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28
1228회. 이게 지금 누가 하는 말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건 암흑가에서 닳고 닳은 블랙잭의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도 마찬가지다.
그는 기사복 혹은 롱소드를 패용한 사람은 검사, 로브를 입었거나 스태프를 든 사람은 마법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마검사도 존재하니 당연히 선입견이지만, 여하튼 그의 기준에 의하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기사였다.
기사는 ―정신을 조종할 수 있는 마법사와 달리―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프라드 테일러가 엘리오 라고아 백작 앞에서 뻔뻔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때마침 남부 지구 치안대장 토드 그레엄 남작이 송구하다는 얼굴로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저희 남부 지구 치안대가 블랙잭 길드와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습니다. 납치된 사람이나 불법적인 거래를 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부길드장 노턴 헤임즈와 사무장 서튼도 한마디씩 했다.
“저희 길드는 과거의 오명을 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네 사람의 말이 끝나자 엘리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너희 모두 길드장과 같은 의견인가?”
“예!”
“그렇습니다!”
부길드장과 사무장이 한 점 의혹도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내놓겠다 이거지?”
“…….”
순간 부길드장과 사무장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꿀꺽!’ 하고 넘어갔다.
왠지 찜찜하지만 이 상황에서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길드장에게 물었다.
“빈 들판의 아들(공야자)과 늙지 않는 푸름(청불노)의 제자, 남쪽 하늘 연못(연남천)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라. 블랙잭에서 마나석 감정사 안드리아 지터의 딸을 납치했느냐?”
그러자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가 황당한 얼굴로 답했다.
“저희가요? 예, 맞습니다. 저희가 한 일입니다. 어?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납치한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제가 그걸 어떻게…… 벌목장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아닙니다. 이건 진짜…… 진짜 아닙니다! 믿어 주십쇼!”
“아이는 살아 있느냐?”
“아니라고요! 제발…… 누가 제 입 좀…… 서튼에게 소각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아, 안 돼! 이게 지금 누가 하는 말이죠?”
당황한 프라드 테일러는 뒤늦게 제 입을 손으로 막았지만 이미 늦었다.
엘리오의 시선이 길드장을 제외한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누가 서튼이냐?”
“저, 접니다. 진짜 아닙니다. 길드장님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빈 들판의 아들(공야자)과 늙지 않는 푸름(청불노)의 제자, 남쪽 하늘 연못(연남천)의 이름으로 명한다. 서튼, 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라. 납치범들에게 아이를 소각하라고 지시했느냐?”
“아, 아닙……. 예, 아까 사무소 앞에서 사람을 보냈습니다.”
“벌목장은 어디 있느냐?”
“이그나스 동문 밖 크리마에 있습니다. 이, 이게 지금…… 무슨 소리죠? 왜 입이 제멋대로…… 이건 제가 하는 말이 아닙니다. 흑, 흑마법으로 거짓을 말하게 하는 겁니다!”
“납치범들의 우두머리는?”
“스…… 안 돼! 스테프너입니다.”
서튼은 스테프너의 이름을 말하고 난 뒤로 포기했는지 변명도 하지 않았다.
엘리오가 남부 지구 치안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치안대장님, 범인들의 자백 들었죠? 모두 체포하고 대기해요.”
“예? 예!”
어벙벙한 얼굴로 보던 남부 지구 치안대장 토드 그레엄 남작이 황급히 답했다.
마법사들에게 거짓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과연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마법 영창이 조금 특이하군. 혹시 야인 고유의 마법인가?’
그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그리고 크나우프 기사단장이 블랙잭 길드 사무소에 들이닥쳤다.
엘리오가 실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이중에 동문 밖 크리마의 벌목장 위치를 아는 사람이 있나요?”
그러자 치안대원 중에 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제가 크리마 출신입니다. 그곳 숲에 오래된 벌목장이 하나 있습니다.”
“따라와요.”
엘리오는 그의 이름을 묻지도 않고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치안대원과 크나우프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 라르바 오마르 백작, 파비안 등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사무소 밖으로 나간 엘리오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을 데려가고 싶었지만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잠깐 운종술을 떠올리던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구름을 타고 다니는 마검사의 소문에 금사(우샤스 운드라)가 눈치를 채고 어비스 깊숙이 숨어 버릴 수도 있었다.
결국 엘리오는 다시 어기충소의 신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한 손으로 치안대원의 허리를 감싸 안은 엘리오가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날아가는 방향으로 기사들이 미친 듯 달려갔다.
***
이그나스 동문 밖 크리마.
폐쇄된 벌목장.
목재 창고.
모닥불 주변에 네 남자가 앉았는데 하나같이 똥씹은 얼굴이다.
서튼이 보낸 남자, 베리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지금 동부 지구는 난리가 났습니다. 이그나스의 모든 치안대가 납치범들을 잡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닙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저도 여기까지 못 올 뻔했습니다.”
냉막한 인상의 로이블이 차갑게 말했다.
“그러니 애를 없애라?”
“저도 내키지 않지만 길드장님의 지시랍니다.”
“아니, 씨발. 애가 대귀족의 제자라는 것도 모르고 일을 시킨 거야?”
“그게, 처음부터 대귀족의 제자는 아니었답니다. 이그나스로 오는 도중에 대귀족의 제자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귀족들도 그래. 꼴랑 대귀족의 제자 하나가 납치됐다고 이그나스의 치안대를 다 동원해? 자기들이 언제부터 그랬다고? 이게 맞는 말이야?”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보통 대귀족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황제가 제국의 모든 치안대에 포고문까지 붙여서 알릴 정도랍니다.”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씨발.”
비아냥거리던 로이블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베리트가 남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렇게 되면 살인 중독자 액티브와 식인광인 스테프너 중 한 사람이 맡아서 처리해야 한다.
“어느 분이 하실 겁니까?”
텁석부리 액티브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나라도 어린애는 무리야. 스테프너에게 양보하지.”
그러자 스테프너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감사히 먹겠소. 어이, 베리트!”
“예?”
“피를 빼야 하니까 물이나 좀 떠 와. 그동안 나는 손질을 좀 해 둘 테니까.”
“…….”
베리트는 내키지 않았지만 대선배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가 물통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액티브도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생각만 해도 행복한지 실실 웃던 스테프너는 싱크레어 지터에게 다가가, 그녀의 입에 물린 재갈을 조심스럽게 풀어 주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요.”
납치범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싱크레어 지터는 필사적으로 애원했다.
순간 스테프너의 얼굴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이때가 제일 좋더라. 안타깝고, 애틋한데,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 못하는……. 네가 그런 것까지 이해하지는 못하겠지?”
말을 마친 그는 싱크레어 지터를 천장에 거꾸로 매달았다.
그러면서 입은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
“나물의 새순을 뜯어 먹는 것과 내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같아. 나물의 새순과 어린아이가 똑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있니?”
완전히 지쳐서 축 늘어진 싱크레어 지터는 더 이상 살려 달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
이그나스 동문.
남부 지구 치안대원 크록스는 지금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블랙잭 길드 사무소에서부터 동문까지 그 먼 거리를 눈 깜빡할 사이에 돌파한 때문이다.
‘플라이 마법이 이렇게 빠른가?’
혼자가 아니고 옆구리에 장정 하나를 낀 채로 이런 속도라니!
놀란 얼굴로 힐끔거리는 그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이 방향 맞아요?”
“예, 예. 맞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 아래 마을이 크리마입니다.”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 엘리오는 돌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힘껏 소리쳤다.
“스테프너! 싱크레어에게 손대면 너희 모두를 산 채로 찢어 죽이겠다!”
쿠르르릉―.
엘리오의 사자후에 이그나스의 건물이 들썩거렸다.
깊게 잠들어 있던 사람들이 놀라 일어나 하나 둘 불을 밝혔다.
***
크리마의 폐쇄된 벌목장.
싱크레어 지터의 가슴에 막 칼을 꽂아 넣으려던 스테프너가 멈칫했다.
천둥 치는 소리처럼 하늘 저편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때 밖에 있던 세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단검을 들고 서 있는 스테프너에게 로이블이 버럭 소리쳤다.
“멈춰! 당장 달아나야 돼!”
변태스러운 식욕에 눈이 먼 스테프너라도 그 말에는 흔들렸다.
“방금 저 소리 자네들도 들었나?”
“자네 이름을 부르더군. 길드장이 우리를 팔아넘긴 것 같아. 일단 다른 공국으로 튀자고. 정 안 되면 남부 왕국으로라도 가면 될 거야.”
스테프너가 못내 아쉬운 얼굴로 싱크레어 지터를 보았다.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너무도 억울하고 분했다.
“씨발! 씨발!”
“뭐 하나! 가자니까!”
단검을 회수한 스테프너가 막 돌아설 때다.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창고의 문이 활짝 열렸다.
이윽고 두 남자가 들어섰다.
엘리오와 크록스다.
크록스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창고 안의 범죄자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그 자리에 무릎 꿇어라!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이시다!”
베리트는 털썩 무릎을 꿇었지만 액티브와 로이블은 그러지 않았다.
두 사람은 번개처럼 뒷문으로 몸을 날렸다.
순간 엘리오가 앞으로 손을 뻗자 두 사람의 몸이 둥실 떠올랐다.
스테프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싱크레어 지터의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 단검을 뽑아 싱크레어 지터의 목덜미에 들이댔다.
“움직이지 마! 움직이면 이 애를 죽이겠다.”
엘리오가 스산한 얼굴로 스테프너를 노려보며 물었다.
“너, 이름이 뭐냐?”
“스테프너요. 이 애를 살리고 싶다면 나를 놓아주시오!”
엘리오가 허공을 움켜잡았다.
그러자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액티브와 로이블의 몸이 공처럼 우그러들었다.
단숨에 고깃덩어리가 된 두 사람의 아래로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다.
동료들의 끔찍한 최후를 본 스테프너는 숨도 쉬지 못했다.
이윽고 두 개의 덩어리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스테프너, 아직도 너에게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나?”
잠시 생각하던 스테프너가 독살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같이 죽겠다!”
그는 누가 말릴 틈도 없이 인질의 목에 힘껏 단검을 찔러 넣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는데 왠지 몸이 맘을 듣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스테프너를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제압한 엘리오는 싱크레어 지터의 몸을 풀어 냈다.
어린 제자를 살피던 엘리오는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지쳐 있을 뿐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았다.
그의 표정이 풀어지자 스테프너가 불쌍한 얼굴로 애걸을 했다.
“백작님, 살려 주십쇼. 모두 길드장이 시켜서 한 일입니다. 백작님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저는 마나 유저니 요긴하게 쓸 곳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