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9
119회. 녹림이 다 그래?
다음 날 점심 무렵.
연적하 일행을 태운 사두마차가 천천히 두가장촌을 지나갔다.
멀리 태산이 보이는 산자락 아래의 오래된 마을은 한눈에 봐도 처참했다.
십여 채의 가옥이 시커멓게 탔는데, 아직 연기를 뿜어내는 곳도 있었다.
마을 중앙을 관통하던 마차가 잠시 멈춰 섰다.
시체를 잔뜩 실은 달구지와 마주치자 마부가 먼저 세운 것이다.
창밖으로 달구지를 물끄러미 보던 연적하가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마차에서 내리더니, 가볍게 지면을 박차고 마차 지붕 위로 올라갔다.
구천노도 심통이 그의 분신이라도 되는 듯 따라 나갔다.
이윽고 ‘찰칵’ 소리와 함께 마차 문이 닫혔다.
마부석 옆에 앉아 있던 진설하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 공자님 왜 벌써 나오셨어요?”
연적하는 대답 대신 짧은 눈인사를 보내고 이내 달구지로 시선을 돌렸다.
어른들 시체 위에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작은 몸체가 보였다.
달구지와 함께 걷던 사람들이 맥 빠진 눈으로 마차를 힐끔 보고는 다시 움직였다.
덜그럭. 덜그럭.
연적하는 시체를 가득 실은 달구지가 멀어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심 노인이 즐긴 삼락이 저런 거야?”
“……예.”
심통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다고 해서 그의 과거가 변하는 게 아닌 까닭이다.
“녹림이 다 그래? 아니면 심 노인만 그런 거야?”
“녹림은 거의 그렇습니다.”
대체로 녹림은 상단에서 먹고살 만큼 빼앗지 못하면 인근 마을을 습격한다. 상단의 수입이 차고 넘쳤던 오봉산채가 특별했던 거다.
“오봉산채는 그러지 않았잖아.”
“풍 채주가 욕심을 부리지 않은 덕에 오가는 상단이 많았으니까요.”
“아…….”
“만약 상단이 없었다면 오봉산채도 마을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런 거구나.”
연적하는 녹림의 실체를 알고 조금 놀랐다.
상단에게 십시일반 조금씩 돈을 뜯어내 먹고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심통이 씁쓰름한 눈으로 연적하를 보았다.
연적하와 오봉십걸들이 녹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건 전부터 느꼈다. 냉정하게 말해 오봉십걸들은 딱 좀도둑 수준이었다. 그들의 무위를 정말 이야기 속에 나오는 호걸들로 끌어올린 사람이 연적하였다.
“녹림에 있는 게 후회되십니까?”
“좋은 곳이 아니라는 건 확실히 알겠어.”
정나미가 뚝 떨어진 얼굴이다.
심통은 어쩌면 그가 오봉산채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자 태산이 조금씩 다가왔다.
잘 나가던 마차는 태산 초입에서 다시 멈췄다.
심통이 짜증 섞인 어조로 ‘왜 그러냐?’고 묻자 마부가 답했다.
“어이쿠! 나리님들, 아까 마을 보셨잖습니까? 이곳에 있는 녹림도 짓이라는데……. 이대로 가면 죽습니다요.”
“예끼 이놈아! 서둘러 가지 않으면 내가 네놈을 죽일 것이다!”
“나리, 정말 큰일 납니다요.”
마부는 정말 무서운지 진땀을 흘리면서 만류했다.
하기야 조금 전에 녹림도에게 당한 마을 꼴을 봤으니 그럴 법도 하다.
마부 옆에 앉아 있던 진설하가 한마디 했다.
“아저씨, 계속 가는 게 좋을 거예요. 저 노선배님 화나면 진짜 무섭거든요. 그리고 옆에 계신 소협이 녹림도들을 벌주려고 오신 분이에요.”
“저, 정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아무리 흉악한 녹림도라도 저분 말에는 꼼짝 못 해요.”
마부는 반신반의한 눈으로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청년은 마치 남의 이야기라는 듯한 얼굴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한참을 망설이던 마부가 슬그머니 고삐를 흔들었다.
“이랴! 이랴!”
못 박힌 듯 미동도 않던 마차가 천천히 전진했다.
태산에 진입하고 반 시진(1시간)쯤 지났을까?
“으흐흐흣! 멈춰라!”
“어느 놈이 허락도 안 받고 태산을 막 지나가려 하느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삼십여 명의 도적들이 튀어나와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마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뒤를 힐끔거렸다.
조금 전에 ‘녹림도를 벌주러 왔다’고 했으니 뭐라도 해 보라는 뜻이다.
도적 중 하나가 진설하를 보고는 침을 줄줄 흘렸다.
“어이쿠! 저 곱상한 년 보게. 태안에서 제일 예쁘다는 금홍이보다 낫네. 저년은 내가 찜했으니 아무도 눈독 들이지 마라!”
“크크크! 그다음은 나요!”
그때 지붕 위에 있던 심통이 음산하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흐. 이 버러지 같은 놈들이 뉘 앞에서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는 것이냐! 총순찰님이 오셨으니 당장 산채까지 안내나 해라.”
그러자 진설하를 탐내던 도적이 급히 물었다.
“저, 정말 총순찰님께서 오셨단 말이오?”
“이런 찢어 죽일 놈!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다시 한번 이쪽으로 눈알 굴리는 놈은 죽는다. 당장 산채로 안내해라.”
심통의 살기등등한 소리에 산적들은 찔끔 놀라 눈을 내리깔았다.
하기야 녹림 관계자가 아닌 다음에야 저 정도 숫자로 산채까지 가자고 하지는 못할 게다.
도적들은 마차를 앞뒤로 에워싸고 산채로 올라갔다.
잠시 후 마차가 광풍채 안마당까지 들어오자 산적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길 안내를 하던 도적이 가장 안쪽에 있는 채주의 숙소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잠시 후 귀영도살 사마단이 측근들을 거느리고 안마당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총순찰이 왔다는 데도 사마단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그만큼 자신의 무위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다.
측근 중 하나인 귀면살부 허웅이 마차를 향해 소리쳤다.
“어느 분이 총순찰이시오?”
그러자 심통이 연적하를 대신해서 답했다.
“네놈이 광풍채의 채주냐? 광풍채의 채주는 당장 나와서 총순찰님께 인사 올리지 못할까!”
심통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광풍채를 뒤흔들었다.
진설하는 내력이 실린 심통의 소리에 황급히 귀를 막아야 했다.
그제야 놀란 허웅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사십 대 후반의 사마단이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앞으로 나섰다.
“본좌가 광풍채의…….”
“닥치거라! 이놈! 감히 총순찰님 앞에서 광오하구나!”
심통은 어린놈이 자기 앞에서 거들먹거리는 꼴을 봐주지 않았다.
순간 분노한 사마단이 얼굴을 실룩거렸다.
십두마병이 된 뒤로 총채주 파천마군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고작 총순찰이나 따라다니는 늙은이가 자신을 무시하다니?
“네놈은 누구기에 광풍채에서 나를 모욕하느냐!”
“으흐흐! 본좌는 구천노도 심통이라 한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총순찰을 믿고 나대는구나! 오늘 내가…….”
이번에는 연적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어제 두가장촌에서 사람들 막 죽인 게 너냐?”
“저, 저런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감히! 너라고 했느냐?”
사마단의 입술이 푸들푸들 떨렸다.
십두마병이 되기 전에도 자신에게 저런 식으로 말한 놈은 없었다.
사마단이 막 발작하려는 순간, 연적하가 품 안에서 영패를 꺼내 휙 던졌다.
쉬이익.
영패는 마치 화살처럼 사마단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대경실색한 사마단이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영패를 낚아챘다.
“크흑!”
십두마병의 공력을 가졌음에도 손가락이 부러질 듯 화끈거렸다.
‘무슨 놈의 공력이……. 혹시 저놈도?’
한순간 사마단은 저 젊은 놈도 유명교 십두마병인가 하는 오해를 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 나이에 이런 공력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영패를 보니 자신이 받은 순찰령패와 흡사했다.
자신과 다른 점이라면 숫자 대신 ‘총(總)’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는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총순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마단은 급히 화를 가라앉혔다.
총순찰의 무위도 신경 쓰였지만 그보다는 그 뒤에 있을 파천마군이 두려워서다.
“총순찰님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소?”
애써 태연한 척하며 사마단은 영패를 청년에게 힘껏 던졌다.
쇄애액.
전력을 다해서 그런지 소리부터가 달랐다.
그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걸 연적하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만으로 살짝 잡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두가장촌과 태산 인근 일곱 개 마을에서 사람들을 죽인 게 너냐고 물었다.”
“하하! 본래 겨울철에 양식이 떨어지면 근처 마을을 약탈하는 게 우리 일 아닙니까? 총순찰님이 계신 산채에서도 종종 그러지 않습니까?”
“재물만 조금 뺏으면 될 일인데 사람들까지 마구 잡아들였더라?”
“돈이 되니까요.”
“그중에 잡아먹은 사람도 있냐?”
“수하들 중에 인육을 즐기는 놈들이 있어서, 딱 한 번 내준 적이 있습니다.”
“그놈들이 누구야?”
“왜 그러시는 겁니까?”
“누구냐고.”
연적하를 노려보던 사마단이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말씀드려라!”
사마단의 측근 중 둘이 눈치를 보며 손을 들었다.
“저…….”
“저희들입니다요.”
묵묵히 그들을 내려다보던 연적하가 말했다.
“심 노인.”
“예, 공자님.”
“저 둘을 죽여.”
“예.”
순간 마차 위에서 심통의 신형이 ‘퍽’ 하고 사라졌다.
그야말로 이형환위에 가까운 신법이었다.
심통은 사마단이 미처 끼어들기도 전에 유엽도를 휘둘러 두 사람의 목을 잘랐다.
그리고 유령처럼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그 속도에 진설하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총순찰이라 해도 광풍채에서 이럴 수는 없소!”
사마단이 부들부들 떨며 연적하와 심통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광풍채의 도적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마차 문을 열고 밖으로 다섯 사람이 나왔다.
사실 다섯 모두 십두마병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마차에서 꽃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자 사마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순찰! 저들은 누구요?”
남궁천 남매는 남직례성 사람들이라 산동성의 산적들이 알지 못했다. 정주의 군소 무가 출신인 두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몰라도 돼. 내가 녹림을 시찰하러 간다니까 따라온 지인들이니까.”
“미친…….”
사마단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산채에 지인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꾹꾹 참고 있던 사마단이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보았느냐! 총순찰이라는 놈이 광풍채에 와서 다짜고짜 형제들을 둘이나 죽였다! 오늘 모두 죽여 버리면 누가 알겠는가! 남자는 싹 죽이고! 여자는 노리개로 삼아라!”
“크크크!”
“씨벌, 총순찰이면 다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흐흐. 저년들 보소. 오늘 제대로 놀아 보자.”
광풍채의 도적들이 병장기를 말아 쥐고 서서히 다가왔다.
일촉즉발의 순간, 연적하가 사마단에게 물었다.
“너 유명교 십두마병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냐?”
“곧 죽을 놈이 알고 싶은 것도 많구나. 그건 염라대왕 앞에 가서 물어보거라.”
“염라대왕까지 안 만나도 알 수 있어.”
“무슨 개소리냐.”
“너만 죽여 보면 돼.”
말과 함께 연적하가 검을 뽑아 앞으로 던졌다.
쉬이익-.
검이 사마단의 가슴을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사마단이 허공으로 삼 장(약 9미터)이나 솟구쳐 올랐다.
순간 연적하가 손목을 위로 꺾어 검결지를 들어 올렸다.
“헉! 이기어검?”
놀란 사마단은 공중에서 미친 듯 이리저리 몸을 뒤집었다.
퍽.
그러나 검은 무식하게 조금 전까지 사마단이 서 있던 땅바닥에 비스듬히 박혔다.
연적하가 손바닥을 펼치자 부르르 떨던 검이 다시 그의 손바닥으로 돌아왔다.
“그냥 허공섭물이야.”
허공섭물은 단지 물건을 끌어당기는 것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는 이기어검과 천지차이다.
뒤늦게 사마단은 상대가 자신을 희롱했다는 걸 알고 빠드득 이를 갈았다.
“이놈! 죽여 버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