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2
1182회. 자작님은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벤젤이 신을 들먹이자 콜린 메스칼 자작은 한심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
“어리석구나. 크나우프 대공가는 마나 프트라스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가문이다. 마나 프트라스가 크나우프 대공가의 힘인데 어떤 신이 그를 벌하겠느냐?”
“…….”
벤젤은 반박하지 못하고 분한 마음에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너야말로 현실을 직시하고 후작 각하의 구애를 받아들여라. 깁슨 캐넌으로 끝날 것 같으냐? 천만에, 후작 각하는 너를 취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실 것이다. 네 후견인인 쿠스만 자작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분은 영주님의 기사단장님이세요. 당신들이 무슨 황제라도 되는 줄 아세요?”
“후훗! 귀엽군. 후작 각하의 손에 죽은 자작이 한둘인 줄 아느냐?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람만도 셋이나 된다. 너는 그들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쿠스만 자작의 죽음도 그러하겠지. 대귀족의 발밑에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귀족들의 죽음이 있다. 그 죽음의 무게만큼 권위가 생기지. 네가 크나우프 대공가의 권위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분노에 떨던 벤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크나우프 후작이 기사단장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설마 기사를 죽일까? 생각했는데 윌리엄을 교수형시켰다.
깁슨 캐넌 다음은 정말 기사단장이 될지도 몰랐다.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과 크나우프 후작이 만난 것은 딱 한 번에 불과했다.
그 한 번의 만남으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수 있다니?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물었다.
“제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크나우프 후작님께서 그러시는 건가요?”
“네가 그분의 구애를 거절하지 않았느냐.”
“단지 그런 이유로 죄없는 기사를 죽이고, 깁슨 캐넌 씨를 체포하겠다고요?”
“쯧쯧! 단지 그런 이유라니? 넌 후작 각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대귀족에게 그보다 큰 모욕은 없다.”
“대귀족이 원하면 누구라도 그의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러자 콜린 메스칼 자작이 신기한 눈으로 벤젤을 보았다.
“너는 영광으로 알아야 할 일을 도리어 수치스럽게 여기고 있구나. 무엇이 너를 그토록 타락시켰는지 모르겠구나. 너는 혹시 제국에서 금지한 사악한 종교를 믿고 있느냐?”
“나는 마나 프트라스님의 신봉자예요. 내가 마나 유저인 걸 잊으셨나요?”
“마법사들도 흑마법의 유혹에 빠져드니, 마나 유저라고 사악한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지.”
벤젤은 황당한 눈으로 메스칼 자작을 보았다.
그의 눈빛을 보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그는 후작의 구애를 거절한 자신을 별종 보듯 하고 있었다.
“대귀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사의 자존심’과 ‘여자의 순결’ 따위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건가요?”
“이제야 말이 통하는구나. 맞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더냐?”
“그렇게 못 하겠다면요?”
“정신을 차릴 때까지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겠지.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어졌군.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겠다. 참, 달아날 생각은 하지 마라. 특무대가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콜린 메스칼 자작은 자리를 떠났다.
벤젤은 넋 나간 얼굴로 교수대를 응시했다.
귀족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건만 갑자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대귀족의 눈에 들었으니 그의 여자가 되라니?
어머니는 카밀로 쿠스만 자작을 사랑하기라도 했지만, 자신은 아니다.
그건 말 그대로 대귀족의 노리개에 불과하다.
수평선을 바라보던 그녀는 기사단이 집결한 곳으로 돌아갔다.
그녀를 봤음에도 누구 하나 알은체하지 않았다.
기사들은 후작을 욕하면서도 혹시나 자신이 윌리엄처럼 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
마의 해역.
뱃머리의 차양막 아래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던 파비안이 물었다.
“자작님, 흑마법사들의 배후가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일까요?”
“모르지.”
“만약 둘이 서로 다르다면 말입니다. 그래도 카마 데비아스를 죽이실 겁니까?”
“어.”
엘리오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는 이 세계가 지긋지긋했고, 그런 만큼 빨리 가족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자작님은 신을 믿지 않으십니까?”
“무슨 소리야?”
“태양신을 죽이겠다니까 드려 본 말씀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태양신을 죽이겠다고 합니까?”
“태양신이라…….”
엘리오는 태양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저 태양과 카마 데비아스는 눈곱만큼도 관계가 없을 터였다.
“파비안.”
“예?”
“너는 카마 데비아스를 왜 태양신이라고 생각하냐?”
“왜가 어디 있습니까? 태양신이니까 태양신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왜 카마 데비아스가 태양신 소리를 듣고 있냐고!”
“태양신이니까요!”
엘리오가 짜증 어린 눈으로 파비안을 쏘아보았다.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카마 데비아스가 태양을 만들었대?”
“그건 아니고요. 태양과 같이 생겨났다고 해서 태양신이라고 하는 겁니다. 카마 데비아스와 태양의 운명이 같다고나 할까요?”
“그럼, 내가 카마 데비아스를 죽이면 태양도 죽냐?”
“그건 모르죠.”
“어휴! 헛똑똑이. 카마 데비아스가 태양과 같이 생겨난 걸 누가 봤대?”
“그걸 어떻게 봅니까?”
“본 사람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고 태양신이라고 믿는 거야?”
“어, 그건…… 백작님, 뭐라고 말씀 좀 해 주십쇼.”
대답이 궁해진 파비안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끌어들였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답했다.
“라고아 경, 태양신을 믿는 사제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니 믿는 겁니다.”
“사제들은 그걸 어떻게 알았는데요?”
“카마 데비아스……께서 강림해서 가르쳐 주셨다고 합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카마 데비아스의 호칭을 두고 잠깐 머뭇거렸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카마 데비아스를 죽일 계획이라는 걸 알고 난 뒤로 태양신에 대해 말할 때면 항상 겪는 혼란이다.
“그건 카마 데비아스의 일방적인 주장이잖아요? 그가 거짓말을 한 거면요?”
“인간은 카마 데비아스와 비교하면 티끌만 한 존재니까…….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약하니까 강자의 말을 믿는 거네요?”
“하하핫! 라고아 경의 해석을 들으니 모호하지 않고 머릿속에 콱 박히는 것 같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이 들은 태양신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인간적인 해석이었다.
“파비안, 만약에 내가 카마 데비아스를 죽이면 나도 신이라고 할 거냐?”
“에이, 제가 자작님을 훤히 알고 있는데 그럴 수는 없죠.”
“똑똑하구나. 나와 카마 데비아스의 관계가 그렇다. 너는 카마 데비아스를 모르지만 나는 알거든. 그놈은 신이 아니라 신을 흉내 내는 놈에 불과해.”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때 알트헬름 선장이 조심스럽게 갑판을 가로질러 왔다.
“이제 슬슬 항구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파비안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벌써 구 일이라고?”
“예.”
“그럼 가야지. 아쉽다, 아쉬워. 이제 좀 적응될 만하니까 가자네.”
“벌써 채소가 시들시들합니다. 물러져서 버리는 것들도 많고요.”
“가야지. 오늘만 날도 아니고.”
“예, 예.”
굽실거리던 선장이 조타실로 돌아갔다.
이윽고 배가 천천히 선회하자 선원들이 튀어나와 돛을 올렸다.
느긋하게 바다 위를 떠돌던 배가 힘차게 파도를 가르며 전진했다.
***
하데스 항.
지는 해를 받으며 중급 마력범선 한 척이 항구로 들어왔다.
엘리오 라고아 일행을 태운 마력범선이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특무대 기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계류장에 정렬했다.
특무대의 극진한 예우 속에 엘리오 일행은 바닷바람으로 안내됐다.
특무대를 따라 바닷바람으로 향하던 엘리오가 한쪽을 보며 중얼거렸다.
“못 보던 게 있네?”
그러자 파비안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답했다.
“아, 저거요? 교수대입니다. 최근에 여기서 죄수를 처형했나 봅니다.”
“이렇게 공개된 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너희도 이렇게 죽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죠.”
“에혀! 상계가 아니라니까.”
“왜 그러십니까? 보기엔 좀 그래도 범죄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좋은 거 너나 많이 하세요.”
물론 강호에는 교수형보다 더 참혹한 형벌도 많다.
다만 무릉도원이라고 믿었던 곳에서 저러고 있으니 짜증이 난 것이다.
태번 바닷바람.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안으로 들어가자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와 그를 덥석 안았다.
“동생! 수고했다. 고생하고 왔으니 내가 한턱 내겠다. 마음껏 먹고 마셔라.”
“감사합니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엘리오의 손을 잡고 창가 빈자리로 갔다.
이윽고 탁자 위에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이번에도 케이사 콜드월 백작의 참가로 파비안은 다른 자리에 앉아야 했다.
홀로 앉아서 음식을 먹던 파비안이 손짓으로 여점원 셀리를 불렀다.
“네, 뭐 더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먹을 건 됐고. 태번에 외부 손님이 하나도 안 보이는데, 특무대에서 전세라도 낸 건가?”
“그건 아니에요. 특무대가 방을 다 차지하신 것도 있고…….”
셀리는 좌우를 힐끔힐끔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파비안은 표현하기 어려운 호기심을 느꼈다.
“또 뭐?”
그러나 셀리는 눈치가 보이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고 돌아갔다.
식사를 마친 파비안은 셀리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그녀가 밖으로 나갔을 때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닭의 날개를 움켜 잡고 돌아가던 셀리의 앞으로 누군가 툭 튀어나왔다.
“어맛!”
깜짝 놀란 셀리의 입에서 뾰족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파비안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무섭게 생겼냐?”
“아, 아니에요. 갑자기 시커먼 게 튀어나와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왜 여기 계세요? 화장실은 태번 안에 있는데…….”
“뭐 좀 물어보려고. 아까 특무대 눈치를 보느라 대답을 안하는 것 같아서.”
“뭐, 뭐를요?”
“아까 ‘태번에 외부 손님이 없다’고 했더니 뭐라고 말하려다가 말았잖아.
“그, 그건 특무대가 방을 다 차지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에이, 이거 왜 이래? 그것도 있고 어쩌고 하다가 슬그머니 갔잖아. 말해 봐. 왜 태번에 다른 손님이 안 보이는 거냐?”
그러자 셀리가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이 말했다.
“특무대가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거예요.”
“응? 범죄자도 아닌데 일반인이 왜 특무대를 무서워해?”
“칠 일 전에 영주님의 기사 하나가 특무대와 싸우다가 교수형을 당했거든요. 그 뒤로 다들 피해 다니는 거예요.”
“얼마나 심하게 싸웠길래 기사가 교수형을 당해?”
“이런 걸 말해도 되나…….”
셀리가 뜸을 들이자 파비안이 동전 하나를 꺼내 셀리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자 셀리가 마지못한 얼굴로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 일로 영주님의 기사가 교수형을 당했어요.”
“아! 그래서 항구에 교수대가 설치되어 있었던 거냐?”
“아뇨. 사흘 뒤에 이번에는 항구 관리 책임자가 교수형을 당했어요.”
“그는 또 왜?”
“뇌물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걸 믿는 사람은 없어요.”
“그 사람도 벤젤과 관계가 있어?”
“예, 그 사람의 아들을 벤젤이 며칠 가르쳐 줬다고 하더라고요.”
“허어! 특무대가 벤젤 때문에 기사와 항구 관리인을 교수형시켰다는 거냐? 너무 억측하는 거 아냐? 고작 그런 이유로 기사를 교수형시켰다고?”
“어유! 답답해! 제가 며칠 전에 벤젤 님에게 똑똑히 들었다고요. 벤젤 님이 없는 소리를 지어서 할 분은 아니거든요?”
손으로 제 가슴을 치던 셀리는 인기척이 나자 달아나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