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40
1240회. 무슨 문제 있나?
왕도 프뉴마.
트루먼 솔론 후작가.
오후 2시.
후작의 집무실에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한 달 전 고인이 된 트루먼 솔론 후작의 장남 콜맨 솔론과 재무관 캄피티 바이스 남작이다.
“소후작 각하. 한 시간 전 하워드 남작 일행이 프뉴마에 도착한 게 확인됐습니다.”
“치안대로 가던가?”
“아닙니다. 치안대로 갔다면 오히려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겁니다.”
솔론 후작가에서는 용병들이 실패하자마자 하워드 솔론을 ‘작위 찬탈을 위한 소후작 살인 모의 혐의’로 치안대에 고발한 상태였다.
다소 이름이 길지만 그것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지 못해 그렇게 한 것이다.
“후작가로 돌아오지도 않고, 치안대로 가지도 않았다면, 어디서 뭘 하고 있다는 건가?”
“어쩌면 자기를 도와줄 대귀족을 찾아다닐지 모릅니다.”
“프뉴마에 그럴 만한 대귀족이 있느냐?”
“없습니다. 프뉴마의 대귀족들은 모두 적법한 후계자인 소후작님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귀족들은?”
“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워드 남작에게 마법을 가르쳐 준 잉그릿 파티샤 남작조차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소후작 각하의 편입니다.”
“파티샤 남작이 직접 그런 의사를 밝혔느냐?”
“예.”
“기사단장의 움직임은?”
“여전히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하워드 남작과 접촉할지 알 수 없습니다.”
순간 소후작 콜맨 솔론이 입술을 깨물었다.
기사단장인 크라손 위그라드 백작과의 관계가 좋았다면 이 사달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평소 기사단장은 자신의 동생인 하워드를 총애하고 자신을 멀리했다.
부친인 트루먼 솔론 후작이 갑작스럽게 병사하고 난 뒤로는 아예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기사단이 후작가 최고의 무력 단체인 만큼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안 쓸 수가 없다.
후작가의 기사들치고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자가 없어 더 그랬다.
어쩌면 작위 승계 과정에서 가장 걸림돌은 동생 하워드가 아니라 기사단장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그가 손 들어주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다’라는 소문이 돌아다닐까.
그때 적극적으로 다가와 손발이 되기를 자처한 이가 재무관 캄피티 바이스 남작이다.
“기사단장의 주위에 사람을 더 깔아라. 그리고 하워드 일행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도 알아내고.”
“예, 그런데 갈름 용병단에서 계속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콜맨 솔론 소후작이 눈을 찌푸렸다.
갈름 용병단은 하워드 남작의 척살 의뢰를 맡겼던 용병단이었다.
의뢰 실패 후 한동안 잠잠하더니 이제 와 웬 문의?
“문의?”
“예, 의뢰받은 일을 계속 추진해야 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하워드가 프뉴마에 있는데 당치도 않은 소리. 대귀족들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그럼 의뢰를 거둬들일까요?”
“그렇게 하도록. 자칫 허튼짓을 했다가 승계 절차가 꼬이면 나만 손해다. 대여해 준 마력총도 깔끔하게 회수하고.”
“예, 알겠습니다. 저어, 그런데…….”
캄피티 바이스가 말을 흐리며 콜맨 솔론 소후작의 눈치를 살폈다.
“무슨 문제 있나?”
“사수 하나가 붙잡히면서 마력총 한 자루를 빼앗긴 모양입니다.”
“뭐? 마력총을 빼앗겨? 그게 무슨 개소리야! 마력총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걸 모르느냐! 게다가 그 마력총에 새겨진 일련번호는 어쩌고! 내가 사주한 일이라고 광고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일련번호는 마탑에 돈을 줘 덮으면 됩니다. 마탑에서 분실한 물품으로 처리해 줄 겁니다.”
“하워드가 알아내기 전에 손을 써라.”
“예, 말씀하신 것에 재정을 집행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또 뭐?”
콜맨 솔론 소후작이 신경질적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캄피티 바이스 재무관이 슬며시 눈을 내리깔며 답했다.
“의뢰를 취소할 경우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용병단이 실패한 건데 왜 내가 위약금을 물어?”
“일차로 실패했지만 그들은 계속하겠다고 했습니다. 의뢰인이 일방적으로 의뢰를 거둬들일 경우 위약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이런 젠장! 그게 무슨 악덕 사채업자 같은 소리야? 저들이 실패한 건 생각하지 않고, 왜 나더러 위약금을 물으래? 위약금이 얼만데?”
“통상 계약금의 세 배입니다. 계약금 천 골드에 임무 완수 시 이천 골드를 지불하기로 하셨습니다. 그러니 위약금으로 삼천 골드를 지불해야 합니다.”
“미쳤군. 위약금이 의뢰 성공 시에 받는 돈보다 많아?”
“예, 계약 어기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들 합니다.”
“미치겠군. 의뢰는 실패했지만 돈은 벌어 가시겠다? 완전히 사기꾼들이네.”
“용병들이 원래 그런 놈들 아닙니까.”
“하아!”
콜맨 솔론 소후작의 입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맞다.
용병과 범죄자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오늘 가드를 하다가도 내일 강도로 돌변하는 게 용병이었다.
“경의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말씀하신 것처럼 왕도에서 암살 시도는 너무 위험합니다. 자칫 작위 승계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약금을 내라는 말이군. 그렇게 처리해라.”
“알겠습니다. 용병단에 위약금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재정 집행은 재무 기록으로 남길까요? 아니면 비공식으로 할까요?”
“그런 걸 기록으로 남기는 멍청이도 있느냐? 당연히 비공식이지. 용병단과의 계약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남기지 마라.”
“명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캄피티 바이스 재무관은 깊숙이 허리를 조아렸다.
고개 숙인 그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했다.
멍청이라니?
누가 누구에게 멍청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소후작님, 이런 상황에서 돈을 쓸어 담지 못하는 사람이 멍청한 겁니다.’
기사단장 크라손 위그라드 백작이 왜 그렇게 장남을 싫어하는지 알 것도 같다.
***
엘리오 일행은 토플라 공국의 왕도인 프뉴마에 도착했지만 바로 남부 왕국으로 내려가지 못했다.
역마차 협회에서 남부 왕국으로 가는 역마차 숫자를 극단적으로 줄였기 때문이다.
역마차 협회의 검문검색이 간편하다는 말도 옛말이다.
역마차 협회 역시 전쟁의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제국과 남부 왕국은 서로 자신들의 물자가 적에게 반출되는 걸 원치 않았다.
이전에는 짐마차의 경우 느슨하던 검문검색이 오히려 더 강화되었다.
승객들에 대한 조사는 말할 것도 없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통행이 자유로운 사람은 용병과 모험가뿐이었다.
용병의 경우 제국과 남부 왕국 모두에게 필요한 존재였으니 그렇다 쳐도, 전쟁의 발단이 된 모험가를 남부 왕국에서 받아들인 것은 이유가 있다.
공교롭게도 그건 제국과의 전쟁 때문이었다.
어비스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런 어비스의 탐사와 발굴을 남부 왕국 모험가들로만 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투입할 수도 없다.
전선에 투입하는 병력도 부족한 마당에 무슨 어비스란 말인가.
결국 남부 왕국들은 서들러 ‘모험가 허가제’를 시행함으로 제국 모험가들을 관리 감독했다.
제국과 남부 왕국의 필요에 의해 출입이 자유로워졌다 해도 모험가와 용병만을 상대로 하는 역마차 운송이 원활하게 돌아갈 리가 없다.
엘리오 일행은 프뉴마에서 승객이 모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프뉴마 중심지.
피츠 태번(tavern).
저녁 식사를 하던 엘리오가 솔론 남작 일행을 힐끔 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사람들이 왜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 같지?”
파비안이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역마차 운송 협회에서 정원을 꽉꽉 채워야 한다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도 인원이 차기를 기다리는 걸 겁니다. 남부 왕국까지 계속 보게 될 것 같습니다.”
“마차 하나는 나왔잖아. 몇 대나 채우려고 기다리래?”
“한 대든 두 대든 가드의 숫자는 같으니 최대한 많은 마차를 보내려고 하겠죠.”
“이 시국에 그 정도 숫자가 있겠냐?”
“기다리는 게 싫으면 전세 마차도 있습니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릴 줄도 알아야지. 무턱대고 서두르다가 잘되는 꼴을 못 봤다.”
“금방 말을 바꾸시네요?”
“그래서? 문제 있어?”
엘리오가 쏘아보자 파비안은 급히 꼬리를 내렸다.
“없습니다.”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이 식사를 마칠 즈음, 태번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로브를 입고 모자까지 푹 눌러쓴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의 자리로 다가갔다.
때마침 그와 눈이 마주친 하워드 솔론 남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파티샤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로브를 입은 여자, 4서클 메이지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워드, 아니 이제는 솔론 남작이라고 해야 하나? 왕도에는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어쩐 일이냐?”
하워드 솔론 남작은 빈자리를 권하기에 앞서 일행을 소개했다.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타인록 경은 전부터 봤으니 아실 테고, 이쪽은 저와 함께 다니는 모험가 크레아입니다. 크레아, 이분이 내가 말한 메이지 잉그릿 파티샤 님이시다.”
솔론 남작을 따라 일어나 있던 크레아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크레아라고 합니다.”
“그래, 아주 어여쁜 모험가로구나. 모험가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겠어.”
오십 대의 메이지 잉그릿 파티샤가 흐뭇한 눈으로 젊은 모험가를 보았다.
“그 정도는 아니에요.”
크레아가 당황한 얼굴로 손사래를 쳤다.
마법사들은 농담을 할 줄 모른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모양이다.
이윽고 잉그릿 파티샤의 시선이 타인록을 향했다.
타인록은 마치 남의 일인 양 그 자리에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순간 잉그릿 파티샤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솔론 남작이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했는데 호위기사가 앉아 있다니?
둘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지지 않고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그때 하워드 솔론 남작이 타인록 옆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잠시 앉으시지요.”
“그럴까?”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록의 옆에 걸터앉은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먼저 운을 뗐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마. 솔론 남작, 나는 너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솔론 후작가의 마법사가 내 스승님의 지인이거든. 실력도 인맥도 나는 그분의 수준에 한참 못 미쳐. 무슨 뜻인지 알지?”
“알고 있습니다. 후작가로 돌아가는 건 생각지도 않고 있습니다.”
“잘 생각했다. 형제 간에 피를 흘리는 일은 이겨도 진 것이나 다름없다. 너의 재능이면 스스로의 힘만으로 대귀족이 될 수 있을 게다.”
“과찬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나를 불러냈느냐?”
멀리 떨어진 모험가 일행을 의식한 하워드 솔론이 소리를 한껏 낮췄다.
“체술과 검술로 타인록 경을 꺾은 야인이 있습니다.”
“그런데?”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무덤덤한 얼굴로 하워드 솔론 남작을 보았다.
타인록의 검술이 뛰어난 것은 알지만 그의 위치는 ―사람으로 치면― 무릎 높이도 되지 못했다.
그런 그가 패한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인지 모르겠다.
“제 또래의 야인 출신 청년입니다.”
“그러니까 타인록 경이 마나 유저가 아니라, 이십 대의 영기 수련자에게 졌다고?”
“예, 아무래도 영기 외에 다른 뭔가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서요. 아시다시피 제 마법은 이제 이 서클이라……. 그 속에 든 게 뭔지 알지 못합니다.”
“진실의 눈으로 판별해 달라는 거구나?”
하워드 솔론 남작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잉그릿 파티샤 남작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주마.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워드 솔론 남작은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