랐다.
확실히 요즘 정의맹은 이전과 달리 기세가 많이 죽었다. 녹림까지 유명교와 각을 세우는 마당에 정의맹은 너무 오래 재고 따진다.
설차수가 힐끔 연적하 쪽을 보았다.
태산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왔어도 그는 태연자약해 보인다.
‘유명교에 대한 소문이 과장된 건가?’
사람들이 은하장의 일로 지레 겁먹고 요란을 떠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