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23
1223회. 모험가분들은 어디에 계신가?
‘마스터가 누구냐’는 싱크레어 지터의 질문에 파비안은 피식 웃었다.
일생일대의 행운을 거머쥐고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싱크레어 지터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파비안을 빤히 보았다.
그러자 파비안이 약 올리듯 말했다.
“모험가지.”
“그건 저도 알아요.”
“안다면서 뭘 물어.”
파비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상체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우두커니 서 있던 싱크레어 지터는 터벅터벅 문가로 걸어갔다.
가장 나이 어린 가드 존버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꼬마야,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
“네.”
싱크레어 지터는 문 옆에 우두커니 서서 일 층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아빠와 싸우던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귀족들 무리 속에서 ‘와아아!’ 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아! 모두 내 잘못이지.’
모험가에게 검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부모님이 싸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자책할 때 굳게 닫혀 있는 문이 천천히 열렸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올리던 싱크레어 지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모험가였다.
“마스터!”
“왜 여기 나와 있냐?”
“잠이 안 와서요.”
“그럼 ‘작은 하늘 회로’라도 돌리지 그랬냐.”
“깜빡했어요.”
물론 거짓말이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소리에 신경 쓰여서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따라와라.”
엘리오는 파비안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있는 자리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파비안은 슬그머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싱크레어 지터를 옆에 앉힌 엘리오는 여점원을 불렀다.
“필요한 거라도 있으세요?”
“따뜻한 우유와 시원한 맥주요.”
“예, 금방 가져올게요.”
여점원이 사라지자 싱크레어 지터가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백배로 갚아라.”
“네.”
맞은편에서 두 사제의 대화를 듣고 있던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애한테 백배는 너무한 거 아닙니까?”
“그때까지도 애겠냐?”
“아, 그렇군요. 그런데 그때쯤이면 고향에 돌아가셨을 텐데요?”
“하아! 그랬으면 좋겠다.”
엘리오의 탄식에 대화가 잠시 끊어졌다.
그때 여점원이 따뜻한 우유와 시원한 맥주를 가지고 왔다.
우유를 홀짝이던 싱크레어 지터가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저어기, 별들 너머.”
엘리오가 손가락으로 밤하늘을 가리켰다.
때마침 빛나는 유성 하나가 길게 꼬리를 끌며 떨어져 내렸다.
마스터의 싱거운 소리에 싱크레어 지터가 입을 삐죽였다.
“치이! 가르쳐 주기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산 너머나 바다 건너라면 모를까?
하고 많은 핑계 중에 ‘별들 너머’라니 어이가 없다.
한편 귀족들 속에 둘러싸인 웨인 스코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모험가들과 한자리에 있는 싱크레어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그녀가 뜨내기 모험가에게 검술을 배운 것에 있다.
제 아비가 두드려 맞은 직후에도 보란 듯 모험가들과 함께 어울리는 싱크레어를 보니 속이 불편했다.
그렇게 생각한 건 비단 그 하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귀족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린애라고 마냥 순수하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요즘 애들은 어른 뺨쳐요. 껍데기만 어린애지 속은 닳고 닳았다니까요.”
“맞습니다. 어른들 머리 꼭대기서 노는 애들이 많습니다. 평범한 애라면 제 아비가 두드려 맞았는데 저러지 못하죠.”
말과 함께 웨인 스코트가 턱짓으로 싱크레어 지터를 가리켰다.
귀족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라이자 크로우가 차가운 눈으로 싱크레어 지터를 보며 말했다.
“저런 것들은 감히 얼굴을 쳐들지 못하게 짓밟아 줘야 해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해 주겠어요.”
점잖던 웨인 스코트도 불쾌했던지 더는 부인을 만류하지 않았다.
***
다음 날.
정오경, 세 대의 마차는 마침내 국경선 부근에 도착했다.
운송 책임자인 레온 토로스가 눈을 찌푸렸다.
파티마 공국의 검문소 앞에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발란트 공국에 들어갈 때 멈추지 않고 통과한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경험 많은 가드 뒤발리에의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뒤발리에 씨, 어째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요. 갑자기 왜 저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묵묵히 주위를 둘러보던 레온 토로스는 검문소로 말을 몰아갔다.
인마가 다가오자 경비대장이 손을 들어 상대를 제지했다.
“멈추시오.”
레온 토로스는 즉시 말에서 내려 자신의 신분을 밝혔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저는 역마차 운송 협회의 운송 책임자 레온 토로스입니다. 검문소 앞에 줄이 길던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경비대장 빅토르 올랜드 남작이오. 아침에 근방에서 테러가 벌어졌소. 며칠간은 어디를 가도 검문 검색이 심할 거요.”
“아, 그러셨군요. 저희는 피에스트라에서 출발한 역마차입니다. 한 달 보름 동안 달려왔는데 사정을 좀 봐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경비대장이 망설이자 레온 토로스는 그의 손에 삼 실버를 쥐어 주었다.
빅토르 올랜드 남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은 안 되고, 마차를 따로 빼시오. 승객들 신원을 확인하고 보내 드리리다.”
“역마차 운송 협회에서 보증하는 것으로 하고 통과하면 안 되겠습니까?”
“전에는 그렇게 했지만……. 전시에 테러까지 벌어져서 그건 어렵소. 어떻게 하겠소? 기다렸다가 검문을 받겠소? 지금 받겠소?”
“하아! 지금 받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마차로 돌아간 레온 토로스는 가드들을 불러 경비대장의 요구를 전했다.
가드들이 마차를 돌아다니며 신원 조회가 있음을 알렸다.
승객들 중 몇 사람이 신원 확인이라는 말에 펄쩍 뛰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세 대의 마차가 긴 대기 줄에서 벗어나 검문소 옆으로 이동했다.
경비대장 빅토르 올랜드 남작이 기사를 이끌고 선두 마차로 다가갔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제외한 남자들의 신원을 확인하겠소. 기사에게 신원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시오.”
안드리아 지터는 기사에게 코랄 상회의 마나석 감정사 확인증을 건넨 뒤 옆자리의 모험가를 힐끔 보았다.
엘리오는 무심한 얼굴로 모험가 증명서를 기사에게 내밀었다.
생각 없이 모험가 증명서를 보던 기사, 캐스퍼가 흠칫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
그는 급히 경비대장인 빅토르 올랜드 남작에게 돌아갔다.
“남작님, 이걸 좀 보셔야겠습니다.”
“뭔가?”
모험가 증명서를 확인한 빅토르 올랜드 남작이 황급히 마차로 달려갈 때, 그의 귓속으로 한 줄기 음성이 파고들었다.
―나를 알은척하지 말고, 이 마차를 통과시켜라.
누구의 명이라고 거역할까.
빅토르 올랜드 남작은 공손히 모험가 증명서를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돌려주고 돌아섰다.
잠시 후 마차 세 대와 가드들이 파티마 공국 국경을 넘어갔다.
빅토르 올랜드 남작은 캐스퍼에게 마차를 따라가라 명한 뒤, 워낙 유명한 대귀족의 행차인지라 왕궁으로 마법 통신문을 보냈다.
***
파티마 공국.
관문 도시 오데사.
석양이 질 무렵, 마차 세 대가 거대한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파티마 공국의 관문 도시지만, 왕도(王都)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오데사답게 성문도 강철로 되어 있었다.
세 대의 마차는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후미에 바싹 붙었다.
국경 검문소와 달리 오데사 출입은 까다롭지 않았지만,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워낙 많아 줄어드는 속도가 더디기만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성 안쪽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더니 마차 앞쪽에 대기하던 사람들을 좌우로 밀쳐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과 마차 들로 꽉 막혀 있던 길이 활짝 열렸다.
뒤이어 수백 명의 기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성문 밖으로 나왔다.
척 봐도 제국 대귀족의 공식 행차다.
레온 토로스와 가드들은 급히 도로 한복판에 있던 세 대의 마차를 옆으로 빼냈다.
멀찍이서 몰려나오는 기사들을 보던 레온 토로스가 혀를 내둘렀다.
“와아! 아무래도 변경백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오늘 눈 호강을 하는구나.”
관문 도시 오데사를 포함한 국경 인근의 지배자는 변경백 레그 에번스 후작이다.
제국 황제가 방문할 때나 성 밖으로 나온다는 변경백의 소문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었다.
수백 명의 기사에 이어 예복을 입은 변경백의 기사단이 등장했다.
무슨 행사인지 몰라도 기사단의 위용을 보니 오금이 저렸다.
금실로 수놓인 깃발을 앞세운 기사단이 다가오자 레온 토로스와 가드들은 급히 말에서 내려 뒤쪽으로 비켜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
변경백의 기사단은 일직선으로 레온 토로스와 가드들을 향해 전진했다.
레온 토로스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사단을 올려다볼 때다.
기사단 중에서 금빛 갑주를 입은 오십 대 기사가 다가왔다.
“오늘 정오에 국경 검문소를 통과한 게 자네들인가?”
“예.”
“피에스트라에서 출발했고?”
“그렇습니다.”
그러자 금빛 갑주의 기사가 말에서 내리더니 다시 물었다.
“모험가분들은 어디에 계신가?”
“모험가들이라면…… 선두의 마차입니다.”
선두에 있는 마차로 다가간 금빛 갑주의 기사가 손을 들어 올렸다.
백여 명의 기사단이 바람처럼 말을 몰고와 마차 앞에 도열했다.
기사단이 자리를 잡자 금빛 갑주의 기사가 쩌렁쩌렁한 소리로 외쳤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 각하! 저는 피닉스 기사단의 단장인 베르트 폰스 백작입니다. 파티마 공국의 관문 도시 오데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뚱한 얼굴로 보던 엘리오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베르트 폰스 백작님? 뭐 좋은 일이라고 환영을 해요? 길이나 열어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불쾌한 티를 팍팍 내자 베르트 폰스 백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제길! 큰일 났군. 크로우 자작가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이유야 어쨌건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조차 눈치를 볼 정도의 거물을 건드렸으니 크로우 자작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각하, 변경백인 레그 에번스 후작 각하께서 백작 각하를 뵙기 원하십니다.”
“됐어요. 시간 없으니까 길이나 열어요.”
“각하! 저희는 크로우 자작가의 사업체 세 곳을 폐쇄하고, 크로우 자작가와 관계된 사람들을 체포해 두었습니다. 그런 성의를 봐서라도 후작 각하의 초대에 응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그제야 엘리오는 혹한 얼굴로 베르트 폰스 백작을 응시했다.
베르트 폰스 백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더 강하게 몰아붙였다.
“혹시 몰라서 크로우 자작과 관계된 사람들의 신병도 확보해 두었습니다. 노여움을 거두시고 후작 각하를 만나 주십시오.”
“혹시 그중에 스코트 남작도 있어요?”
“예! 스코트 남작은 물론, 코튼 남작도 대기 중입니다.”
“코튼 남작은 누구예요?”
“크로우 자작의 사돈 중에 한 사람입니다.”
“아…….”
엘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왕에게 쓴소리를 했더니 크로우 자작의 사돈들까지 죄다 잡아들인 모양이다.
“아니 뭘 그렇게까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표정이 살짝 풀어지자 베르트 폰스 백작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