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05
1205회.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죽기를 바란다면……
한참을 기다렸지만 모두가 기대하던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을 위해 뒤쪽으로 물러나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방법이 통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막 걸음을 떼어 놓으려는 순간, 카마 데비아스의 입에서 기괴한 언어―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에게는 그랬다―가 흘러나왔다.
“너는 연적하?”
지금은 엘리오 라고아로 불리는 연적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오랜만이네 천자마. 여기서는 카마 데비아스라고 불러 줘야 되나? 아! 내 정신 봐라. 네가 북부에서 흑마법사들을 조종한 마그눔 오프스지?”
“후후후! 푸하하핫! ‘왕들의 하늘’에서 이곳까지 용케도 쫓아왔구나! 하지만 너는, 너를 위해서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말은 바로 해. 내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겠지. 나를 다시 만나면 너는 영원히 소멸될 테니까.”
말과 함께 연적하가 머리 위로 손을 들어 올렸다.
기다렸다는 듯 밤하늘 위에 세 자루의 구천검령이 나타났다.
이미 카마 데비아스와 싸워 봤던 연적하는 처음부터 구천검령을 꺼냈다. 천둔검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천자마는 구천검령을 보고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쯧쯧! 신들의 농간에 휘둘려 이곳까지 오고도 자신이 대단하다는 착각을 버리지 못했구나. 연적하, 너는 단지 신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개소리! 신을 죽이는 장난감도 있더냐?”
구천검령의 검첨이 아래로 기울어질 때 천자마가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들어 보아라. 나와 너의 인연은 고작 ‘왕들의 하늘’에서 한 번 싸운 것이 전부다. 원한이라면 네가 아니라 내가 가져야 옳지. 그런데도 너는 네 삶을 버리고 나를 쫓아왔다. 나와 무슨 원한이 그리 깊다고 네 삶을 포기한단 말이냐?”
“누가 포기했대? 너와 금사를 죽이고 강호로 돌아갈 거거든?”
“강호? 푸하하핫! 너의 강호가 그때까지 남아 있을 것 같으냐?”
“무슨 개소리야? 남아 있지 않으면?”
“하계와 상계는 시간의 질과 양이 다르다. 상계의 하루가 하계의 일 년이 될 수도 있고, 십 년, 백 년이 될 수도 있다. ‘왕들의 하늘’은 네가 살던 세계와 그다지 차이가 없었지만, 이 세계는 ‘왕들의 하늘’보다 아득히 높은 차원에 있다. 너는 이 세계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일 년쯤 됐다.”
“그럼 못해도 삼백육십 년은 지났겠구나. 우리 사이에 네 삶을 포기할 만큼의 원한이 있더냐?”
“허, 헛소리하지 마! 삼백육십 년이라니? 그런 거짓말에 내가 속을 것 같아!”
“푸하하핫! 거짓말이라고? 태양신이라 불리는 내가 왜? 뭐가 아쉬워서 한낱 인간 따위에게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그야 또다시 내 손에 죽을까 봐서지.”
그러자 천자마가 하늘에 떠 있는 구천검령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의 검이 신의 권능을 가졌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 진신(眞身)이 가진 힘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말과 함께 천자마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다.
그러자 구천검령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공간 조작으로 아예 새로운 하늘을 덧씌워 버린 것이다.
이어 그가 광오 한 얼굴로 말했다.
“이 세계의 나는 손가락 하나로 너를 죽일 수 있다. 이런 내가 너를 두려워해 거짓말을 할 것 같으냐?”
그러자 연적하가 다시 손을 들었다가 아래로 떨어트렸다.
쓰아아아―.
기묘한 소리와 함께 하늘이 갈라지며 구천검령 세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간을 가르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순간 여유 만만하던 천자마의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 이 세계의 나는 신 중의 신이다! 마나 프트라스조차 두려워하는 나를 인간 따위가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으냐! 너를 죽이고, 스쿠툼(빙벽)을 파괴해, 마침내 세상을 하나 되게 만들 것이다!”
“마물과 인간을 다시 한자리에 몰아넣겠다고? 이 세계를 그런 생지옥으로 만들어서 너한테 좋을 게 뭐가 있다고?”
“마나 프트라스는 마족과 마물을 타메이온에 처박고 스쿠툼(빙벽)으로 영원히 격리해 놓았다. 마치 나를 ‘왕들의 하늘’에 가두어 두었던 것처럼! 그러나 나는 진신과 다시 하나가 되었다! 마족과 마물을 인간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나의 운명이요 사명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만들어진 평화는 거짓이요 위선이다! 이 세계는 마족, 마물, 인간이 한데 어울려 살아가던 혼돈의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공의고,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은 참된 진리다.”
연적하가 황당한 눈으로 천자마를 보았다.
말로는 ‘한데 어울려 살아간다’지만 실은 마족과 마물을 위한 세상인 때문이다.
“어울려 살아가? 에라 이 미친놈아! 인간을 마족과 마물의 먹이로 내어 주자는 소리잖아?”
“인간은 소와 양과 닭을 잡아먹는다. 그렇다면 소와 양과 닭을 위해서 인간도 격리되어야 하지 않느냐? 인간의 포식은 허용하면서 왜 마물과 마족의 포식은 제한되어야 한다는 거지?”
“왜냐고? 내가 인간이라서 그런다 이 새끼야!”
“유감스럽게도 태양신인 내게는 마족, 마물, 인간이 동등하다. 그러니 인간이여, 능력이 없다면 마족과 마물의 먹이가 되어라! 너희가 누리던 차별적 권리를 내려놓고, 울부짖어라! 마나 프트라스에게 너희를 구원해 달라고 빌어라! 그때가 되면 참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리라!”
“그 참신이 너고?”
“천만에! 나는 참신의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다.”
한순간 연적하는 할 말을 잃었다.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태양신이 누군가의 그림자란다.
‘저런 미친놈이 떠받드는 신이 있다고?’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연적하는 그가 말한 참신이 누군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천자마와 금사를 죽이고 강호로 돌아가는 것만 생각하자.’
신들의 장난감이라는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더 이상 이 세계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못해도 삼백육십 년은 지났다’는 말을 들은 뒤로 샤스트라 파라크티(구천현녀)에 대한 신뢰마저도 흔들린 상태라 더 그랬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연적하가 천자마를 응시하며 말했다.
“카마 데비아스! 다 봤지? 믿어지지 않겠지만 네가 바로 마그눔 오프스야. 네 속에 저런 못 말릴 미친놈이 들어 있었다고. 그러니까…… 이제는 죽음을 흔쾌히 받아들여.”
밤하늘에 떠 있던 세 개의 검이 천공성으로 떨어져 내렸다.
천자마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는 즉시 시간과 공간을 뒤틀고, 그 안으로 세 개의 검을 밀어 넣었다.
세 개의 검이 마치 검집으로 들어가듯 스르륵 사라져 갔다.
만족한 얼굴로 보던 천자마가 연적하에게 손을 뻗었다.
순간 허공이 뒤틀리며 그 속에서 어둠보다 더 검은 흑룡이 튀어나왔다.
꾸아아악―!
그것은 ‘왕들의 하늘’에서 그가 즐겨 사용하던 검공인 백천만겁(百千萬劫)의 정화였다.
연적하는 반사적으로 천둔검을 꺼내 흑룡에게 쏘아 보냈다.
쐐애액―!
빛살처럼 날아간 천둔검을 흑룡이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물었다.
콰자작―!
아득히 먼 옛날 검선 여동빈이 만든 법보, 천둔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깜짝 놀란 연적하는 다시 마음으로 천둔검을 불러 보았지만, 흑룡에 의해 부서진 천둔검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넋을 잃고 서 있는 연적하를 본 천자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어리석은 놈! ‘왕들의 하늘’과 이 세계의 격차를 아직도…… 헉!”
밤하늘을 사선으로 가르며 또다시 거대한 검 세 자루가 나타났다.
“거, 거짓말! 뒤틀린 시공에서는 나조차도 빠져 나올 수가 없거늘!”
당황한 천자마는 연거푸 손을 휘저었다.
밤하늘에 공간이 덧씌워졌지만, 세 자루 검은 유유히 공간을 갈랐다.
급기야 연적하를 노리고 날아가던 흑룡이 방향을 전환했다.
천자마의 앞을 막아선 흑룡이 검 한자루를 휘감고 물어뜯었다.
콰직―! 콰직―!
그러나 흑룡의 이빨은 검신에 박히지 않았다.
다른 두 자루 검이 지척에 이르자 천자마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연적하! 나를 죽인다 한들 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너의 신들은 너를 속였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적대하느냐!”
마침내 두 자루 구천검령이 눈앞까지 날아들자 천자마는 ―처음 카마 데비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두 손을 내뻗었다.
시간이 멈춰 서자 구천검령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자마 역시 구천검령들을 상대하느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연적하가 옴짝달싹 못 하는 천자마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구천현녀가 나를 속였다는 게 사실이냐?”
“그렇다. 구주 종문의 제자들도 각 차원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너만 모르고 있으니 당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고향에 돌아가도 최소한 삼백육십 년이 지났을 거라고?”
“금사까지 찾아다니면 두 배는 더 걸릴 테지.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를 찾아다니는 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냐?”
“당연히 없지.”
“그런데 너는 왜 이곳까지 와서 나를 핍박하느냐? 오히려 너의 원수는 내가 아니라 구천현녀와 마나 프트라스가 아니냐?”
“지금 내 걱정 해 주는 거야?”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야 할 거야.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이 좆같은 세상을 멸망시켜 버릴 테니까.”
“여전히 어리석구나. 그들이 너를 돌려보내면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속았음을 알아도 복수할 기회조차 없다는 말이다. 그러느니…….”
“그러느니 뭐? 너하고 같이 마나 프트라스가 만든 이 세계를 절단 내자고?”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구천검령을 잡고 있는 게 힘들었던지 천자마의 얼굴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적하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파비안, 검을 던져라!”
그의 외침에 파비안이 롱소드를 뽑아 앞으로 힘껏 날렸다.
얼마쯤 날아가다 떨어져 내리던 검이, 연적하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천자마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정녕 나를 죽일 작정이냐?”
“네가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신이라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나는 너보다 구천현녀를 더 믿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만 죽자.”
눈 깜짝할 사이에 파비안의 롱소드가 천자마의 심장을 관통했다.
“너…… 참신께서 나를 카마 데비아스의 몸주로 세워 주겠다고 했는데…….”
원통한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보던 천자마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와 동시에 구천검령 한 자루를 휘감고 있던 흑룡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연적하! 나를 죽인다 한들 네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 너의 신들은 너를 속였다! 그런데 너는 왜 나를 적대하느냐!”
마침내 두 자루 구천검령이 눈앞까지 날아들자 천자마는 ―처음 카마 데비아스가 그랬던 것처럼― 두 손을 내뻗었다.
시간이 멈춰 서자 구천검령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자마 역시 구천검령들을 상대하느라 손가락 하나 까딱일 수 없었다.
연적하가 옴짝달싹 못 하는 천자마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구천현녀가 나를 속였다는 게 사실이냐?”
“그렇다. 구주 종문의 제자들도 각 차원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너만 모르고 있으니 당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고향에 돌아가도 최소한 삼백육십 년이 지났을 거라고?”
“금사까지 찾아다니면 두 배는 더 걸릴 테지. 차원을 뛰어넘어 우리를 찾아다니는 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냐?”
“당연히 없지.”
“그런데 너는 왜 이곳까지 와서 나를 핍박하느냐? 오히려 너의 원수는 내가 아니라 구천현녀와 마나 프트라스가 아니냐?”
“지금 내 걱정 해 주는 거야?”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야 할 거야. 그러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이 좆같은 세상을 멸망시켜 버릴 테니까.”
“여전히 어리석구나. 그들이 너를 돌려보내면 너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속았음을 알아도 복수할 기회조차 없다는 말이다. 그러느니…….”
“그러느니 뭐? 너하고 같이 마나 프트라스가 만든 이 세계를 절단 내자고?”
“못할 것도 없지 않느냐?”
구천검령을 잡고 있는 게 힘들었던지 천자마의 얼굴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적하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파비안, 검을 던져라!”
그의 외침에 파비안이 롱소드를 뽑아 앞으로 힘껏 날렸다.
얼마쯤 날아가다 떨어져 내리던 검이, 연적하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갔다.
천자마가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
“정녕 나를 죽일 작정이냐?”
“네가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한 신이라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나는 너보다 구천현녀를 더 믿기로 했어. 그러니까, 그만 죽자.”
눈 깜짝할 사이에 파비안의 롱소드가 천자마의 심장을 관통했다.
“너…… 참신께서 나를 카마 데비아스의 몸주로 세워 주겠다고 했는데…….”
원통한 눈으로 연적하를 노려보던 천자마의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와 동시에 구천검령 한 자루를 휘감고 있던 흑룡이 재가 되어 흩날렸다.
뒤이어 천자마가 허공에 붙잡아 뒀던 두 자루 구천검령도 눈 녹듯 사라졌다.
천자마가 소멸하자 억지로 서 있던 카마 데비아스의 무릎이 툭 꺾였다.
쓰러지는 그의 신형을 엘리오가 급히 두 손으로 잡아 천천히 땅에 뉘었다.
그때 카마 데비아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아직 나의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뭘 더 바라는데?”
엘리오가 불퉁한 표정으로 카마 데비아스를 내려다보았다.
“마그눔 오프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닥쳐! 지금 추측만으로 이 세계를 멸망시키라는 거야?”
“하지만 진실을 다 말한 것도 아니지.”
“무슨 소리야?”
“나에게 시공을 관장하는 능력이 있다. 마의 해역을 경험 했으니 설명하지 않아도 알 거라 믿는다.”
“그래서?”
“내 심장에 코어(core)가 있다. 내 숨이 멈추기 전에 그것을 꺼내라. 내가 죽으면 코어가 녹아 사라지지만, 죽기 전에 꺼내면 경질화된다. 그것은 마의 해역과 천공성을 부유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설마 그쪽을 대신해서 마의 해역과 천공성을 관리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후후, 그것도 좋겠지만……. 나는 네가 네 삶을 되찾기를 바란다. 마나 프트라스가 너를 돌려보낼 때, 간절한 바람과 함께 코어를 부수어라. 그리하면 네가 원하는 삶을 되찾게 될 것이다. 내가 기쁜 마음으로 죽기를 바란다면……. 부디 그렇게 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