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
125회. 옷 좀 벗어 볼래?
연적하는 기이한 눈으로 곡일기의 정수리에 돋아난 뿔을 보았다.
뿔을 제외하면 과거의 다른 십두마병들보다 체구가 눈에 띄게 작았다. 죽은 도적의 피부와 얼굴이 바뀌고 뿔이 돋아난 정도랄까?
곡일기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지만 왠지 둔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서 오는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크르르륵.”
곡일기가 천천히 걸음을 떼어 놓았다.
몸에 비해 조금 긴 듯한 두 팔이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들렸다.
연적하는 그제야 그의 손가락 끝에 창끝처럼 튀어나온 손톱을 볼 수 있었다.
새하얀 손톱의 길이는 무려 한 뼘이나 됐다.
저건 지금까지 십두마병들에게서 볼 수 없던 무기라면 무기다.
‘뿔과 손톱이라…….’
싸워야 할 상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건 연적하도 마찬가지.
그는 차분하게 십두마병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산채 생활과 그동안 치른 싸움의 경험으로 연적하는 서두르지 않았다.
“크륵!”
짧은 외침과 함께 곡일기의 몸이 사라졌다.
연적하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무려 오 장(약 15미터) 높이에서 곡일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가 양손을 벼락처럼 휘둘렀다.
순간 반월형 강기가 연적하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쉬잉. 쉬잉.
마치 허공에서 거대한 두 개의 낫이 교차하며 떨어져 내리는 모양새다.
연적하는 즉시 머리 위로 구천세법의 삼 식 운룡풍호를 펼쳤다.
콰콰콰콰.
곧이어 두 개의 강기와 용권풍이 충돌했다.
콰지지직-.
공간이 비틀어지는 기이한 소리와 함께 강기도 용권풍도 사라졌다.
그러자 괴성과 함께 곡일기가 손을 연거푸 휘저었다.
“크륵! 크륵!”
쉬잉. 쉬잉. 쉬잉. 쉬잉. 쉬잉…….
수십 개의 강기가 파도처럼 연적하를 향해 밀려갔다.
그러나 연적하는 피하지 않고 오연히 서서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사 식 풍화겁륜이 펼쳐지자 머리 위로 검기의 수레바퀴가 돌아갔다.
가가가각-.
수레바퀴에 휘말린 강기는 속절없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무식하리만치 둘은 강기와 검기를 뽑아냈다.
올라간 것은 떨어져 내리기 마련이다.
시간이 갈수록 곡일기의 몸은 아래로 내려왔다.
연적하는 쉬지 않고 그 아래서 풍화겁륜의 검식을 유지했다.
마침내 곡일기의 몸이 풍화겁륜에 휘말려 들었다.
콰자자작-.
풍차처럼 회전하던 검기가 곡일기의 몸에 박혔지만 그의 사지는 잘리지 않았다.
그래도 고통은 느끼는 듯 곡일기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난자당하던 곡일기의 몸이 일 장(약 3미터) 뒤로 툭 떨어졌다.
연적하는 지체 없이 달려가며 구천구검의 일 식 현녀강림을 펼쳤다.
우아하게 날아간 검 끝이 곡일기의 심장을 관통했다.
“켁!”
곡일기의 몸이 거세게 경련을 일으켰다.
상대가 죽어 가자 연적하는 자신에게 닥칠 괴현상에 대비했다.
양미간 사이의 신맥이 화끈거리는가 싶더니 또다시 뭔가 보였다.
이번에는 조금 더 어둡고 깊었다.
빛 한 점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외뿔의 괴물이 몸부림치고 있었다.
희미한 빛이 보이던 지금까지와 달리 이곳은 그냥 무저갱의 느낌이다.
‘정말 지옥인가?’
연적하는 미처 주위를 확인하기도 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스스스스-.
외뿔의 괴물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리고 이번에도 십여 개의 빛 덩이가 하늘하늘 하늘로 날아 올라갔다.
정신을 차린 연적하가 천천히 돌아섰다.
어느새 도적들은 심통과 남궁천, 설차수 일행에 의해 모두 제압되어 있었다.
넋을 잃고 서 있던 촌장이 달려와 절하며 말했다.
“어이쿠! 구천신장(九天神將)께서 강림하셨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촌장은 연적하를 하늘을 관장하는 구천신장으로 불렀다.
사실 죽다가 살아난 촌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그때 남궁연이 다가와 촌장에게 물었다.
“도적들이 찾던 물건은 어디 있나요?”
“아! 예, 마을 밖 토지신묘에서 그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안내를 해 드릴까요?”
“그래 주세요. 적하야, 함께 가 보자.”
“어, 예.”
아무 생각 없이 서 있던 연적하는 남궁연과 함께 촌장을 따라갔다.
심통은 도적들의 처리를 소무진에게 맡겼다.
사로잡은 자들을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끌고 다닐 수도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이다.
소무진은 도적들을 밧줄로 묶어 한쪽에 꿇려 놓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신웅은 소무진에게 그간의 경과를 듣고 눈치만 살폈다.
진설하가 뒤늦게 연적하를 따라가려 하자 유근식이 말렸다.
“진 사매, 지금 따라가 봐야 할 일도 없잖아. 갔다가 괜히 병풍 신세 되지 말고 기다려.”
“벼, 병풍이라뇨. 동료지.”
“풋. 금방 올 거야.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보다 혼자 있을 때를 노리는 게 나을걸?”
“노리긴 뭘 노려요? 같은 동료로서 돕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인데.”
“알았어. 혼자 있을 때 순수하게 곁에 있어 주라고. 지금 둘 사이에 끼면 사매만 뻘쭘해져.”
“…….”
그제야 진설하는 따라가기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아닌 게 아니라 둘 사이에 낀다고 생각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씩씩하게 토지신묘의 안으로 들어간 촌장이 제단 뒤쪽을 가리켰다.
“도적들이 말한 것과 비슷한 게 저겁니다. 오래전에 토지신묘를 관리하던 만신(여자 무당)이 어딘가에서 가져와 저기 모셔 두었었지요.”
연적하가 촌장을 힐끔 보았다.
“그 만신은요?”
“제가 어릴 때 죽었습니다. 한 갑자(60년)도 전의 일이지요.”
고개를 끄덕이던 연적하가 제단 뒤 쪽으로 들어갔다.
치렁치렁한 거미줄 속에 한 뼘 조금 넘는 폭의 둥그런 조각이 보였다.
거미줄을 걷어 내고 집어 들자 촌장이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가져가십시오. 나중에라도 다른 도적들이 소문을 듣고 올까 무섭습니다.”
“그럴까요?”
연적하는 딱히 거절하지 않았다.
촌장의 말처럼 이걸 노리고 다른 도적들이 올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반 치(약 1.5센티) 두께의 조각은 전체가 돌로 되었음에도 의외로 가벼웠다.
조각을 대충 둘러보던 연적하가 남궁연에게 내밀었다.
느낌상 그녀가 이 물건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아서다.
남궁연은 조각을 받아서 세심하게 살핀 뒤에 연적하에게 도로 건넸다.
“네가 가지고 있어.”
“이걸요?”
“응.”
“누님, 이게 정말 팔주령이 맞아요?”
“맞아.”
“에? 그럼 재수 없는 물건 아니에요? 유명교에서 사람을 제물로 쓴다던데……. 누님도 그 괴물 봤잖아요.”
남궁연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본래 팔주령은 동방의 무녀들이 사용하는 성물이야. 이승과 저승을 이어 주는 다리의 역할을 해. 유명교에서 그걸 악용하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팔주령 자체는 괜찮은 거다?”
“응.”
“그런데 제가 이걸 어디다 써요?”
“글쎄. 언젠가는 쓸모 있을 날이 오지 않을까?”
“고기 굽는 데 쓰면 되려나?”
“훗! 고기 냄새가 밸 텐데 괜찮겠어?”
“그건 또 그렇네요. 그나저나 이걸 어디에 보관을 한담.”
머리를 긁적이던 연적하는 팔주령을 손바닥에서 돌리다가 툭 떨어뜨렸다.
퍼석.
팔주령이 돌바닥에 부딪치자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어이쿠! 부서졌나? 그럼 쓸모없는데?”
연적하가 호들갑을 떨었다.
말과 달리 태연한 표정을 보니 가지고 다니기 귀찮아서 떨궈 본 모양이다.
남궁연이 웃으며 말했다.
“가볍지만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돌이야. 부수려면 아마 작정하고 깨야 할걸?”
“정말요?”
연적하가 쪼그리고 앉아 바닥을 살폈다.
과연! 팔주령은 멀쩡한데 바닥이 살짝 패여 있었다.
연적하가 팔주령을 눈앞에 들어 올린 뒤 새삼스러운 눈으로 이모저모 살폈다.
“와아!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대요? 너무 튼튼한 거 아냐?”
“가벼우니까 호신갑 삼아 가슴에 차고 다녀도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이걸 차고 다니라고요?”
“마차에 두고 다니면 분실할 수 있잖아. 그렇다고 들고 다닐 수도 없고. 좌우의 방울에 줄을 달면 가슴에 고정할 수 있을 거야.”
남궁연은 어딘지 모르게 신이 난 얼굴이다.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말이다.
“누님, 이거 꼭 가지고 다녀야 해요? 유명교에서 쓰지 못하게 그냥 부숴 버려도 될 것 같은데.”
“팔주령에는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너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 유명교가 그것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지금은 더더욱.”
똑똑한 남궁연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연적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요. 누님 말대로 할게요.”
“그래. 잠깐만.”
남궁연은 내친김에 매달아 주려는 듯 줄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다행히 토지신묘 안에는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 묶어 놓은 금줄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다.
남궁연은 그중에 가장 질긴 줄을 끊어 팔주령과 연결했다.
“잘됐다. 금줄과 팔주령이라니. 뭔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금줄이 뭔데요?”
“부정한 기운의 침입을 막아 주는 신성한 줄이야. 다 됐다. 옷 좀 벗어 볼래?”
“오, 옷을요?”
연적하가 곤란한 얼굴로 촌장을 보았다.
그러자 촌장은 헛기침을 터뜨리며 슬그머니 토지신묘를 나가 버렸다.
남궁연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옷 위에 걸치면 너무 남들 눈에 띄잖아. 누가 다 벗으래? 겉옷만 벗어봐. 내가 묶어 줄게.”
그제야 연적하는 겉옷을 벗었다.
남궁연은 팔주령을 연적하의 가슴 정중앙에 댄 뒤에 각각 어깨 위와 겨드랑이로 줄을 빼냈다. 그리고 뒤로 돌아가 단단히 묶었다.
“됐다. 이제 다시 입어 봐.”
연적하가 겉옷을 대충 걸치자 남궁연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음! 표시도 별로 안 나고 괜찮은걸? 불편하니?”
연적하는 상체를 이리저리 뒤틀어 보았다.
워낙 가벼운 돌이라 그런지 매고 있는 느낌도 없었다.
“괜찮은데요?”
“잘됐다. 네가 불편하다고 했으면 버릴까 했는데.”
남궁연은 무심코 연적하의 앞가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자신이 매 준 팔주령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순간 연적하는 숨을 멈추고 석상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팔주령 때문에 남궁연의 손길은 느낄 수 없었지만 괜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뒤늦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남궁연이 화들짝 뒤로 물러났다.
“이제 가자.”
“네.”
남궁연이 몸을 돌려 토지신묘를 빠져나갔다.
연적하가 어미를 따라가는 새끼 오리처럼 맹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촌장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연적하를 힐끔힐끔 살폈다.
가슴에 뭔가를 매달겠다고 했는데 표시가 나지 않으니 궁금한 모양이다.
“할아버지, 할 말 있어요?”
“아, 아닙니다. 그런데 구천신장님. 아까 그 도깨비는 뭔가요? 사람이 어떻게…….”
정수리의 뿔 때문에 도깨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오늘 일은 그냥 잊어버리고 사는 게 나을 겁니다.”
연적하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아는 게 병이라고, 세상에는 모르고 넘어가는 게 나을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