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10
1210회. 저는 모험갑니다
텅 비어 있던 마을 회관 일 층에는 임시 탁자가 놓여졌는데, 그 위로 마을 여자들이 음식을 진열하고 있었다.
엘리오 일행은 그중 빈자리로 가서 앉았다.
가드와 운송 책임자를 포함한 남녀노소 스물네 명이 한곳에 모였음에도 좁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일 층은 넓었다.
엘리오는 개인 접시에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요리를 덜어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 왜?’
그가 빤히 쳐다보자 사람들은 부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오가 다시 포크로 고기를 찍어 갈 때, 파비안이 묘한 얼굴로 물었다.
“라고아 경,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마차에 탑승하기 전 세 사람은 서로의 호칭을 ‘경’으로 통일하기로 한 바 있다. 백작이라는 호칭이 너무 튀어서 그런 것이다.
“없었는데?”
“그런데 왜 라고아 경의 앞에만 요리가 수북이 쌓인 겁니까?”
“원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이야.”
“커 보이는 게 아니라 진짜 큽니다. 다른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거 안 보이십니까?”
“호감의 표시겠지. 세상은 미남 미녀에게 친절하다고. 몰랐어?”
“라고아 경과 오래 지냈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만.”
“그래서? 음식 많아서 불만이야? 네 앞에 있는 거 치우라고 할까?”
“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특별 대접을 받으시는지.”
“아까…….”
엘리오가 막 외출에서 있었던 일을 꺼내려 할 때다.
가드 뒤발리에가 엘리오의 뒤로 지나가며 한마디 툭 던졌다.
“아가씨가 참하게 생겼더군. 순진한 변방의 처녀를 울리지는 마슈.”
“…….”
주변 사람들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시선으로 엘리오를 힐끔거렸다.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싱크레어 지터가 엄마에게 속삭였다.
“엄마, 저 아저씨가 누굴 때렸나 봐.”
“그런 거 아니야. 어른들 얘기니까 너는 생각도 하지 마. 쳐다보지도 말고.”
그 말에 싱크레어 지터는 재빨리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저 남자가 자신에게 눈을 찡끗거렸다는 걸 일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파비안이 물어뜯던 돼지 뼈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했다.
“특별 대접을 받은 게 아가씨 때문이었습니까? 설마, 아까 외출해서 여자를 만난 겁니까?”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던가!
안드리아 지터의 처 샤인 코울스로가 딸의 귀를 두 손으로 막으며, 들으란 듯 말했다.
“듣지 마, 듣지 마. 어른들 얘기는 듣는 거 아냐.”
이건 ‘어린애 앞에서 말을 조심해 달라’는 모성의 호소였다.
주변 사람들도 헛기침으로 듣고 있기에 불편함을 표현했다.
결국 점잖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나섰다.
“파비안 경, 우리만 있는 자리가 아니니 그만하게.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따로 물어보고. 라고아 경도 식사하시지요.”
왠지 억울한 느낌에 엘리오는 제대로 된 설명을 하려 했지만, 뒤늦게 주변 분위기를 파악한 파비안이 서둘러 봉합에 들어갔다.
“아, 예. 그냥 해 본 말이었습니다. 솔직히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들으나 마나 뻔한 얘기가 나올 것 같아서. 그렇지 않습니까, 라고아 경?”
“어, 맞아.”
엘리오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람을 구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무엇보다 귀찮았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하나 둘 이 층의 숙소로 돌아갔다.
그러나 엘리오 일행은 귀족들답게 여유로이 차를 즐겼다.
이윽고 일꾼들이 몰려와 엘리오 일행의 자리만 남기고 모두 치웠다.
일 층이 다시 삭막해졌지만 엘리오 일행은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숙소로 올라가 봐야 사람 냄새만 가득하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다.
촌장이 허니캣과 함께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파비안이 조금은 실망한 얼굴로 말했다.
“솔직히 이번에는 라고아 경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역시나였군요.”
“야수에게서 사람을 구하는 게 나쁜 일이냐?”
“사람만 구하면서 살 수는 없지요. 때로는 즐거움도 추구하며 살아야 인생 아니겠습니까?”
“지랄을 하세요. 그나저나 제국에 이런 마을이 있을 줄은 몰랐다. 야수가 마을에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가다니…….”
“그러게요. 저도 놀랐습니다. 제국이라고 다 치안이 좋은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영주가 관리를 포기한 지역은 어디나 비슷하다네. 야수가 아니면 도적이 들끓는 무법지대지.”
그러자 파비안이 물었다.
“이곳은 영주가 왜 포기했을까요? 역마차의 경유지니 개발만 잘하면 사정이 훨씬 좋아질 텐데요.”
“영지에 여력이 없든지, 영주가 영지 운영에 관심이 없든지 할 걸세.”
“쯧!”
파비안은 혀를 찼다.
안타깝지만 왕국들도 ―그 문제에 있어서는― 다를 바 없는지라 더 뭐라 하지 않았다.
이곳의 영주를 욕해 봐야 누워서 침 뱉는 격인 까닭이다.
일꾼들이 청소를 위해 기웃거리자 엘리오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층 숙소로 올라가니 사방에서 코 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엘리오 일행은 조용히 자기 침대를 찾아 들어갔다.
***
다음 날.
승객들은 어젯밤처럼 마을 회관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마을을 벗어날 즈음, 엘리오가 실실 웃으며 뒷자리를 돌아보았다.
“파비안, 그거 아냐?”
“뭘요?”
“우리, 촌장에게 식비 안 줬다. 식당에서 각자 사 먹어야 한다면서? 공짜로 먹은 거라고.”
“기본적인 식비는 마차값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가 식당은 아니잖습니까? 정식 식당만 음식값이 비싸서 제외된 겁니다.”
“아, 그래? 우리만 안 낸 게 아니었어?”
그러자 안드리아 지터가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저희도 안 냈습니다.”
“풋!”
앞자리에서 어른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안드리아 지터의 처 샤인 코울스로가 딸과 함께 듣고 있다가 소리를 낸 것이다.
“싱크레어, 웃지 마. 웃는 거 아냐.”
뻔한 거짓말에 안드리아 지터는 슬쩍 청년 기사의 안색을 살폈다.
다행히 청년 기사는 그걸 문제 삼지 않았다.
안드리아 지터는 청년 기사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서둘러 말을 걸었다.
“저는 코랄 상회의 상인입니다. 늦었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아, 예. 저는 모험갑니다.”
“아! 모험가셨습니까? 만나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모험가분은 처음 봅니다.”
“상인이면 많이 만나 봤을 것 같은데 처음이라고요?”
“제가 하는 일이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서요. 저는 마나석 감정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과 만날 일이 많지 않습니다.”
“아하, 그렇다니 이해가 되네요.”
엘리오는 그런가 보다 하고 무릎에 있던 ‘어비스 총람’을 펼쳤다.
우회적으로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만날 일이 많지 않았던 안드리아 지터는 눈치가 부족했다.
“이번에 파티마 공국의 지부에서 마나석 거래를 앞두고 있어서요. 마나석 구매 책임자로 이 년간 파견을 나가게 됐습니다. 이 년이나 되니 처와 자식을 두고 갈 수가 있어야 말이죠. 그래서 온 가족이 함께 가게 됐습니다.”
안드리아 지터가 주절주절 떠들자 엘리오는 펼쳤던 책을 덮었다.
이 년간의 파견이라니, 생각해 보면 자신과 비슷한 처지였다.
천공성을 찾느라 거의 일 년여를 소비하고, 이제 어비스로 가고 있다.
어비스의 규모를 보니 천공성만큼이나 난도가 높았다.
운이 좋아야 일 년, 어쩌면 몇 년 동안 어비스를 헤매고 다녀야 할지 몰랐다.
엘리오가 긍정적으로 반응하자 안드리아 지터는 고무된 얼굴로 계속해서 말했다.
“혹시 마나석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비슷한 건 봤습니다.”
“그러시군요. 이 마나석을 감정한다는 게 아주 중요한 일이거든요. 마나석은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나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가격이 두 배로 뜁니다. 9등급이 100실버면 8등급은 200실버인 셈이죠. 그럼 7등급은 얼마겠습니까?”
갑작스러운 질문에 엘리오는 반사적으로 답했다.
“400실버요?”
“맞습니다. 7등급은 800실버나 됩니다. 그러니 거래시에 등급 판정을 잘해야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파는 쪽은 등급을 올리려 하고, 사는 쪽은 내리려고 하죠. 거기서 한발 삐끗하면 상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겁니다.”
“마력총에 들어가는 마나석은 몇 등급짜리예요?”
“그건 마력총의 가격에 따라 다릅니다. 일반 총병들이 들고 다니는 마력총에 들어가는 마나석은 9등급짜리입니다. 하지만 기사단의 총사가 쓰는 마력총은 8등급짜리를 쓰지요. 특별하게 제작된 명품에는 이 이상의 마나석을 쓰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높은 등급의 마나석을 쓸수록 위력이 증가하나요?”
“위력은 물론 안정성까지 비약적으로 늘어납니다. 가끔 마나석의 불량으로 마력총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경우 얼굴이 다 날아가기도 합니다.”
문득 엘리오는 자신의 등을 쏜 마력총의 마나석은 몇 등급인지 궁금했다.
엘리오가 딴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안드리아 지터의 말은 계속됐다.
“마나석을 거래할 때, 판매와 구매 실무자들이 등급을 속여 거래하면 귀신도 모릅니다.”
“혹시 부정거래를 감시하기 위해 가는 겁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감정사를 매수할 수도 있잖아요?”
“평민이면 모를까? 귀족 출신의 감정사들은 매수당하지 않습니다.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가문에서 축출당하니까요.”
“귀족이신가 봐요?”
“지터 남작가의 차남입니다. 제 처는 코울스로 남작가의 딸이고요.”
비록 작위가 없지만 안드리아 지터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있었다.
“그러시구나.”
안드리아 지터의 집안 자랑에 갑자기 시들해진 엘리오는 다시 책을 펼쳤다.
그가 책으로 파고들 것처럼 고개를 숙이자 안드리아 지터도 더는 말을 걸지 않았다.
쿠르르르르―!
마차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안드리아 지터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혼자만 떠든 것 같다.
평소에는 이러지 않는데 마나석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리겠다.
‘아, 민망하네. 상대 얘기도 좀 들어 주고 그랬어야 하는데.’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던 그는 슬그머니 청년 기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남부로 가고 있습니까?”
엘리오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짧게 답했다.
“예.”
“대수림? 어비스?”
“어비스요.”
“아! 어비스에 가시는구나. 어비스 초입에 마나 광산 유명한 거 있는데, 아십니까?”
“모릅니다.”
“같은 등급의 마나석이라도 어비스의 마나석에는 프리미엄이 조금 붙습니다. 묘하게 더 안정적이거든요. 마나 방출 시간도 미세한 차이지만, 확실하게 길고요.”
“아, 예.”
“시중에 유통되는 3등급 이하의 마나석은 파란색이거든요. 파란색이 선명할수록 상등품이죠. 그런데 어비스의 마나석은 선명한 게 아니라 짙습니다. 이게 감정사를 미치게 하거든요. 어비스의 마나석은 짙기만 해서 등급을 정하기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지터 씨.”
“예?”
“제가 이 책을 꼭 읽어야 해서요. 조용히 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예.”
안드리아 지터는 과장된 동작으로 입을 꽉 다물었다.
그러고도 미안했는지 입을 바늘로 꿰매는 시늉까지 해 보였다.
딸과 함께 앞자리에 앉아 있던 샤인 코울스로는 남편의 주책이 부끄러웠지만 그래도 표정은 밝았다.
여자를 극히 밝히는 것으로 알려진 청년 모험가의 태도가 의외로 나쁘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