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6
1296회. 나를 믿지 말고 상황을 봐
엘리오는 루나 마일러스의 말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카마 데비아스(천자마)와 우샤스 운드라(금사)의 죽음을 바란 것은 이 세계 창조신으로 알려진 마나 프트라스였다.
그런데 우샤스 운드라가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의 심부름꾼이었다니.
“그러니까 마나 프트라스와 우샤스 운드라가 같은 편이었다는 거죠?”
“처음에는 그랬을 거야. 그러니 어비스 개척에 우샤스 운드라가 앞장선 거겠지.”
“어질어질하네요. 어비스에 있는 강철 골렘은 뭐고요?”
“그건 고대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라. 신들만 알 테지.”
루나 마일러스는 그 부분에서 입을 다물었다.
깊이 생각하면 알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건 여신과의 합일만 앞당길 뿐이라, 애써 파고들려 하지 않았다.
엘리오도 ‘신들만 안다’는 말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 역시 루나 마일러스가 자신의 옆에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서다.
“노튼 자작. 강철 골렘이 움직이는 걸 보고 싶은데 가능해요?”
“그건 안 됩니다.”
“왜요?”
뜻밖의 단호한 거절에 엘리오가 빤히 그를 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안 된다고 하는 걸 보면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강철 골렘의 기동은 마공학자들의 영역이라 제가 알지 못합니다. 왕국의 마공학자가 와서 손을 봐야 합니다.”
“아하. 그럼, 전투 중에 고장이 나거나 파손되면 수리는 어떻게 해요?”
“왕국군에서 파손된 부위를 요청하면 이쪽에서 보내 주는 식입니다. 부위만 맞으면 알아서 달라붙습니다.”
“부위만 맞으면 붙는다고요? 안 달라붙는 파츠들도 있다면서요?”
“같은 부위라도 형태에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따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완성된 강철 골렘들의 경우 강철 파츠의 범용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파손 부위를 교체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강철 파츠가 있다면 말입니다.”
“강철 골렘을 사용하려면 광산에서 강철 파츠를 열심히 채굴해야겠네요?”
“그래서 더더욱 어비스의 통제를 강화하려고 하는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엘리오가 일행에게 말했다.
“나는 더 궁금한 게 없네요. 광산이나 강철 골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게 있으면 지금 노튼 자작님한테 물어봐요.”
그의 말이 끝나자 역시나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노튼 셔우드 자작에게 달라붙었다.
강철 골렘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활약하고 있으니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현역 기사인 두 사람과 달리 모험가인 다른 사람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 역시 교단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 그런지 시큰둥했다.
문득 엘리오가 루나 마일러스에게 물었다.
“성녀 누님은 궁금한 거 없어요?”
“내가 알아서 뭐 해.”
“성녀 누님은 뭐든 배우고 익히는 걸 좋아하잖아요.”
“이곳은 내 세상이 아닌걸.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도 아까워.”
그녀의 얼굴에 쓸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요즘은 애쓰지 않아도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여신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뜻이다.
일 년쯤 뒤라고 예측했던 합일의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엘리오를 치료하느라 신성력을 과하게 사용한 것이 원인이리라.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헛된 일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새 지식에 파고들수록 자신의 시간은 더 빠르게 줄어들 터였다.
그러니 다소 호기심이 일더라도 못 본 척 외면하는 게 나았다.
노튼 셔우드 자작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을 강철 골렘의 앞으로 데리고 가서 뭐라고 열심히 떠들어 댔다.
잠시 후 원하는 걸 모두 얻은 얼굴로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이 돌아왔다.
엘리오가 파비안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뭘 좀 얻었어?”
“아뇨. 결정적인 건 전부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놀랍지도 않다. 마공학자라면 모를까? 칼만 휘두르는 기사가 뭘 알겠냐.”
“강철 파츠 하나 얻을 수 있냐고 했다가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었습니다.”
“너 같으면 주겠냐?”
“안 주죠. 라고아 경이 하나 달라고 해 보십쇼. 라고아 경이 달라고 하면 줄 겁니다.”
“그거 한 조각 가지고 뭘 하게?”
“뭘 하다뇨? 정 쓸데가 없으면 제국이나 북부 왕국에 팔아도 되지 않습니까?”
“나 장사꾼 아니다.”
“그건 알죠. 그래도 지금까지 돈 되는 일은 사양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야 카마 데비아스와 우샤스 운드라를 찾으러 다녀야 하니까 그랬지. 이제 어디 있는지 아니까 돈 들어갈 일도 없다. 돈 뜯어낼 곳도 많고.”
어비스를 한 바퀴만 돌아도 수백 골드는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물이 널려 있어서가 아니라, 시비를 걸어오는 용병단에게 합의금 조로 돈을 받으면 그렇다는 거다.
파비안은 엘리오의 말뜻을 알아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강철 파츠 하나면 돈 뜯어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왜 수고냐? 얼마나 재밌는데?”
엘리오의 괴팍한 성격을 아는 파비안은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점잖은 체하는 여느 귀족들과 달리 엘리오 라고아 백작은 ―귀족가에서 포기한 개망나니들처럼― 시비를 즐겼기 때문이다.
결국 파비안은 강철 파츠 얻어 가는 걸 포기해야 했다.
‘쩝, 북부나 제국에 강철 파츠를 바치고 봉토라도 받아 볼까 했더니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 강철 파츠 하나는 엄청난 공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실력으로는 쇳조각 하나 마음대로 들고 나갈 수 없었다.
이윽고 엘리오 일행은 노튼 셔우드 자작의 배웅 속에 광산 마을을 떠났다.
파비안은 목책으로 시야가 차단당하기 직전까지 몇 번이고 광산을 힐끔거렸다.
그의 똥 마려운 강아지 같은 모습에 엘리오는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크크큭! 성녀 누님,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저놈 얼굴 좀 봐요. 저 아쉬워하는 표정, 완전히 심 노인과 똑같죠?”
“너무 놀리지 마. 강철 파츠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어.”
“누구나라뇨? 다른 사람들은 강철 파츠를 돌 보듯 하잖아요.”
“그야 셔우드 자작이 두려워서 그런 거지.”
“오마르 경도 그랬는데요?”
“그분은 초탈한 거고. 소드마스터의 마음을 일반인에 비교하면 안 되지.”
사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강철 파츠를 강탈하듯 가져가는 것이―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기에 일찌감치 마음을 비운 상태였다.
초월적인 지혜를 가진 루나 마일러스는 그러리라 짐작했지만 순전히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체면을 위해 ‘초탈’로 포장한 것이었다.
페트라 산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광산 규모가 작아졌다.
서슬 퍼렇던 초소도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특히나 용병 길드에서 운영하는 광산은 개방적이어서 엘리오 일행이 놀랄 정도였다.
대부분의 광산 운영은 왕국이나 용병 길드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용병 길드들 중에는 제국에 본거지를 둔 곳도 있었는데, 그들의 경우 외부인의 출현을 상당히 경계했다.
제국과 남부 왕국 간 전쟁의 불꽃이 자신들에게까지 튈까 봐 그러는 것이다.
페르돔 광산의 갱도까지 들어갔던 엘리오 일행은 다른 광산에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광산의 용병들도 굳이 쫓아가 시비를 걸지 않아 ‘해골 골짜기’로 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해거름 무렵, 마침내 엘리오 일행은 페트라 산의 정상에 올랐다.
정확히는 드래곤의 척추 뼈처럼 길게 펼쳐진 여러 산봉우리 중에 하나다.
엘리오가 석양에 붉게 물든 페트라 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야아! 장관이네.”
끝없이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과 그 위를 날고 있는 정체불명의 새 떼들까지.
현실인지 환상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의 옆에서 산을 내려다보던 파비안이 투덜거렸다.
“페트라 산이 이렇게 넓은 줄 알았으면 메르데프를 데리고 올걸 그랬습니다. 해골 골짜기를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뭘 몰라? 그냥 길 따라 내려가면 해골 골짜기가 나온다잖아.”
“그러다 갈림길이 나오면요?”
“갈림길은 길 아니냐? 그냥 따라가.”
“그러니까 라고아 경이 매번 길을 잃는 겁니다.”
“왜 내 탓을 해? 길 안내를 내가 하냐? 너와 타인록이 하고 있잖아.”
“예, 그 길 안내를 하는 사람이 길을 잃을까 봐 걱정돼서 드린 말씀입니다. 솔직히 말씀해 보십쇼. 라고아 경은 페트라 산이 이렇게 넓은지 아셨습니까?”
“처음 오는 길인데 어떻게 알아?”
“저도 몰랐습니다. 산이 넓어도 너무 넓습니다. 그렇다고 이정표가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니고. 길 잃어버리기 딱 좋습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만 쉬고. 내일 밝은 자리에서 맑은 정신으로 얘기하자.”
“지금도 제 정신은 맑습니다.”
초행길의 길잡이에 부담을 느낀 파비안이 물고 늘어질 때, 루나 마일러스가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산세를 보니 드래곤이 레어를 감싸듯 구부린 형상이에요. 우리가 서 있는 정상이 머리 부근이고, 저쪽으로 몸통이 길게 이어졌죠. 꼬리가 향한 곳이 엑소도와 연결되니……. 미개척지의 통로인 해골 골짜기는 머리 뒤편, 이쪽 방향이에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왼편 능선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왼편 능선으로 향했다.
과연!
바다로 치면 수심 깊은 물을 보는 것처럼, 시커먼 죽음의 기운이 물씬 풍겼다.
그 시간 해골 골짜기.
마력총과 검, 방패 등으로 중무장한 구십여 명의 용병들이 골짜기에 진입했다.
흑마법사 찰스 맨슨의 의뢰를 받고 미개척지로 가는 세 개 용병단이다.
선두에 선 헬독 용병단 단장이 좌우편의 부하들에게 낮게 소리쳤다.
“야수가 보이면 죽이지 말고 그냥 쫓아내! 흔적을 남기지 말란 말이다! 꼭 싸워야 할 때는 칼을 이용한다! 알겠나!”
“예!”
짧게 답한 용병들이 매 같은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 뒤로 바이퍼 용병단과 슬라터 용병단이 질서 정연하게 따라붙었다.
세 개 용병단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조심조심 해골 골짜기를 지나갔다.
중무장한 인간들에게 놀란 야수들은 찍소리도 내지 않고 달아났다.
웨이브 직후라 그런지 마물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도왔는지 골짜기를 다 지나도록 야수나 마물과의 충돌은 없었다.
골짜기를 통과한 직후, 세 개 용병단은 각자 맡기로 한 자리로 이동했다.
이윽고 헬독은 좌측, 중앙은 바이퍼, 슬라터 용병단은 우측에 매복을 마쳤다.
헬독 용병단의 부단장이 단장에게 속삭였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왜?”
“의뢰인에게 받은 마력총이 육십 정에, 엑시티움도 이백 개나 되지 않습니까.”
“그게 어때서?”
“그 정도면 어비스에 있는 남부 왕국의 전력과도 맞먹습니다.”
“그래서?”
“소드마스터 둘을 잡기에는 무장이 과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랜드 마스터라도 있다는 소리냐?”
“제국에서 어비스를 조사하라고 크나우프 대공을 보냈다면요?”
“마, 크나우프 대공이 움직였으면 어비스가 이렇게 조용하겠냐? 대공을 따라다니는 수행 기사들만 수백 명일 텐데.”
“그, 그렇기는 하죠?”
“우리가 바보냐? 딱 봐서 수행 기사들이 많다, 그럼 조용히 철수하면 돼. 상대가 진짜 크나우프 대공이면 의뢰인도 계약 위반이라고 말 못 한다.”
“단장님만 믿겠습니다.”
“나를 믿지 말고 상황을 봐.”
뒤이어 헬독 용병단장은 근처의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앉았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긴장의 끈이 느슨해지며 피로가 몰려왔다.
그는 다짐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상황을 봐야지. 상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