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4
1264회. 그렇다면 당신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저녁 식사를 마치자 엘리오 일행은 하나 둘 이 층 숙소로 올라가고, 주점인지 식당인지 모를 일 층에는 대화가 필요한 두 쌍이 남았다.
엘리오와 루나 마일러스, 그리고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다.
엘리오는 루나 마일러스와 딸이 보낸 날들에 대해 묻고 또 물었다.
질릴 법도 하건만 루나 마일러스는 미소를 잃지 않고 답했다.
엘리오의 질문은 십 대를 지나 이십 대에 이르렀다.
그때부터는 지안뿐 아니라 조현덕의 이야기도 조금씩 나왔다.
엘리오는 딸뿐 아니라 사망한 지 오래된 사위에게도 관심을 보였다.
그에게는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인 까닭이다.
“차라리 데릴사위로 들이지 그랬어요? 조 방주의 셋째라면서요.”
“그러게. 그때는 왜 그런 생각을 안 했는지 모르겠네. 때가 되어 혼인을 시키는 데 급급했어.”
“지안이가 엄마랑 같이 살겠다고 안 했어요?”
“그랬지.”
“그런데 왜 내보냈어요?”
“너를 기다리면서 살게 하고 싶지 않았어. 지안이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지.”
“데릴사위로 함께 살았으면 사위가 살지 않았을까요?”
“그랬을지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던 조양상방과 달리 석경장은 조용했으니까.”
“석경장에서 살았으면 돌림병을 피할 수도 있었겠네요?”
“그랬을 거야. 돌림병이 돌면서 석경장은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시켰거든. 하지만 조양상방은 장사를 해야 하니 그럴 수 없었지.”
“사위는 관리가 되고 싶어 했어요?”
“그건 아니야. 그를 관리로 만들고 싶어 한 건 그의 부모들이었어.”
“조 방주 내외가요?”
“자식이 관리가 되면 조양상방에 도움이 되니까.”
“석경장에도 그런 걸 바라지 않았어요?”
“내가 처음부터 선을 그어서 욕심 내지 못하게 했어.”
“잘하셨어요.”
엘리오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남맹에서 크게 데인 그는 석경장이 이해관계에 얽히는 데 반대였다.
자칫 사돈과의 관계가 남궁세가와 그랬던 것처럼 뒤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두런두런 집안 이야기를 나눌 때, 누군가 훅 치고 들어왔다.
“야아! 분위기 좋네. 잠깐 합석해도 되겠수?”
엘리오가 고개를 돌렸다.
삼십 대로 보이는 남자 둘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서 있었다.
술에 취해 껄떡거리는 게 분명했다.
“싫으니까 그냥 가쇼.”
“가쇼? 나이도 어린 게 초면에 막말을 하네? 좋은 말로 하니까 내가 좆같아 보이지?”
족제비처럼 생긴 사내가 시비를 걸자 그의 일행이 실실 웃으며 싸움을 부추겼다.
“세상이 원래 그래. 친절하게 굴면 병신 취급을 한다니까. 가자, 좆 병신아.”
엘리오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워드 솔론 남작이 급히 달려왔다.
“이봐! 괜히 모험가님 앞에서 술주정하지 말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족제비가 솔론 남작의 상체를 거칠게 밀쳤다.
“넌 또 뭐야! 새끼야!”
사내의 갑작스러운 밀침에 솔론 남작이 옆 탁자 위로 엎어졌다.
‘우당탕!’ 소리와 함께 태번에 정적이 감돌았다.
일 층에 남아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족제비 일행에게 향했다.
그러자 족제비, 메르데프는 오히려 보란 듯 턱을 빳빳하게 치켜세웠다.
“나, 팔콘 용병단의 메르데프다! 아직 어비스 출입 허가서에 잉크도 안 마른 새끼가! 어디서 어른들 일에 끼어들어?”
순간 몇몇 용병들 입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메르데프는 어비스에 열 번 이상 출입한, 그야말로 베테랑이었기 때문이다.
몸을 일으켜 세운 솔론 남작이 막 메르데프에게 달려들려 할 때다.
엘리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솔론 남작을 제지했다.
“그만. 솔론, 물러나.”
“예.”
솔론 남작은 두말없이 뒤로 빠졌다.
메르데프가 조금은 의외라는 얼굴로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엘리오가 그런 그를 빤히 보며 물었다.
“형씨, 이름이 메르데프라고?”
“왜? 이제 슬슬 아니다 싶냐? 늦었어 새끼야. 너는 벌써 나한테 찍혔어.”
“어비스 출입 허가서에 잉크도 안 말랐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것도 몰라? 하! 이 새끼들, 그럴 줄 알았다. 그러니 무서운 줄 모르고 여자를 옆에 끼고…….”
메르데프의 말이 옆길로 새자 엘리오가 손을 뻗었다.
기세 좋게 떠들던 메르데프의 상체가 갑자기 엘리오에게 기울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용병의 멱살을 잡은 엘리오가 벼락처럼 손을 휘둘렀다.
철썩! 철썩! 철썩!
찰진 소리와 함께 메르데프의 얼굴이 좌우로 연거푸 돌아갔다.
뺨을 때린 직후 엘리오는 가볍게 상대를 밀어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메르데프가 괴성과 함께 청년에게 돌진했다.
“으아아아!”
그러나 결과는 조금 전과 마찬가지였다.
멱살이 잡힌 메르데프의 얼굴이 좌우로 세차게 돌아갔다.
이번에는 코피까지 터져서 양쪽 광대뼈가 붉게 물들기까지 했다.
다시 풀려난 메르데프는 몇 차례 머리를 흔들다가 롱소드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막 롱소드 손잡이에 닿으려 할 때, 엘리오가 차갑게 말했다.
“뽑으면 사지를 자른다.”
청년의 섬뜩한 경고에 메르데프는 멈칫했다.
머리는 수치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청년이 무서웠다.
자신의 몸을 구속하여 끌어당긴 그 수법은 보도 듣도 못한 것이었다.
‘소드 비기너인 내 상대가 아니다.’
롱소드로 향하던 메르데프의 손이 천천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엘리오의 손가락이 이번에는 메르데프의 일행에게 향했다.
“너. 뭐 하는 놈이야?”
메르데프의 뒤쪽에 서 있던 프라우가 황당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다짜고짜 욕이라니?
성질 같아서는 욕을 한 바가지 퍼붓고 싶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그는 일단 꼬리를 내리고 상대의 정체부터 파악하기로 했다.
“나는 팔콘 용병단의 집사인 프라우요.”
“프라우, 잘 들어. 또 내 앞에서 살살 싸움을 부추기면 대가리 터진다. 알았냐?”
“내가 언제…….”
“두 번 말하게 해도 대가리 터진다. 알았냐?”
“……알았소.”
프라우는 마지못한 얼굴로 답했다.
분위기가 두 번 말하게 했다가는 진짜 대가리를 깨부술 것 같아서다.
“둘 다 똑바로 서 봐.”
기막힌 요구였지만 이미 기가 꺾인 메르데프와 프라우는 거역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엘리오 앞에 나란히 섰다.
“얌전하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용병단 이름이 뭐라고?”
눈치를 보던 메르데프가 입을 열었다.
“팔콘이오.”
“새매의 그 팔콘?”
“그렇소.”
“이름은 좋네. 몇 명이야?”
“스물둘이오.”
“좀 되네.”
그러자 메르데프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대수림의 용병 중에 팔콘 용병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소.”
“됐고. 어비스 출입 허가서 얘기나 계속해 봐. 잉크도 안 말랐다는 말이 뭐야?”
“모험가든 용병이든 어비스에 가려면 출입 허가서를 받아야 하오. 그래서 초짜들에게 욕할 때 ‘출입 허가서에 잉크도 안 말랐다’고 하는 거요.”
“아하! 신고제와 허가제를 두고 말 많더니 결국 허가제로 결정한 모양이지?”
“남부 왕국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거지만……. 제국의 영향이 미치지 못하니까 따르고 있는 거요.”
“남부 왕국에서도 대수림을 관리하지는 않잖아.”
“영주나 영지병은 없지만, 남부 왕국들이 공동으로 만든 어비스 관리소는 있소.”
“거기서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그렇소.”
“안 받으면?”
“어비스에서 취득한 보물을 팔려면 어비스 관리소의 인증을 받아야 하오. 그걸 받지 못하면 장물로 취급되어 정상적인 거래가 불가능하고, 심할 경우 탈취당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오.”
“그러니까 누가 뺏어 가도 찾지 못한다?”
“그렇소. 뺏어 간 사람이 어비스에서 발굴했다고 등록하면 그가 주인으로 인정받소.”
“어비스 관리소의 인증이 필수겠네?”
“출입 허가서가 없으면 인증도 받지 못하니, 누구라도 허가서를 받아 두는 거요.”
“제국 모험가와 용병에게도 허가를 잘 내주나?”
“전쟁 직전에는 조금 문제가 있었는데 지금은 차별 없이 잘 내주고 있소.”
“지금은 왜 잘 내주는데?”
엘리오는 전쟁 직전의 상황을 알고 있었다.
남부 왕국이 허가제를 들고나온 것도 강철 골렘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차별 없이 잘 내준다니 의아했다.
“어비스를 개발할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오.”
“얼마나 부족한데?”
“어비스에서 하루에 죽어 가는 모험가와 용병이 수십 명이오. 군대를 보내면 좋겠지만 제국과 전쟁 중에 그게 가능하겠소? 그러니 출입을 까다롭게 하던 방침이 오래가지 못한 거요. 제국 출신 모험가와 용병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어비스를 개발해야 하니까.”
“그렇게 많이 죽는다고?”
“고대에 중부의 마수와 마물이 어비스로 갔다고 하는데, 내가 볼 때는 그 반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어비스를 한 번이라도 탐사한 사람들은 마수와 마물의 기원을 어비스라고 생각하오. 도감에도 없는 마수와 마물이 바글바글하기 때문이오. 그걸 생각하면 하루에 수십 명도 적은 편이지.”
“말이 짧아질라고 한다?”
엘리오의 지적에 메르데프는 뜨끔한 얼굴로 딴청을 했다.
“출입 관리소는 어딨어?”
“툼스톤 중앙에 있소. ‘어비스 출입 관리소’라는 간판이 있으니 찾기 쉬울 거요.”
“좋아. 잉크도 안 말랐다고 하는 거 보니 경험이 많은 가 봐? 당신은 몇 번 들어갔어?”
“열세 번이오.”
“그 정도면 많은 거야?”
“어비스 출입을 열 번 성공하면 숙련가라 부르고, 백 번 성공하면 마스터라 부르오.”
“숙련가의 기준이 너무 낮은 거 아냐? 고작 열 번 성공한 걸 숙련가라 한다고?”
“어비스에 들어가 보면 그 한 번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거요.”
“그래? 그렇다면 당신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지.”
“뭘 선택하라는 거요?”
메르데프가 불안한 눈으로 청년을 보았다.
선택과 관계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당신이 밀친 남자가 내 시종이야.”
“아, 그건 내가 사과하겠소. 술에 취해서 그만 제멋대로 손이 나갔던 거요.”
메르데프는 청년과 더 이상 얽히고 싶지 않아 얼른 사과부터 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정한 엘리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바람직한 자세야. 용병은 하는 짓이 개차반이라고 들었는데 점점 마음에 드네.”
“또 뭐가 남았소?”
“시종 때문에 당신에게 뭐라고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그래도 사과를 하니 기분이 좋네.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저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이만 돌아갔으면 하는데…….”
“선택할 기회를 준다고 했잖아.”
“아까부터 대체 무엇을 선택하라는 거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모르오.”
“내 부인이야.”
“그것과 선택이 관계가 있소?”
“있지. 내 부인을 훔쳐보던 당신의 눈빛이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귀하의 부인이라는 걸 알았다면 쳐다보지 않았을 거요.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소.”
메르데프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지만 통하지 않았다.
“물론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아. 눈이 저절로 간 거잖아. 맞지?”
“……맞소.”
“그래, 그거야. 죄 많은 눈을 뺄래? 어비스 안내를 열 번 할래?”
“…….”
황당한 제안에 메르데프는 답하지 못하고 눈만 끔뻑였다.
충격에 빠진 그를 대신해 팔콘 용병단 집사인 프라우가 나섰다.
“메르데프는 팔콘 용병단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오. 귀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렵소. 게다가 용병을 따로 고용하는 일은 용병단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오.”
“누가 고용한대? 눈알이냐? 어비스 안내냐?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는 거잖아.”
뻔뻔한 엘리오의 말에 메르데프와 프라우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