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52
1252회. 안다고 해서 달라지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
파비안은 눈을 뜨자마자 화들짝 놀라 침상에서 튀어 내려갔다.
창가 의자에 앉아 있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힐끔 그를 돌아보았다.
“웬 소란인가?”
“아, 아닙니다. 밤새 별일 없었습니까?”
“많은 일들이 있었네.”
“예?”
뜻밖의 대답에 파비안이 놀란 눈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보이지 않았다.
“라고아 경은요?”
“솔론 남작과 신전에 가셨네.”
“신전요?”
파비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되물었다.
라고아 백작과 숱하게 많은 도시를 여행했지만 신전을 방문한 적이 없어서다.
자신이 알기로 라고아 백작에게 신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이 아침부터 신전을 찾아가다니?
그것도 솔론 남작과 함께?
파비안이 ‘왜 가셨느냐?’고 묻기 전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답했다.
“지난밤 용병들이 솔론 남작 일행을 납치해 살해하려 했네. 그 과정에서 크레아가 목을 찔렸지.”
“헉! 약에 당한 겁니까?”
“솔론 남작 일행뿐 아니라 자네와 나도 당했네. 나는 잠든 지 한 시간 뒤에 깨어났지만, 그때는 이미 솔론 남작 일행이 납치를 당한 뒤였네.”
“제가 주의를 기울였어야 하는데 면목 없습니다.”
“자네 탓이 아닐세. 나 역시 알면서도 당했으니까. 그 정도로 용병들의 수법이 뛰어났다고 생각하게. 깨어나자마자 밖으로 나갔다가 치료소를 찾아다니는 라고아 경을 발견했네.”
“그래서 신전으로 안내하신 거군요?”
“맞네. 치료사보다는 고위 신관의 보살핌이 더 필요해 보였거든.”
치명적인 자상인 경우 치료사보다 고위 신관을 찾아가는 게 더 효과적이다.
치료사는 꿰매거나 약을 쓰지만, 고위 신관은 ―힐링이라 불리는 마법에 가까운 신성 주문으로― 즉시 치료하기 때문이다.
“마나 프트라스의 신전으로 안내하셨습니까?”
“그렇네.”
“크레아 씨는 어떻습니까?”
“운이 좋았네. 라고아 경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가 아니었다면, 고위 신관의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을 걸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능력이라면 강제로 고위 신관을 불러냈겠지만, 다투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면 크레아가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나 프트라스의 사제들은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라고 하자, 적극적으로 고위 신관을 불러냈다.
마나 프트라스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관계가 모녀지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솔론 남작과 타인록은 무사했던 모양이네요?”
“밤새 비를 맞아 감기에 걸린 것을 빼면, 건강하네.”
“밤새 비를 맞았다고요?”
“용병들이 그들을 폐가 마당에 묻으려고 했던 모양이야. 새벽에 너무 추워서 깨 보니 큰 구덩이 옆에 누워 있었다더군.”
“운이 좋았네요. 용병들은요? 치안대에 있습니까?”
“모두 사지가 잘려진 채로 죽었다 들었네. 단장은 달아나다가 당했는지 담벼락 아래서 발견됐는데, 등 한복판에 구멍이 나 있었고.”
“결국 그렇게 됐군요. 곧 태번으로 치안대가 들이닥치겠지요?”
크룰리를 떠나기 전 운송 책임자는 승객들의 실종을 치안대에 신고할 테고, 조사 과정에서 크레아의 부상이 드러나게 될 게다.
“정당방위니까 별일은 없을 걸세.”
“그 많은 용병들의 사지를 자른 걸 정당방위로 인정해 줄까요?”
“설사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감히 라고아 백작님에게 죄를 묻지는 못할 걸세.”
아무리 남부 왕국 치안대라도 그랜드 마스터가 강도로 돌변한 용병들을 죽인 걸 문제 삼지는 못할 터였다.
묵묵히 듣던 파비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대로 넘어가도 괜찮은 걸까요?”
“무슨 뜻인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의아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파비안이 작정한 듯 말했다.
“라고아 경 말씀입니다. 히르헤라 주둔지에 계실 때는 그렇게 잔혹하지 않으셨습니다.”
“용병들의 사지를 잘라 죽인 게 마음에 걸리나?”
“얼마 전 태양신에 대한 킬리언 헤일 공작님의 말씀 기억나십니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킬리언 헤일 같은 제국 대귀족의 말이 쉽게 잊혀질 리가 있나.
“어둠의 에테르에 뇌가 오염되면 그때 자아가 분열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미치광이가 되거나, 전혀 다른 인격의 사람이 된다고.”
“자네, 설마 라고아 경을 의심하는 건가?”
“이건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만, 오마르 경은 알아 두십시오. 마족들을 물리친 직후 라고아 경과 타메이온 깊숙이 들어간 적 있다고 한 거 기억나십니까?”
“물론이네. 코디악에 갔었다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마족들이 히르헤라로 넘어가지 못하게 막기 위해 모쿠바스의 군주가 되었다. 그 과정에 마물의 심장을 먹기까지 했다.
“그때 샤모스 군주의 권유로 마물의 심장을 먹었고,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말씀드렸었습니다.”
“코디악에서는 무시무시했다지?”
“예, 나중에 마력을 흡수하고 본래의 얼굴로 돌아오셨습니다만. 그 뒤로도 화가 나면 마족처럼 눈알이 붉게 물들곤 하셨습니다. 적에게 대하는 것도 이전과 달리 잔혹해지셨고요.”
파비안은 잠시 말을 끊었다.
이쯤에서 멈출 수도 있지만 기사의 양심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새벽 용병들의 사지를 자른 것도 그래서일 겁니다. 히르헤라에서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셨거든요.”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묘한 눈으로 파비안을 보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가신이 지금의 상황을 그때 일과 연관 짓다니.
“자네는 라고아 경이 어둠의 에테르에……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물론 라고아 경을 믿지만, 태양신조차 어둠의 에테르에 당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돼서요. 오마르 경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파비안은 부인도 인정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어떤 상태인지 확신할 수 없어서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좀 지나치시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군.”
대귀족들이 강도로 돌변한 용병을 죽이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용병의 사지를 잘랐다는 건 좀 심한 처사였다.
치안대는 대충 덮으려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보다 신조차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리는 어둠의 에테르가 가진 힘이 문제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자아가 태양신처럼 분열되어 버린다면, 히르헤라에서 일어났던 것보다 더한 일들이 벌어질 터였다.
파비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라고아 경이 태양신처럼 변하면 세상은 망할 겁니다. 누가 그분이 벌이는 일을 막겠습니까?”
“섣불리 단정하지 말게. 그분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니 태양신처럼 되지는 않을 걸세.”
“신조차 미치광이로 만든 힘인데, 사람이 견뎌 낼 수 있을까요? 어둠의 에테르가 이렇게 무서운 줄 알았으면 그때 목숨 걸고 말렸을 텐데. 다 제 잘못입니다. 두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말리지 않았으니.”
“너무 자책하지는 말게. 어쩌면 자네 뇌에도 어둠의 에테르가 침범했을 수도 있네. 하지만 자네는 멀쩡하지 않나? 라고아 경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자고.”
“하지만 화를 내실 때의 눈빛은 완전 마족입니다. 제가 타메이온에서 마족들을 많이 봤는데 흥분한 라고아 경과 똑같습니다.”
“…….”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반박하지 않았다.
지금 그렇다 아니다 단언할 수 없지만, 그런 상황이 지속되어 좋을 건 없었다.
“그 문제로 라고아 경과 대화를 해 본 적이 있나?”
“그 당시 체내에 받아들인 어둠의 에테르를 영기로 완전히 흡수하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눈이 빨개진다고.”
“라고아 경이 알고 계시다면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 생각하네.”
“안다고 해서 달라지겠습니까? 태양신도 막지 못한 힘인데?”
잠시 생각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돌연 파비안의 눈을 직시했다.
“자네는 어떤가? 자네도 모쿠바스에서 마족들의 마기에 오랜 시간 노출되지 않았나. 모르긴 몰라도 마법사들이 흑마법서를 연구하는 것보다 자네가 더 어둠의 에테르에 영향받았을 것 같은데.”
“물론 처음에는 저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작은 하늘 회로’를 쉬지 않고 돌린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걸세.”
“뭐가요?”
“방금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린 덕분에 무사했다고 하지 않았나. 그걸 자네에게 가르쳐 준 분이 라고아 경이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라고아 경은 더 깊은 경지에 들었을 걸세. 그분의 경지를 믿어 보자고.”
“하지만 결과가 아닌 걸로 나오니 그러는 겁니다.”
“태양신과 라고아 경은 다르네. 태양신은 자기가 어둠의 에테르에 영향받고 있다는 것을 몰랐지만, 라고아 경은 알고 적극적으로 대처를 했네. 어쩌면 지금도 싸우고 있는지 모르지. 그러니 결과도 다를 걸세. 신들이 라고아 경에게 그 일을 맡길 때는, 감당할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겠나. 신들을 믿어 보자고.”
‘그 신들 중에 하나가 미쳐서 죽임당했습니다.’
그러나 파비안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지금은 오마르 백작의 말처럼 믿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때마침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돌아왔다.
세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 층 식당으로 함께 내려갔다.
열심히 아침 메뉴로 나온 생선의 뼈를 바르던 파비안이 지나치듯 물었다.
“크레아 씨는 좀 어떻습니까?”
“벌써 거의 다 나았더라. 힐링이라는 거 엄청난 것 같아. 고위 신관만 된다면서?”
“예,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질병도 치유가 된다고 들었습니다.”
“병도 낫게 해 준다고? 대단하네.”
“그래서 ‘장사 중에 가장 큰 장사가 신전 장사’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신전 장사?”
“신관들에게 치료를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니까요. 혹시 돈을 요구하지 않던가요?”
“감사 제물을 바치라고 하던데. 그게 돈을 내라는 소리였나?”
“그래서 뭐라도 바치셨습니까?”
“바치긴 뭘 바쳐? 내가 치료받은 것도 아닌데. 그냥 감사하다고 인사만 했어.”
“그래도 별말 안 하던가요?”
“어.”
엘리오는 별말 없었다고 했지만 사실 사제들이 한동안 그의 주위를 맴돌았었다.
그걸 모르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은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사도라서 그랬나 보다 지레짐작했다.
때마침 솔론 남작 일행이 식당으로 내려왔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발견한 크레아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꾸벅 인사를 한 뒤 돌아갔다.
식사를 마칠 즈음 운송 책임자 라인 하이드가 엘리오 일행을 찾아왔다.
“저어, 모험가님들에게 몇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솔론 남작 일행을 거쳐 온 운송 책임자의 태도는 전에 없이 정중했다.
엘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요.”
“용병들이 보이지 않아 솔론 남작 일행에게 물었더니……. 지난밤에 일어난 일들을 말씀해 주시더군요. 방금 마나 프트라스 신전에서 크레아 씨를 치료해 준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용병들에게서 크레아 씨를 구해 준 사람이 라고아 모험가님이시라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예.”
“아! 승객들이 실종되면 지역 치안대에 신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용병들이 사라져서 치안대에 가 봐야 하는데, 제가 알고 있는 걸 말해도 되겠습니까?”
라인 하이드가 긴장한 얼굴로 라고아라는 이름의 젊은 모험가를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