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4
1284회. 보호비요?
아케리오 용병단은 남부 왕국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중급 용병단이다.
단장인 우레아는 알바로스 왕국의 남작으로 왕궁 기사단 부단장까지 역임한 적이 있다.
잘나가던 그는 기사단 소유의 마력총 밀반출 혐으로 작위를 박탈당한 뒤, 보스타니아로 건너가 아케리오 용병단을 만들었다.
본래 그 정도 죄목이면 평생 지하 감옥에서 썩어야 하지만 돈을 써서 작위 박탈 정도로 무마했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 있다.
여하튼 그는 용병단을 창설한 뒤 열심히 규모를 키워 나갔다.
그러면서 검술 수련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용병단장의 실력을 보고 의뢰를 맡기는 게 일반적인 정서인 까닭이다.
소드 익스퍼트에 오른 그는 소드 익스퍼트인 떠돌이 블레크를 부단장으로 영입했다.
그 뒤로는 그야말로 성공 가도를 달렸다.
부단장이 여자 문제로 사고를 몇 번 쳤지만 용병계에서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뭐지?’
우레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
무던하게 생긴 청년이 눈앞에 훅 나타나더니, 몸에 마비가 찾아왔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다.
부단장인 블레크도 자신처럼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힘을 써 봤지만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처음 겪는 일에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벌렁거리고 숨까지 가빠 왔다.
“하아! 하아! 하아!”
헐떡이는 그의 귓가로 청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이, 침착해. 그러다 죽겠다. 참새야? 왜 이렇게 성질이 급해?”
그 말에 우레아는 억지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닌 게 아니라 정신 놓고 있다가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면 그게 인생인가!
끝내 우레아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뚱한 얼굴로 보던 엘리오가 우레아의 귀싸대기를 후려쳤다.
‘철썩!’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우레아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외부의 충격 덕분일까?
꺽꺽거리기만 하던 우레아가 조금씩 숨을 내뱉고 들이마셨다.
그때 구울과 붉은 피부의 엘더 구울 들이 마차를 밀치고 들어왔다.
“크어어어!”
“크르르르―!”
우레아 단장과 블레크 부단장의 눈동자가 엘더 구울을 향했다.
두 사람이 속으로 ‘끝났다’고 생각할 때다.
“파비안, 하워드, 크레아 씨는 구울, 그리고 오마르 경은 빨간 놈들을 맡아 봐요.”
말과 함께 엘리오가 롱소드를 뽑아 정면으로 던졌다.
쐐애액―!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롱소드가 엘더 구울 한 마리의 가슴을 관통한 뒤 하늘로 솟구쳤다.
이윽고 부드럽게 반원을 그리며 회전한 롱소드는 또 다른 엘더 구울의 가슴을 꿰뚫고 엘리오의 손으로 돌아왔다.
가슴에 구멍이 난 두 마리 엘더 구울은 비틀거리며 몇 걸음 가다 픽 쓰러졌다.
“이 정도면 되겠죠?”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가볍게 고개를 까딱이고는 바람처럼 달려 나갔다.
힘차게 뽑아 든 그의 롱소드에서 시퍼런 광망이 뻗어 나갔다.
우우웅―!
소드마스터의 전유물이라는 마나 블레이드다.
그걸 본 우레아 단장과 블레크 부단장이 눈을 부릅떴다.
청년의 기이한 검술은 보고도 이해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했지만, 마나 블레이드는 다르다.
지척에 소드마스터를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다니!
두 사람은 숨 쉬는 것도 잊고 소드마스터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이윽고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더 구울이 맞부닥쳤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마나 블레이드가 섬전처럼 엘더 구울의 몸을 베었다.
엘더 구울의 피부는 강철만큼이나 단단하다고 알려졌지만 마나 블레이드 앞에서 무기력했다.
서걱! 서걱―!
두 팔이 잘려 나갔지만 엘더 구울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물기 위해 아가리를 벌렸다.
“캬아―!”
순간 마나 블레이드가 구울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빠각!’ 소리와 함께 구울의 머리가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 기세를 몰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다른 구울을 덮쳤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목을 노렸지만 구울이 두 팔로 막았다.
결과는 같았다.
마나 블레이드가 구울의 두 팔을 자르고, 마지막으로 목을 베었다.
구울은 흉측한 외모와 달리 지능이 있다.
연속으로 두 마리 구울이 더 죽자 마지막 엘더 구울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엘더 구울이 마차 위로 뛰어오른 순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롱소드를 던졌다.
이른바 소드 핑거 검술을 사용한 것이다.
쉬이익―!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롱소드가 엘더 구울의 등에 박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롱소드는 ‘빡!’ 소리와 함께 뒤로 튕겼다.
롱소드에 마나를 충분히 담지 못해 생긴 일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계면쩍은 얼굴로 입맛을 다실 때, 엘리오의 검결지가 땅에 떨어진 롱소드를 가리켰다.
휘릭―.
위로 날아오른 롱소드가 저만치 달아난 엘더 구울의 등을 꿰뚫고, 새처럼 날아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손에 내려앉았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롱소드를 움켜잡을 때 파비안이 소리쳤다.
“오마르 경! 도와주십쇼!”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즉시 다섯 마리 구울과 싸우고 있는 파비안 일행에게 달려갔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가세하자 인간과 구울의 싸움은 이내 끝났다.
다른 용병들과 구울들의 싸움도 서서히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마지막 구울의 목이 잘렸다.
환호성을 지르던 용병들은 이내 쭈뼛쭈뼛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갔다.
용병들이 다가오자 엘리오는 단장과 부단장의 점혈을 풀었다.
우레아 단장과 블레크 부단장은 몸이 움직여지자 재빨리 청년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사, 살려…….”
“살려 주십쇼!”
그러자 엘리오가 말했다.
“우리를 보호해 준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갑자기 우리를 죽일 듯 공격한 거야?”
“…….”
두 사람은 눈알만 굴릴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설마 구울들에게 먹이로 던져 주려고 그런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용서해 주십쇼!”
엘리오는 아니라고 한 남자를 지그시 보며 되물었다.
“아니라고?”
블레크 부단장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해십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저희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게 나쁜 짓이라는 건 알고 있나 보네?”
“예?”
엘리오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용서해 달라던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이, 당신 이름이 뭐야?”
“우레아입니다.”
“단장이야? 부단장이야?”
“제가 단장이고, 제 옆이 부단장입니다.”
“부단장은 아니라고 했는데, 당신은 왜 용서해 달라고 했어?”
엘리오의 물음에 우레아는 눈을 내리깔고 답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그러자 블레크 부단장이 끼어들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그 말은 설마……. 진짜 이분들을 미끼로 쓰려고 그랬다는 겁니까? 단장님에게 실망입니다.”
엘리오가 부단장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까 단장이 자신의 계획을 부단장에게 설명하는 걸 들었는데 참 뻔뻔한 사람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블레크 부단장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와 다른 용병들은 그저 단장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입니다.”
엘리오가 피식 웃었다.
다른 용병들은 단장과 부단장의 지시대로 움직인 게 맞지만 그는 다르다.
“이봐. 블레크 부단장. 어딜 묻어 가려고 그래? 단장과 당신이 아까 나눈 대화를 내가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우리를 가리켜 얼치기니 좆밥들이니 하며 나눈 대화를?”
청년의 말에 블레크 부단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단장이 쓴 단어들을 열거하는 걸 보니 진짜 들은 게 확실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그는 청년 앞에 납작 엎드렸다.
“용서해 주십쇼! 말씀을 들으니 확실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저는 단장이 하는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맹세코 이번 일은 단장이 혼자서 내린 결정입니다!”
“야아, 이 잔머리 봐라. 이 와중에도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단다. 당신은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어.”
“자, 잘못했습니다!”
뒤늦게 블레크 부단장이 머리를 땅에 처박고 빌었다.
무심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엘리오가 발로 부단장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윽!”
묵직한 신음과 함께 블레크 부단장이 옆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몸이 멈추자 블레크 부단장은 허겁지겁 청년 앞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다시 머리를 땅에 처박으려는 순간 엘리오가 말했다.
“용서해 줄 테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예?”
블레크 부단장이 고개를 쳐들었다.
“여기서 떠나라고.”
“저만 혼자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어. 빨리 가. 두 번 말하게 하면 구울의 먹이로 던져 줄 거야.”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블레크 부단장은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마음 변하기 전에 빨리 가.”
“예, 예.”
블레크 부단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듯 떠났다.
멀어져 가는 부단장을 보던 파비안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저런 놈을 그냥 풀어 주시다니……. 많이 변하셨습니다?”
“누가 그냥 풀어 줬대? 저놈 곧 마나의 축복을 잃어버릴 거야.”
“아! 영기를 넣어 주셨습니까?”
“당연하지. 영기도 아까운 놈이라 아주 소량만 주입했으니까, 구멍 난 둑처럼 서서히 마나가 말라 갈 거야.”
“잘하셨습니다.”
파비안의 칭찬에 우쭐한 표정을 짓던 엘리오는 이내 단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레아라고 했지?”
“예.”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당신도 헛소리를 했으면 부단장과 같은 신세가 됐을 거야.”
“감사합니다!”
“감사 인사는 아직 일러. 설마 이대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용서만 해 주신다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고 했지? 엑소도까지 우리를 보호해.”
“예,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레아 단장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비록 웨이브 상황이지만 엑소도까지 칠 일이면 가는 데다가, 저들 중에 소드마스터까지 있으니 위험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청년의 말에 우레아 단장은 움찔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우리가 당신들을 보호해 줘야 할 경우에는……. 우리에게 그에 합당한 비용을 지불해야겠지? 예컨대 보호비 같은 거로. 어떻게 생각해?”
“보호비요? 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드리겠습니다.”
“그때마다 용병 길드 표준 보호비로 정산해서 지급해 줘. 비용을 속였다가는 알지? 부단장처럼 마나홀에 구멍이 나게 될 거야.”
“표준대로 정산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레아 단장이 말끝을 흐렸다.
그런 계산법이라면 자기들도 보호비를 받아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런데 뭐?”
엘리오가 무심한 눈으로 우레아 단장을 응시했다.
우레아는 떨렸지만 자칫 용병단이 망할 수도 있기에 용기를 냈다.
“저희 아케리오 용병단도……. 꿀꺽, 여러분들을 보호해 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엘리오가 거듭 묻자 파비안이 끼어들었다.
“자기들도 보호비를 정산받고 싶은가 봅니다. 용병 길드 표준으로.”
“그건 아니지. 우리가 원치 않았는데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겠다고 했잖아. 안 그래? 우레아 씨? 내가 지금 없는 소리를 지어낸 거야? 아니면 당신이 잠시 회까닥해서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한 거야? 어느 쪽이야? 입이 있으면 뭐라고 말을 쳐 해 봐!”
엘리오의 불같은 호통에 우레아 단장이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답했다.
“제가 잠시 회까닥했습니다. 저희가 보호해 주겠다고 한 걸 깜빡했습니다. 엑소도까지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