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44
1244회. 사람이신 건 맞습니까?
프뉴마 역마차 대기실.
이제 여섯 명으로 불어난 엘리오 일행이 역마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홉 명의 여행자들이 대기실 앞에 모여들었다.
무장 상태로 보아 용병 아니면 모험가로 보였다.
아홉 명의 승객들은 대기실 안에 있는 엘리오 일행을 보고 밖에서 서성였다.
자기들까지 다 안으로 들어가면 답답할 것 같으니 그냥 밖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사두마차의 정원은 여섯 명.
어차피 마차가 다르기에 엘리오 일행은 바깥의 여행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깥에 있는 여행자들은 달랐다.
스탄 용병단 부단장 루이가 대기실을 힐끗 보고는 단장 앵거스에게 속삭였다.
“숫자가 적은 걸 보니 어비스로 가는 모험가들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
프뉴마에서 아드리아로 가는 역마차니 모험가 아니면 용병이 분명했다.
하지만 용병치고는 차분한 인상이니 모험가일 확률이 높았다.
용병은 눈빛부터가 살벌하니까.
“여자에 노인까지 아주 잡탕인데요? 동행하다가 견적이 나온다 싶으면 바로 작업 들어가죠. 저 여자는 데리고 놀다가 팔아도 돈이 되겠습니다.”
“음, 적은 숫자가 아니니 잘 지켜봐라. 특히 마법사가 있는지를 꼭 확인해야 된다.”
이쪽이 아홉이나 된다지만 저쪽도 여섯이다.
만에 하나 저쪽에 마법사가 있다면 피를 보는 건 자신들이었다.
“걱정 마십쇼. 어디 장사 한두 번 합니까? 마법사는 없습니다. 일단 지팡이를 든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눈썰미가 많이 좋아졌군. 수준이 어떻게 되는지도 잘 파악해 둬라. 강한 놈이 있으면 수면제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저런 잡탕들을 상대로 수면제를 쓸 일이 있겠습니까?”
대기실 안의 모험가들은 한눈에 봐도 어중이떠중이들이었다.
복장, 나이, 성별 등이 제각각인 모험가들의 경우 안전을 위해 모인 경우가 많았다,
부단장 루이가 볼 때 대기실의 모험가들이 딱 그랬다.
대기실 안을 힐끔거리던 루이는 뺀질거리게 생긴 청년과 눈이 마주치자 씨익 웃어 보였다.
자기 딴에는 적의가 없음을 표현한 것인데 청년이 고까운 표정으로 빤히 보았다.
‘저런 개자식이 있나.’
순간 루이는 울컥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지라 화를 눌러 참았다.
잠시 후 육 인승 마차 두 대와 사 인승 마차 한 대, 그리고 짐마차 두 대가 대기실 앞에 섰다.
이제는 여섯으로 늘어난 엘리오 일행이 선두의 육 인승 마차에 올라탔다.
아홉 명의 스탄 용병단은 뒤쪽에 있는 두 대의 마차로 향했다.
대기실의 승객들이 모두 타자 다섯 대의 마차는 줄지어 남쪽으로 달렸다.
해거름 무렵, 다섯 대의 마차는 토플라 공국 최남단인 토렌스에 도착했다.
엘리오는 창밖으로 보이는 도시의 참혹한 풍경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시에 있는 건물 절반이 반파 상태였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부서진 건물이 많았는데 마치 집채만 한 망치로 후려친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역마차는 익숙하게 부서진 건물들 사이를 내달렸다.
도로를 몇 번 돌더니 마차가 부서진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엘리오 일행이 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일 때 마부가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십쇼!”
그제야 엘리오 일행은 마차에서 내렸다.
뒤쪽에 있던 두 대의 마차에서도 승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가 망설임 없이 반파된 건물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다시 나온 그가 열다섯 명의 승객들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다행히 영업을 한답니다. 들어가시죠.”
할 말을 마친 그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폐허가 된 도시를 보고 놀란 엘리오 일행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파비안이 허물어진 한쪽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밖이 보이는 태번은 처음입니다.”
옆 탁자에 앉아 있던 하워드 솔론 남작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받았다.
“전쟁 중이라더니 정말 실감이 납니다. 전선이 멀지 않은가 봅니다. 마력포가 이곳까지 날아든 걸 보니.”
그때 주문을 받으러 온 점원이 말했다.
“그래도 저녁에는 마력포를 쏘지 않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낮에는 여기저기서 ‘펑! 펑!’ 하고 마력포 쏘는 소리가 들리거든요.”
북부 왕국군에 오랜 기간 복무했던 파비안이 슬쩍 물었다.
“소리만 들리나? 마력 포탄이 날아들지는 않고?”
“여기까지는 날아오지 않습니다. 그럼 장사 못 하죠.”
“안 날아온다고? 저기 뻥 뚫린 벽은 뭔데? 온 도시의 건물이 부실 공사로 혼자 무너져 내린 거야?”
파비안이 손가락으로 ―거리가 내다보이는― 무너진 벽면을 가리켰다.
“아, 그건 남부 왕국군이 도시로 바짝 접근했을 때 생긴 겁니다. 지금은 우리 제국군이 다시 멀리 몰아낸 상태고요. 이곳에서 10킬로미터쯤 떨어진 마일드 평원에서 싸우고 있다 들었습니다.”
하워드 솔론 남작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이 정도면 더 북쪽으로 피난을 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전쟁통에 손님이 있나?”
“남부 왕국으로 내려가는 여러분 같은 손님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점원의 말에 하워드 솔론 남작은 ‘아!’ 하고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점원은 모처럼 온 손님들의 주문을 일일이 종이에 적은 뒤 주방 쪽으로 사라졌다.
승객들이 불안한 눈으로 무너진 벽 밖을 힐끔거리자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가 말했다.
“포격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점원의 말대로 해가 지면 포격을 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전선도 이미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라, 이곳까지 마력 포탄이 날아오지 않습니다. 승객들의 목숨이 위험하다면 제국에서 운송 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겁니다. 제국과 역마차 운송 협회를 믿고 오늘밤은 편히 쉬십시오.”
그때 용병들이 자기들끼리 무슨 말을 하고서는 ‘와아아!’ 하고 대소를 터뜨렸다.
파비안이 용병들을 힐끔 보고 중얼거렸다.
“역시 용병들답네. 마력 포탄이 용병이라고 피해 가는 건 아닌데.”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물었다.
“용병들도 어비스 출입이 가능하다고 했지?”
“예. 용병과 모험가만 가능합니다. 아, 짐꾼들은 예외입니다. 용병과 모험가에게 고용된 짐꾼들은 어비스 출입이 가능합니다.”
“솔론 씨, 우리는 짐꾼을 고용하지 않을 건데, 그쪽은 고용할 겁니까?”
“허락해 주신다면 몇 명 고용하고 싶습니다. 어비스 내부에는 숙박 시설과 음식점이 없다고 들었거든요. 그게 사실이라면 들고 갈 짐이 좀 많습니다.”
“그러시든가. 참고로 우리는 고용하지 않을 겁니다.”
“짐은 어떻게 하시려고…….”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무슨 뜻인지 알죠?”
“예, 알겠습니다.”
하워드 솔론 남작의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제대로 된 일행이면 좋겠는데 딱 ‘동행’만 허락받았음을 알아서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용병들이 또 한차례 ‘와아아!’ 웃음을 터뜨렸다.
반파된 태번과 용병들의 웃음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멀리서 ‘펑! 펑!’ 하고 마력포 쏘는 소리가 났다.
파비안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마물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마력포를 쏜다니 조금 이상하네요.”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자네가 전쟁 세대가 아니라서 그렇네. 내가 자네보다 조금 더 어릴 때 제국전쟁이 발발했는데, 그때는 아침저녁으로 마력포 소리가 요란했다네.”
“기분이 참 묘하네요. 라고아 경이 북부를 지켜 주지 않았다면 전쟁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그랬다면 남부 왕국은 마도 시대 유물로 마족과 싸웠을 걸세.”
“이건 뭐 죽 쒀서 개에게 준 꼴이네요. 라고아 경, 그렇지 않습니까?”
순간 엘리오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문득 마나 프트라스와 샤스트라 파라크티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기껏 대륙의 혼돈을 막기 위해 하계의 인간까지 끌어들였는데, 정작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박 터지게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인생이 본래 그런 거야. 세상에도 버는 놈 따로 있고, 쓰는 놈 따로 있잖아.”
“그게 지금 맞는 비유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슨 소린지는 알지?”
“예, 그런데 라고아 경의 비유는…….”
“닥쳐. 뭘 더 바라?”
“아, 예.”
파비안은 엘리오가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님을 알기에 더 파고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서 물었다.
“라고아 경, 요즘도 말할 때 아티팩트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몰라. 이젠 내가 알아듣고 떠드는 건지, 해석을 해 줘서 대화가 가능한 건지 나도 모르겠어.”
“반지 빼 보십쇼.”
“싫어.”
“왜요? 라고아 경이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어쩌면 그동안 대륙 공용어에 통달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내 머리가 그 정도로 좋지는 않아. 내 부인이라면 모를까. 나는 아냐.”
“라고아 경의 부인께서 머리가 좋으십니까?”
“좋냐고? 우리 누님은 한 번 듣거나 본 건 절대 잊지 않아. 모르긴 몰라도 신들보다 지혜로울걸?”
“신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습니까?”
순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물론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까지도 엘리오를 주목했다.
신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니! 이 얼마나 광오 한 말인가 말이다.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게 있더라고. 나도 누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런 사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사람이신 건 맞습니까?”
파비안의 질문은 놀리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이 세계에는 카마 데비아스(천자마)나 우샤스 운드라(금사)처럼 육화(肉化)한 신적 존재가 존재했다.
그러니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부인이 그런 존재라 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사람 맞아.”
“사람이 신보다 뛰어날 수 있습니까?”
“카마 데비아스와 나를 보고도 모르겠어?”
“아! 제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군요. 그런데 왜 라고아 경은 아직도 아티팩트를 사용하십니까?”
파비안은 태양신을 이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통역 반지 따위에 의지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말했을 텐데. 그럴 정도로 머리가 좋지 않다고.”
“그런 분이 어떻게 그 나이에…… 그랜드, 험, 험, 마스터가 될 수 있습니까?”
파비안은 태번에 있는 용병들을 의식해 ‘마스터’ 소리를 한껏 낮추었다.
“운과 재능이 만나서 폭발한 거지.”
엘리오는 어린 시절 창고에서 발견한 구천현녀경을 떠올렸다.
그 거울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터였다.
때마침 멀리서 ‘펑!’ 하는 마력포 소리가 들려왔다.
시기적절한 폭발음에 한창때인 크레아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식사를 마친 승객들이 멀뚱멀뚱 앉아 있을 때다.
밖으로 나갔던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가 돌아와 승객들에게 말했다.
“볼일이 있으면 지금 보고 오십쇼. 이제 마차에 타면 국경 검문소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겁니다. 그럴 리 없지만, 만에 하나 마차 중 하나가 마력포에 맞아도, 다른 마차는 서지 않을 겁니다.”
용병 중 하나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마력포에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제국은 물론 남부 왕국들도 모험가와 용병을 적대시하지 않습니다. 물론 어쩌다 눈먼 마력 포탄이 날아들 수는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마력 포탄에 맞은 마차는 없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제국과 남부 왕국은 검문소로 통하는 도로 쪽으로 마력포를 발사하지 않았다.
양측 다 모험가와 용병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승객들의 표정이 무거워지자 라인 하이드는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자! 이제 마차에 오르실 시간입니다! 국경 지대만 통과하면 끝입니다. 남부 왕국도 국경에서 먼 곳은 평화롭기 그지없으니까요.”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용병들이 찜찜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