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32
1232회. 우리 제국법이 그렇게 혹독하오?
치안대로 출두한 도우널 비건 백작이 돌아오지 않자 백작가는 발칵 뒤집혔다.
대부분의 대귀족들은 혈연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건 도우널 비건 백작도 마찬가지.
그의 경우 대법관인 스탠 다이어 백작의 가문과 결혼을 했다.
비건 백작의 처 레일라 다이어는 날이 밝자마자 아침 식사도 거른 채 오라비인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냐?”
부인과 오붓하게 아침 식사를 하던 스탠 다이어 백작이 놀란 얼굴로 동생을 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레일라 다이어가 하소연을 시작했다.
“비건 백작이 자정 넘어 치안대에 불려 갔는데, 그 뒤로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집사장이 치안대를 방문했지만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왔고요. 제 딸이 왕실 일원이고, 오라버니가 대법관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오라버니, 요즘 행정 장관하고 무슨 일 있어요?”
레일라 다이어는 슬쩍 스탠 다이어 백작을 찔러 보았다.
치안대를 총괄하는 사람이 행정 장관이니 그렇게 넘겨짚은 것이다.
“잠깐, 잠깐. 그 전에 비건 백작이 왜 오밤중에 불려 갔다는 거냐?”
“집사장 말로는 마나석 감정사 딸 납치 사건의 배후로 밝혀졌대요. 아무리 그 애가 라고아 백작의 제자라고 해도 너무한 거 아니에요? 무슨 범죄자의 말만 듣고 왕가의 사돈이자 대법관의 사돈을 체포한대요?”
순간 스탠 다이어 백작은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천천히 내려놓았다.
“마나석 감정사의 딸? 설마 비건 백작이 싱크레어 지터의 납치를 사주했다는 것이냐?”
“블랙잭 길드장이 그렇게 말은 했대요. 그래도 그렇지 무슨 대귀족을 범죄자 말만 듣고 체포를 해요? 이게 나라예요?”
“이런 미친!”
스탠 다이어 백작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자 레일라 다이어가 반색을 했다.
“그렇죠? 미친 거 맞죠? 이건 행정 장관이 선 넘은 거죠?”
그러자 스탠 다이어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 남편이 미쳤다는 거다! 대법관의 사돈이 범죄자와 놀아나다니! 그게 제정신을 가지고 할 짓이냐? 나를 이 바닥에서 매장하려고 작정을 한 거야?”
“오, 오라버니?”
“너, 라고아 백작이 누군지는 아느냐?”
“최근에 봉작을 받은 북부의 귀족이라고 들었어요. 그 사람의 배경에 누가 있는데요?”
“그랜드 마스터다.”
“예?”
“라고아 백작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소문이 있다고! 그래서 크나우프 대공과 같은 예우를 해 주고 있다. 네 남편이 그런 사람의 제자를 납치한 범죄자의 배후라는 말이다.”
“거, 거짓말. 이십 대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기사들의 허풍이에요.”
“황제 폐하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작위를 내린 것도 그래서다. 그가 북부의 귀족으로 남아 있으면 제국에 위협이 되니까. 황실 정보국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라.”
“아무리 그래도 그이는 공왕 전하의 사돈이라고요! 대법관인 오라버니의 매제이기도 하고요!”
“의미 없다. 우리 파티마 공국의 군대로 그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소드마스터만 해도 일인 군단이라 불린다. 하물며 그랜드 마스터다. 그 소문의 반만 사실이라 해도 군대의 절반이 사라질 게다.”
“공국은 제국의 일원이잖아요! 오라버니가 지레 겁먹은 거지, 아무리 그라도 공국과 싸우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요.”
“내가 방금 말한 것 같은데 벌써 잊었느냐? 우리 파티마 공국만 제국의 일원인 줄 아느냐? 그도 제국의 백작이다. 둘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면 황제 폐하가 누구 손을 들어 줄 것 같으냐? 그것도 남부 왕국들과의 전쟁 중에.”
“…….”
레일라 다이어는 침묵했다.
아무리 그녀가 제국 정치에 어두워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참 만에 그녀의 입이 열렸다.
“오라버니에게 실망했어요. 그래도 가족이라고 생각해 찾아왔는데……. 공왕 전하는 오라버니와 다를 거예요.”
말을 마친 그녀가 돌아섰다.
스탠 다이어 백작은 떠나가는 여동생을 잡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긴 그를 보고 있던 부인이 넌지시 물었다.
“대법관인 당신에게까지 불똥이 튀지는 않겠죠?”
“설마 그러기야 하겠소.”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
가족들과의 면회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자 위기를 느낀 도우널 비건 백작은 제국법에 의거한 정식 재판을 요청했다.
제국법에 의하면 귀족의 재판은 대법관이 주재하게 되어 있다.
평소 귀족이 재판을 청구하면 그것의 준비 기간만 열흘 이상 걸렸지만, 도우널 비건 백작의 재판은 청구한 다음 날 바로 열렸다.
왕궁에서는 이례적으로 재판이 빨리 열린 것에 대해 ‘피의자들의 자백에 증인과 증거까지 명백해 뒤로 미룰 이유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은 공왕부터 대법관, 행정 장관까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빨리 파티마 공국에서 내보내고 싶어 서두른 것이었다.
재판 당일.
왕성 아우레아.
거대한 내성 중앙 홀이 모처럼 만에 대귀족들로 가득 찼다.
전쟁 동원령의 승인을 확정하던 날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그것은 즉 파티마 공국이 이 재판을 제국과 왕국의 전쟁에 버금가는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규모에 비해 재판 과정은 간단하다.
대법관이 피의자들의 범죄 사실을 공개하고, 피의자가 그걸 인정하면, 국왕이 경중에 맞게 형벌을 내렸다.
하지만 모든 재판이 깔끔하게 끝나지는 않았다.
간혹 피의자가 범죄 사실을 적극 부인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그를 체포한 치안대 측에서 증거와 증인을 들이밀면서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방전이 끝나면 ―법률에 밝은― 대법관이 국왕에게 적당한 처벌을 건의했고, 국왕이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식 재판은 종결됐다.
대법관 스탠 다이어 백작이 피의자들의 범죄 사실을 읽어 나갔다.
“……그리하여 그제 밤, 동부 주거 지구 치안대 대장 글레디스 크로노어 남작에 의해 긴급 체포되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은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했으나, 마나석 감정사의 딸을 납치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내린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에게 확인한 결과 백작의 말은 사실이었다. 비건 백작이 내린 명령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나석 감정사가 나의 지시에 따르게 만들라’였다. 도우널 비건 백작, 지금까지 내가 읽은 내용 중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있소?”
“모두 사실입니다. 나는 정말 프라드 테일러가 그 어린아이를 납치할 줄은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가 발뺌하자 증인으로 끌려나왔던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가 소리쳤다.
“백작님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나석 감정사가 백작님 말에 따르게 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이 바닥에서 납치는 심한 일도 아니지요! 그럼 뭐 좋은 말로 잘 설득이라도 하라는 말씀이었습니까!”
그러자 도우널 비건 백작이 발끈해서 되받아쳤다.
“닥쳐라 이놈! 잘되면 네 탓이고, 안되면 내 탓이란 말이냐! 돈을 쓸 수도 있고, 상대의 약점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네놈은 일을 쉽게 하려고 납치를 선택했다! 그것은 네놈의 죄지 내 죄가 아니다!”
“그럼 돈을 주면서 그렇게 시키셨어야지요! 그냥 백작님 말에 따르게 하라면서요! 누군 사람을 납치하고 싶어서 납치한 줄 아십니까! 백작님이 시키니까 마지못해 한 일이라 이 말씀입니다!”
두 사람의 다툼을 지켜보던 대법관이 버럭 소리쳤다.
“조용! 조용! 어느 안전이라고 죄인들이 언성을 높이는 것인가!”
그제야 도우널 비건 백작과 프라드 테일러는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나쁜 인상을 줘 봐야 판결만 가혹해질 뿐이니 참기로 한 것이다.
두 사람이 조용해지자 대법관 스탠 다이어가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을 향해 돌아섰다.
“전하! 보았다시피 백작은 ‘납치를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는 ‘같은 소리다’라고 합니다. 본 대법관은 비건 백작이 납치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납치를 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제국법에 의거해 비건 백작에게 ‘십 년의 추방령’이 어떤가 건의드립니다.”
순간 대법관과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의 시선이 참관인석에 앉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향했다.
뚱한 얼굴을 보니 대법관의 판정에 상당히 불만스러운 모양이다.
대법관은 급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러나!”
‘십 년의 추방령’에 내심 안도하던 도우널 비건 백작의 얼굴이 굳었다.
“납치가 한 번이었다면, ‘십 년의 추방령’이 적절하겠지만 보름 전 알고리움에 이은 두 번째 납치 사건이므로…… 이십…….”
대법관이 다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안색을 살폈지만 표정에 변화가 없다.
자칫 다른 대귀족들이 사돈이라는 이유로 봐줬다고 자신을 공격할 수도 있었다.
‘비건 백작, 미안하오.’
잠시 멈칫했던 대법관의 발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년의 추방령으로도 부족하다고 봅니다. 그에 덧붙여 이번 일의 원인이 된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을 압수하고, 피해자에게 오만 골드의 배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재판을 구경하던 대귀족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십 년의 추방령에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의 압수도 기가 막힌데, 오만 골드를 배상하란다.
그 정도면 황제에 대한 불경죄와도 맞먹는 징벌이었다.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귀를 후비기까지 했다.
그러다 손짓으로 대법관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뭐라고 했소?”
“이십 년의 추방,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 압수, 오만 골드 배상을 건의드립니다.”
“우리 제국법이 그렇게 혹독하오?”
“징벌적 손해 배상이란 본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려야 합니다.”
“흐음!”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대법관을 보았다.
사돈인 도우널 비건 백작의 처벌에 저토록 열과 성을 다하다니?
똑같은 사돈의 입장에서 내심 갈등하던 그로서는 개안을 한 느낌이었다.
“알겠소. 이왕 시작한 재판 블랙잭 길드장의 형벌까지 끝냅시다.”
“예.”
다시 재판정으로 돌아간 대법관이 ‘험, 험!’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대귀족들이 집중하자 발언을 이어 갔다.
“아울러 블랙잭 길드장 프라드 테일러는 범죄 단체를 구성하여 살인, 납치, 폭행 등의 일을 해 왔으니 교수형에 처하고, 길드는 해산할 것을 건의드립니다. 공왕 전하께서 현명하게 판결하여 주십시오.”
말을 마친 대법관은 대귀족들에게 묵례를 해 보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이 왕실 일원의 자리를 힐끔 돌아보았다.
셋째 며느리의 애절한 눈빛을 보니 참담한 심경이 든다.
하지만 지금 사적인 감정에 치우쳤다가는 재판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자신은 비록 공왕이지만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보다 못한 존재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거기를 거침없이 잘라 낸 사람이라지?’
그는 무심코 참관인석으로 고개를 돌렸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낀 채로 앉아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여기사를 위해서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의 아랫도리를 베어 버린 사람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다.
하물며 그의 어린 여제자의 납치를 사주했다?
그렇다면 고민할 것도 없다.
“고슬링…… 아니, 도우널 비건 백작의 판결을 내리겠다. 제국법에 의거해 그를 파티마 공국에서 이십 년간 추방한다. 더불어 사건의 발단이 된 레드 벨리 마나석 광산을 압수하겠다. 또한 피해자 싱크레어 지터에게 오만 골드를 배상금으로 지불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블랙잭 길드장은 교수형시키고, 길드를 해산한다. 이상으로 재판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