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0
1230회. 지금. 당장. 데리고. 오라고! 요!
이그나스 서부 주거 지구.
깊은 밤.
동부 주거 지구가 엘리오의 사자후에 발칵 뒤집혔지만, 반대편인 서부 주거 지구는 조용하기만 했다.
그런데 ‘귀족 특구’라고도 불리는 서부 주거 지구의 중심가를 한 기사가 미친 듯 달렸다.
서부 지구 치안대장 로이 토마스 남작이다.
도우널 비건 백작에게 후원금을 받고 있던 그는 블랙잭 길드원들이 체포되자, 동부 주거 지구의 도로 통제를 부하들에게 맡기고 서부 주거 지구로 되돌아온 것이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의 집에 도착한 그는 최대한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집사장 해밀 로우터 남작이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토마스 남작? 늦은 밤에 무슨 일이오?”
“비건 백작님을 만나러 왔소. 백작님은 안에 계시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오시오.”
“아침이면 늦으니 하는 말이 아니오. 어서 백작님을 깨워 주시오.”
말과 함께 로이 토마스 남작은 거칠게 집사장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허! 이 늦은 밤에 뭐 하는 짓이오?”
“당장 가서 깨워 오라지 않소!”
로이 토마스 남작이 버럭 소리 지르자 황당한 얼굴로 그를 보던 집사장은 이내 돌아섰다.
이 늦은 시간에 찾아와 저러는 걸 보면 예삿일이 아닌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집사장이 도우널 비건 백작을 부르러 간 동안 로이 토마스 남작은 거실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비건 백작님이 이번 일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서부 지구 치안대장인 그는 도우널 비건 백작이 블랙잭 길드를 이용해 뒤 구린 일을 처리한다는 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치안대의 동향을 블랙잭 길드에 슬쩍 흘린 적도 많았다.
물론 치안대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에게 손을 댄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다.
이그나스의 치안대가 모두 동원되고, 먼발치에서나 겨우 볼 수 있었던 대귀족들이 늦은 밤까지 치안대를 들락거리고 있다.
‘괜찮겠지? 설마 공왕 전하의 사돈까지 건드릴라고.’
그가 부지런히 머리를 굴릴 때 도우널 비건 백작이 못마땅한 얼굴로 나타났다.
“이 밤에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고? 무슨 일이기에 그 난리인가?”
“각하, 혹시 블랙잭 길드에 마나석 감정사의 딸을 납치하라고 하셨습니까?”
로이 토마스 남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비건 백작과 블랙잭 길드의 관계, 그리고 비건 백작의 마나석 광산을 생각하면 왠지 그럴 것 같아서다.
순간 도우널 비건 백작이 급소를 찔린 사람처럼 움찔했다.
“납치까지는 아니고, 마나석 감정사가 내 말을 듣게 만들라고 했네. 블랙잭 길드가 마나석 감정사의 딸을 납치했나?”
“예.”
“저런, 그게 자네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건……. 설마 블랙잭 길드의 소행이라는 게 드러났나?”
“그 일로 동부 거주 지구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블랙잭 길드원들은 모두 체포됐습니다.”
“설마 블랙잭 길드장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 건 아니겠지?”
“아직은 아닙니다만,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막게.”
“그게,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려워? 그깟 마나석 감정사의 딸을 납치한 게 무슨 큰일이라고?”
“각하, 아직 소문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무슨 소문?”
순간 로이 토마스 남작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모르니 저렇듯 태평하게 잠이나 자고 있지 알았다면 난리가 났을 터였다.
“마나석 감정사의 딸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랍니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 얼마 전에 봉작을 받은 그 북부의 귀족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그나스 동부에 지금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까지 와 있습니다.”
“크나우프의 기사단은 또 왜?”
“모르겠습니다만 라고아 백작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혹시, 블랙잭 길드가 벌인 짓이 라고아 백작의 귀에까지 들어갔나?”
“라고아 백작과 크나우프 대공가 기사단이 블랙잭 길드를 급습했다고 합니다.”
“…….”
깜짝 놀란 도우널 비건 백작은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라고아 백작이 블랙잭 길드장을 심문할지도 모릅니다.”
“범인 심문은 치안대의 임무가 아닌가! 아무리 대귀족이라도 그러는 건 월권이라고! 이곳이 라고아 백작의 영지라면 모를까? 그건 공왕 전하의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야! 동부 지구 치안대장이 누구지?”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입니다.”
“크로노어 남작이라고? 당장 가서 치안대장이 해야 할 일을 하라고 하게. 공왕 전하의 권위에 손상이 가지 않게 하라는 내 뜻도 전하고.”
“알겠습니다. 그런데 길드장이 각하를 배후로 지목할 수도 있습니다.”
“괜찮네, 증거가 없으니까. 게다가 나는 납치를 하라고 시킨 적도 없네. 공왕 전하께 말씀드리면 적당한 선에서 정리가 될 걸세.”
“예, 그럼 저는 동부 지구 치안대장에게 각하의 염려를 전하겠습니다.”
“타국의 대귀족이 우리 공국의 내정에 관여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키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자리에서 일어난 로이 토마스 남작은 도우널 비건 백작에게 인사를 올린 뒤 서둘러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로 향했다.
***
이그나스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
로이 토마스 남작은 동부 주거 지구로 돌아가자마자 곧바로 치안대를 방문했다.
깊은 밤이었지만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는 사람들로 붐볐다.
블랙잭 길드원들의 압송 이후 대귀족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지만 그 아래 실무자들까지도 그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남부, 북부, 서부 주거 지구 치안대도 본래의 구역으로 되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서부 주거 지구 치안대장인 로이 토마스 남작은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장을 만나 도우널 비건 백작의 지시를 전달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글레디스 크로노어가 그의 눈을 빤히 보며 물었다.
“흐음, 그런데 이거 어쩌나. 조금 전에 프라드 테일러가 다 불었거든요?”
“프라드 테일러가 누구요?”
“블랙잭 길드장요. 설마 모른다고 할 건가요?”
“서부 주거 지구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해서 말이오.”
로이 토마스 남작은 슬쩍 발을 뺐다.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지만 글레디스 크로노어는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손가락으로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행정 장관과 궁정백이 보낸 사람들에게 이 보고서를 건네고 손 털 거예요.”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소. 비건 백작님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심문에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고 계시오. 그런 내정간섭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소.”
“라고아 백작이 블랙잭 길드원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라는 거라면, 가능해요. 하지만 이 수사 보고서가 그의 손에 들어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어요. 납치 사건 피해자가 그분의 제자라서요.”
로이 토마스 남작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블랙잭 길드와 도우널 비건 백작의 관계를 감출 수 없다는 소리였다.
고민하는 로이 토마스 남작에게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계속해서 말했다.
“설마 남작에 불과한 내가 대귀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그녀는 속으로 공왕 전하도 막지 못할 거라고 중얼거렸다.
“알겠소. 서류 열람까지만으로 합시다.”
“훗! 그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라고아 백작이 블랙잭 길드의 뒤에 비건 백작님이 계시다는 걸 알고도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 부분은 대귀족들이 정치적으로 풀 문제라고 생각하오. 우리 같은 남작이 대귀족들의 속을 어떻게 알겠소?”
“알았어요. 라고아 백작과 블랙잭 길드장이 만나지 못하게 하죠. 비건 백작님에게 잘 말씀드려 주세요.”
“그러리다. 참, 그 보고서에 우리 서부 주거 지구 치안대의 활약도 좀 들어가 있소?”
“동부 주거 지구의 도로를 봉쇄했다고 기록했어요. 또 빠진 게 있나요?”
“없소. 그럼 수고하시오.”
로이 토마스 남작은 미련이 남는 눈으로 서류를 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싱거운 사람.”
그녀가 새 종이에 보고서를 필사할 때 치안대원 하나가 급하게 들어왔다.
“라고아 백작님과 데이먼 아이작 백작님께서 치안대로 오고 계시답니다.”
“그래? 알았다.”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은 애써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올 게 왔다.
상업 지구에서 체포한 블랙잭 길드원들을 직접 심문하려는 것이리라.
행정 장관은 물론 대법관과 궁정백까지도 굽실거리는 대귀족을 막으라니 가슴이 답답했다.
치안대원이 떠난 직후, 행정 장관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데이먼 아이작 백작과 함께 치안대장실로 들어왔다.
“조금 전 블랙잭 길드장과 그 수하들의 심문을 끝마쳤습니다. 치안대장, 혹시 보고서를 작성했나?”
“예? 예.”
“라고아 백작 각하께 내어 드려라.”
“행정 장관 각하가 아니라요?”
“나는 라고아 백작 각하가 읽은 뒤에 봐도 괜찮다.”
“……예.”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은 떨떠름한 얼굴로 ―아직 행정 장관의 확인을 거치지 않은― 따끈따끈한 보고서를 공손히 내밀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이 알면 내정간섭보다 더한 일이라고 펄펄 뛰겠지만 어쩌겠나.
행정 장관이 직접 먼저 보게 해 드리라는데.
엘리오는 말없이 보고서를 읽었다.
치안대에서 덮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는데 의외로 도우널 비건 백작의 이름이 보였다.
“배후가 도우널 비건 백작이라고요?”
예상치 못한 이름에 행정 장관이 화들짝 놀랐다.
글레디스 크로노어는 행정 장관과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을 위해 몇 마디 덧붙였다.
“아직은 프라드 테일러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어떤 관계인지는 양측의 말을 다 들어 봐야 알 수 있습니다.”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이 서둘러 끼어들었다.
“범죄자들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던지곤 합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은 카티스 공왕 전하의 사돈으로 대귀족들 사이에 명망이 자자한 분이십니다.”
엘리오가 행정 장관을 힐금 쳐다본 후 치안대장에게 물었다.
“그래서 도우널 비건 백작의 조사는 언제 할 예정입니까?”
“대귀족에 관한 건 행정 장관 각하의 승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 엘리오가 행정 장관을 돌아보았다.
“그렇다는군요. 훌륭한 분인지 개새끼인지 확인해 봅시다. 빨리 조사하라고 하세요.”
“저어, 그런데 도우널 비건 백작은 공왕 전하의 사돈이기도 해서……. 공왕 전하의 재가를 먼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은 곁눈질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안색을 살폈다.
치안대장은 물론 크나우프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까지도 조마조마한 얼굴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입을 쳐다보았다.
그가 기분 나쁘게 받아들여 난리를 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것이다.
“아, 공왕 전하의 사돈이라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거죠? 그러세요.”
순간 행정 장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얼른 가서 받아 오세요. 늦어도 30분이면 되죠?”
“예? 지금요?”
“그럼 내일 하려고 했어요? 30분 내에 허락받아 오고, 이참에 도우널 비건 백작도 데리고 오세요. 피곤한데 빨리 해치우고 자러 갑시다.”
“저어, 각하. 자정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이왕 납치범들을 체포했으니, 나머지는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순차적으로 처리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금. 당장. 데리고. 오라고! 요!”
사자후로 내지른 말에 치안대 건물 창문이 ‘퍽!’ 하고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