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5
1265회. 한 사람을 죽여 줘야겠다
툼스톤 모처.
“그런 말을 듣고도 그냥 나왔다는 것이냐? 쳐 죽이지 않고?”
다리를 꼬고 앉은 팔콘 용병단 단장 아우리아 샤를이 차가운 눈으로 프라우를 쏘아보았다.
프라우가 변명하듯 말했다.
“놈이 이상한 수법으로 메르데프를 제압해서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수법?”
“예, 놈이 이렇게 손을 뻗자, 메르데프의 몸이 놈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말과 함께 프라우는 조금 전 태번에서 청년이 했던 것처럼 손을 뻗어 보였다.
“마법사였나 보군.”
“마법 영창을 하지 않았습니다. 놈은 뭔가를 잡듯 불쑥 손을 뻗었습니다.”
“그랬는데 메르데프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예.”
“메르데프는 지금 어딨느냐?”
“숙소에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개인 짐을 꾸려서 찾아오라 했다고?”
“예, 오지 않으면 눈을 빼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미친놈.”
아우리아 샤를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팔콘 용병단은 툼스톤에서도 중급에 속하는 용병단이다.
남부 왕국의 귀족들이 한 번만 만나 달라고 애걸복걸하는데, 그런 용병단의 단원을 협박으로 빼 가려 하다니?
용병단 집사인 프라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런 프라우의 무기력한 모습에 아우리아 샤를이 버럭 소리쳤다.
“너는 용병단의 집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따위 유치한 협박을 듣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느냐!”
“그게, 단장님이 그 자리에 없으셔서 그런데…… 진짜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았습니다.”
“이런 멍청한. 그런 걸 협박이라고 하는 거다. 용병이 풋내기 모험가의 협박에 덜덜 떨다니. 네가 그러고도 용병이냐?”
“죄송합니다.”
프라우는 고개를 떨궜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생각하니 조금 어이가 없기는 하다.
용병이 ‘눈알을 빼겠다’는 모험가의 협박에 찍소리 못 하고 돌아서다니.
단장이 저렇게 펄펄 뛰는 것도 당연하다.
‘씨발, 아까는 왜 그랬지?’
단장의 말을 들으니 자신과 메르데프가 병신처럼 생각됐다.
그때 그의 귓가로 ―거짓말처럼 차분해진― 단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팔콘 용병단에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칠 년 됐습니다.”
“메르데프는 오 년이지?”
“그렇습니다.”
“프라우, 혹시 나의 용병단 운영 방식에 불만이 있느냐? 혹은 ‘이건 문제다’라고 생각되는 게 있다든지.”
“없습니다.”
“메르데프는 어떤가?”
“무슨 말씀이신지?”
“메르데프가 나의 용병단 운영 방식에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없었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아니, 문득 팔콘 용병단을 나가려고 꾸며 낸 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절대 아닙니다.”
“너는 아니라고 하자, 그런데 메르데프도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
아우리아 샤를이 심유한 눈으로 프라우를 응시했다.
소드 익스퍼트 상급인 단장의 서늘한 눈빛에 프라우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은 확실히 아니지만 솔직히 메르데프는 모르겠다.
“혹시 메르데프가 그 모험가와 말을 맞추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가 있잖느냐. 메르데프가 혹할 좋은 조건으로 유혹했다면 못 할 것도 없지.”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 모험가들은 오늘 툼스톤에 들어온 풋내기들입니다.”
“그래? 보이는 게 다라는 말이지? 태번에서 술을 마시다 시비가 벌어졌는데, 뜨내기 모험가가 메르데프를 제압한 뒤에 협박했다?”
“그렇습니다.”
“네 눈에도 그 모험가가 위험해 보였고?”
“예.”
“그자와 소드 익스퍼트 상급인 나를 비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자의 말 속에서는 형언하기 어려운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요.”
“귀족인가 보군. 그것도 지체가 높은.”
아우리아 샤를은 단번에 상대가 귀족 출신의 모험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고위 귀족들의 말과 행동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상당히 위압적이다.
프라우는 속으로 ‘귀족들의 그것과 조금 결이 다르다’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크게 보면 틀린 말도 아닌지라 반박하지 않았다.
“내일 아침 식사 후에 용병단을 집합시켜라. 태번에 가서 메르데프를 노리는 모험가와 만나야겠다.”
“알겠습니다.”
프라우가 묵례를 한 후 돌아서 나갔다.
홀로 남은 아우리아 샤를이 메르데프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 지 고민할 때, 누군가 소리 없이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왔다.
창문으로 사람 그림자가 비쳐 보이자 아우리아 샤를이 무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노크는 좀 하고 오시죠?”
“아우리아 샤를이 이 시간에 흑마법사와 만나고 있다는 게 알려져도 괜찮다면.”
아우리아 샤를이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돌아앉았다.
검은 로브를 입은 오십 대 초반의 남자가 어둠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도 창문에 반사된 형상이 아니었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모두 죽었다고 들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네요? 크레센트의 부활인가요?”
“그 정도는 아니고. 내 인맥으로 들어온 개인적인 의뢰라고나 할까.”
“전직 크레센트의 최고의원님에게 개인적으로 의뢰를 넣다니 보통 사람은 아니겠군요.”
“좋은 고객이었지.”
찰스 맨슨이 아우리아 샤를을 지나쳐 창가로 다가갔다.
아우리아 샤를의 시선이 그를 따라갔다.
“대수림까지 나를 만나러 온 건 아닐 테고, 바라는 게 뭐죠?”
“한 사람을 죽여 줘야겠다.”
“그건 내가 아니라 당신의 전문이 아닌가요?”
“나는 오래전에 실패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실패한 일을 나에게 해 달라는 건가요?”
아우리아 샤를이 황당한 얼굴로 찰스 맨슨을 보았다.
암살 조직 크레센트의 최고의원이자 7서클의 흑마법사가 실패한 일을 해 달라니?
“정확하다.”
돌아선 찰스 맨슨의 시선이 아우리아 샤를의 전신을 한차례 훑었다.
사십 대의 나이를 의심케 하는 앳된 얼굴에 풍만한 가슴과 늘씬한 다리, 남자라면 누구라도 가지고 싶어 할 만한 육체다.
아우리아 샤를은 그의 탐욕 어린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과거 그와 잠자리까지 함께했던 사이인 때문이다.
“농담이 심하시군요. 물론 우리도 다른 용병들처럼 보수만 확실하면 일을 가리지 않아요. 하지만 얼마를 제시하더라도 크레센트가 실패한 일은 떠맡을 생각이 없어요. 우린 평범한 용병단에 불과하다고요. 가만, 그건 핑계고 실은 내가 그리워서 찾아온 건가요?”
“이건 비단 내 고객만을 위한 일은 아니다.”
“설마 나를 위한 일이라는 사탕발림을 할 생각은 아니겠죠?”
“맞다. 너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팔콘 용병단과 너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일이지.”
“말도 안 돼. 당신의 터무니 없는 의뢰가 어째서 나와……. 가만, 혹시?”
문득 아우리아 샤를은 메르데프와 모험가를 떠올렸다.
지금 당장은 그것 외에 특이할 만한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맞다. 오늘 태번에서 팔콘 용병단 용병들이 낯선 모험가와 시비가 붙었었다지?”
“그 애송이 모험가가 당신의 목표물이라고요?”
찰스 맨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그런!”
충격에 아우리아 샤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하필 메르데프를 원하는 모험가가 찰스 맨슨이 암살에 실패한 사람이라니?
찰스 맨슨이 아우리아 샤를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이제 내 사탕발림을 들어 보겠느냐?”
“그 전에 그 모험가가 누구길래 당신 같은 사람이 실패를 했다는 건지부터 듣고 싶네요.”
“너도 들어는 봤을 게다.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북부의 그랜드 마스터…….”
순간 아우리아 샤를의 입이 쩍 벌어졌다.
“설마? 엘리오 라고아 백작인가요?”
“그렇다.”
“그가 툼스톤에 왔다고요?”
“오늘.”
“세상에! 말도 안 돼!”
흥분한 아우리아 샤를이 찰스 맨슨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한동안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던 아우리아 샤를이 찰스 맨슨을 노려보았다.
“지금 팔콘 용병단에게 그랜드 마스터의 암살을 의뢰하겠다는 거예요? 미치셨어요? 당신도 실패한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겠다고요?”
찰스 맨슨이 뻘쭘한 얼굴로 되물었다.
“불가능한 일이라면 너를 찾아왔겠느냐?”
“좋아요. 들어는 보죠. 말해 봐요. 우리 팔콘 용병단이 어떻게 그랜드 마스터를 죽일 수 있다는 건지.”
“최고급 마력총 열 정과 엑시티움 서른 개를 지원해 주마.”
“…….”
상상을 초월하는 제안에 아우리아 샤를은 한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최고급 마력총은 황실의 총사대에나 공급되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게다가 엑시티움 서른 개라니?
“소드마스터를 죽이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그 엑시티움요?”
“맞다.”
“판매된 적도 없지만, 판매된다면 하나에 200골드가 넘는다는 그 엑시티움을 서른 개나 준다고요? 삼대마탑에서 왜 그랜드 마스터를 죽이려고 하는 거죠?”
그녀는 단번에 암살 의뢰의 배후가 삼대마탑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이 아니고서는 최고급 마력총과 엑시티움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는 의뢰인에게 왜냐고 물은 적이 있느냐?”
“없죠.”
“그 정도면 신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아우리아 샤를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최고급 마력총 열 정에 엑시티움 서른 개면 죽이고도 남았다.
“대가는요?”
“네가 달라는 대로 주마.”
찰스 맨슨이 유령처럼 움직여 아우리아 샤를을 안아 올렸다.
아우리아 샤를이 하얗고 가느다란 두 팔로 찰스 맨슨의 목을 휘감았다.
***
다음 날.
아우리아 샤를은 팔콘 용병단을 이끌고 모험가가 묵고 있는 태번을 찾아갔다.
메르데프와 함께 태번으로 들어간 그녀가 메르데프에게 턱짓을 했다.
상대가 이곳에 있는지 확인하라는 뜻이다.
일 층을 구석구석 살피던 메르데프가 돌연 어깨를 움츠렸다.
창가 쪽 자리에 어젯밤의 청년이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앉아 있었다.
“저기 하얀 옷을 입은 여자 옆에 앉은 청년입니다.”
“일행이 좀 보이는데?”
“어젯밤에는 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껄떡거린 거냐?”
“죄송합니다.”
메르데프가 면목 없다는 얼굴로 눈을 내리깔자, 아우리아 샤를은 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문득 동석한 여자를 보니 용병들의 눈이 돌아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랜드 마스터가 데리고 다닐 만하네.’
자신도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이 아닌데, 미녀를 보니 맥이 빠진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천천히 젊은 모험가를 향해 걸어갔다.
이윽고 모험가 일행의 자리에 도달한 아우리아 샤를이 정중하게 말했다.
“팔콘 용병단의 단장인 아우리아 샤를이에요. 어젯밤에 우리 용병 둘이 실례를 저질렀다고 들었습니다. 술에 취해 그런 것이니 아무쪼록 넓으신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과 함께 그녀는 고개까지 꾸벅 숙여 보였다.
평소 고고하던 단장의 예상치 못한 모습에 용병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