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85
1285회. 당신의 문제는 어느 쪽이오?
엘리오 일행에 아케리오 용병단 마흔한 명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류했다.
본래 마흔네 명이었으니 마물과의 싸움에 두 명이 사망한 셈이다.
진형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지금까지 줄곧 선두를 지키던 메르데프와 타인록이 이 선으로 물러났다.
용병단의 마차는 앞에 있으면 먼지가 일어난다고 후미로 배치됐다.
엘리오는 성녀와 함께 용병단의 마차를 이용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용병단 마차 일곱 대 중에 세 대가 부서지고 네 대가 남았는데, 부서진 마차의 짐을 옮겨 싣고 나니 마차에 빈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레아 단장이 슬쩍 걸음을 늦춰 메르데프와 걸음 속도를 맞췄다.
“자네, 팔콘 용병단의 메르데프라고 했지? 뭐 하나 물어보자.”
“예, 말씀하십쇼.”
“엑소도로 가는 길에 우샤스 운드라의 신상을 찾으라는데……. 신상은 처음 듣는 소리다. 그게 대체 어디쯤에 있다는 거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개척 지역에서 봤다는 소문만 들었습니다.”
“아, 그래서 안전 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느냐?”
“그렇습니다.”
“신전이 발굴됐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도 없는데 신상이라. 거참.”
“에브리마 평원과 페트라 산만 남았으니 주의 깊게 살펴보십쇼.”
“마물 때문에 그런 거 찾을 정신이 있나 모르겠다.”
우레아 단장이 씁쓸한 얼굴로 단원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하필 마물들의 이동 통로인 페트라 산 방향으로 가니 다른 건 생각할 틈이 없었다.
웨이브의 흐름을 거슬러 가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신상은 무슨.
솔직히 그의 바람은 더 이상의 희생 없이 엑소도까지 가는 것이다.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선두에서 용병들이 소리쳤다.
“암무트다! 단장님! 암무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순간 우레아 단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암무트는 사자의 몸통에 악어 머리를 가진 중급 마물인 까닭이다.
중급 마물 다섯 마리 이상이면 소드마스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길! 몇 마리지? 다섯 마리가 넘으면 안 되는데. 다섯 마리만 넘지 마라!’
우레아 단장은 속으로 울부짖으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암무트는 세 마리에 불과했다.
가장 먼저 마력총이 불을 뿜었다.
퍼퍼퍼펑―!
거리가 멀어서 그런지 두 발이 빗나가고 두 발만 암무트를 맞혔다.
그러나 마력탄에 맞은 두 마리 암무트는 오히려 속도를 높여 돌진해 왔다.
퍼펑! 퍼펑!
총병들은 코앞까지 도달한 암무트 한 마리를 집중 사격했다.
무려 네 발의 마력탄에 맞고서야 암무트는 비틀거렸다.
연이어 두 마리 암무트가 용병단을 덮쳤다.
“커헝!”
기다렸다는 듯 우레아와 또 다른 소드 익스퍼트가 암무트를 막았다.
그사이 다른 용병들은 비틀거리는 암무트를 도륙했다.
뒤이어 용병들은 소드 익스퍼트들을 도와 나머지 암무트를 한 마리씩 죽여 나갔다.
“휴우!”
우레아 단장은 긴 한숨과 함께 롱소드를 갈무리했다.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암무트가 한두 마리만 더 있었어도 부상자가 나왔을 터였다.
몇몇 용병이 암무트의 가죽을 벗길 때 누군가 소리 질렀다.
“테라울프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레아 단장은 저도 모르게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그래도 암무트 때처럼 놀라지는 않았다.
테라울프는 하급 마물이라 아케리오 용병단의 전투력이면 편안하게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고개를 들어 초원을 보는 순간 사라졌다.
“미친…….”
하이에나를 닮았지만 몸집은 사자만큼 큰 테라울프가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삼십 마리는 됨 직했다.
물론 아케리오 용병단이 감당 못 할 숫자는 아니지만 사상자가 나올 터였다.
우레아 단장은 엘리오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도와주십쇼!”
그러자 뒤따르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엘리오를 향했다.
“파비안, 하워드, 손님 받아라.”
그러자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은 물론 타인록과 크레아 까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윽고 테라울프가 파도처럼 아케리오 용병단을 덮쳤다.
정면을 응시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말했다.
“네 사람만으로는 부족할 겁니다.”
“파비안과 하워드의 실전 경험이 충분하다 싶을 때 도와주세요.”
“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의 움직임을 뚫어져라 살폈다.
둘의 실력은 엇비슷했다.
이십 대 중반에 벌써 소드 비기너 끝자락이라니 믿어지지 않을 성취다.
둘의 성장 기세로 봤을 때 조만간 소드 익스퍼트에 진입할 것이다.
‘잘하면 삼십 대 소드마스터가 나올지도 모르겠군.’
대부분의 검사들은 육십 대에야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한다.
크나우프 대공가 검사들도 오십 대에 소드마스터가 됐다.
검술 명가의 비전도 없이 단지 ‘작은 하늘 회로(small heavenly circuit, 小周天)’ 하나만으로 이룬 성과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그랬다면 자신도 그랜드 마스터를 꿈꿔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상상을 이어 가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천천히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되려면 자신도 부단히 칼을 휘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순수하게 칼만 들고 질풍처럼 앞으로 내달렸다.
생각보다 이른 그의 행동에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조금 더 지켜봐도 될 것 같은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 마나 블레이드를 쓰지 않으시잖아.”
루나 마일러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아, 설마 파비안과 하워드의 수련에 동참을 하겠다는 건가요?”
“마음은 나이를 먹지 않으니까.”
“그랜드 마스터가 꿈이신가 보네요?”
“네가 옆에 있으니 불가능한 꿈은 아니지.”
“그런가? 누님이 보기에 어때요? 가능할 것 같아요?”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확실해. 누구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거.”
“그건 그렇네요.”
엘리오는 라르바 오바르 백작을 응시했다.
그는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양 떼 속에 뛰어든 사자처럼 날뛰고 있었다.
인간들의 저항이 거세자 테라울프들의 기세는 금방 꺾였다.
절반인 열다섯 마리의 테라울프가 쓰러지자 테라울프들은 꼬리를 말고 달아났다.
용병들은 달아나는 테라울프들을 쫓지 않고 초원에 길게 드러누웠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하워드 등도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용병들은 테라울프의 가죽을 벗기고, 연금술의 재료인 이빨을 뽑았다.
용병들이 바삐 일할 때 엘리오는 우레아 단장을 불렀다.
“단장님, 뭐 좀 물어봅시다.”
보호비를 받기로 한 뒤로 우레아 단장의 처우는 조금 개선됐다.
그 증거로 엘리오는 더 이상 그에게 하대를 하지 않았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아케리오 용병단 정도 되면 광산이 더 돈벌이가 되지 않아요?”
“광산 일자리는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희도 마음에 드는 자리가 없어서 에브리마 평원으로 나온 겁니다.”
“그럼 에브리마 평원에 대해 좀 알겠네요?”
“남들 만큼은 압니다.”
“얼마나 넓어요?”
“저희가 호기심에 동쪽 방향으로 계속 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한 달 내내?”
“한 달은 아니고 보름쯤 가다가 끝이 나오지 않아 되돌아왔습니다. 한 달이나 가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사람들이 난폭해져서……. 조그만 일로도 싸우고 난리가 나거든요.”
“아하. 그래도 가 본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남의 말 안 듣는 사람들 많잖아요.”
“물론 그렇습니다. 한 달 이상 가다 보면 밤이 시작된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대부분 거기서 돌아선다고 합니다.”
“해가 안 뜬다는 건가요?”
“예.”
“거 참 이상하네. 뭐 그런 곳이 있지?”
엘리오가 중얼거리자 파비안이 말했다.
“어비스가 땅 밑에 있으니 그게 정상 아닙니까? 저는 밤낮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합니다.”
“어? 그러네? 땅 밑인데 왜 해가 뜨지?”
그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엘리오는 무심코 루나 마일러스를 보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렸다.
행여나 초월적 지식을 사용함으로 여신과의 합일이 빨라질까 피한 것이다.
루나 마일러스도 같은 생각에 굳이 어비스의 신비를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테라울프 이후로 마물의 습격은 없었다.
저녁이 되자 엘리오는 마하담(공간 창고)에서 천막과 침구류를 꺼냈다.
아케리오 용병들이 신기한 눈으로 엘리오를 힐끔거렸다.
마검사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공간까지 가능할 줄이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엘리오는 파비안과 하워드의 검술을 지도했다.
그 시간 루나 마일러스도 크레아를 따로 불러내 검술을 가르쳤다.
자연히 야영지에는 타인록과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만 남게 되었다.
타인록이 모닥불을 피우자 알메트 하레브가 그의 맞은편에 쪼그려 앉았다.
가뜩이나 사교성 없는 두 사람이 마주 앉으니 분위기가 적막했다.
타인록이 어딘지 씁쓸한 표정을 하자 알메트 하레브가 물었다.
“무슨 걱정이 있소?”
그래도 성기사라고 타인록의 표정을 그냥 넘기지 못한 것이다.
“걱정 없는 사람도 있소?”
사교성과 거리가 먼 타인록이 까칠하게 되물었다.
알메트 하레브는 그가 고슴도치처럼 가시부터 세우자 피식 웃었다.
“세상에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소. 당신의 문제는 어느 쪽이오?”
성기사가 관심을 보이자 타인록은 슬쩍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요.”
“그렇다면 당신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곁에 있소? 없소?”
“있소.”
“그가 거절했소?”
“아니오. 말도 꺼내지 않았소.”
“거절당할까 봐 두렵소?”
“…….”
타인록은 답하지 않았지만, 알메트 하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걱정거리는 아주 작은 것 같소. 만약 생사가 달려 있는 큰 문제라면, 설사 거절당할지라도 상대에게 매달렸을 게요.”
“…….”
“자신의 자존심보다 작은 문제로 왜 고민을 하는 거요?”
“듣고 보니 당신의 말이 맞소.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겠소.”
‘고민하지 않겠다’니 알메트 하레브도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타인록은 더 강해지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슬며시 자리를 비웠던 성녀와 크레아가 야영지로 돌아왔다.
타인록의 입에서 ―그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크레아는 모닥불로 와서 재잘재잘 떠들어 댔다.
그럴 때마다 타인록은 눈동자는 빛을 잃고 무겁게 가라앉았다.
잠시 후 엘리오와 함께 사라졌던 파비안과 하워드 솔론 남작이 모닥불에 합류했다.
한창때의 젊은이들이 한자리에 모이자 대화는 더욱 활기차졌다.
발랄하다 못해 시끄러울 정도가 되자 알메트 하레브는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러나 타인록은 젊은이들의 대화에 끼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문득 파비안이 말했다.
“우리는 모두 ‘바윗길 장원[石徑莊]’의 검술을 배웠으니 같은 식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친하게 지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러자 하워드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엘리오의 하인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편이 백배 나아서다.
“나는 찬성입니다. 크레아 너는 어떠냐?”
“저도 좋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요? 지금도 친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만 그런가요?”
파비안이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저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라고아 경의 고향에서는 같은 검술을 배우면 형제자매로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러는 건 어떻습니까?”
하워드 솔론 남작은 거절하지 않았다.
클라우드 남작의 작위는 자신과 같았고, 크레아와는 연인인 까닭이다.
크레아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찬성했다.
평민인 그녀 입장에서는 눈곱만큼도 손해를 볼 게 없었다.
세 사람의 관계가 변해 가는 걸 지켜보던 타인록은 쓸쓸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