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08
1208회. 예, 그런 생각도 사칩니다
다음 날 아침 엘리오 일행은 짐을 꾸려 항구를 떠났다.
얼마 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작위 문제로 피에스트라를 방문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치안대까지 일행을 안내했다.
치안대 사무국.
낯선 남자들이 우르르 들어왔지만 행정관 세실리아 크롬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저는 행정관 세실리아 크롬이에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파비안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대신해 나섰다.
“나는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옆에 계신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의 모험가 등록을 위해 방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라는 말에 놀란 세실리아 크롬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피에스트라에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유명한 대귀족이 찾아오다니!
“모험가 등록요? 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허둥지둥 책장으로 간 세실리아 크롬은 모험가 등록 서류를 찾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는 서류 한 장을 꺼내 공손히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에게 건넸다.
“이 서류를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는 동안 작위 증명서를 제출해 주시면, 제가 빠르게 내용을 확인한 후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파비안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 사이에 작위 증명서와 서류가 오고 갔다.
엘리오는 행정관이 안내해 준 책상에 앉아 서류의 빈칸을 채웠다.
내용은 들었던 것처럼 간단했다.
잠시 후 그는 작성된 서류를 건네고 작위 증명서를 돌려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오가 한쪽에 다소곳이 서 있는 행정관에게 물었다.
“그런데 모험가가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 같은 게 있나요? 신원이 확실하다고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예. 귀족과 마법사, 용병만 모험가 등록을 할 수 있습니다. 마법사와 용병의 경우 각각 마법 학파와 용병 길드에서 발행한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고요.”
“귀족과 마법사와 용병만 모험가가 될 수 있다?”
“그렇습니다. 어비스가 위험 지대다 보니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어비스가 그렇게 위험한 곳이에요?”
세실리아 크롬은 자신도 모르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쳐다보았다.
그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귀족은 처음인 까닭이다.
“고대의 격변기에 대륙 중부의 마수와 마물이 북부로 이동한 반면, 남부에 있던 마수와 마물은 어비스로 몰려갔으니까요.”
“어비스가 그렇게 넓어요?”
엘리오가 놀란 눈으로 행정관을 보았다.
그것은 어비스가 타메이온만큼 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제야 세실리아 크롬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어비스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 책장으로 간 그녀는 어비스에 관한 책들을 뽑기 시작했다.
“어비스는 ‘공간이 특정된 다른 차원’과 연결된 지하 대공동의 입구예요. 마법사들은 단지 새로운 형식의 던전이라 주장하고 있지만요. 지하로 내려가는 대공동의 입구는 하나지만, 내려갈수록 각기 다른 공간이 마치 블럭처럼 연결되어 있답니다. 지난 수천 년간 대공동의 십 퍼센트도 탐사하지 못했다고 해요.”
세실리아 크롬은 원목 책상에 세 권의 책을 내려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엘리오는 가장 위에 있는 책을 들어 펼쳤다.
‘어비스 총람’이라는 제목처럼 어비스의 최초 발견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어비스에 출몰하는 마물과 마수의 목록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진짜 히르헤라 주둔지에서 싸웠던 마물과 마수네.’
다른 두 권의 책들은 각각 어비스의 마물과 마수, 어비스의 구조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엘리오가 파비안 앞에 ‘어비스 총람’을 들어 보였다.
“너 이런 책 본 적 있냐?”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책이 아카데미에 없다고?”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파비안을 보자 세실리아 크롬이 살짝 끼어들었다.
“어비스 총람은 제국에서 관리하는 도서라 왕국에 알려지지 않았을 겁니다.”
“아, 혹시 이거 얻을 데 없어요?”
엘리오는 어비스 총람에 대한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세실리아 크롬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라고아 백작님께서 원하신다면 가져가십시오. 저희는 다시 주문하면 되니까요.”
책값이 비싸지만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선물했다고 하면 영주의 집사장은 오히려 좋아할 터였다.
“아! 진짜요? 감사합니다. 행정관님 이름이?”
“피에스트라 치안대의 세실리아 크롬입니다.”
“세실리아 크롬 행정관님, 잊지 않겠습니다. 혹시라도 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주세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에 세실리아 크롬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크나우프 대공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귀족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당연하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무슨. 내가 오히려 감사하지. 그런데 그 모험가 등록증은 언제 나오나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금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급히 책상으로 돌아간 세실리아 크롬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모험가 등록증에 피에스트라 치안대의 직인을 찍었다.
“여기 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모험가 등록증은 국경이나 영지 검문소에서 신분 증명서 대신으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래요?”
“예, 제국은 물론 왕국에서도 증명서 위조는 중범죄라 신뢰할 수 있거든요.”
“잘됐네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엘리오는 미녀 행정관에게 꾸벅 인사를 건네고 돌아섰다.
잠시 후 치안대를 떠난 엘리오 일행은 피에스트라의 마차역으로 향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라고아 백작님, 책이 두꺼운데 괜찮으십니까? 제가 대신 읽어 드릴까요?”
“왜? 아카데미에도 없는 책이라 욕심나냐?”
“전혀요. 라고아 백작님이 피곤하실까 봐 그러는 겁니다.”
“괜찮아. 나는 어비스가 그저 그런 곳인 줄 알았는데……. 행정관의 이야기를 들으니 살벌한 곳이었네.”
그러자 파비안이 딴지를 걸었다.
“행정관이 과장한 것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위험하지 않습니다. 광부나 채집가 들도 어비스를 들락거리는데요 뭐.”
“모험가만 출입이 가능한 게 아니었어? 왜 행정관 설명과 달라?”
“하하! 광부와 채집가 들만 들어가는 줄 아십니까? 잡부도 들락거립니다.”
“그럼 모험가 등록증은 뭐야?”
엘리오가 기막힌 얼굴로 멈춰 서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끼어들었다.
“모험가 등록증은 꼭 필요합니다. 파비안 남작이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모험가들은 자유롭게 어비스를 출입할 수 있지만 광부와 채집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험가들의 관리하에 잠깐씩 입장해 광석 채굴이나 약초 채집을 합니다. 잡부들은 모험가의 짐꾼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고요. 모험가가 아니면 활동하는 데 제약이 많습니다. 단독으로는 처음부터 입장이 허락되지도 않습니다.”
“아하!”
“어비스의 초입은 모험가들에 의해 위험 요소가 제거되었지만, 행정관의 말 그대로 그래 봐야 십 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아니, 전체를 모르니 십 퍼센트도 불확실한 수치라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엘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야 행정관과 파비안의 말이 조금씩 다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엘리오 일행은 피에스트라의 마차역에 도착했다.
파비안이 남부로 향하는 마차를 알아보러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녔다.
역사의 난로 앞에서 불을 쬐던 엘리오는 날카로운 망치질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마차 역사 뒤편 광장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절반의 사람들이 땅바닥을 평평하게 다지며 한쪽 방향으로 전진했고, 나머지 절반은 다져진 땅 위에 대략 3미터 길이의 목재를 길게 깔았다.
그 목재에 엿가락처럼 긴 강철을 올려 놓고 수십 명의 인부들이 연신 쇠망치로 때리고 있었다.
땅! 땅! 따앙―!
청각이 뛰어난 엘리오는 계속된 망치질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저 사람들은 맨땅에 왜 망치질을 하는 거예요?”
“마력 열차의 선로를 만들고 있는 겁니다.”
“마력 열차가 뭐예요?”
“말이 끄는 게 아니라 마력으로 움직이는 마차가 마력 열차입니다. 제도 중심부 일부 구간에서만 운행했는데, 중부 전역으로 확장하려나 봅니다.”
그건 북부 귀족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오해였다.
제국은 동서와 남북을 십자로 가로지르는 선로의 구축에 들어간 것이었다.
엘리오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니, 말이 없다면 모를까? 차고 넘치는 게 말인데 왜 쓸데없이 사람들을 괴롭히죠? 딱 봐도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하나 마나 한 공사를 벌인 거네. 맞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가타부타 답하지 않았다.
대귀족인 그조차도 아직 마력 열차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다.
“저 길 위로 마차 한 대밖에 못 다닐 거 아니에요. 시간 낭비, 재료 낭비네요.”
엘리오가 툴툴거릴 때 파비안이 마차표를 구해 돌아왔다.
“30분 후에 출발한답니다.”
“파비안, 저기 역사 뒤편 공터에 사람들 일하는 거 보이지?”
“예, 왜요?”
“저게 뭐하는 건지 아냐?”
“모르겠습니다. 저런 이상한 공사는 머리털 나고 처음 봅니다.”
“마력 열차의 선로를 놓는 작업이란다.”
엘리오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들은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파비안은 듣는 둥 마는 둥 한 귀로 흘려들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남부로 가는 역마차지 마력 열차가 아닌 까닭이다.
파비안은 엘리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재빨리 말했다.
“날씨가 추워서 마차에서 식사 제공은 해 주지 않는답니다. 도시에 역마차와 계약한 식당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 먹어야 합니다.”
“맛은 있대?”
“자기들 말로는 맛있는 식당과 계약한 거라는데……. 먹어 봐야 알겠죠?”
“그러면 십중팔구 개판일 텐데. 다른 데서 먹으면 안 되고?”
“안 될 건 없지만, 기다려 줄 시간이 없다고 지랄을 할 겁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 믿고 먹어 보자고. 남부까지 얼마나 걸린대?”
“남부 국경선까지 두 달은 족히 걸린답니다. 그런데 중간에 있는 파티마 공국에서 다른 역마차로 갈아타야 합니다. 로렌 공국의 역마차는 남부 국경선까지 안 간다네요.”
“중간이면 한 달은 가야 한다는 거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상 상태에 따라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폭설이 내리면 녹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요. 길이 눈에 덮이면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어서 위험하답니다.”
엘리오가 역사 뒤편을 힐끔 돌아보았다.
저렇게 땅을 다지고 쇠막대기 위로 다니면 길에서 벗어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 봐야 낭비지.’
그는 이내 마력 열차에 대한 관심을 접었다.
잠시 후 엘리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파비안을 따라 ―그들의 마차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참을 걷던 파비안은 무려 여섯 명이 탈 수 있는 거대한 마차 앞에서 멈춰 섰다.
대기소 앞에 있던 일가족이 경계 어린 눈빛으로 엘리오 일행을 힐끔거렸다.
허리춤에 칼을 찬 시커먼 남자 셋과 함께 가려니 은근 불안한 모양이다.
그들의 긴장한 얼굴을 본 엘리오가 파비안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마차 하나 전세 내는 데 얼마나 드냐?”
“내 돈 아니라고 물 쓰듯 하실 생각하지 마십쇼. 오마르 백작님이 마력 범선에 얼마나 쓰신 줄 아십니까?”
“묻지도 못해?”
“예, 그런 생각도 사칩니다. 하지도 마십쇼.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대한 아껴 쓰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