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2
1292회. 페르돔 광산
파비안과 크레아는 아드리아 왕국 경비병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
가운데 길로 가라고 했는데 길이 네 개나 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씩씩거릴 때 루나 마일러스가 우측 네 번째 길로 다가갔다.
“경비병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네요. 이 네 번째 길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어요. 아드리아 왕국의 경비병이 새로 생긴 길에 대해 몰랐을 수도 있어요.”
파비안이 놀란 눈으로 네 번째 길과 성녀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성녀가 대체 뭘 보고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입니까?”
파비안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보자 루나 마일러스는 길 좌우 측에 깔린 경계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닥에 깔린 돌은 흙먼지로 덮여 오래된 것 같지만, 경계석이 깨끗해요. 풍화는 물론 이끼의 흔적조차 없어요. 경계석 색깔도 살짝 다르고요. 다른 길들의 경계석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사람들은 모든 길의 경계석을 자세히 살폈다.
과연 성녀의 말처럼 가장 우측 길에 깔린 경계석만 달랐다.
네 번째 길이 최근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새로 뚫린 네 번째 길을 제외하니 가야 할 길이 명료해졌다.
타인록과 파비안이 다시 선두로 나섰다.
두 번째, 그러니까 중앙에 난 길은 이전과 달리 협소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보통의 산길에 비하면 넓었지만 말이다.
여전히 바닥에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
그 정도로 광산에서 산길의 관리에 힘쓰고 있다는 뜻이리라.
한 시간 정도 산길을 오르자 이번에도 초소가 나타났다.
초소에는 소속을 알리는 깃발이 걸려 있었다.
타인록과 파비안은 멈춰 서서 일행이 모이기를 기다렸다.
초소에 걸린 깃발을 본 크레아가 말했다.
“쉐이드 왕가의 문양이네요.”
쉐이드 왕국을 거쳐 왔던 엘리오 일행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초소를 보았다.
파비안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야아! 개발하기 쉬운 곳은 죄다 남부 왕국이 차지하고 있네? 이 정도면 제국이 본격적으로 광산 개발에 뛰어들어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데 왜 일을 키웠지?”
그러자 크레아가 답했다.
“마도 시대의 유물이 어느 광산에서 나올지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지금은 마나석 채굴보다 마도 시대 유물을 발굴하는 데 더 관심이 있잖아요.”
“마도 시대 유물을 남부 왕국에서 독식하겠다는 건 좀 과한 욕심 아닌가?”
북부 왕국 출신인 파비안은 남부 왕국의 그런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페트라 산의 개발을 남부 왕국들이 했다는 건 인정해 줘야 해요. 물론 마나석을 채굴하기 위해서지만……. 그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거든요. 그래서 황제가 숟가락만 얹으려는 게 싫은 거예요.”
그래도 남부 왕국 출신이라고 크레아는 남부 왕국을 변호했다.
정체불명의 낯선 사람들이 초소 앞에서 머뭇거리는 게 찜찜했나 보다.
경비병들이 초소에서 나와 엘리오 일행에게 다가갔다.
그들 중 조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고압적으로 말했다.
“이곳은 쉐이드 왕국이 관리하는 광산 지대요. 어비스 출입 허가증을 제출하고, 무슨 일로 왔는지 말하시오.”
이전처럼 크레아가 파비안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라버니, 허가증요.”
파비안은 경비병의 행동이 눈에 거슬렸지만 꾹 참고 허가증을 건넸다.
크레아는 애써 밝은 얼굴로 허가증을 받아 경비병에게 제출했다.
“우리는 해골 골짜기로 가고 있어요.”
그녀는 어비스의 생리를 잘 모르기에 숨김없이 답했다.
아드리아 왕국의 광산을 지날 때 별문제가 없었기에 그런 것도 있다.
만약 그녀가 어비스의 경험이 많았다면, 페트라 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적당한 광산 지대를 목적지로 둘러댔을 것이다.
접근이 쉬운 산 아래는 남부 왕국에서 개발하고 있지만, 산 윗부분은 용병 길드의 관할 구역인 까닭이다.
하지만 해골 골짜기는 다르다.
그곳은 미개척지로 통하는 관문이라 남부 왕국군도 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그런데 무장도 보잘것없는 여덟 명이 그곳에 가겠다니 문제가 됐다.
경비조장은 허가증은 확인하지도 않고 냉소를 날렸다.
“허! 고작 그 정도 숫자로 해골 골짜기에 가겠다고? 그건 핑계고 다른 목적으로 산에 오른 것 같은데?”
“다른 목적요?”
“여덟 명이 해골 골짜기에는 왜 가나? 설마 마력총 한 자루도 없이 미개척지로 들어가기 위해서 그런다는 건 아니겠지?”
경비조장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여자를 보았다.
정말 아주 드물게 소수 인원이 미개척지로 갈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 열이면 열 마력총으로 무장했다.
저들처럼 여덟 명이 기본 무장으로 미개척지에 간다는 건 미친 소리였다.
그제야 크레아는 해골 골짜기에 경비병이 예민하게 반응함을 알았다.
하지만 이왕 내뱉은 말, 이제 와 다른 장소를 둘러댈 수는 없었다.
“맞아요. 우리는 미개척지로 가고 있어요.”
“…….”
뜻밖의 대답에 경비조장은 멈칫했다.
헛소리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그러기에는 여자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경비조장이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크레아가 허가증을 가리켜 보였다.
경비조장은 일단 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기 위해 허가증을 펼쳤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 엘리오 라고아 백작?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 하워드 솔론 남작?’
백작이라는 작위를 본 경비조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기사와 기사 지망생들은 대귀족을 두려워한다.
백작의 작위를 받으려면 최소한 소드 익스퍼트는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름과 작위를 한번 더 들여다보던 경비조장이 눈을 찡그렸다.
어째 작위 앞에 기록된 몇몇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서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 엘리오 라고아 백작,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
눈에 익은 이름을 곱씹던 경비조장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호, 혹시…… 북부에서 오신 기사님들이십니까?”
쉐이드 왕국은 토플라 공국과 국경을 마주한 만큼 제국의 소식에 빠르고 민감하다.
덕분에 그는 아드리아 왕국 경비병과 달리 엘리오 일행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렸다.
“그래요. 오마르 백작님, 라고아 백작님, 클라우드 남작님은 북부 출신이세요. 왜요? 무슨 문제 있나요?”
그러자 경비조장은 허가증을 돌려주며 허리를 숙였다.
“없습니다. 아무쪼록 편안한……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편안한’ 뒤에 붙일 말을 고민하던 경비조장은 급히 ‘여행’으로 마무리했다.
북부를 구원한 그랜드 마스터의 일행이 설마하니 광산에서 채굴을 하러 왔을 리 없으니 그런 것이다.
엘리오 일행은 초소를 지나쳐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다.
30분쯤 올라가자 또 초소가 나왔다.
다행히 그 초소에서는 허가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았다.
쉐이드 왕국 관리 지역 초입에서 확인했으니 그냥 보내 주는 것 같았다.
조용히 산길을 오르던 루나 마일러스가 문득 말했다.
“쉐이드 왕국 광산에서 강철 골렘이 발굴된 것 같아.”
“진짜요?”
“초소 간격도 아드리아 왕국보다 짧고, 산길에 있는 외곽 초소의 경비병들까지 마력총을 가지고 있잖아.”
“아…….”
뒤늦게 엘리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러고 보니 방금 지난 초소 경비병들은 마력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아무리 복제한 마력총이라 해도 멀리 떨어진 초소에 과한 무장이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30분쯤 올라가자 또 초소가 나왔다.
그곳의 경비병들 역시 복제된 마력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다.
경비병들의 야릇한 시선이 루나 마일러스와 크레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야한 농담을 하며 키득대기도 했다.
모두 엘리오 일행의 정체를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이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엘리오 일행은 신경 쓰지 않았다.
세 번째 초소를 지나자 길이 넓어지더니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바닥이 진한 황토색인 걸 보니 산을 깎아 낸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다.
그 끝에 아드리아 왕국 광산과 비슷한 크기의 둥굴이 있었다.
그런데 동굴 위의 암석에 새겨진 글자는 ‘페르돔’이 전부였다.
광산은 평지에 세워진 목조 건물 십여 채로 인해 마을처럼 보였다.
이 역시 아드리아 왕국 광산과 달랐다.
광산 마을과 위로 이어진 산길 사이를 높게 세워진 목책이 가로막고 있었다.
목책 위로 초소가 세워져 있음은 물론이다.
페르돔 광산을 가볍게 둘러보던 파비안이 혀를 내둘렀다.
“와우! 아드리아 왕국 광산은 비교가 안 되는데? 경비병이 백 명은 넘는 것 같아.”
하워드 솔론 남작이 얼른 한마디 보탰다.
“심지어 죄다 마력총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분위기가 살벌하네요.”
“아무리 복제된 마력총이라 해도 제작비가 상당히 들었을 텐데. 제국이나 북부 왕국 모르게 돈을 엄청 벌었나 봐?”
“마나석 광산만 계속 돌아가도 수입이 어마어마할 겁니다.”
북부 기사인 파비안과 제국 기사인 하워드 솔론 남작은 남부 왕국의 풍부한 재정에 꽤나 놀란 얼굴이었다.
“남부 왕국들이 제국의 어비스 진출을 막으려는 게 강철 골렘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만은 아닌 것 같네.”
“그러게요. 마나석 광산의 수입이 제국에서 예측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마력총 복제를 저렇게 많이 했겠죠?”
연신 감탄사를 내뱉던 파비안이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오마르 경, 남부 왕국들이 북부 왕국에 적극적으로 도와 달라고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남부 왕국에 비하면 북부 왕국은 거지 아닙니까? 보십쇼. 남부 왕국에서는 개나 소나 다 마력총을 들고 다닙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대수림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북부 왕국이 너무 무관심했군. 나도 남부 왕국이 이 정도로 무장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비록 복제한 것이라고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마력총에 강철 골렘이라면 제국과 전쟁을 벌일 만도 하다.
파비안이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빙벽을 지키다 죽은 북부 왕국의 기사와 병사 들만 불쌍하게 됐네요. 남부 왕국들이 마력총만 지원해 줬어도 절반은 살았을 텐데.”
이번에는 크레아도 ―남부 왕국을 변호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파비안에게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엘리오가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슨 헛소리야? 북부 왕국이 남부 왕국에 마력총 맡겨 놨어? 남부 왕국도 어비스를 개발한다고 피를 흘렸잖아. 저 마력총은 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건 줄 알아? 다 남부 왕국이 노력해서 얻은 거라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을 원망할 거 하나 없어.”
“그래도…… 히르헤라에서 죽어 간 부하들을 생각하면 화가 납니다.”
“쯧쯧! 얘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만약에 그때 마력총을 지원받았으면, 지금 북부 왕국도 제국군과 싸우고 있을걸? 히르헤라에서 죽은 병사들보다 제국과의 전쟁에서 죽은 병사가 훨씬 많을 거다.”
“그럴 리가요. 북부에는 라고아 경이 계시지 않습니까. 라고아 경이 나서면 제국군쯤은 단칼에…….”
“파비안, 착각하지 마. 내가 왜 제국군을 죽일 거라고 생각해?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을 벌써 잊었어?”
단호한 엘리오의 눈빛 앞에 파비안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떠보았는데 역시나 씨도 안 먹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