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3
1293회.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엘리오 일행은 목책 우측 편의 산길이 아니라 광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초소가 앞을 가로막았다.
다른 초소들과 달리 길목에 통나무를 날카롭게 깎아 만든 거마창(拒馬槍)까지 세워져 있었다.
잘 관리된 거마창만 봐도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타인록과 파비안이 초소로 다가가자 경비병 하나가 소리쳤다.
“멈춰라!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까이 오면 발포하겠다. 누구냐!”
짧고 위압적인 명령에 타인록과 파비안의 몸이 굳었다.
실전 경험이 충분한 두 사람은 경비병의 말에서 살기를 감지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마력총을 쏠 기세였다.
파비안이 정색을 하고 소리쳤다.
“우리는 해골 골짜기로 가던 모험가들이오!”
“이 길은 광산으로 통한다. 산을 오르려면 목책 오른편으로 가라!”
“페르돔 광산에도 볼일이 있소!”
“무슨 볼일이냐!”
“우리 백작님들께서 광산을 둘러보고 싶어 하시오!”
대귀족들이 있다는 소리에 경비병은 이내 초소로 돌아갔다.
잠시 후 경비병들이 마력총을 겨누며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대귀족에 대한 예의와 경계심이 섞인 표정들이다.
경비조장이 타인록과 파비안을 향해 다가갔다.
“어느 왕국의 백작님들이시오?”
경비조장은 상대가 당연히 남부 왕국의 백작들이라 믿었다.
전쟁 중인 제국의 백작이 쉐이드 왕국의 광산을 방문할 이유가 없어서다.
파비안은 대답 대신 어비스 출입 허가증을 내밀었다.
이런 경우 말보다 증명서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어비스 출입 허가증을 보던 경비조장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흠!”
한 사람은 북부 베일럼 왕국의 백작인데 다른 한 사람은 제국의 백작인 까닭이다.
그 보기 드문 조합에 고개를 갸웃하던 경비조장이 흠칫 놀란 눈으로 어비스 출입 허가증을 다시 뚫어져라 살폈다.
이윽고 경비조장은 정중한 태도로 어비스 출입 허가증을 젊은 모험가에게 반납했다.
“북부의 영웅들이신 것을 몰라뵀습니다. 광산으로 기별을 넣을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비조장은 자신의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지라 광산에 통보할 생각이었다.
이윽고 경비병 하나가 광산 쪽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사이 엘리오 일행은 초소 앞에 모두 모였다.
경비병들은 총구를 거두고 대신 몸으로 길을 막아섰다.
잠시 후 광산에서 일단의 기사들이 몰려나왔다.
경비조장이 페르돔 광산 관리 책임자인 노튼 셔우드 자작에게 군례를 올린 뒤, 모험가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했다.
“샤스트라 파라크티 교단의 성녀님과 북부 베일럼 왕국의 라르바 오마르 백작님, 그리고 엘리오 라고아 백작님이십니다.”
경비조장이 호명할 때마다 루나 마일러스와 라르바 오마르 백작,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그럴 때마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성녀와 북부 왕국의 대귀족들이라 상전 대하듯 한 것이다.
특히나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경우 그랜드 마스터로 알려진 터라 그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게 노력했다.
평범한 마력총으로는 그랜드 마스터의 상대가 되지 못하니 당연하다.
경비조장의 소개가 끝나자 노튼 셔우드 자작이 입을 열었다.
“저는 페르돔 광산의 관리를 맡은 노튼 셔우드 자작입니다. 어인 일로 쉐이드 왕국의 광산을 방문하셨는지요?”
노튼 셔우드 자작은 방문 목적을 알았지만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그는 이곳이 ‘쉐이드 왕국의 광산’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전통적으로 남부와 북부 왕국이 동맹 상태지만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뜻을 은근히 드러낸 것이다.
이번에는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대신해 파비안이 나섰다.
“저는 라고아 백작님의 가신인 파비안 클라우드 남작입니다. 우리 라고아 백작님께서 광산 내부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노튼 셔우드 자작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그러나 부드럽게 받아쳤다.
“클라우드 남작이었군. 만나서 반갑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국왕 전하께서 왕명으로 외부인의 페르돔 광산 출입을 금지시켰네. 그래서 지금은 쉐이드 왕국의 귀족들도 들어가지 못하는 형편이지. 산 위쪽의 다른 광산은 출입이 어렵지 않을 걸세. 그러니 백작 각하를 모시고 다른 광산으로 가도록 하게.”
파비안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일개 남작인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인 까닭이다.
그는 바로 엘리오에게 말했다.
“들으셨죠? 국왕의 명으로 출입이 금지됐답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노튼 셔우드 자작에게 다가갔다.
“노튼 자작이라고 했죠?”
“예, 노튼 셔우드입니다.”
라고아 백작이 친한 척하기 위해 이름만 불렀다고 착각한 노튼 셔우드 자작은 다시 한번 자신의 성을 밝혔다.
사실 엘리오는 성까지 다 기억하지 못해 그런 것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노튼 자작. 당신은 내가 쉐이드 왕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노튼 셔우드 자작은 움찔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쉐이드의 왕이 출입을 금지시켰으니까 다른 광산에나 가 보라면서요. 그게 나더러 쉐이드 왕의 명령에 따르라는 소리 아닙니까?”
“…….”
노튼 셔우드 자작은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눈만 끔벅였다.
‘아무리 당신이 백작이라도 우리 국왕 전하의 명령을 따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오?’
그는 속으로 구시렁거렸다.
설사 동맹이 아니더라도 국왕은 백작보다 한참 위의 신분이다.
제국의 백작이라도 왕국 국왕의 명령을 대놓고 거부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당연한 상식에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도리어 화를 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다는 거다.
정확히는 그랜드 마스터가 저런 식으로 말하니 대꾸를 못 하겠다.
그야말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탓이다.
옆으로 물러나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파비안이 슬쩍 끼어들었다.
“셔우드 자작님, 쉐이드 왕국의 국왕 전하께서 금지시킨 게 외부인의 출입이 아닙니까?”
“그, 그렇네.”
“하지만 우리 에스카토스 왕국은 쉐이드 왕국의 동맹이니 외부인이 아니지 않습니까?”
순간 노튼 셔우드 자작은 머리를 굴렸다.
본래 외부인이라 함은 광산 관계자 외의 모든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쉐이드 왕국의 귀족들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클라우드 남작은 그걸 북부 왕국과 남부 왕국의 동맹으로 슬쩍 바꿨다.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북부의 그랜드 마스터에 맞섰다가 박살이 나면 자신만 손해였다.
“듣고 보니 그렇군. 북부는 남부의 동맹이니 외부인이라 할 수 없지.”
“그럼, 안내를 해 주시지요.”
파비안이 은근한 눈길로 노튼 셔우드 자작을 보았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그는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
“라고아 백작 각하와 오마르 백작 각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제가 페르돔 광산을 소상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윽고 뒤로 돌아선 노튼 셔우드 자작은 사촌 동생이자 토네이도 총사단 단장인 비셔스 셔우드 남작에게 눈짓을 보냈다.
비셔스 셔우드 남작은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자리를 떠났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광산 진입에 앞서 마을부터 자세하게 소개했다.
물론 비셔스 셔우드 남작이 움직일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저 건물은 제가 사용하는 광산 관리소입니다. 그 좌측의 것이 기사단, 그리고 반대편이 총사단의 건물입니다.”
엘리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한 건 광산 내부였지만 서둘러서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건물 소개를 빠짐없이 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엘리오의 인내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냈다.
“노튼 자작, 슬슬 지겨워지는데 광산은 언제 보여 줄 겁니까?”
노골적인 지적에 뜨끔한 노튼 셔우드 자작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귀한 손님이시라 페르돔 광산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너무 제 생각만 했군요. 이제 광산으로 모시겠습니다.”
이윽고 노튼 셔우드 자작은 광산 입구로 발걸음을 돌렸다.
광산은 공기부터가 달랐다.
상큼한 바깥과 달리 동굴은 서늘하고 축축했다.
안으로 백여 미터쯤 들어가자 우물 크기의 구덩이가 나왔다.
구덩이 위의 커다란 도르래에는 밧줄이 칭칭 감겨 있었다.
노튼 셔우드 자작의 손가락이 길게 늘어진 밧줄을 가리켰다.
“이 아래로 삼십 미터쯤 내려가면 마나석 채굴 현장이 나옵니다. 아래로 내려가려면 이 밧줄을 이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채굴 현장에 내려간 대귀족들은 없습니다. 더 내려가 보시겠습니까?”
파비안이 곤혹스러운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비좁고 캄캄한 구덩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니 덜컥 겁이 난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말했다.
“오마르 경은 이곳에 남아 주셨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도 사람인지라 그냥 내려가기 찜찜해서 소드마스터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을 뒤에 남겨 두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곳은 제가 맡을 테니 안심하고 내려가십시오.”
백전노장인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말에 엘리오의 얼굴이 밝아졌다.
“저도 오마르 백작님과 함께 이곳을 사수하겠습니다.”
내려가기가 두려웠던 파비안은 남겠다고 선수를 쳤다.
그러나 엘리오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니야. 너는 잔머리가 쓸 만하니 나와 함께 내려가야겠다. 하워드, 타인록, 크레아, 세 사람은 성녀님을 모시고 이곳에 남도록.”
“예.”
세 사람이 한목소리를 대답했다.
그때 루나 마일러스가 입을 열었다.
“나도 내려갈게. 자연 상태의 마나석이 보고 싶거든.”
“그러세요.”
엘리오는 반대하지 않았다.
루나 마일러스는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 막을 이유가 없었다.
하워드 솔론 남작 일행이 머뭇거리자 엘리오가 웃으며 말했다.
“세 사람은 이곳에서 오마르 경의 곁을 지켜.”
“예!”
지하로 내려가기 싫었던 세 사람이 씩씩하게 답했다.
기회를 틈타 파비안이 다시 운을 뗐다.
“성녀님이 가시니 저는 남아 있어도…….”
“안 돼.”
“아, 예…….”
파비안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우울한 얼굴로 물러났다.
곧이어 노튼 셔우드 자작과 엘리오, 루나 마일러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 파비안이 밧줄을 타고 천천히 지하로 내려갔다.
땅 밑으로 삼십 미터쯤 내려가자 굴은 다시 평평하게 이어졌다.
동굴은 좁았지만 그래도 사람이 허리를 세울 정도는 됐다.
안쪽으로 다시 이십여 미터쯤 가자 개미굴처럼 여러 갈래 길이 나왔다.
그때부터 광부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앞서가던 노튼 셔우드 자작은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제길, 징그럽게 따라오는구나.’
귀족들도 무서워서 안 들어가는 지하에 대귀족이 뭐 먹을 게 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다.
이윽고 동굴 끝에 도달한 그가 정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광부들이 캐내고 있는 게 마나석입니다. 마나석은 수정 광맥 속에 있는데, 구십구 프로가 수정이고, 마나석은 일 프로 정도 됩니다. 어비스의 마나석은 마나 함유량이 높아서, 지상에서 채굴한 마나석보다 고가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다른 굴들도 다 이런 식인데 더 둘러보시겠습니까?”
고대 유물은 개미굴처럼 뻗은 마나석 광산의 굴 어딘가에서 발견됐다.
지금쯤이면 비셔스 셔우드에 의해 입구가 막히고도 남았을 시간인지라 노튼 셔우드 자작의 얼굴은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