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68
1268회. 막장, 엑소도
달리던 중 성녀가 염려되어 옆을 돌아보던 엘리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성녀는 강호를 주유할 때처럼 누구보다 빠르고 여유 있어 보였다.
샤스트라 파라크티의 육화된 몸에 십전무후 남궁연의 정신이 깃들었으니 어지간한 소드마스터들보다 강할 텐데 괜한 걱정을 했다.
가장 걱정했던 게 해결되자 엘리오의 혼잡스럽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쐐애액―!
등 뒤에서 대기를 가르는 마력탄의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려왔다.
고슬링 크나우프 후작과의 결투에서 마력탄에 맞은 기억 때문일까?
소리만 들었는데 소름이 오싹 돋았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위험 앞에서 그는 본능적으로 성녀를 감쌌다.
퍽―!
등 한복판에 뭔가 날아와 박혔다.
하지만 마력탄은 호신강기로 둘러싸인 그의 육체를 관통하지 못했다.
큰 충격이 느껴졌지만 엘리오는 자신이 부상당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평범한 마력탄이구나!’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품 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동공에 던졌다.
흑운차일(黑雲遮日)의 부적이다.
숨을 곳이 없으면 안 보이게 만들면 된다.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부적이 불길에 휩싸이더니 이내 재가 되어 흩날렸다.
자신이 위로 날아올라 마력총 쏘는 자들을 죽여도 되지만 그동안 일행 중에 사상자가 발생할 수 있으니 시야부터 차단한 것이다.
뭉글 뭉글 뭉글.
노천 광산 위로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삽시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자연스럽게 총성이 멎었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일행들에게 엘리오가 말했다.
“앞으로 1시간은 지나야 어둠이 걷힐 겁니다. 앞이 안 보이니 벽을 짚고 조심해서 내려가세요. 나는 잠깐 마력총 쏜 놈들이 누군지 알아보고 올게요.”
말을 마친 엘리오는 어기충소의 신법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과 달랐다.
지상 위로 날아 올랐지만 흑운차일의 구름 때문에 노천 광산 주변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엘리오는 한참을 더 위로 날아올라야 했다.
마침내 흑운차일에서 벗어난 그는 아래로 떨어져 내리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휘우우우―.
강풍이 일어나 흑운차일의 구름을 걷어 냈다.
노천 광산의 상단부가 시원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건 없었다.
적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흑운차일을 시전한 순간 달아난 것 같았다.
노천 광산 입구에 표표히 떨어져 내린 엘리오는 영기를 넓게 방사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기습을 한 사람들이 누군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노천 광산이 툼스톤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투덜거리던 엘리오는 주변을 돌아다니며 건질 만한 게 있는지 찾아다녔다.
한 시간쯤 돌아다니던 엘리오는 흑운차일의 구름이 걷히자 공동 아래로 훌쩍 몸을 날렸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엘리오의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중 다혈질인 파비안이 가장 먼저 물었다.
“마력총 쏜 놈들은 잡았습니까?”
“아니, 진즉에 튀었더라.”
“누군지는 알아내셨고요?”
“튀었는데 무슨 수로 알아내?”
그러자 파비안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야아, 라고아 경이 나섰는데도 안 되는 일이 있네요.”
“알고 보면 그런 일 많아. 그나저나 마력총에 맞은 사람 있어?”
“없습니다. 라고아 경은 괜찮습니까?”
“나? 왜?”
“성녀님이 라고아 경 몸에서 큰 소리가 났었다고 해서요. 어? 옷에 구멍이 났네? 등에 맞은 거 아닙니까?”
“맞긴 했는데 괜찮아. 옷에만 구멍이 난 거야.”
“와아! 다행이네요.”
잠시 후 엘리오 일행은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마력총에 피격당한 사건 이후 다들 위쪽을 경계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3시간쯤 더 아래로 내려가자 마침내 바닥이 나왔다.
노천 광산 밑바닥에 도착한 엘리오 일행은 지름이 5미터쯤 되는 구멍을 멍하니 보았다.
막연히 상상하던 동굴이 아니다.
지면 위에 붓으로 찍은 것같이 생긴 거대한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
어찌 보면 마치 검은 쟁반이 서 있는 것 같았다.
검은 점 안쪽에 흑운차일을 보는 것처럼 시커먼 구름이 휘돌아가고 있었다.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동굴이 아니잖아.”
파비안이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요. 저도 동굴로 알고 있었는데 이런 건 진짜 처음 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메르데프가 끼어들었다.
“과거에는 저기서 마수와 마물이 튀어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수와 마물의 기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고요.”
엘리오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까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눈으로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엘리오 일행이 홀린 듯 검은 어비스의 입구를 볼 때 메르데프가 반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비스로 진입하시기 전에 저 옆의 사무소에 출입 허가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엘리오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반대편으로 향했다.
어비스의 입구 맞은편 구석에 작은 목조 건물 하나가 서 있었다.
엘리오 일행이 우르르 다가가자 문을 열고 무장한 두 남자가 밖으로 나왔다.
파비안은 그들 중 한 사람에게 출입 허가서를 건넸다.
남자는 출입 허가서와 모험가들을 비교한 후 정중하게 말했다.
“확인했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 아무쪼록 좋은 결과 얻으시길 바랍니다.”
돌아선 파비안이 메르데프를 보았다.
“이제 가면 되나?”
“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메르데프는 경험자답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검은 점 앞에 도착한 메르데프는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메르데프가 마치 물에 빠진 것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호기심 많은 파비안이 검은 점 뒤편에 손을 뻗어 휘휘 흔들었다.
“라고아 경! 점 뒤쪽이 이렇게 텅 비어 있는데 메르데프는 어디로 간 걸까요?”
“어비스로 갔다잖아.”
“사람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리네요? 이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도 처음 본다. 일단 들어가 보자. 뭐 해? 안 들어가고?”
엘리오의 재촉에 파비안이 머뭇머뭇 허공에 찍힌 검은 점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파비안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발을 내딛지 못했다.
보다 못한 하워드 솔론 남작과 크레아, 타인록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파비안이 ‘어? 어?’ 하며 점 앞에서 비켜나자 엘리오와 성녀, 성기사가 검은 점 속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겨진 파비안은 한숨을 푹푹 내쉬다가 이를 악물고 검은 점 속으로 뛰어들었다.
검은 점 속으로 들어갈 때 엘리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녀의 손을 꽉 잡았다.
어디에 떨어지게 되더라도 루나 마일러스와 함께하기 위해서다.
검은 점에 들어선 순간 흑운이 앞을 가렸다.
하지만 다시 한 걸음 내딛자 거짓말처럼 흑운은 사라지고 광활한 대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 노천 광산의 지하 공동에 있었는데, 눈앞에 나타난 세상은 전혀 달랐다.
남부 대수림도 아니다.
병풍처럼 주변을 두른 푸른 산은 나무로 가득했지만 그 외 지역은 흙과 모래였다.
무성한 풀도, 대지를 잠식한 나무뿌리도 없었다.
기온도 대륙 중부처럼 온화했다.
검은 점에서 삼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목조 건물 수십 채가 중구난방으로 세워져 있었다.
그 목조 건물들 중앙의 공터는 시장통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툼스톤을 축소시켜 놓은 것 같았다.
넋 놓고 주변을 살피는 엘리오의 귓가로 루나 마일러스의 음성이 들려왔다.
“다른 세상이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엘리오가 확인하듯 되물었다.
“확실히 대수림은 아니죠?”
“응.”
엘리오 일행이 엘리오를 중심으로 하나 둘 모여들었다.
마지막으로 허공에 찍혀 있는 검은 점에서 파비안이 툭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파비안이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혹시나 두고 온 게 있을까 봐. 뒷정리는 확실하게 해야 하니까요.”
엘리오는 그의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을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메르데프에게 물었다.
“형씨, 이게 다야? 어비스가 위험하네 뭐네 하더니. 대수림보다 별거 없잖아.”
“그야 이곳이 안전지역이니까요. 우측에 보이는 산이 마나석 채굴 광산이 밀집해 있는 페트라 산입니다. 중앙의 벌판은 노천 금광이 있다고 알려진 에브리마 평원이고요. 말이 노천 광산이지 금 발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좌측으로 보이는 산이 약초 채집가들 사이에 성지로 알려진 파르톤 산입니다. 페트라, 에브리마, 파르톤은 완전히 토벌을 끝낸 곳입니다.”
“이곳에도 마을이 있어?”
“안전지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막장’이라는 뜻의 ‘엑소도’로 불립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라서요. 그래도 저 사람들이 대수림을 들락거리며 물자를 공급해서, 모험가와 용병 들이 편한 것도 있습니다. 물건 값이 좀 비싼 게 흠이지만요.”
“수수료를 많이 붙이나 보네?”
“부르는 게 값입니다.”
“장사는 잘되겠다. 그런데 툼스톤과 뭐가 다르다고 여기에 남아 있지?”
“무엇보다 이곳에는 자경단이 없습니다. 툼스톤보다 더한 무법 지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옆에서 살인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건 좀 심했다. 진짜 사람이 옆에서 죽어도 신경 안 써?”
“신경 안 쓰는 정도가 아니라 시체에서 돈이 될 만한 걸 털어 갑니다.”
“와아. 징그럽다. 왜들 그러고 산대?”
“오죽하면 막장인 엑소도라고 하겠습니까? 갈 데까지 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그 정도면 마수나 마물보다 사람이 더 무섭겠는데? 잠이나 맘 편히 잘 수 있겠나.”
“자기들끼리 신용은 지키는 모양입니다. 그래야 모험가와 용병 들이 이곳에 모여드니까요. 암거래가 이루어지는 곳도 이곳입니다.”
“암거래?”
“발굴한 보물이나 광산에서 빼돌린 마나석, 채집한 약초 따위를 비밀리에 팔고 사는 겁니다. 물물 교환을 할 때도 있고요.”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가 다시 물었다.
“엑소도건 뭐건 어차피 우리하고는 상관없고. 우샤스 운드라의 신상을 개척 지역에서 본 사람이 있다면서? 거기가 어디야?”
“좌측의 파르톤 산을 넘어가면 사막이 나옵니다. 사막부터가 토벌이 덜 된 개발 지역인데, 개발 지역 어딘가에서 봤다고 합니다.”
“하아! 사막이라고?”
엘리오가 한숨을 길게 내쉬자 메르데프가 서둘러 말했다.
“사막이 걱정하실 만큼 넓지는 않습니다. 군데군데 오아시스까지 있으니 지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가 봤어?”
“예, 세 번 지나가 봤습니다.”
“사막이 넓지 않다고 했지? 사막을 지나면 뭐가 나오는데?”
“바다요.”
“…….”
뜻밖의 말에 엘리오는 눈만 깜빡거렸다.
사막을 건너면 바다가 나온단다.
그런 곳에 정말 우샤스 운드라가 숨어 지낼 만한 곳이 있을까?
그런 곳은커녕 신상이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개발 지역 어딘가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으니 차근차근 뒤져 볼 수밖에.
“앞장서 봐.”
엘리오의 퉁명스러운 말에 메르데프는 굽실거리며 앞서 나갔다.
몇 걸음 걷던 메르데프가 멈칫하더니 엘리오를 향해 돌아섰다.
“저어, 자작님. 엑소도가 마지막 마을입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이곳에서 구입해야 합니다.”
“필요한 거 없어.”
“아, 예에…….”
다시 돌아서는 메르데프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짐마차도 안 보이는데 필요한 게 없다니, 어비스 경험자로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