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6
1186회. 엑시티움, 소드마스터를 죽이는 마력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질문에 엘리오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왠지 아직 그의 이야기가 끝난 것 같지 않아서다.
역시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격정적으로 말을 이어 갔다.
“우리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를 동생처럼 여겼다. 그래서 북부 귀족들을 향한 제국 귀족들의 온갖 조사 요구를 다 묵살했다. 그것뿐인 줄 아느냐? 오마르 백작의 영지 규모로 보아 일 년 이상 재정 지원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를 대신해 후원할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 보답이 이거냐? 정녕 벤젤의 대전사가 되어야만 했느냐 말이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울분에 가득 찬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엘리오는 한편으로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이해하는 것뿐이다.
과거 장인어른이 화가 나서 절연까지 했던 게 떠올랐다.
하지만 크나우프 후작은 고고한 장인어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질이라, 한순간 장인어른을 떠올린 게 미안했다.
‘장인어른은 잘 지내시겠지.’
분노한 크나우프 후작의 면전에서 검왕 남궁벽을 그리워할 정도로 엘리오는 상대를 안중에 두고 있지 않았다.
“왜 대답이 없느냐?”
“아, 그거요? 형님. 나는 형님이 인간적이고, 다른 대귀족들과 달리 소탈해서 참 좋았거든요?”
“그런 사람이 왜 벤젤의 대전사가 되었느냐? 왜 말과 행동이 다르냐 말이다.”
“왜 벤젤의 대전사가 됐냐고요? 그야 당연히 형님 하는 짓이 개좆같으니까 그런 거죠.”
엘리오의 폭언에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흠칫 놀라 상체를 뒤로 젖혔다.
신에 맹세코 태어나서 처음 듣는 격 떨어지는 욕설이었다.
한때 호기심에 뒷골목을 어슬렁거린 적도 있지만, 누구도 자신의 앞에서 저 정도로 패악스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
“이 세계는 쓰레기 같은 곳인데, 형님이 벤젤에게 한 행동은 그중에서도 가장 더럽고 역겨운 짓이었어요. 내가 형님과 친하지 않았으면 진즉에 사지를 뽑아 버렸을 겁니다. 그러니까 형님은 오히려 나한테 감사해야 돼요. 결투일까지 사지가 멀쩡하게 붙어 있잖아요. 내가 원래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형님의 일만큼은 내일로 미루었어요. 그게 나한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지금도 형님 혓바닥을 뽑아 버리고 싶은 걸 참고 있는 겁니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계속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폭언에 살의가 솟구쳤지만, 초인적인 절제력으로 꾹 눌러 참았다.
미처 마검사의 마법에 대항할 준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귀족의 품격을 갖추어 되물었다.
“나의 어떤 행동이 그토록 역겨웠느냐?”
“아니, 지금 몰라서 묻는 겁니까? 벤젤이 형님 요구에 응하지 않으니까, 죄 없는 기사와 항구 관리 책임자를 교수형시켰잖아요!”
“그들은 그들의 죄로 인해 교수형된 것이다. 기사는 감히 특무대의 남작을 살해하려 했고, 항구 관리 책임자는 많은 뇌물을 받았다. 모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다. 네가 원한다면 그 일과 관계된 증인들을 만나게 해 줄 수도 있다.”
크나우프 후작의 차분한 설명에 엘리오는 피식 웃었다.
“이 형님 나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르시네. 형님, 피차 뻔히 아는 일인데 그렇게 말하면 쪽팔리지 않아요?”
순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게 귀족들의 방식이다. 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내가요? 나는 정직 빼면 시첸데?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거죠?”
“네가 대전사로 나서게 된 이유, 그건 내가 벤젤에게 한 짓 때문이 아니지 않느냐.”
“그럼 뭔데요?”
“벤젤 때문이지. 여기까지 와서 아니라고 부인할 테냐?”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벤젤이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내연녀라고 믿었다.
그게 아니고서는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모든 배신의 배후에는 돈과 여자가 있지 않던가.
크나우프 후작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한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벤젤이 왜요?”
“벤젤이 네 내연녀라서 그녀를 위해 대전사가 된 게 아니냐 이 말이다.”
“아닌데요?”
“푸훗! 너야말로 피차 뻔히 아는 일인데 그렇게 말하면 부끄럽지 않으냐?”
“아니라서 안 부끄러운데요? 자기가 그렇게 사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살 거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형님과 달리 벤젤은 내 취향이 아닙니다.”
“취향이 아니라고?”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황당한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보았다.
벤젤은 제도에서도 큰 연회에서나 봄 직한 미모를 가진 여자였다.
그런데 흐트러짐 없는 라고아 자작의 눈빛을 보니 그 말은 진실이었다.
“벤젤이 네 여자가 아닌데 그녀의 대전사가 되었다는 것이냐?”
“형님이 워낙 쓰레기 같은 짓을 해서요. 누군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한을 풀어 줘야죠.”
“그래서 나섰다? 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을 상대로?”
“예, 내가 길 가다가 똥을 보면 꼭 치우고 가는 사람이라.”
“후후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벤젤과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관계를 의심하던 때보다 더 진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무래도 자신이 상대에게 얕보였던 모양이다.
형인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으로 인해 쌓였던 열등감에 불이 붙었다.
한참을 웃던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 슬래시 랜드의 영주, 마족 군주를 물리쳐 히르헤라의 수호자로 불린다지? 그래서 나 정도는 상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느냐?”
“솔직히 말해도 돼요?”
“얼마든지.”
“부끄럽지만 나는 나보다 강한 상대에게 싸움을 건 역사가 없어요. 왜냐? 나도 오래 살고 싶으니까.”
“내가 약하게 보였다?”
“형님이 나보다 강한 것 같았으면, 형님에게 가라고 벤젤의 등을 떠밀었죠. 벤젤이 내 가족도 아닌데 내가 왜 대전사를 해요? 무서운 똥을 만나면 나도 피해 다닌다고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더 이상 벤젤은 의미가 없다.
그는 진심으로 ―눈앞에서 이죽거리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죽이고 싶었다.
“좋은 인연일 줄 알았는데 악연이었군.”
“좋은 인연을 악연으로 만든 건 내가 아니라 형님입니다.”
엘리오는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그는 진심으로 이 엿 같은 세계와 크나우프 후작의 행위를 증오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국을 다 때려 부수고 싶었지만 그것만큼은 참았다.
그가 자신을 ‘이 세계의 일원’으로 여기지 않은 까닭이다.
“먼저 일어나겠다. 결투장에서 보자.”
“그러세요. 나는 좀 든든히 먹어 두려고요. 아, 그리고 형님.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형 동생 하던 사이니까 한마디 할게요. 결투할 때요, 살고 싶으면 지금과 같은 살의는 품지 마세요. 형님 집안 배경이 아무리 좋아도 죽는 수가 있어요.”
“그 말은 설마 살의를 품지 않으면 죽이지 않겠다는 소리냐?”
“사과와 배상을 받아 주는 게 목적이니까요. 형님이 죽으면 배상을 청구할 상대가 없잖아요.”
“후후. 참고하마. 그런데 너는 자신을 너무 믿는 것이 아니냐? 내가 누군지 잊은 모양인데, 나는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다.”
“말했잖아요. 나에게 형님은 그냥 인성이 쓰레기인 좆밥일 뿐이에요. 미안해요. 형님에게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데. 이해해 주세요. 내가 지금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아서……. 말이 막 나오네요.”
엘리오는 취한 사람처럼 오락가락했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탁자를 슬쩍 둘러보았다.
술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얼굴은 취한 사람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미친놈.’
덧정이 떨어진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기분이 너무 더러워서 그냥 숙소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바닷바람 태번에 마나 역장 장치만 설치해 두었더라면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았을 것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듣지 못한 저질스러운 욕을 잠깐 동안 다 들었다.
터덜터덜 걷던 그는 항구 외곽의 선술집 앞에서 멈춰 섰다.
뒤이어 특무대장인 케이사 콜드월 백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그 아르코스 아달이라는 놈은 어떻게 됐나? 죽음을 확인했나?”
“모릅니다. 그 뒤로 그 자리를 떠났거든요. 운이 좋다면 지나가는 배에 구조됐겠지만, 거기가 마의 해역이라.”
대답하는 목소리가 앳된 걸 보니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 분명했다.
특무대장에게 북부 귀족들을 대접하랬더니 선술집으로 왔던 모양이다.
그는 천천히 돌아서 바닷바람 태번으로 걸음을 떼어 놓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오늘까지만이다.
내일 결투 후, 살아서 다시 바다로 나갈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북부 왕국과 제국의 외교 관계를 위해서 그렇게 함이 마땅했다.
밤이 깊어가자 선술집의 모임도 끝났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이 먼저 선술집을 떠났다.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반쯤 남아 있던 네로조이스를 입안에 털어 넣고 중얼거렸다.
“느낌이 좋지 않아.”
그러자 참모인 콜린 메스칼 자작이 조심스럽게 넘겨짚었다.
“혹시 해적선을 침몰시킨 이야기 때문에 그러십니까?”
“나는 지금까지 그런 검사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네. 그건 크나우프 대공께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나도 후작 각하께는 그렇게 말씀드렸네만, 내일이 결투네. 내일이면 명백하게 드러날 일을 왜 속인단 말인가?”
“…….”
콜린 메스칼 자작은 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잠깐 나와 걷지.”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밤거리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콜린 메스칼 자작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항구 방향으로 걸어가던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갑자기 물었다.
“특무대에서 마력총을 가장 잘 다루는 기사가 누구지?”
“후안 카사스 남작입니다. 총사 출신으로 알아주는 명사수 였습니다.”
“소드 비기너면 마력탄의 위력도 상당하겠군?”
“어지간한 마물은 한 방에 죽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생각하던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품 안에서 마력탄 하나를 꺼내 콜린 메스칼 자작에게 건넸다.
“이건 뭡니까?”
“제국전쟁 당시 왕국의 소드마스터를 암살하기 위해 타불라 마탑에서 특수한 마력탄을 제작했네. 그리고 엑시티움이라 이름 붙였지.”
“아…….”
“하지만 엑시티움은 전장에서 쓰이지 않았네. 그게 양산되기 전에 평화 협정이 맺어졌거든. 그 뒤로 엑시티움 개발은 대귀족들에 의해 사장됐지. 소드마스터를 죽이는 마력탄의 출현을 좋아할 대귀족은 없으니까.”
“이게 그 엑시티움입니까?”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임무를 받았을 때 타불라 마탑의 탑주가 찾아왔었네. 우리가 북부 귀족들을 조사하러 간다는 정보가 새어 나갔던 모양이야.”
“감찰부의 내부 단속에 더 힘쓰겠습니다.”
“그래도 정보가 새어 나간 덕분에 사라진 줄 알았던 엑시티움을 얻었으니 오히려 다행이지. 타불라 마탑을 부순 사람이 라고아 자작이라고 하더군. 엑시티움으로 꼭 좀 그를 죽여 달라나?”
“허! 마공학 연구소의 폭발로 부서진 게 아니었습니까?”
“결투 중에 쏘라고 하게. 두 번의 기회는 없을 걸세. 엑시티움도 하나뿐이고.”
“예.”
그렇게 결투를 앞두고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암살 계획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