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191
1191회. 저 섬은 로도스 섬입니다
엘리오가 파비안의 밧줄을 풀기도 전에 폭우가 쏟아졌다.
휘이이잉―!
쏴아아아―!
선원들의 말처럼 폭풍우가 몰려온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폭풍우는 지난번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바람이 얼마나 강한지 배가 뒤집힐 듯 뒤뚱거렸다.
선원들이 허겁지겁 돛을 내렸지만, 이번에는 측면에서 집채만 한 크기의 파도가 밀려와 배를 뒤흔들었다.
엘리오도 휘청거릴 정도로 파도는 높았다.
갑판과 뱃전에 있던 선원들은 돛을 내리자마자 선실로 대피했다.
그걸 본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소리쳤다.
“백작님도 들어가세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즉시 선실로 피신했다.
“파비안! 줄 풀지 않는 게 낫겠다! 그냥 버텨라!”
“그러다 배가 뒤집히면요?”
“그때는 줄을 잘라 줄게! 너 지금 움직이다가는 바다에 빠진다!”
“알겠습니다! 제 옆에서 떠나지만 마십쇼!”
“그래! 나는 자리를 지킬 생각이야!”
엘리오는 뱃머리가 위로 솟구치자 급히 천근추의 신법으로 찍어 눌렀다.
쿠드드득―!
나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뱃머리가 내려앉았다.
‘오! 이거 괜찮은데?’
엘리오는 마력범선을 돌아다니며 시기적절하게 천근추를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처음처럼 배가 뒤집힐 정도의 위기는 찾아오지 않았다.
쿠르르릉! 꽈광―!
먹구름으로 시커메진 하늘에서 쉬지 않고 벼락이 떨어졌다.
어찌나 많이 떨어졌던지 엘리오조차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낙뢰 앞에서 엘리오는 선실로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켰다.
‘천자마를 죽이러 온 내가 천자마가 만든 풍운조화에 숨는다고? 웃기지 마!’
그는 오히려 뱃머리 난간 위로 뛰어올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댔다.
선실로 대피해 있던 선원들이 창가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두 팔을 휘저으며 악쓰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 와중에 선원 하나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벼락이 저렇게 떨어지는데 모시고 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선원들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힐끔거렸다.
이중에서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잠시 망설였다.
아닌 게 아니라 폭풍우와 벼락은 또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어떻게 할까 망설일 때다.
꽈광!
선원들이 보는 앞에서 한 줄기 벼락이 뱃머리에 내리꽂혔다.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박살 난 나무 파편이 선실 창문을 때렸다.
깜짝 놀란 선원들은 급히 머리를 감싸고 쪼그려 앉았다.
잠시 후 벌떡 일어나 창밖을 살피던 선원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아!”
“무사하시다!”
“저게 뭐지?”
“마나 실드인가?”
부서진 뱃머리에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여전히 우뚝 서 있었는데, 새파란 빛이 그의 몸을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렸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경지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이 뿌듯했다.
그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이 순수한 검사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보이는 저 광휘도 마법과 무관할 터였다.
‘나도 언젠가는…….’
평생 소드마스터를 꿈꿨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목표가 그랜드 마스터로 갱신됐다.
세상을 다 부숴 버릴 것처럼 떨어지던 벼락은 어느 순간부터 잠잠했다.
선체를 흔들 정도로 강하게 불어오던 바람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집채만 한 파도도 이제는 견딜 만한 정도로 작아졌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은 시커멨고 눈을 뜨기 어려울 정도로 비바람이 몰아쳤다.
휘이이―!
쏴아아아―!
잠시 후 누구나 느낄 정도로 폭풍우가 약해지자 선원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력범선이 전복될까 봐 하얗게 질려 있던 선원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갑판 위로 나온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돛대에 묶여 있던 파비안을 풀어 주었다.
시간이 지나자 빗방울은 점점 약해졌고, 먹구름도 조금씩 걷혔다.
뱃머리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엘리오의 눈이 빛났다.
“섬이다!”
수평선에 점처럼 찍혀 있던 섬이 거대한 자태를 드러냈다.
엘리오 라고아 자작의 옆에서 유심히 섬을 관찰하던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거 고대시에 나오는 녹색 섬 맞습니까? 그런데 왜 등대가 보이죠?”
“등대라고?”
“저기 옆쪽에 뾰족하게 솟은 거 말입니다. 등대 아닙니까?”
엘리오가 눈에 힘을 주고 다시 살필 때 알트헬름 선장이 다가왔다.
선장을 본 파비안이 물었다.
“저기 뾰족하게 솟은 탑, 내 눈에는 등대로 보이는데…… 아닌가?”
“맞습니다.”
“섬이 꽤 커 보이는데……. 우리가 발견했던 섬이 맞나?”
“아닙니다. 저 섬이 왜 저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저 섬은 로도스 섬입니다.”
선장을 향해 돌아선 엘리오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게 로도스 섬이라고요? 아까는 분명히 아니라고 했잖아요?”
“아까 본 섬은 저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저 섬은 뭔데요?”
“그게 이상합니다. 우리가 안개를 만나고 한 시간밖에 안 지났습니다. 그런데 왜 로도스 섬 앞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로도스 섬은 마의 해역에서 꼬박 하루를 항해해야 나오는 곳이거든요.”
“하루요?”
“예, 마의 해역은 피에스트라와 로도스 섬 중앙에 있습니다. 한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로도스 섬이라니…….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그러니까 하루 거리를 한 시간 만에 왔다는 건가요?”
“예, 우리가 마의 해역에서 본 섬은 저게 아닙니다. 아니, 마의 해역에는 원래 섬이 없습니다. 귀신에게 홀린 것도 아니고…….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알트헬름 선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마력범선이 어떻게 하루 거리를 한 시간 만에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물었다.
“방향타는 움직이지 않았느냐?”
“그게…… 파도에 배가 뒤집힐 것 같아서 수차례 방향을 바꾸기는 했습니다.”
“애초의 목적지에서 벗어났다는 말이구나?”
“예, 그렇지만 한 시간 만에 로도스 섬까지 올 수는 없습니다.”
침묵이 좌중을 감쌌다.
엘리오는 선장의 대답에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폭풍우 속에서 마력범선이 전복되지 않은 건 그런 선장의 노력 덕분인지도 몰랐다.
마력범선은 뒤집힐 듯 뒤집힐 듯 하면서도 기적처럼 균형을 되찾곤 했으니까.
그걸 알면서도 선장을 탓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마력범선은 로도스 섬 등대 앞에서 다시 마의 해역으로 선회했다.
다음 날.
석양이 질 무렵, 알트헬름 선장은 뱃머리로 나와 다시 마의 해역에 진입했음을 알렸다.
엘리오는 허탈한 눈으로 바다를 응시했다.
한 달이 넘는 항해 끝에 기적처럼 녹색 섬을 발견했는데, 근처에 가 보지도 못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다니!
“파비안, 너 항구에서 한 시간 만에 로도스 섬에 갔다는 소문 들은 적 있냐?”
“없습니다.”
“돌겠네. 이거 뭐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거냐?”
엘리오가 탄식하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마의 해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뒤틀어진 것은 아닐까요?”
“그게 가능해요?”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신적인 존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인간의 이해 범주에서 생각하면 안 될 겁니다.”
웬일인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카마 데비아스를 신이라 하지 않고 ‘신적인 존재’로 살짝 낮추어 말했다.
‘카마 데비아스를 죽이겠다’는 엘리오 라고아 자작을 위한 배려였다.
엘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 가능한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백작의 말이 맞았다.
해가 질 때까지 마의 해역을 돌아다녔지만 섬은 없었다.
밤하늘에 달이 떠올랐다.
우두커니 밤바다를 응시하던 엘리오가 말했다.
“파비안, 우리가 잘못 본 건 아니지? 분명 섬이 있었지?”
“예. 잘못 본 거 아닙니다. 선원들도 전부 섬을 봤다고 했습니다. 고대시에 나오는 녹색 섬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제대로 찾아온 것 같습니다.”
“그래, 다음에는 놓치지 않는다.”
엘리오는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니 피가 끓는 기분이다.
“그런데 자작님, 세이렌은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되다니?”
“세이렌의 노래를 듣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폭풍우 한가운데 있더라고요. 세이렌들은 노래만 부르고 간 겁니까?”
“가긴 어딜 가? 내가 죽였다.”
“세이렌들을요?”
“어. 그 노래 듣고 다들 잡아 죽일 듯 싸우길래. 너도 눈 뒤집혀서 밧줄 풀겠다고 발광을 하던데. 기억 안 나냐?”
“기분 더러운 꿈을 꾸기는 했습니다.”
“뭔데?”
“세라 경이 다른 기사와 놀아나는 꿈요. 꿈이 맞겠죠? 어찌나 실감이 나던지 실제로 그걸 목격한 것 같았습니다. 아, 생각하니까 또 짜증이 나네요.”
파비안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달려가서 다 죽여 버리고 싶은데 ―가위에라도 눌린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아서 더 괴로웠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힐끔 보았다.
그는 바다 밑으로 가라 앉으면서까지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도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을 목격한 것일까?
아니, 그건 정말 단순한 환각이었을까?
잠깐 생각한 것만으로도 입맛이 떨어지고,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때 파비안이 물었다.
“자작님은 어떠셨습니까?”
“묻지 마. 떠올리기도 싫으니까.”
“아…….”
파비안이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세라 경을 몇 달 못 본 자신도 그 지경인데 엘리오 라고아 자작은 더하리라.
파비안은 오마르 백작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가 입을 떼기도 전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게.”
뻘쭘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던 파비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거 왠지 저만 손해를 본 기분이 듭니다?”
“자네가 똥을 밟았다고 해서 모두의 발에 똥을 묻힐 필요는 없잖은가.”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지만, 슬픔을 나누면…….”
“이런 일은 세 배가 되네. 그러니 더는 거론하지 말게.”
“아, 예.”
파비안은 오마르 백작과 라고아 자작에게 생긴 일이 궁금했지만 더 묻지 못했다.
묵묵히 바다를 보며 생각에 잠긴 엘리오 일행에게 알트헬름 선장이 다가왔다.
“저어, 나으리님들.”
파비안이 일행을 대신해 나섰다.
“무슨 일인가?”
“낙뢰에 돛대의 부품이 파손되었는데, 하데스 항으로 돌아가 수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작님, 항구로 돌아가서 수리를 해야 한답니다. 그러라고 할까요?”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경험상 의미가 없다는 걸 알기에 고집부리지 않았다.
다음 날.
마력범선은 석양을 받으며 하데스 항으로 들어섰다.
뱃머리에서 선착장을 살펴보던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말했다.
“특무대가 안 보이네?”
“우리가 예정에 없이 갑자기 돌아와서 그런 거 아닙니까?”
“부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알려 줬을걸?”
“그러네요? 항구에 사람들도 좀 많은 것 같고……. 설마 철수한 걸까요?”
“갔네, 갔어.”
엘리오는 특무대가 갔다고 확신했다.
항구에 기감을 퍼트려 알아볼 것도 없었다.
부둣가가 어부들과 항구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바글거렸다. 저건 특무대가 돌아다닐 때는 없던 모습이다.
마력범선이 계류장에 정박하자 엘리오 일행은 배에서 내려 바닷바람 태번으로 향했다.
역시나 일반 시민들이 바닷바람 태번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엘리오 일행을 발견한 셀리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달려 나왔다.
“어머! 어서 오세요! 이번에는 일찍 오셨네요?”
환대하는 그녀에게 파비안이 다짜고짜 물었다.
“특무대는 떠났느냐?”
“네, 오늘 크나우프 대공가에서 남작님 한 분이 오셨는데, 그분과 만나고 나서 방을 뺐어요.”
“크나우프 대공가의 남작?”
셀리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대공 전하가 보낸 조사관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