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
128회.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요?
부당촌.
안빈반점.
연적하 일행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창가에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마부 이사가 마차를 끌고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그때 대여섯 명의 거지들이 객잔 앞을 우르르 지나갔다.
창밖을 보던 연적하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아침부터 거지가 많네.”
“그러게 말이다. 오늘따라 유별나군.”
청운검 남궁천이 가볍게 눈을 찡그릴 때다.
무리 중에서 젊은 거지 하나가 갑자기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연적하를 향해 빠르게 말했다.
“서창 단두가 보낸 사람이 광명장원으로 갔습니다. 뒤를 조심하십시오.”
그러고는 대답도 듣지 않고 급히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멍하니 바라보던 연적하가 남궁천에게 물었다.
“형님, 거지가 뭐라고 한 겁니까?”
“흠! 맹림에서 만났던 서창이라는 사람이 단두였군. 그자가 광명장원에 우리의 행선지를 알린 모양이야. 협의를 추구하는 개방 방도가 그 사실을 몰래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이고.”
“복잡하네요.”
“단두가 개방과 다른 길을 가면 저렇게 따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생기지. 그나저나 이제 광명장원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쩝!”
남궁천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제 거지들이 뒤따르는 걸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한 게 떠올라서다. 선심을 쓰고 하루 만에 이렇게 꼬여 버리니 면목이 없었다.
연적하는 슬쩍 심통의 얼굴을 보았다.
거지들의 미행을 신경 쓰는 심통에게 뭐라고 한 일이 떠올라서다.
심통은 보란 듯 만면에 득의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심 노인, 뭐 기분 좋은 일 있어?”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실실 웃어?”
“흐흐, 제가 웃었나요?”
“저거 봐. 광명장원에서 노릴지도 모른다는데 좋다고 웃는 건 무슨 심보야.”
“공자님이 계시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십두건 백두건 저는 신경 안 씁니다.”
“와아. 말이나 못하면…….”
고개를 휘휘 젓던 연적하는 때마침 사두마차가 반점 앞에 도착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적하가 막 반점 밖으로 나가려는데 심통이 물었다.
“이번에도 거지들이 따라붙으면 어떻게 할까요?”
“…….”
잠시 멈칫하던 연적하가 답했다.
“내버려 둬. 괜찮은 거지들도 있잖아.”
“예.”
심통은 두 번 묻지 않았다.
아까의 그 젊은 거지가 아니었다면 은밀하게라도 죽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연적하의 말대로 괜찮은 거지도 있으니 내버려 둘 참이다.
아까의 그 젊은 거지는 알까?
자신의 그 행동으로 수십 명의 거지가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을.
***
정오 무렵.
연적하 일행이 탄 사두마차가 막 조동촌을 지날 때다.
흑의를 입은 무림인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마차 앞을 가로막았다.
히히힝! 푸르륵. 푸륵.
깜짝 놀란 이사가 급히 고삐를 당기자 말들이 멈춰서 거칠게 투레질을 했다.
마부석 옆에 타고 있던 유근식이 흠칫 놀라 소리쳤다.
“누군데 앞을 막는 거요!”
흑의인들 중에 있던 흑암대 대주 암혼귀살 사도영이 한 걸음 나섰다.
“이 마차에 녹림 총순찰 연적하가 타고 있느냐?”
“그런데 누구신지?”
사도영은 그를 무시하고 소리쳤다.
“본좌는 광명장원에서 온 사람이다. 녹림 총순찰 연적하는 당장 나와라!”
덜컥 소리와 함께 마차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 여섯 명이 차례대로 나왔다.
사도영과 눈이 마주친 연적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어? 구면인 것 같은데. 누구시라고?”
‘헉!’
상대를 확인한 사도영은 가슴이 철렁했다.
자신의 탈혼수라기를 단칼에 박살 내 버린 소년이었다.
삼 년쯤 전 수월상방에서 팔주령을 탈취하던 중에 그를 만난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저놈이 녹림의 총순찰이었구나!’
그날 자신은 물론 웅재귀까지 급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팔주령이 우선인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저놈의 무위가 너무 뛰어나서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사도영이 홱 돌아섰다.
“즉시 돌아간다!”
말과 함께 그는 미련 없이 경공술을 펼쳐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십여 명의 흑의인들도 나타날 때처럼 흔적도 없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대답을 기다리던 연적하가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누구시냐고.”
“아는 사람이었느냐?”
남궁천의 물음에 연적하가 고개를 저었다.
“낯은 익은데 아는 사람이 아니에요. 어디서 본 것 같긴 한데…….”
경험 많은 심통이 한마디 했다.
“공자님, 흑의를 보니 삼 년 전 강남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놈들 같습니다.”
“아! 그래. 어디서 봤다 싶었더니. 그때 본 사람들이었군. 그날도 팔주령인가 뭔가 때문에 상방 사람들을 꽤 많이 죽였었지?”
“맞습니다. 이제 보니 유명교 놈들이 팔주령을 빼앗기 위해 저지른 일이었군요.”
남궁천이 연적하를 힐끔 바라보았다.
“삼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아, 예. 그러니까 삼 년쯤 전이었어요.”
연적하는 강남의 녹림대회에 가던 중 경험한 기괴한 일을 들려주었다.
“……그때 저 사람하고 또 한 늙은이가 있었는데, 몇 대 맞더니 그냥 달아나 버리더라고요.”
“허! 그런 일이 있었구나.”
남궁천이 고개를 끄덕일 때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궁연이 입을 열었다.
“적하야. 그 상방의 이름이 혹 수월상방이었어?”
“어? 네. 누님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후후! 그럼, 너와 오봉십걸들이 비룡문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겠구나?”
“맞아요.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누님이 모르는 건 뭐예요?”
“글쎄. 뭘까나?”
남궁연이 빙긋 웃었다.
비룡문의 정체를 두고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이런 데서 알게 될 줄이야!
“왜 하필 비룡문이라고 지은 거야?”
“제가 의형제들에게 가르친 구천세법 일 식의 이름이 비룡승천이거든요. 그래서 비룡문이라고 했던 거예요.”
“아! 승천문을 도우러 간다는 이야기가 거기서 나왔구나. 나중에 진짜 승천문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겠다.”
“와! 지금 나 소름 돋았어요. 누님은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요?”
연적하는 진심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봉십걸들만 알고 있는 삼 년 전의 일들을 눈으로 본 것처럼 말하다니!
연적하 옆에 장식처럼 서 있던 진설하가 한마디 던졌다.
“추운데 이제 그만 들어가죠?”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하나 둘 마차로 돌아갔다.
설차수가 진설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잘했어. 그렇게 하는 거야.”
***
량산현.
광명장원.
교당 당주 환영신마 웅재귀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뭐라? 녹림의 총순찰이 삼 년 전 수월상방을 칠 때 만났던 그 어린놈이라고?”
암혼귀살 사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놈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철수했습니다. 그놈도 저를 알아보는 눈치였습니다.”
“세상 좁군.”
웅재귀는 기가 막혔다.
그날의 싸움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백두마군이 된 자신을 처음으로 몰아붙인 자이니까. 그런 자를 하필 제녕에서 다시 만나게 되다니.
“녹림의 총순찰이라는 놈이 제녕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냐?”
“그것까지는 아직 알지 못하겠으나 동행하는 자들이 여섯이나 있었습니다.”
“유명교의 저승사자니 뭐니 떠든 것을 보면 본교에 적대적인 목적으로 다니는 것일 게다. 백의개를 통해 놈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라.”
“예.”
“그것과는 별개로 흑백쌍마와 함께 가서 놈의 무위를 확인해 보거라.”
사도영이 흠칫 놀란 눈으로 웅재귀를 보았다.
흑백쌍마는 광명산장의 호법들로 자신보다 뛰어난 전대의 거마들이었다.
“송구하오나 놈의 무위를 확인하라 하심은 무슨 뜻이신지요?”
“죽일 수 있으면 죽이고, 그게 힘들면 적당히 몸을 빼라는 말이다.”
“예!”
힘찬 대답과 달리 사도영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삼 년 전에 당한 강렬한 기억 때문일까?
그놈의 뺀질뺀질한 면상을 떠올리기만 해도 왠지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풀 죽은 사도영을 보며 웅재귀가 말했다.
“팔주령 구하기가 쉬운 줄 아느냐? 죽일 수 있으면 죽이라는 거지, 이 일에 네놈과 흑백쌍마의 목숨을 걸라는 소리가 아니다. 알아들었느냐?”
“아! 예.”
그제야 사도영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그놈이 본교의 일에 어느 정도나 걸림돌이 되는지 알아야 대비를 할 수 있다. 십두마병 셋이라면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을 테지.”
“반드시 놈의 목을 잘라 오겠습니다!”
자신이 웅재귀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 사도영은 막판에 큰소리를 쳤다. 사실 그럴 수 있으면 꼭 그러고 싶은 마음이었다.
***
후와촌.
신시(오후 3시-5시) 무렵.
이십 호쯤 되는 작은 마을 앞에서 연적하 일행의 사두마차가 잠시 멈춰 섰다.
마부석 옆에 나와 있던 남궁천이 의아한 눈으로 이사를 바라보았다.
“왜 멈춘 것이오?”
“조동촌에서 이곳까지 대략 두 시진(4시간) 정도 걸린 듯해서요. 지금 움직이면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까요?”
“아!”
남궁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직 낮이라 그런 부분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마부의 말이 맞았다.
잠깐 고민하던 남궁천이 마차를 향해 물었다.
“적하야! 이 마을을 지나치면 노숙하게 될지도 모른다는데, 어쩌면 좋겠느냐?”
콕 찍어 물어볼 사람이 없어 그에게 슬쩍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차 안에서 그 문제를 두고 한동안 설왕설래하더니, 곧 연적하의 음성이 들려왔다.
“형님! 그냥 가지요. 어차피 마을이 작아서 방을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것도 같구나. 알겠다!”
대화를 듣고 있던 이사가 ‘이려!’ 소리와 함께 가볍게 채찍을 휘둘렀다.
사두마차가 다시 힘차게 전진했다.
이사의 염려대로 땅거미가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달렸지만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궁천은 노숙지를 찾기 위해 눈에 힘을 잔뜩 주어야 했다.
“저곳으로 합시다.”
남궁천이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이윽고 헐벗은 나무숲 사이의 우묵한 곳에 마차가 멈춰 섰다.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내리자 이사는 마차를 살짝 돌려 앞을 막았다. 그러자 바람길이 막혀 노지(露地)임에도 제법 아늑해 보였다.
수차례의 노숙으로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각자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설차수 일행은 부지런히 땔감을 구해 왔고, 남궁천 남매는 주위를 정찰했다.
연적하와 심통은 마부와 함께 노숙할 자리를 평평하게 다듬었다.
물론 ‘마부를 돕는다’는 건 두 사람의 마음뿐이다.
실제로는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기도 전에 이사가 다 끝내 버렸으니까. 일 자체도 간단했지만 워낙 이사의 손이 빨라서다.
이사는 연적하와 심통의 도움을 바라지도 않았다.
연적하와 심통이 알면 조금 억울하겠지만, 사실 그는 두 사람의 무공이 가장 강해 그저 남아서 쉬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