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89
1189회. 섬이 보입니다!
엘리오가 북부 귀족들과 벤젤을 압박하고 있는 특무대 기사들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큰 부상을 입은 탓에 얼굴빛은 좋지 않았지만 걸음걸이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특무대장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참모인 콜린 메스칼 자작에게 물러나라고 손짓을 보냈다.
믿었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전장에서 이탈한 지금 특무대의 힘만으로 북부 귀족들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북부 귀족들과 벤젤을 포위하던 특무대 기사들이 슬금슬금 뒤로 빠지고, 자리에는 특무대장과 참모만 남았다.
엘리오가 불쾌한 눈으로 케이사 콜드월 백작을 쏘아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참관인들을 죽여서 나를 마력총으로 저격한 걸 덮어 보시겠다?”
“오해요. 벤젤이 특무대를 비방하기에…….”
“어이, 아저씨. 내 눈과 귀는 장식인 줄 알아? 누가 누구를 비방해? 확! 입을 찢어 버릴까 보다.”
“…….”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폭언을 문제 삼지 않고 못 들은 체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검술이 크나우프 대공에 필적함을 알고 넘어가 준 것이다.
세습을 제외한 제국의 작위는 능력에 비례한다.
자작이 아니라 공작이라고 생각하면 참지 못할 것도 없었다.
엘리오가 특무대 기사들을 훑어보며 말을 이어 갔다.
“야! 너희들. 제국 귀족들은 기사들 간의 결투를 이따위로 하냐? 질 것 같으면 뒤에서 막 마력총으로 지원해 주고 그래? 목격자는 싹 다 죽이고? 아이고, 이 새끼들아. 작위가 아깝다, 작위가 아까워. 너희들이 그러고도 기사냐? 제국 귀족들의 결투 결과는 믿으면 안 되겠네. 뒤에서 마력총으로 맞은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어? 에이, 상종 못 할 쌍놈의 새끼들. 뭘 멀뚱멀뚱 보고 있어? 꺼져 이 새끼들아!”
그가 눈을 부라리자 케이사 콜드월 백작은 특무대 기사들을 해산시킨 뒤, 참모와 함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에게 달려갔다.
“후작 각하.”
특무대장의 부름에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고개를 돌렸다.
“어디를 다치셨…… 헉!”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몸을 살피던 케이사 콜드월 백작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절단된 바지 앞섶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는데, 그 안쪽에 남자라면 반드시 있어야 할 물건이 보이지 않았다.
고통과 상실감에 덜덜 떨던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이 이를 갈며 말했다.
“죽인다. 죽일 것이다.”
그러자 케이사 콜드월 백작이 그의 팔을 잡으며 만류했다.
“안 됩니다. 거동이 불편한 지금 그와 싸우시면 안 됩니다.”
“놔라! 이 꼴로 어떻게 살란 말이냐!”
“후작 각하. 라고아 자작은 마족보다 더 악랄한 자입니다. 더 큰 모욕을 당할 수도 있으니 그만두십시오.”
“이보다 더 큰 모욕이 있겠느냐? 나는 이미 죽은 목숨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말과 달리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은 백작의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지금 엘리오 라고아 자작과 싸웠다가는 더 험한 꼴을 당할 것 같아서다.
파비안이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 쪽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자작님, 후작을 어떻게 했길래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합니까?”
“거기를 잘라 버렸어.”
“거기요? 설마, 거기가 거기를 말하는 겁니까?”
“어. 사람이 거기를 조종해야지, 거기가 사람을 조종하면 안 되잖아.”
“그,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그래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괜찮지 않으면? 뭐가 문젠데?”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들고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들고일어나라고 해. 내가 아주 씨를 말려 버릴 테니까. 결투 중에 저격이나 하는 그런 비겁한 놈들은 죽는 게 나아.”
그러자 묵묵히 듣고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대륙의 평화를 생각하면 크나우프 대공가가 건재한 게 낫습니다.”
“왜요?”
“만약 크나우프 대공가가 무너지면 북부 왕국들이 제국을 침공할 겁니다. 대륙이 다시 50년 전 제국전쟁 당시로 돌아가기를 바라십니까?”
“북부 왕국들이 크나우프 대공가의 눈치를 봤어요?”
“전장을 지배하는 자가 소드마스터입니다. 그런데 크나우프 대공가의 소드마스터가 가장 강하니 눈치를 안 볼 수 없지요.”
“아하.”
“50년 전에는 제국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남부 왕국들이 먼저 전쟁을 걸지 않았습니까? 지금 크나우프 대공가가 무너지면 틀림없이 북부 왕국들도 참전을 할 겁니다.”
“그렇겠네요.”
정신이 번쩍 든 엘리오는 크나우프 대공가에 대한 반감을 애써 삭였다.
자신으로 인해 대륙이 혼돈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과의 결투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은 곧 로렌 공국 전역에 알려졌다.
그러나 모든 사실이 공개된 것은 아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결투 중에 저격받았다는 것은 철저하게 묻혔다.
엘리오 일행은 확전을 막기 위해 굳이 그걸 떠벌리지 않았다.
벤젤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일을 비밀에 부쳤다.
그렇게 벤젤의 일을 마무리 지은 엘리오 일행은 다시 항해에 나섰다.
***
제국 중부 크나우프 공작령.
크나우프 공작성.
중앙 홀.
크나우프 대공이 근엄한 얼굴로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의 말을 들었다.
“……그 뒤 북부 귀족들은 다시 항해에 나섰습니다.”
“천공성을 찾아다닌다고?”
“그렇습니다. 말로만 그런 것인지 정말 천공성을 찾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마그눔 오프스가 천공성으로 갔다는 증언의 진실성은?”
“체포된 흑마법사에게 정신 마법까지 사용해 검증했으니 사실일 겁니다. 물론 마그눔 오프스가 흑마법사에게 거짓을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마그눔 오프스의 능력을 생각하면 굳이 그럴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마그눔 오프스가 천공성으로 갔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일단 간 것으로 보고되었지만, 천공성의 존재 여부가 명확하지 않으니……. 간단히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다 치고. 고슬링 후작의 부상 정도는?”
“남성의 기능을 상실한 것 외에는 다친 곳이 없다고 합니다.”
“그건 크나우프 대공가에 대한 도전일까?”
“고슬링 후작의 문란한 사생활에 대한 징벌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 정도가 문란한 사생활이면 제도의 대귀족들은 다 죽어야겠군.”
순간 데이먼 아이작 백작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의 말처럼 대귀족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일단 취하고 봤다. 그러니 카이저 대공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라고아 자작이 다른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것 같지는 않아 보여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기사단장을 보는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경은 내가 모른 척하기를 바라는가?”
“예, 북부 귀족들과 싸워 대공 전하께서 얻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명예를 바로 세울 수 있잖은가.”
“크나우프 대공가의 명예는 고슬링 후작이 아니라 대공 전하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고슬링 후작은 크나우프 대공가의 적자이며, 내 동생이다. 그런데도 모른 척하라는 것인가?”
“이겼을 때 크나우프 대공가가 얻는 것에 비해, 패했을 경우 잃는 것이 너무도 큽니다.”
“흐음! 경은 내가 라고아 자작에게 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야릇한 눈으로 기사단장을 응시했다.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기사들 중에 으뜸이십니다. 라고아 자작과의 싸움에서도 반드시 이기실 것입니다. 저는 다만 일 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피할 생각으로…….”
“그러니까 백 퍼센트 확신은 없다는 말이로군.”
머뭇거리던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뢰옵기 송구하나 라고아 자작은 평범한 소드마스터가 아니라는 게 황실 기사들의 중론입니다.”
“평범한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랜드 마스터라도 된다는 소린가?”
“그런 것은 아니오나 황실 기사들은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한 기사로 대공 전하와 라고아 자작을 꼽고 있습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야인 출신의 북부 기사에게 후한 평가로군.”
“북부에서 그가 세운 공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않습니까?”
“누가 그러더군. 소문은 절반만 믿으라고.”
“절반으로 줄여도 대단하지요. 요즘 어떤 기사가 그런 업적을 세우겠습니까?”
“누가 들으면 경의 고향이 북부인 줄 알겠어.”
기사단장이 라고아 자작을 편들자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은 한마디 했다.
하지만 말로만 그럴 뿐 사실 그도 라고아 자작과 싸울 마음은 없었다.
기사단장의 말처럼 얻는 것에 비해 잃을 게 너무 많은 까닭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기사로서 호승심이 일어났다.
왠지 라고아 자작과 싸우면 그랜드 마스터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피에스트라까지 달려갈 수는 없었다.
제국이 안정기라면 모를까?
남부와 전쟁 중이고, 언제 북부가 들고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뭔가를 곰곰 생각하던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이 입을 열었다.
“대륙의 정세를 생각하면 덮어 주는 것이 마땅하나, 가만히 있으면 적들이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조사관을 보내 결투의 전모를 알아 오게 하라.”
“예.”
기사단장은 공손히 허리를 조아렸다.
그는 크나우프 대공이 실로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당장 기사단을 파견하거나, 크나우프 대공이 움직이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하다.
전쟁 시국이니 조사관이 조사를 하는 기간이면 결투도 잊혀질 터였다.
라고아 자작의 문제는 그때 조용히 해결하는 게 백번 나았다.
***
마의 해역.
오후.
엘리오 일행은 차양막 아래서 하루 종일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무료한 얼굴로 가슴을 벅벅 긁던 파비안이 갑자기 엘리오를 힐끔 보았다.
“자작님?”
“어?”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나쁘진 않아.”
“마력탄이 그렇게 강한 거였습니까?”
“나도 모르지.”
“이해가 안 돼서요. 우리 영지군에도 총사들이 있었잖습니까? 세라 경이 팬텀 기사단의 총사 아닙니까. 세라 경이 마력총 쏘는 걸 봤는데 그 정도 위력은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마력탄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네. 과거 제국전쟁 시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었지. 제국에서 소드마스터를 죽일 수 있는 엄청난 파괴력의 마력탄을 개발했다고. 어쩌면 그게 세상에 나왔는지도 모르네.”
“아! 그렇다면 이해가 되네요. 자작님, 등은 괜찮으십니까?”
“그냥저냥 버틸 만해.”
“어이쿠! 버티는 거면 안 되죠. 태양신과 싸워야 하는 분이. 충분히 치료를 하고 나오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찮아. 카마 데비아스는 내가 상대할 게 아니니까.”
“예? 자작님이 아니라고요? 설마 백작님에게 맡기실 생각이십니까?”
“누구 잡을 일 있어? 백작님이나 너와는 상관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이 배에 백작님과 저 빼고 누가 있다고요?”
“있으니까 그만 물어. 대답할 때마다 등 아프니까.”
“아프시다니까 걱정이 돼서 그러지요. 몸 상태가 좋으셔도 걱정되는 판국에…….”
“파비안.”
“예?”
“나는 질 것 같으면 싸움 자체를 안 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주변이나 잘 살펴. 괜히 보고도 겁나서 못 본 척하지 말고.”
“자작님은 저를 어떻게 보시고. 저 그런 놈 아닙니다.”
파비안이 두 눈에 힘을 주고 바다를 노려보았다.
그때 주 돛대 위에 있는 탑캐슬에서 마일로의 외침이 들려왔다.
“서, 섬이다! 섬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