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7
127회. 뒤에 달고 다녀도 되나
개방은 무림의 방파이지만 정체성이 애매한 집단이다.
우선 ‘정말 무림 방파냐?’ 하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드러낸다.
개방의 분타주들 중에는 나라에서 임명받은 단두(團頭)가 섞여 있었다. 단두는 큰 죄를 지어 나라에서 내쳐진 공신들이다. 그들은 무공으로가 아니라 임명직으로 분타주 지위를 누렸다.
무림 방파들은 큰 죄를 지은 자들이 대접받는 개방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개방 방도들의 행동도 손가락질받을 만했다.
그들은 평소 먹고살기 위해 안 하는 짓이 없었다.
대부분의 개방 제자들은 좀도둑질을 습관처럼 했고, 잔칫집이나 상갓집에서는 깽판을 부렸다. 은밀히 사파에 발을 걸친 이도 많았다.
개방이 협의를 지향해도 정의맹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것은 그런 여러 가지 이유에서였다.
백의개 서창은 단두로 정파와 사파를 오락가락하는 사람이었다. 본인 말로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는데, 그보다는 탐욕에 눈이 멀어서다.
“용서해 주시오. 두 분이 녹림의 고수이신 걸 몰랐소. 알았다면 마구잡이로 들어오지 않았을 게요.”
서창이 쉬지 않고 머리를 굽실거렸다.
연적하는 그에게서 대장부의 기개가 느껴지지 않자 그냥 밖으로 나갔다. 사실 개방의 분타주와 사적으로 나눌 말이 없기도 했다.
심통과 남궁천 남매, 설차수 일행이 부지런히 그 뒤를 따랐다.
사두마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던 서창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풍개, 투개. 너희는 마차의 뒤를 따라가 봐라.”
“예!”
경공이 뛰어난 두 방도가 즉시 자리에서 사라졌다.
서창은 방도들을 물린 뒤에 측근 하나를 은밀히 광명장원으로 보냈다.
당연히 연적하에 관한 정보를 팔아 먹기 위해서다.
심통이 연적하를 가리켜 ‘유명교의 저승사자’라 했으니 둘 사이에 뭔가 있으려니 생각한 것이다. 상대가 녹림의 도적인지라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
부당촌.
신시 말(오후 5시).
느지막이 맹림을 떠난 연적하 일행의 사두마차가 큰 마을 어귀로 들어섰다.
마부 이사는 ‘안빈반점’이라고 붙은 간판 앞에 마차를 세웠다. 어느덧 해거름 무렵이라 하루 묵어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연적하 일행이 마차에서 내리자 이사는 마방을 찾아 다시 이동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안빈반점의 방은 거의 비어 있었다.
덕분에 연적하 일행은 넉넉하게 방을 잡고 피로를 풀기로 했다.
짐을 풀고 식당에 다시 모인 사람들은 평상시처럼 두 개의 탁자로 모여 앉았다.
진설하는 여전히 연적하의 옆으로 갈 수 없었다.
연적하와 구천노도 심통, 그리고 청운검 남궁천 남매가 탁자 하나를 온전히 사용한 까닭이다.
음식을 기다리던 심통이 생각난 듯 물었다.
“남궁 공자, 개방이라는 곳에 대해 잘 아시오?”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요?”
“아침부터 거지들이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 같아서 말이오.”
“하하. 본래 개방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풀릴 때까지 종일 따라다니지요. 우리 정체가 꽤나 알고 싶은 모양입니다.”
“개방은 정의맹에 속해 있소?”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그들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계셔서요.”
“왜 인정하지 않는 거요?”
“개방의 분타주들 중에 ‘단두’라고 불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나라에 중한 죄를 지은 공신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황제가 단두로 임명해 개방에 보낸 거죠. 강제로 거지를 만들되, 살길을 열어 준 셈이라고나 할까요? 그걸 두고 ‘강호가 죄인을 받아주는 곳이냐?’며 반발하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개방 방도들의 언행이 정사지간을 오락가락해서 싫어하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저런 이유로 개방은 아직 정의맹에 들지 못했습니다.”
심통이 불퉁한 어조로 말했다.
“쯧! 그렇게 양다리를 걸친 놈들을 뒤에 계속 달고 다녀도 되려나.”
“생각하시는 만큼 고약한 자들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부분 협의를 추구하지요. 개방 출신으로 강호에 유명한 협객도 적지 않습니다.”
개방에 대한 나름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연적하가 한마디 했다.
“심 노인, 뭘 그렇게 까칠해? 우리가 뭐 나쁜 짓 하러 다니는 거 아니잖아. 내버려 둬. 날도 추운데 지치면 그만 따라오겠지.”
“공자님, 본래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이 무서운 법입니다. 웬만하면 강호에서는 뒤에 뭘 달고 다니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없거든요.”
“그야 심 노인이 못된 짓만 하고 다녔으니까 그렇지. 협의를 추구한다잖아. 별일 없을 거야.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괴롭히면 안 돼.”
연적하는 옛 추억에 젖어 관대함을 보였다.
경험 많은 남궁천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서 괜찮으려니 생각한 것이다.
“끙! 알겠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버려 두겠습니다.”
“저, 저, 우리에게 덤터기 뒤집어씌우려고 말하는 거 봐. 사람이 깔끔하지 못해.”
“흐흐. 아랫사람은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해 두어야 뒤탈이 없습니다.”
연적하가 심통을 지그시 보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난 심 노인이 사고 쳐도 책망하지 않을 거야. 사람이 빡빡하게 사는 거 아니야.”
“예. 그 말씀 기억해 두겠습니다.”
“어? 무슨 말? 빡빡하게 살지 말라는 말?”
“제가 사고 쳐도 책망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요. 분명히 들었습니다.”
연적하가 황급히 부연 설명을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심통이 작정하고 못된 짓을 할 것 같아서다.
“그만큼 열린 마음으로 살라는 소리지.”
“예, 감사합니다.”
“뭘 감사해? 설마 사고 칠 생각으로 미리 인사하는 거야?”
“염려 마십시오. 제가 과거에 못된 짓을 좀 했지만 계획해서 그런 적은 없습니다.”
“그게 더 무서운 거야. 나쁜 짓을 조절할 줄 모른다는 거잖아.”
연적하와 심통이 툭탁거리는 동안 점소이가 음식을 내왔다.
두 탁자 모두 음식을 먹는 동안은 조용했다.
식사를 마친 일행은 주인에게 돈을 더 주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게 시켰다. 개방의 분타로 사용된 맹림에서 묻어 온 잔재를 털어 내기 위해서다.
주인이 물을 준비하는 동안 연적하 일행은 식당에서 한가하게 차를 마셨다.
설차수 일행이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더니, 곧 진설하가 일어나 연적하에게 다가갔다.
“연 소협, 저희들이 여쭐 게 있는데 잠시 시간을 내주시겠어요?”
“네.”
연적하는 흔쾌히 자리를 옮겨 갔다.
화용독심 남궁연이 허전한 눈으로 연적하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보았다. 항상 함께하던 사람을 데리고 가니 뭔가 빼앗긴 기분이다.
“연아,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남궁천의 물음에 남궁연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그래? 음식이 입에 안 맞았느냐? 얼굴이 영 개운치가 않아 보이는데?”
“괜찮아요.”
남궁연은 짧게 답하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따라 옆자리의 대화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 같다.
“뭘 물어볼 게 있다고요?”
설차수가 멋쩍은 얼굴로 일행을 대표해서 답했다.
“저희가 십두마병에 대해 조사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데요. 심 노선배님에게 언뜻 들으니 이전에도 두 번이나 그들과 만난 적이 있다면서요?”
“예.”
“그들에 대해 듣고 싶어서 모셨습니다.”
“아…….”
잠시 연적하가 생각을 정리할 때다.
옆에 앉아 가만히 듣고 있던 진설하가 설명하듯 말했다.
“제가 십두마병들에 대한 정리를 하고 있어요. 특별히 사망한 이후의 변화에 대한 특징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차이가 좀 나는 것 같더라고요.”
말과 함께 진설하가 연적하 앞에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조목조목 가리키며 말을 이어 나갔다.
“태산 광풍채 채주인 사마단의 경우 크기가 무려 일 장(약 3미터)이나 되고, 입에서 불을 뿜었잖아요. 그리고 구선산의 도적은 오 척(약 150센티) 조금 넘는데 정수리에 뿔이 났고, 손톱이 칼날 같았고요.”
연적하는 진설하의 기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정리를 해 놓으니 확실히 어떤 차이가 있는지 눈에 들어왔다.
“그전에 만났던 두 명의 십두마병은 좀 달랐다고 들은 것 같아서요. 그것도 기록에 남겨 두려고요.”
“처음 만난 십두마병은 대력귀라는 자예요. 키는 육 척(약 180센티) 정도로 커졌는데 피부가 용암처럼 검붉었어요. 몸에서 연기도 풀풀 났고요.”
“와아! 정말 지옥에나 있을 법한 괴물이네요.”
“피부가 얼마나 단단하던지 칼도 잘 안 박히더라고요. 그자는 피부가 바위처럼 단단하고, 빨랐어요.”
진설하가 연적하의 말을 요약해 나갔다.
“대력귀, 키는 육 척, 바위 같은 피부, 빠르다. 그리고요?”
“그다음에는 개봉 용희루에서 만난 여자 십두마병인데 이름은 몰라요. 상방 방주가 나와 의형제들을 죽이려고 데려온 사람이라서.”
“어머, 그런 일도 있었어요?”
“전체적으로 대력귀와 비슷했어요. 육 척에 바위 같은 피부. 그런데 그 여자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불덩어리가 날아오더라고요. 어찌나 뜨겁던지 근처에 오기도 전에 열기가 느껴졌어요.”
기록을 마친 진설하가 고개를 저었다.
“와아! 제 눈으로 사마단을 봤는데도, 막상 글로 옮겨 놓으니 거짓말 같네요. 정의맹에서 우리의 보고를 믿을지 모르겠어요.”
설차수의 입에서도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 솔직히 나도 그게 걱정이다. 애써 모은 정보가 버려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직접 보고도 이게 뭔가 싶은데……. 다른 분들은 오죽하겠느냐?”
“그러게 말입니다. 미쳤다는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유근식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십두마병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뒤에 연적하가 일어나려 할 때다.
진설하가 강하게 연적하의 팔을 잡았다.
“아직 씻을 물도 준비 안 된 것 같은데, 급한 일 없으면 조금 더 이야기해요.”
차마 팔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엉거주춤하던 연적하가 다시 주저앉았다.
남궁연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왜? 무슨 근심이라도 있는 게냐?”
남궁천이 의아한 얼굴로 동생을 바라보았다.
조용히 차를 마시다 말고 갑자기 한숨을 내쉬니 은근 걱정이 됐다. 지혜로운 그녀가 한숨을 쉴 정도로 큰일이 다가오나 싶어서다.
“아니에요.”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뭘 잘못 먹은 듯 속이 조금 답답해서 그랬을 뿐이니까.
***
량산현.
광명장원.
교당 당주인 환영신마 웅재귀가 흑암대 대주 암혼귀살 사도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녹림의 총순찰이라는 자가 맹림에 나타났다?”
“서창이 보낸 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구선산의 십두마병인 잔혈도부 곡일기를 죽인 자가 그자라고 했던가?”
“예.”
얼마 전 백화검 소무진과 백절검 이신웅이 도적들을 제녕의 관부에 넘겼다. 그러나 제녕의 맹주가 광명 장원인지라 도적들에 관한 것은 곧바로 광명장원에 전해졌다.
“너는 그자를 감당할 자신이 있느냐?”
“맡겨만 주십시오!”
사도영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고작 현급 고수에서 십두마병이 된 곡일기와 달리 자신은 성급 고수였다.
웅재귀가 애매한 얼굴로 사도영을 바라보았다.
다른 건 둘째치고 ‘십두마병이 죽었다’는 데서 뭔가 불길했다.
사도영이 고수라 해도 그 역시 십두마병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결국 웅재귀는 사도영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작 녹림 총순찰 하나를 잡자고 십두마병을 둘이나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사도영은 곡일기보다 뛰어난 고수이기도 했다.
“흑암대를 이끌고 가서 처리해라. 곡일기를 죽인 자이니 쉽게 생각하지는 말고.”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사도영과 흑암대 스무 명이면 과한 수준이었다.
“당주님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사도영의 이마가 ‘쿵’ 하고 바닥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