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1
1231회. 나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 것 같소?
엘리오가 발산하는 사나운 기세를 소드 익스퍼트에 불과한 행정 장관 호드 캄프스 백작이 받아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드래곤의 피어에 직격당한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크나우프 대공가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제야 경직에서 풀려난 행정 장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대답했다.
“예, 예. 바로 공왕 전하를 데려오고, 비건 백작에게 허락을 받겠습니다!”
그러자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그가 실수한 부분을 수정해 주었다.
“행정 장관, 앞뒤가 바뀌었소. 공왕 전하께 허락을 받고, 비건 백작을 데리고 오는 거요.”
“아, 그렇군요. 제가 경황이 없다 보니 실수를 했습니다. 그럼 먼저 나가 보겠습니다.”
공황 상태에 빠진 행정 장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치안대장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랐다.
***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의 아우레아성.
침전 호위 기사는 공왕 부부가 잠든 침실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알지 못했지만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도 결국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들어오라.”
공왕이 허락하자 침전 호위 기사는 조심스럽게 침실로 들어갔다.
아직 잠에 취한 왕비는 슬쩍 뒤척이기만 할 뿐 눈을 뜨지 않았다.
“전하, 행정 장관이 꼭 전하와 만나야 한다고 찾아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흐음…….”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은 짜증이 치밀었지만 오죽 급한 일이면 그럴까 싶어, 옷을 갈아입고 침전에 딸린 접견실로 향했다.
접견실.
“무슨 일인가?”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은 행정 장관을 보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호드 캄프스 백작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오늘 초저녁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가 납치당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동부 주거 지구에서 그랬다지? 범인은 잡혔나?”
“예, 동부 주거 지구에서 활동하는 블랙잭 길드가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설마 그걸 알려 주기 위해 나를 찾아온 건 아닐 테고, 계속해 보게.”
“체포된 블랙잭 길드장이…… 도우널 비건 백작의 지시로 한 짓이라고 자백했습니다.”
“뭐라? 거기서 왜 비건 백작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놀란 얼굴로 행정 장관을 보았다.
도우널 비건 백작은 삼왕자의 장인으로 이그나스에서 명망 있는 대귀족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것도 하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제자를 납치하다니?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근 비건 백작 소유의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과 코랄 상회가 마나석 공급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비건 백작이 마나석 감정사를 회유해 마나석의 등급 판정을 높게 받으려고 벌인 일이라 합니다.”
“행정 장관은 놈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나?”
“아직 진술의 진위 여부를 가릴 정도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아 뭐라고 확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알게 되어……. 비건 백작의 조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설마 이 시간까지 라고아 백작이 범인들을 잡으러 다녔다는 말인가?”
“예. 납치범들을 잡은 사람도 라고아 백작입니다.”
“야인답게 꽤나 열정적이군. 그래서 이 시간에 나를 찾아온 이유는?”
“라고아 백작이 비건 백작의 조사를 원하고 있습니다.”
“하아! 알겠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고문관을 불러 그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
“전하, 내일이 아니라…… 라고아 백작은 지금 당장 조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텐시오 카티스 공작이 황당한 얼굴로 되물었다.
“지금 당장이라고 했나? 반란군의 수괴도 아니고, 범죄자의 말만 믿고 비건 백작을 이 시간에 체포해 조사를 하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제가 ‘전하의 재가가 필요하니 날이 밝으면 전하를 뵙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제길!”
순간 ‘울컥!’한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주먹으로 탁자를 후려쳤다.
‘쾅!’ 소리에 행정 장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전하, 고정하십시오.”
“고정하라고? 그게 자정이 넘은 시간에 나를 깨워서 할 소린가! 어떻게든 경의 선에서 처리를 했어야지! 이 시간에 나를 깨운 것 자체가 나에 대한 모욕임을 모르나!”
“송구하나 전하, 라고아 백작은 그냥 물러나 기다릴 사람이 아닙니다.”
“기다리지 않으면? 그래 봐야 백작이 뭘 어쩐다고!”
흥분한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묵묵히 듣던 행정 장관은 공왕이 잠시 숨을 돌리는 틈에 얼른 말했다.
“전하, 소드마스터인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그의 앞에서 집사장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를 크나우프 대공과 같은 반열에 두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은 반박하지 않았다.
행정 장관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그랜드 마스터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안다.
오죽하면 황제 폐하께서 얼굴을 보지도 않고 작위와 봉토를 내려 줄까.
펄펄 뛰던 그의 어깨가 축 처졌다.
지금은 공왕의 자존심을 내세울 때가 아니었다.
“비건 백작을 체포하되, 그에 대한 신문은 치안대가 아닌 행정 장관이 직접해라.”
“제가요?”
엘리오 라고아 백작과 얽히기 싫은 호드 캄프스 백작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경이 맡아서 해라. 사돈의 심문을 치안대에 맡기고 싶지는 않다.”
치안대가 맡으면 하루도 안 돼 비건 백작에 대한 소문이 퍼질 터였다.
죄를 벌하는 것과 별개로 그런 수치스러운 일은 막아야 했다.
“전하께서는 혹시 제가 이번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기를 바라십니까?”
“천만에. 그랬다가는 라고아 백작이 미쳐 날뛸 게다. 이그나스에 주둔한 병력으로 그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시다면 제가 맡겠습니다.”
이미 치안대에서 한차례 호되게 당한 행정 장관은 극도로 몸을 사렸다.
“이번 일로 라고아 백작이 나를 찾는 일이 없도록 했으면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티끌만 한 의혹도 남기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비건 백작가의 왕성 출입을 금지시켜라.”
“알겠습니다.”
행정 장관은 속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건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비건 백작가와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조금 전까지 라고아 백작에게 분노해 펄펄 뛰던 걸 생각하면 놀라운 반전이지만, 그는 공왕의 결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랜드 마스터란 그런 존재들이니까.
호드 캄프스 백작은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접견실을 떠났다.
***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로 돌아간 행정 장관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공왕의 뜻을 전한 뒤, 치안대장에게 비건 백작을 모셔 오라 명했다.
엘리오와 크나우프 대공가 기사단은 치안대장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이 치안대원들과 출발하는 것까지 지켜본 후에야 치안대를 떠났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치안대장과 도우널 비건 백작이 치안대에 도착했다.
귀족 전용의 특별 심문실에 행정 장관과 도우널 비건 백작이 마주 앉았다.
“비건 백작 각하. 이 시간에 뵙자고 해서 송구하게 됐습니다.”
호드 캄프스 백작은 도우널 비건 백작에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공왕의 사돈이라 평소 습관대로 먼저 인사를 올린 것이다.
도우널 비건 백작이 불퉁한 얼굴로 운을 뗐다.
“대충 들었소. 블랙잭 길드장이 죽게 되자 나를 물고 늘어졌다지요?”
“예, 비건 백작 각하께서 사주한 일이라는 망언을 하더군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싱크레어 지터 양의 납치에 관여하셨습니까?”
행정 장관은 사안이 사안인지라 말을 돌리지 않았다.
순간 도우널 비건 백작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보다 이 시간에 나를 불러낸 것도 그렇고, 마나석 감정사의 딸에게 그런 호칭은 좀 과하지 않소? 설마 라고아 백작의 제자라는 신분이 파티마 공국 대귀족보다 높다고 생각하시오?”
“그 말씀 라고아 백작 앞에서도 똑같이 하실 수 있습니까?”
“험, 그저 현실이 답답해서 해 본 소리외다.”
도우널 비건 백작이 말을 돌리자 행정 장관도 더 따지지 않았다.
“다시 묻겠습니다. 싱크레어 지터 양의 납치에 관여하셨습니까?”
“그런 일 없소. 모함일 뿐이오. 경도 알잖소. 나 정도 위치가 되면 어떻게든 끌어내리려고 발목 잡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하지만 이번 일은 너무도 구체적이라 확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과 코랄 상회가 최근 마나석 공급 계약을 맺었다지요? 각하가 마나석 감정사를 협박해 마나석의 등급을…….”
“닥치시오! 누구 앞에서 그따위 망발을 하는 거요! 내가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사람을 납치할 것 같소? 나 도우널 비건 백작이오!”
도우널 비건 백작이 큰소리쳤지만 행정 장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조금 전에 치안대원들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라고아 백작이 마검사라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그가 이상한 주문을 영창하면, 사람들이 자기 비밀을 술술 털어놓는답니다. 싱크레어 지터 양을 찾은 것도 그 진실의 마법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
“조사 결과가 미진하면 라고아 백작이 직접 각하를 조사하겠다고 할 겁니다. 그런 상황까지 가게 되면……. 나는 그에게 각하의 취조를 허락할 겁니다. 라고아 백작과 마주 앉기를 바라십니까?”
“미쳤군. 경은 파티마 공국 대귀족의 자존심도 없나? 공국의 백작을 외부인에게 넘긴다고? 그것도 공왕 전하의 사돈인 나를? 캄프스 백작! 공왕 전하께서 알면 경이 무사할 것 같은가!”
“공왕 전하께서 모든 것을 저에게 일임하셨습니다. 아, 참고로 이 시간 이후로 비건 백작가의 왕성 출입이 금지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뭐라! 누구 마음대로! 반역이라도 꾀할 셈인가!”
“공왕 전하의 명입니다.”
순간 도우널 비건 백작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그, 그게 사실이오? 정말 공왕 전하께서 우리 비건 백작가의 왕성 출입을 금지시키셨소?”
“믿지 못하겠으면 비건 백작가에 접견을 신청해 보라고 하십시오. 아, 성문을 통과하지 못할 테니 신청 자체가 안 되겠군요.”
“왜요? 공왕 전하께서 왜 그렇게까지 하신 것이오? 라고아 백작이 대체 뭐라고!”
“쯧쯧! 돈 벌 궁리만 하지 말고 세상일에도 관심을 좀 가지시지요. 크나우프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랜드 마스터랍니다.”
“그랜드…… 마스터?”
도우널 비건 백작이 황망한 얼굴로 행정 장관을 보았다.
“고문관인 마그누스 허먼 후작과 궁정백 발터 골드만 백작,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이 조금 전까지 치안대에 나와 있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가 왜 심문실에서 마주 보고 있겠습니까?”
넋을 잃고 앉아 있던 도우널 비건 백작이 허탈한 얼굴로 실소를 흘렸다.
“허허. 이제 보니 내가 숲속의 갓난아이였군. 공왕 전하께서 거리를 두실 만도 해.”
도우널 비건 백작의 자조 어린 말을 듣던 행정 장관이 넌지시 물었다.
“말씀해 주시지요.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아! 나는 단지 블랙잭 길드장에게 ‘마나석 감정사를 내 뜻에 따르게 만들라’고 했을 뿐이오. 그랬는데 그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망쳐 버린 것이오.”
도우널 비건 백작은 끝까지 블랙잭 길드장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알겠습니다.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에게 모종의 지시를 내린 것이 확인됐으니, 이제부터는 치안대에 계셔야겠습니다.”
“나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 것 같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라고아 백작의 의중에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납치범들도 체포됐소?”
“아니요. 그들은 모두 현장에서 한 줌 고깃덩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하에게 어떤 처벌이 내려질지 모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행정 장관의 말에 절망한 도우널 비건 백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