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0
120회.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냐?
십두마병의 무위는 천차만별이다.
기본 무공이 형편없는데 내력만 초범입성의 경지에 든 자가 있는가 하면, 뛰어난 무공까지 겸비한 진짜 특별한 자들도 있다.
안타깝게도 귀영도살 사마단의 경우는 전자였다.
전대 채주 태산일괴 구문범이 그에게 패한 뒤에도 ‘졌다’고 인정하기 싫어할 만큼, 귀영도살 사마단의 본신 무공은 고수와 거리가 멀었다.
사마단은 박도를 뽑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귀영이라는 별호가 붙을 만큼 경공술이 빠른 사마단인지라 움직임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휙휙휙.
유령처럼 연적하의 주위를 맴돌던 사마단이 다섯 차례나 도를 휘둘렀다.
채채채채챙.
연적하는 무덤덤한 얼굴로 검을 휘저어 도를 튕겨 냈다.
멀리서 봐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그러자 용기를 얻은 태산일괴 구문범이 짧게 소리쳤다.
“오늘 일이 총채주님 귀에 들어가면 모두 죽을 것이다. 뒤로 물러나라!”
순간 구문범을 따르는 도적들이 뒤로 빠졌다.
오십여 명 중에 전장에서 이탈한 이는 무려 삼십여 명이나 됐다.
그 모습을 본 사마단의 측근 귀면살부 허웅이 버럭 화를 냈다.
“뭐 하는 짓이냐! 채주님의 명을 거역할 셈이냐!”
그러나 구문범과 그를 따르는 도적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냐! 너희 개자식들! 채주님께서 저 애송이 새끼를 처리하고 난 뒤에 보자!”
허웅은 이를 갈며 수하들과 함께 총순찰의 지인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의 앞에 심통이 내려섰다.
“흐흐흐! 이 병신 같은 놈들!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심통이 욕설과 함께 유엽도를 들고 도적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악!”
“크윽!”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명의 도적이 칼을 맞고 나뒹굴었다.
가공할 무위에 놀란 열다섯의 도적들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뭐 해! 공격해! 가라고 이 새끼들아!”
허웅이 옆에서 아무리 싸움을 독려해도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채채채챙.
사마단의 박도가 미친 듯 연적하를 향해 몰아쳤다.
그러나 연적하는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박도를 다 걷어 냈다.
폭풍 같은 칼질이 잠시 멎었을 때다.
연적하가 사마단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다 했어? 더 보여 줄 거 없어? 이래서야 심 노인보다 한참 못하잖아.”
연적하는 영 무료한 얼굴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지금까지 만난 십두마병 중에 가장 약했던 것이다.
빠드득 이를 갈던 사마단이 입을 열었다.
“나는 녹림이자 광명장원의 십두마병이기도 하다. 유명교와 척을 지면 살아남기 어려울 텐데, 대체 나에게 이러는 이유가 뭐냐?”
광명장원은 산동성에 있는 유명교 교당이다.
광명장원의 장주는 환영신마 웅재귀. 삼 년 전 수월상방의 팔주령을 탈취하던 도중 연적하와 부딪친 적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당신부터 말해 봐. 왜 태산 인근 마을에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았는데?”
“식량이 떨어져서라고 했다.”
“창고 뒤져서 한 일 년치 식량과 재물이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뒤져 볼까?”
“나는 대답했으니 이번에는 네놈 차례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거냐?”
솔직히 사마단은 총순찰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
상대의 무위가 뛰어나기도 하고 뒷감당을 할 자신이 없어서다.
“아직 내 소문 못 들었나 보네. 나 참월검객의 아들 연적하야. 유명교와는 여러 가지로 좋지 않아. 이제 답이 된 거지? 더 이상 들을 말도 없는 것 같은데 이만 끝낼게.”
말과 함께 연적하가 사마단이 있는 곳으로 훌쩍 몸을 띄웠다.
깜짝 놀란 사마단이 박도를 종횡으로 그었다.
츠츠츠츠-.
열십자[十] 형태의 도기가 사마단과 연적하 사이를 갈랐다.
순간 연적하의 검이 허공에서 빠르게 요동쳤다.
운룡풍호를 펼친 것이다.
검 끝에서 바람이 이는가 싶더니, 이내 거대한 용권풍(회오리바람)으로 변했다.
콰콰콰콰-.
용권풍 속에서 튀어나온 청룡이 두 가닥 도기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청룡은 날아가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사마단을 덮쳤다.
“크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사마단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용형검기는 사마단의 몸을 나선형으로 감고 지나갔다.
털썩.
용형검기가 사라지자 사마단의 몸도 땅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한차례 경련하던 사마단이 축 늘어졌다.
연적하는 사마단이 괴물로 변하기 전에 끝장을 보려는 듯 다시 한번 도약했다.
“차핫!”
그리고 구천구검 일 식 현녀강림으로 사마단의 몸통을 내리찍었다.
퍽.
검이 사마단의 가슴에 제대로 박혔지만, 연적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체에 칼질을 했다는 것 외에 다른 느낌이 없어서다.
연적하는 급히 검을 회수한 뒤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사마단의 몸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마치 허물을 벗는 것처럼 사마단의 육체가 흘러내렸다.
후두둑, 후둑.
단숨에 사마단의 몸을 찢고 나온 괴물은 거의 두 배 이상 커져서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크륵, 크르르. 크르륵.”
사마단의 입에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사람이 혼자서 뭐라고 웅얼거리는 것 같았다.
“와아.”
연적하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삼 인 삼 색이다.
세 번째로 보는 십두마병이지만 비슷한 게 하나도 없다.
사마단의 변화는 이전의 십두마병들과 달리 단숨에 이루어졌다.
크기도 진가희 때보다 조금 더 커서 일 장(약 3미터)이 넘었다.
심지어 지금까지의 십두마병 중에 가장 강해 보인다.
사마단의 비루한 무위를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만 느낌이 그랬다.
사마단이 사자나 호랑이처럼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자신감이 엿보이는 행동이다.
한 바퀴 돌던 사마단의 검은 눈이 연적하에 이르러 멈췄다.
“크르륵. 크륵. 크.”
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마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곧 사마단의 거구가 사라졌다.
“헛!”
연적하의 입에서 다급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눈앞으로 사마단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연적하는 다급하게 검으로 사마단의 주먹을 찍었다.
터엉.
다른 십두마병 때와 달리 검이 뒤로 튕겼다.
‘이크!’
이건 마치 철벽을 때린 것 같은 느낌이다.
연적하는 황급히 뒷걸음질 쳤다.
그런 연적하를 따라가며 사마단이 양손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콰앙. 캉. 콰앙. 캉.
연적하가 검으로 주먹을 때릴 때마다 육중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신없이 검을 휘두르던 연적하는 섬뜩한 느낌에 위를 올려다보았다.
사마단의 시커먼 입이 갑자기 확 벌어졌다.
콰아아아-.
불타는 용암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으헉!”
대경실색한 연적하는 머리 위로 구천세법의 사 식 풍화겁륜(風火劫輪)을 펼쳤다.
연적하의 머리 위로 수레바퀴 같은 거대한 돌풍이 일어나 용암을 막았다.
치치칙. 치칙.
풍화겁륜에 휘말린 시뻘건 용암이 사방으로 튀며 연기를 뿜어냈다.
그중에 몇 방울은 연적하의 머리와 상체로 떨어졌다.
화르륵. 치익.
머리카락과 옷에 불이 붙었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검식을 펼치고 있는 연적하의 옆구리로 사마단의 주먹이 재차 날아갔다.
순간 연적하는 오히려 지면을 박차고 위로 날아올랐다.
곧이어 그의 검에서 풍화겁륜보다 더욱 강맹한 바람이 일어나 용암을 밀어 올렸다.
쿠쿠쿠쿠-.
구천구검의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이다.
마치 하늘과 땅이 바뀐 것처럼 용암은 위로 솟구쳤다.
시뻘건 용암이 자신에게 덮쳐 오자 사마단은 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막았다.
그때 사마단의 머리 위까지 날아올랐던 연적하가 한 마리 매처럼 떨어져 내렸다.
곧이어 구첨구검의 일 식 현녀강림이 사마단의 정수리를 쪼겠다.
콰드드드득.
사마단의 머리가 으깨지는 순간, 또다시 양미간 사이의 신맥이 화끈거렸다.
이전처럼 뭔가 보이려는 모양이다.
연적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자신이 보는 게 무엇인지 제대로 확인하고 싶었다.
화악-.
역시나 눈앞에 무저갱과 같은 동혈이 나타났다.
연적하는 급히 좌우를 둘러보았다.
마치 괴물로 변한 진가희나 사마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동혈의 한쪽 끝에 희미한 광채가 보였다.
어쩌면 저곳이 이 암흑 동굴의 출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피려는 순간 몸이 뒤로 확 빨려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커먼 사마단의 몸에서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숨이 끊어진 것이다.
곧이어 사마단은 다른 십두마병들처럼 가루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푸스스스-.
구석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구문범이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총순찰님! 제가 광풍채의 채주 태산일괴 구문범입니다. 저희 광풍채를 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됐고. 창고나 안내해 봐.”
“예, 예, 이쪽으로 오십쇼.”
총순찰의 무위에 기가 꺾인 구문범은 마치 점소이처럼 굽실거리며 앞장섰다.
덜커덩.
구문범이 기세 좋게 창고 문을 열어젖혔다.
그러자 안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쳐들었다. 근래에 태산 인근의 마을에서 잡혀 온 남자와 여자들이다.
구문범이 축 늘어진 마을 사람들을 보며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제가 아니라 죄다 그놈이 잡아 온 사람들입니다. 총순찰님께서 원하신다면 모두…….”
“풀어 줘.”
“예, 예, 풀어 줘야지요. 팔아 봐야 몇 푼 안 나오니 풀어 주는 게 낫습지요.”
그러면서도 구문범은 영 아쉬운 얼굴이다.
남궁연이 창고를 한 바퀴 둘러보고는 돌아섰다.
연적하는 사실 봐도 잘 모르는지라 건성으로 둘러본 뒤에 구문범과 눈을 맞췄다.
“지금 풀어 주라고.”
“예, 예. 들었느냐? 모두 나오거라. 어서 집으로 가거라. 가는 길에 누가 잡으면 총순찰님이 보내 줘서 가는 것이라고 해라.”
“예, 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총순찰님.”
사람들이 연적하와 구문범에게 굽실거리며 하나둘씩 밖으로 나갔다.
마침내 창고에서 사람들이 모두 나가자 연적하가 말했다.
“광풍채에서 사람을 잡아다가 판다는 소리 들리면…….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릴 거야.”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말에 구문범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에 사마단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걸 본 까닭이다.
구문범은 연적하가 그렇게 만든 것으로 오해했다.
“어이쿠!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믿어 주십시오. 겪어 보면 아시겠지만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그런 놈은 아닙니다.”
“괜찮아. 가루가 되고 싶으면 두 말 아니라 세 말을 해도 돼.”
“헤헤,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 주십쇼. 정말 그럴 일은 없습니다.”
구문범이 간도 쓸개도 뺀 얼굴로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남궁천 남매와 설차수 일행이 모두 마차로 돌아갔지만 연적하는 창고 앞에서 미적거렸다.
심통이 구문범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둔한 놈. 저런 눈치로 어떻게 채주가 됐을꼬? 총순찰님을 풍찬노숙하게 만들 셈이냐?”
그제야 화들짝 놀란 구문범은 급히 창고에서 은자 꾸러미를 찾아 들고 나왔다.
“제가 은혜도 모르는 짐승이 될 뻔했습니다. 성의이니 받아 주시고, 아무 때라도 지나는 길에 꼭 들러 주십시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연적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휘적휘적 멀어져 갔다.
심통이 빼앗듯이 돈 꾸러미를 받고는 부리나케 그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