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1
1181회. 신이 있다면 당신들을 벌할 거예요
딜로스는 바다에 떨어진 충격으로 잠시 덜덜 떨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선실로 돌아갔다.
엘리오는 다시 앞쪽의 돛대로 이동해 바다를 응시했다.
집채만 한 파도가 몇 번이나 갑판 위로 떨어졌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선원들은 인간이 폭풍우에 맞서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그것은 바다 위를 달리고, 해적선을 두 동강 내는 것과 또 달랐다.
대자연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은 경외감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토록 바라던 기상이변이었지만 엘리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쏴아아아―!
휘이이잉―!
비바람이 불고, 파도는 높았지만, 그것뿐이었다.
아침이 되자 밤새 미쳐 날뛰던 폭풍우는 거짓말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선원들이 하나 둘 갑판으로 나와 돛대와 밧줄 등을 점검했다.
뱃머리에 허허로운 표정으로 서 있는 엘리오에게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다가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그와 나란히 서서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라고아 경, 우리가 살펴볼 테니 들어가서 눈을 붙이십시오.”
“정말 천공성이 이 바다에 있을까요?”
“인간의 기록을 믿으십시오.”
파비안도 한마디 거들었다.
“맞습니다. 마법사들이 기록 하나만큼은 정확하지 않습니까.”
묵묵히 바다를 응시하던 엘리오가 돌아섰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뭔가 보이는 게 있으면 깨워 주세요.”
말을 마친 엘리오는 터덜터덜 선실로 걸어갔다.
엘리오를 본 선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허리를 접었다.
점심 무렵, 라이트는 탑캐슬로 올라갔다.
다음 근무자가 올라오자 마일로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으아아! 8시간 동안 쪼그리고 있었더니 삭신이 쑤신다. 갑판 분위기 좋은가 보네? 시간 맞춰 올라온 걸 보니.”
“자작님이 주무시거든.”
“어제는 어떻게 한 거야? 잠은 안 자기로 한 거야?”
“운이 좋았어. 졸다가 잠깐 눈을 뗐는데 먹구름이 보이더라고.”
“푸흣! 부럽다. 누군 졸다가 깨서 그런 걸 다 보고. 나는 눈 한번 안 깜박거렸지만 뭐가 나타나야 소리를 치지.”
고개를 젓던 마일로는 탑캐슬에서 나갔다.
홀로 남은 라이트는 눈에 힘을 주고 주위를 살폈다.
농땡이도 상대를 봐 가며 쳐야 한다.
어제 폭풍우 이후로 ‘북부 귀족의 눈을 속이겠다’는 생각은 사라졌다.
***
피에스트라 영지.
하데스 항.
태번 바닷바람.
특무대가 객실에 든 뒤로 일반인들은 바닷바람의 출입을 삼갔다.
그러다 윌리엄의 사건 이후 바닷바람은 금지(禁地)가 되었다.
특무대는 오히려 숙소가 번잡하지 않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언제부터인가 바닷바람은 특무대의 숙소이자 사무소로 알려졌다.
점심 식사 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창밖을 보며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텅 빈 부두와 새파란 하늘을 보고 있노라니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래서인지 벤젤이 더 생각났다.
하지만 그녀는 윌리엄이 체포된 뒤로 항구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라는 게 우습다.
벗겨 놓고 보면 다 똑같은데 나를 싫다고 하는 사람에게 더 집착한다.
그걸 알면서도 그는 벤젤에 대한 집착을 끊어 내지 못했다.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그녀를 갈구했다.
‘거참, 이해 못 할 여자로세.’
아무 여자라도 손만 뻗으면 넘어왔는데 왜 이렇게 튕기는지 모르겠다.
떨떠름한 얼굴로 앉아 있던 그는 발소리가 들려오자 고개를 돌렸다.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다가오고 있었다.
“각하, 벤젤이 거절했습니다.”
“나와 만나기만 해도 된다고 했음에도 그랬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건 좀 심하군. 자기 때문에 동료가 체포됐는데 협상조차 거부하다니.”
“어쩌면 윌리엄이 죽을 수 있다는 걸 믿지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 순진한 아가씨군. 기사단장은 뭐라고 하던가?”
“계속 설득하고 있지만 이제는 귀담아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답니다.”
“윌리엄을 체포한 지 얼마나 됐지?”
“오늘로 사흘입니다.”
“형을 집행하는 데 나중에라도 문제가 될 게 있나?”
“없습니다. 증인의 확보는 물론, 증언까지 기록해 두었습니다.”
“내일 정오에 교수형을 집행한다고 공지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벤젤이 항구 관리 책임자의 집을 드나들었다고 했나?”
“예, 관리 책임자 아들의 검술을 지도했습니다.”
“그를 조사해 보게.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은 없으니까. 뭐라도 나올 걸세.”
“벤젤과 관련된 자들을 잡아들이실 생각이십니까?”
“그렇게라도 압박해 봐야지. 내가 강제로 여자를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각하께서 강제로 벤젤을 취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벤젤이 귀족이라면 혹 모를까?
평민인 그녀를 대귀족, 그것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취한다고 욕할 사람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귀족들은 ‘벤젤이 행운을 얻었다’고 말할 터였다.
“나는 강제로 여자를 취하지 않네. 크나우프 대공가의 일원으로 그런 불명예스러운 일을 할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관리 책임자를 털어서 잡아넣겠습니다. 그런데 북부의 귀족들 말입니다.”
“왜? 무슨 문제 있나?”
“최근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의 행적에서 조금 수상쩍은 부분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상쩍다고?”
“마족 군단과의 전쟁 직후 두 사람이 타메이온으로 넘어갔었다는 첩보가 있습니다.”
“정찰이라도 했겠지.”
“그건 아닙니다. 그때는 두 사람이 흑마법사의 배후를 잡겠다고 영지군을 나간 상황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뒤로 두 사람은 히르헤라 주둔지 부대와 다시 만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타메이온으로 갔다?”
“예, 그것도 열흘 이상 타메이온에 머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묘하군 묘해. 북부 왕국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떠나기 전에 동태를 살피고 왔을 거라 추측하더군요. 하지만 마족 군주들을 죽인 그가 타메이온에 장기간 머물렀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저는 두 가지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씩이나?”
“첫째는, 그가 정말 마족 군주를 죽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족 군주들과 짜고서 죽인 것으로 위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자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그러려면 마족 군주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다. 히르헤라 주둔지는 좁고, 보는 눈이 많아 자리를 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반박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두 번째는 그가 타메이온에서 비밀리에 뭔가를 하고 왔을 가능성입니다.”
“상황을 둘러봤겠지.”
“그가 정말 마족 군주들을 죽였다면……. 그 지역의 군주가 없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그가 비밀리에 타메이온을 자기 손에 넣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랬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타메이온의 땅을 가져서 뭐에 쓴다고?”
“그곳에도 뭔가 가치 있는 물건이 있을 수 있잖습니까?”
“자네는 의심이 너무 많아. 감찰부에 있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지만……. 적당히 하게. 그보다는 차라리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영지나 파 봐.”
“오마르 백작을요?”
“라고아 자작 일행의 탐사비를 오마르 백작이 내고 있잖나? 언제까지 백작이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지 알아내라는 말일세.”
“왜 그래야 합니까?”
“정말 그 마그눔 오프스가 천공성으로 돌아갔다면…….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천공성을 찾아야 하잖나.”
“하지만 그자가 천공성으로 갔다는 명확한 증거가 아직…….”
“오마르 백작과 라고아 자작 같은 이가 허위 정보에 매달리고 있을 것 같은가? 흑마법사들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그들의 판단력을 믿어 보자고. ‘적일수록 가까이하라’는 말도 있지 않나.”
“저들의 탐사 비용을 지원하실 생각이십니까?”
“못 할 것도 없지.”
“알겠습니다.”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선선히 답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적일수록 가까이하라’는 말은 마음에 들었다.
그날,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항구 게시판에 윌리엄의 교수형을 공지했다.
설마설마하던 기사단이 발칵 뒤집혔다.
기사단장 카밀로 쿠스만 자작은 바로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을 찾아갔다.
“영주님,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윌리엄의 교수형을 공지했습니다. 영주님이 나서서 막아 주십시오. 이대로 윌리엄을 죽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말해 봤지만 소용없었네. 크나우프 후작이 뭘 원하는지 경도 알지 않나.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벤젤밖에 없네.”
“하지만 벤젤은 후작의 이름도 꺼내지 못하게 합니다.”
“크나우프 후작 각하의 총애를 거부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
“어쩌면 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동료 기사의 목숨이 걸린 일을 고작 반발심 때문에 거부하는 건 안 될 일이지. 벤젤을 설득해 보게. 특무대의 결정을 번복시킬 수 있는 건 벤젤밖에 없으니까.”
“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윌리엄이 죽으면 나도 벤젤의 기사 서임을 취소할 걸세. 그게 죽은 윌리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네.”
“그래도 크나우프 후작님에게 가지 않을 겁니다.”
“지독하군. 닮지 않아도 되는 걸 닮았어.”
비아토르 벨라누스 백작이 기사단장을 힐끔 보았다.
그 역시 한번 결정하면 다시 돌아서는 법이 없었다. 숲지기의 딸과 헤어질 때도 그랬다.
다음 날.
치안대가 항구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부두 중앙으로 불러 모았다.
기사단장은 이례적으로 모든 기사들을 부두에 소집했다.
하데스 주민과 치안대, 기사단원이 부두 중앙을 가득 채웠다.
흉악범이 교수대에 오른 적은 종종 있지만 영주의 기사는 처음이다.
윌리엄이 왜 체포되었는지 아는 시민들은 입을 꾹 다물고 안타까운 눈으로 보기만 했다.
카밀로 쿠스만 기사단장은 기사단을 가장 앞으로 이동시켰다.
마지막까지도 벤젤을 압박하기 위해서다.
정오가 되자 눈을 가린 윌리엄이 교수대로 끌려 나왔다.
특무대 기사 하나가 교수대 앞에서 윌리엄의 죄명을 읽었다.
벤젤은 윌리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마치 윌리엄의 최후를 머리에 각인이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죄명을 다 읽은 특무대 기사의 시선이 가장 앞에 선 벤젤에게 향했다.
마치 ‘이래도 버틸 테냐?’ 묻는 것 같았다.
돌연 가만히 서 있던 윌리엄이 소리를 내질렀다.
“벤젤! 살려 줘! 나는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살려 줘! 벤젤! 벤제엘―!”
그러나 끝내 벤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던 특무대 기사가 질렸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독한 년.”
고개를 젓던 특무대 기사가 집행자에게 손짓을 보냈다.
집행자가 지렛대를 힘껏 잡아당기자 윌리엄의 밭밑이 ‘덜컹!’ 소리와 함께 열렸다.
밧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윌리엄의 몸은 몇번 움찔거리다 멈췄다.
형 집행이 끝나자 치안대가 시민들을 해산시켰다.
기사단도 어느새 모두 사라지고, 교수대 앞에는 벤젤만 남았다.
벤젤은 텅 빈 눈으로 장의사가 시체를 수습하는 광경을 보았다.
잠시 후 장의사마저 짐마차에 시체를 싣고 떠났다.
넋을 잃고 서 있는 그녀에게 특무대 참모 콜린 메스칼 자작이 다가갔다.
“너의 자존심이 젊고 강직한 기사의 목숨보다 중하냐?”
“…….”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헝클어져 이제는 자기가 왜 이곳에 서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곧 깁슨 캐넌이 체포될 것이다. 여기저기서 조금씩 뇌물을 받았더군. 그자의 아들에 대한 아카데미 입학 허가도 취소될 것이다. 어차피 재산을 몰수당하면 다니지도 못하겠지만.”
뒤늦게 정신을 차린 벤젤이 한마디 한마디 힘주어 말했다.
“신이 있다면 당신들을 벌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