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1
121회. 그런 거 진짜 아니야
새외(塞外).
곤륜산맥.
곤륜파.
새외의 신선들이 모여 산다고 알려진 곤륜파.
그 곤륜파의 상청궁에 신선풍의 네 노인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곤륜파 장문인 태허 상인과 그의 사제들이자 삼선으로 불리는 태을 선인, 태무 선인, 태령 선인이다.
한참 동안 창밖을 응시하던 태허 상인이 탁자 위로 곤륜파의 법보를 올려놓았다.
꽤나 아쉬운 듯 태허 상인은 한참 동안 추마팔괘판(追魔八卦板)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침묵을 깨며 태을 선인이 한마디 툭 던졌다.
“하나 더 내주시지요. 힘들여 찾기만 하면 뭐합니까?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요.”
“아아! 정녕 벽사검(闢邪劍)까지 가져가야겠다는 건가?”
“장문인, 천하가 도탄에 빠질 것입니다. 솔직히 벽사검으로 감당이 되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추마팔괘판이 움직인 것은 처음 아닙니까?”
추마팔괘판은 선계의 보물로 마기를 좇는 나침반이다.
전설에 의하면 ‘현세의 종말을 가져올 마기가 출현하면 추마팔괘판이 움직인다’ 했다.
그런데 지난 수백 년간 미동도 하지 않던 물건이 지난해부터 움찔거리더니 최근에는 요동치듯 널뛰었다.
결국 곤륜파에서는 세 명의 선인을 불러 그에 대한 조사를 맡기게 된 것이다.
한참 머뭇거리던 태허 상인은 등 뒤에서 이 척(약 60센티미터) 길이의 검을 꺼내 탁자에 올렸다.
“이건 정말 조심해서 다뤄야 하네. 부서져서도 안 되고, 잃어버리는 건 더더욱 안 돼. 이게 우리 곤륜파의 법보 중의 법보라는 거 사제들도 잘 알지?”
태무 선인이 벽사검을 움켜잡으며 말했다.
“제가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겠습니다.”
“아니야, 그 정도로는 부족해.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겨야 하네. 나에게 못난 사제는 셋이나 있지만 벽사검은 하나뿐이거든.”
뒤이어 태령 선인이 추마팔괘판으로 손을 뻗었다.
“예,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목숨을 걸고라도 법보를 지키겠습니다.”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단지 지키는 게 아니라, 자네들이 다시 이 자리에 가져다 놓는 거야. 그러니 나에게 약속하시게. 법보를 가지고 돌아오겠노라고.”
“…….”
새외에서 삼선(三仙)이라 불리는 곤륜파의 세 기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
산동성.
자요진(磁窑镇).
유시 초(오후 5시) 무렵, 제법 큰 사두마차 한 대가 느긋하게 마을로 진입했다. 태산을 떠난 연적하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다.
마부, 이사는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자꾸만 옆자리를 힐끔거렸다. 졸린 얼굴로 멍하니 앉아 있는 청년이 너무 신경 쓰여서다.
이제는 그도 연적하가 누구며, 그의 무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고 있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
광풍채의 채주를 단칼에 죽이고, 연이어 나타난 괴물까지 가루로 만들어 버린 고수 중의 고수.
자기가 목격한 걸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말했을 때 몇이나 믿을까?
‘쩝, 나라도 못 믿겠다.’
상점가로 진입하자 이사는 마차 속도를 더욱 늦췄다.
조용한 거리 위로 ‘따각 따각’ 규칙적인 말발굽 소리가 은근하게 울려 퍼졌다.
“아저씨, 왜 자꾸 봐요?”
또다시 연적하를 훔쳐보던 이사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답했다.
“아, 저, 그게, 그러니까, 어디로 모시는 게 좋을까 싶어서 말입니다요.”
“음, 그렇네요. 객점은 이른 것 같고, 그렇다고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어쩐다.”
그때 마차 안에서 남궁천의 음성이 들려왔다.
“적하야! 딱히 갈 곳이 없을 때는, 일단 다관으로 가는 거다!”
“예! 형님! 아저씨, 다관이랍니다.”
“예, 예. 혹시 모르니 소협께서도 다관이 보이는지 잘 살펴 주십시오.”
이사는 말을 하고도 괜히 연적하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그가 자기 말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을까 봐 겁이 나서다.
하지만 연적하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총순찰이라는 직위에 대한 자각도 없지만, 권위 의식 자체가 없어서다.
그러나 정작 다관을 발견한 사람은 남궁천이다.
간판도 없는 작은 다관이라 그냥 지나칠 뻔한 걸 남궁천이 소리쳐 마차를 세우게 한 것이다.
이사는 연적하 일행이 다관에서 내리자 마차를 근처의 마방으로 끌고 갔다.
연적하와 심통 그리고 남궁천과 남궁연이 한 탁자에 마주 보며 앉았다.
설차수 일행은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진설하는 연적하 옆으로 옮기고 싶은 눈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미 그쪽 자리가 꽉 차서 비비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것이다.
실내의 온기와 향긋한 차향에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조금씩 늘어졌다.
연적하는 따뜻한 철관음차(鐵觀音茶)를 앞에 두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반나절 전에 있었던 싸움은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마단이 내뿜은 용암에 머리는 물론 옷까지 군데군데 타 버렸다.
십두마병이 괴물로 변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좀 심했다.
고작 십두마병을 처리하는데 이렇게 힘들 줄이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기에 몰릴 줄은 몰랐다.
‘입에서 용암을 토해 내다니?’
그걸 어떻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시커먼 괴물을 사람이라고 칭하는 자체가 말도 안 된다.
그건 사람이 아니다.
그럼 뭘까?
한참 생각하던 연적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이제 고작 태산의 산채를 정리했을 뿐인데 벌써 지쳐서 만사가 귀찮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진 것 같다.
이제는 여행도 지겹기만 하다. 마차를 타고 다니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근 보름을 그렇게 지냈더니 이젠 마차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다.
언제 네 개 산채를 다 돌아다닌단 말인가!
반각(약 7분)쯤 지났을까?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설차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태산에서 자요진까지 오는 동안 꾹꾹 참고 있던 질문을 하기 위해서다.
“연 소협, 뭐 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그 채주였던 십두마병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서요.”
“아, 예.”
연적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설차수 일행이 따라온 것도 그걸 위해서였으니 묻는 건 다 가르쳐 줄 생각이다.
“사마단의 무위는 어느 정도나 되던가요?”
“심 노인보다 약했어요.”
“아…….”
설차수가 애매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무지 심통의 무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지 못해서다.
그걸 묻자니 심통에게 실례인 것 같아 설차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처음에 사마단은 죽지 않았습니까?”
“죽었죠.”
“그럼 그 시커먼 괴물은 뭔가요? 사마단의 몸 안에서 튀어나온 것 같던데…….”
“그러게요. 그게 뭘까요? 저도 그건 모르겠네요. 연 누님은 혹시 아시겠어요?”
연적하의 물음에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설차수가 아니었다면 자신이 연적하에게 물었을 것이다. 대체 사마단의 몸에서 튀어나온 그 괴물의 정체가 뭐냐고 말이다.
설차수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괴물의 무위는 어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대략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심 노인보다 강해요.”
설차수의 얼굴에 어색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연적하의 기준은 계속해서 심통이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심통의 무위를 모르니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설차수가 머뭇거리고 있을 때 진설하가 나섰다.
“저어, 저희가 심 노 선배님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다른 비교할 만한 대상은 없을까요?”
연적하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심통을 보았다.
비교할 만한 다른 사람이 갑자기 떠오르지 않아서다.
그런 연적하를 보고 있던 심통이 한마디 했다.
“공자님, 전에 천지상인과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정의맹의 아이들이니 천지상인과 비교해서 말하면 알 겁니다.”
“아하!”
연적하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심통의 말대로 무당파 장로를 기준 삼으면 이해가 쉬울 것 같았다.
“사마단이 죽기 전에는 천지상인보다 약했지만, 죽고 난 뒤에는 천지상인보다 강했어요.”
“…….”
설차수, 유근식, 진설하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걸 정의맹에 전달하려니 앞이 캄캄했다.
관건은 ‘죽기 전’과 ‘죽고 난’ 다음이다.
하지만 정의맹에서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우두커니 서서 고민하는 설차수에게 연적하가 한마디 더 보탰다.
“참! 십두마병들은 무위가 다 달라요. 죽기 전이나 죽고 난 뒤에도.”
깜짝 놀란 설차수가 급히 되물었다.
“예? 그럼 살아생전에 천지상인보다 강한 십두마병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있다고 단언하지는 못하겠지만, 십두마병의 무위가 천차만별이니 그런 자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요? 왠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말 놀랍군요. 역시 초능인지 뭔지 때문이겠지요?”
연적하는 조용히 식은 철관음차를 마셨다.
말을 하다 보니 ‘유명교를 상대로 한 싸움이 쉬울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하! 그 시커먼 괴물은 총채주님 정도 돼야 상대할 수 있을 텐데…….’
유명교에 그런 십두마병이 아주 많다는 게 문제다.
‘아니 그럼 백두마군은 어느 정도라는 거야?’
십두마병의 무위를 생각하니 백두마군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팠다.
‘아 몰라. 난 네 개 산채만 더 돌면 끝이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산채를 언제 다 도나?’ 걱정했는데, 그건 일도 아니었다.
연적하가 안쓰러운 눈으로 설차수를 보았다.
상상 이상의 괴물들과 싸워야 할 정의맹을 생각하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
자요진의 운몽객잔.
깊은 밤.
침상에 누워 뒤치락거리던 연적하는 심통에게 오늘 자신이 느낀 바를 말했다.
“참 안됐더라고.”
“예? 뭐가요?”
“정의맹 말이야. 유명교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면서?”
“그렇게 들었습니다.”
“십두마병만 해도 벅찰 텐데, 백두마군을 생각해 봐. 앞이 캄캄하지.”
“저도 정의맹이 십두마병을 당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십두마병을 죽이기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죽고 난 다음은……. 글쎄요. 힘들겠지요?”
“나도 힘들 거라고 봐.”
“그런데 왜 안됐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들이 힘든 싸움을 할 게 뻔하니까. 그걸 알면서도 좋아할 수는 없잖아. 그래도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는데. 내가 심 노인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인 줄 알아?”
“하지만…….”
“하지만 뭐?”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던 심통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공자님께서는 지금 그 싸움의 선봉에 서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남이 일처럼 말씀하시는 건지…….”
“내가?”
“예. 공자님요.”
“아니야. 나는 총채주님 부탁으로 다섯 개 산채만 돌아보고 있는 거야.”
“예, 그런데 그 다섯 개 산채가 다 유명교 수중에 들어가 있지요. 공자님은 그걸 녹림에 되찾아 오고 계시고요. 십두마병을 때려죽이면서 말이죠.”
“그렇게 말하니까 좀 무시무시한데. 아니야, 나는 그냥 다섯 개 산채만 정리해 줄 거라고. 싸움의 선봉이니 뭐니 그런 거 진짜 아니야.”
“하지만 제 눈에는 녹림이 유명교와 전쟁을 일으킨 거로 보입니다. 공자님이 그 싸움을 이끌고 있고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을까요?”
심통은 자꾸 아니라고 하는 연적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의맹에서 삼장불립을 묵인해 주고, 설차수 일행까지 붙여 준 건 그래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