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298
1298회. 자경단이 아니라 자강단 같은데?
노을이 붉게 타들어 갔다.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있던 헬독 용병단장은 아련한 눈으로 산봉우리를 보았다.
오늘따라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웠다.
‘이런 젠장.’
대수림에서 죽은 스페로우가 그랬다.
‘가족이 생각나면 용병을 그만둘 때가 된 거다’라고.
‘이번 의뢰만 끝내고 돌아가자.’
그동안 모은 돈이면 작은 상회 하나쯤 차릴 수 있을 게다.
아니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곰같이 일만 하는 마누라와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자식들과 함께…….
‘이십 년이 지났으니 아장아장은 아니겠군.’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니 마누라가 아직도 혼자인지 자신이 없다.
‘아직 혼자겠지. 곰 같은 여자를 누가 좋아한다고.’
마누라를 떠올리자 갑자기 진심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싶었다.
“맥파이.”
“예.”
근처에 숨어 있던 헬독 용병단 부단장이 재빨리 달려왔다.
“이번 의뢰를 마치면…… 헬독 용병단 단장은 너다.”
“예?”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노을을 보고 있는데 가족들 얼굴이 떠오르지 않냐. 스페로우가 죽기 전에 그랬다. 가족이 그리워지면 용병을 그만둘 때가 된 거라고.”
“진심이십니까?”
“그래.”
“죽지나 마십쇼.”
“너도. 너 죽으면 단장 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 나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도와줘라.”
“흐흐. 저는 단장님보다 오래 살 겁니다.”
“스페로우도 그렇게 말했다.”
“그놈은…….”
대꾸하던 맥파이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곧이어 정찰을 나갔던 용병이 매복한 곳으로 돌아왔다.
“모험가들이 오고 있습니다.”
순간 동네 아저씨 같던 헬독 용병단장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몇이나 되더냐?”
“여덟입니다.”
“최소한 크나우프 대공은 아니라는 소리군. 고작 그 정도 숫자에 마력총 육십 정과 엑시티움 이백 발을 투입하다니. 돈이 썩어 나는 놈이었나.”
부단장 맥파이가 히죽 웃으며 말을 받았다.
“단장님에게 드리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십쇼.”
“그래도 소드마스터가 둘이나 있으니 방심하지는 마라. 처음 계획대로 간다. 미끼를 던져 소드마스터가 누군지부터 확인한다. 맥파이, 잡것들과 오래 상대할 생각하지 말고 바로 빠져라. 소드마스터들을 죽이는 게 먼저니까.”
“알겠습니다.”
헬독 용병단 부단장 맥파이가 꾸벅 인사를 한 후 조용히 모습을 감췄다.
해골 골짜기가 끝나는 지점에 세 개 용병단에서 추린 검사 서른다섯이 모였다.
맥파이가 롱소드와 방패 등으로 무장한 용병들 앞에 나섰다.
“길게 떠들지 않겠소. 우리 역할은 싸우는 척만 하다가 뒤로 빠지는 거요. 괜히 머리 숫자만 믿고 모험가들과 끝까지 싸우지 마시오.”
그러자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뒤로 빠지는 건 재미없는데. 소드마스터가 끼어들면 마력총으로 쏘면 되잖나.”
“사람들이 뒤섞이면 마력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으니 그러는 거 아니오.”
“뭐, 그러든가.”
맥파이가 인상을 찡그리자 바이퍼 용병단 부단장이 끼어들었다.
“뒤로 빠지는 시간은 각자 알아서 판단합시다. 다른 사람들이야 죽건 말건 자기 용병단만 챙기면 됐지 뭐. 안 그렇소?”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 때문에 짜증이 났던 맥파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다른 용병들이야 죽건 말건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었다.
“그럽시다. 슬라터 용병단은 굳이 뒤로 빠지지 않아도 되오.”
그의 말에 헬독 용병단과 바이퍼 용병단원들이 실소를 흘렸다.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은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맥파이를 노려보았지만, 그렇다고 눈치 없게 시비를 걸지는 않았다.
잠시 후 협곡에 모험가들이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서른다섯 명의 용병들이 해골 골짜기를 틀어막았다.
타인록과 걷던 파비안은 갑자기 나타난 용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 뭡니까? 개성이 강한 복장을 보니 왕국군은 아닌 것 같은데.”
파비안의 질문에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이 삐딱한 태도로 답했다.
“우리는 어비스의 자경단이다. 너희는 어디에서 온 누구냐?”
선두가 멈춰 선 사이 뒤따르던 엘리오 일행이 파비안과 타인록 주위에 모였다.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물었다.
“왜? 뭐래?”
“자경단이랍니다.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묻는데요?”
“자경단이 아니라 자강단 같은데?”
“자강단은 뭡니까?”
“자발적 강도 단체. 자강단.”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기세등등한 모습에 흉악한 외모 하며, 누가 봐도 용병단의 탈을 쓴 강도였다.
파비안이 나름 정중하게 답했다.
“우리는 북부에서 온 모험가들입니다. 그쪽은 자경단이 맞습니까?”
“누구냐고 물었다. 북부의 모험가가 너희밖에 없는 게 아니라면 신분을 밝혀라.”
“오마르 경, 라고아 경, 그리고 나는 클라우드라고 합니다. 우리 외에 다른 사람들은 제국과 남부 출신의 모험가고요. 이제 내 질문에도 답을 주시죠. 그쪽은 자경단이 맞습니까? 혹시 자강단은 아닙니까?”
“자강단은 뭐냐?”
“자발적 강도 단체요.”
“…….”
뜻밖의 대답에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은 한순간 할 말을 잊었다.
그때 바이퍼 용병단 부단장이 한마디 했다.
“우리는 자경단이 맞소. 그런데 자경단 활동을 위해서는 약간의 후원이 필요하오. 그러니 일인당 일 골드씩만 후원해 주시오.”
이 정도면 말이 자경단이지 그냥 강도단이다.
혹시나 하고 지켜보던 파비안이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어이! 강도 새끼들! 그렇게 돈을 달라고 하면 주는 사람들이 있더냐?”
파비안의 욕설에 용병들이 일제히 롱소드를 뽑아 들었다.
그냥 싸우기 뻘쭘했던지 헬독 용병단 부단장 맥파이가 한마디 했다.
“우리를 강도단이라 모욕했으니 용서할 수 없다! 목숨으로 죗값을 치러라! 쳐라!”
용병들이 ‘와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앞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그 모습을 본 파비안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꽤나 신중한 강도들이네?”
미친 개떼처럼 달려들 줄 알았는데 전쟁터의 정병들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하다.
하지만 하는 짓이 영락없는 강도들이라,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인록과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차창―! 차차창―!
숫자는 많았지만 용병들은 네 사람을 당해 내지 못했다.
특히나 타인록의 경우 단숨에 두세 명의 용병들을 쓰러뜨렸다.
본래 강한 기사가 엘리오의 가르침까지 받았으니 양 떼에 뛰어든 늑대 같았다.
싸움이 막 혼전으로 치닫기 직전, 갑자기 슬라터 용병단 부단장이 슬금슬금 뒤로 빠졌다.
십여 명의 슬라터 용병단원들이 그와 함께 뒷걸음질 쳤다.
세 명의 부단장을 제외하면 모험가들과 일대일로 견줄 사람이 없다.
거기서 하나가 빠졌으니 용병들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
헬독 용병단과 바이퍼 용병단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헬독과 바이퍼 용병단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슬라터 용병단의 뒤를 따랐다.
타인록,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가 용병들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다 죽일 생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강도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기 위해서다.
어비스에 있는 다른 모험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선의로 그런 것이다.
자연히 선두와 후미의 거리가 벌어졌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루나 마일러스는 엘리오를 불렀다.
“엘리오.”
“예?”
“용병들의 행동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니?”
“원래 강도들이 몰리면 저렇게 도망가요.”
“상대의 신분을 물은 걸 말하는 거야. 보통은 상대를 확인하지 않잖아.”
“그건…… 그렇네요. 왜 굳이 신분을 물었지?”
“전에 습격했던 용병단들이 마력총을 사용했으니…….”
그녀가 막 ‘마력총을 쏠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말하려 할 때다.
퍼퍼퍼펑―! 퍼퍼퍼펑―! 퍼퍼퍼퍼펑―!
무지막지한 마력총 소리와 함께 수십 발의 마력탄이 후미로 날아왔다.
쐐애액―! 쐐액!
붉은빛의 꼬리를 끌며 날아오는 그것은 모두가 엑시티움이었다.
순간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가 성녀의 앞을 몸으로 가로막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엑시티움은 성녀가 아니라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리오 라고아 백작에게 날아갔다.
퍼퍼퍼퍽―! 퍼퍽―! 퍽!
깜짝 놀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엘리오는 각각 좌우편으로 흩어졌다.
엑시티움이 자신들을 노리고 있으니 성녀에게서 떨어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몇 개의 엑시티움이 성녀에게 날아들었다.
퍼퍽―!
성기사 알메트 하레브의 상체에서 피가 튀었다.
엑시티움에 직격당했지만 알메트 하레브는 숨지 않았다.
그는 마치 방패처럼 성녀의 앞을 지켰다.
몸으로 엑시티움을 받아 내는 그를 향해 루나 마일러스가 소리쳤다.
“하레브 경! 피해요! 그러다 죽어요! 죽는다고요!”
그러나 알메트 하레브는 롱소드를 땅에 박은 뒤, 그것에 의지해 몸을 꼿꼿이 세웠다.
성녀를 위해 죽는 것이야말로 성기사의 사명인 까닭이다.
엑시티움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한 줄기는 라르바 오마르 백작, 다른 한 줄기는 엘리오에게 쏟아졌다.
사람의 움직임이 마력탄보다 빠를 수는 없다.
퍽!
절벽을 밟으며 질주하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한편 엘리오의 상황도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엘리오는 호신강기를 끌어 올렸지만 엑시티움을 막지 못했다.
적의 주의를 끌기 위해 무리하게 버틴 탓에 몸 이곳저곳이 욱신거렸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이전처럼, 또 부상을 입은 것이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무모하게 날뛰지 않았다.
이세계의 검술과 마법은 견뎌 낼 수 있지만, 엑시티움은 다르다.
엑시티움이 심장이나 머리에 박히면 자신은 죽는다.
단전에 박히면 죽느니만 못한 폐인이 될 것이다.
중상을 입어도 안 된다.
루나 마일러스가 신성력을 사용하면 이번에는 사라질 게 거의 확실했으니까.
그는 엑시티움을 칼로 쳐 내며 일단 은신한 적들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쩡―!
엑시티움에 맞은 롱소드가 묵직한 소리와 함께 뚝 부러졌다.
‘씨발 것들! 다 죽인다!’
울컥한 그는 더 늦기 전에 반토막 난 롱소드로 천산검영(千山劍影)을 펼쳤다.
천백억이나 되는 ‘검의 화신(化身)’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곧이어 노을 진 하늘에 가득하던 검의 화신들이 유성처럼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콰―!
천산검영에 휘말린 해골 골짜기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한편 용병단이 마력총을 쏘자 타인록,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는 사색이 됐다.
그들도 초저녁 노을을 가르며 날아가는 붉은 빛줄기를 본 때문이다.
타인록이 파비안을 힐끔 보았다.
지금은 한가하게 용병단 잔당을 따라갈 때가 아니었다.
저 셋이 용병단 잔당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가까운 둔덕으로 달려갔다.
모험가 하나가 방향을 틀어 다가오자 헬독 용병단 총병 셋이 총구를 돌렸다.
퍼퍼펑―!
엑시티움에 직격당한 타인록이 풀썩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황당한 얼굴로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수십 년간 쉬지 않고 단련한 육체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소드 익스퍼트도 상대할 자신이 있었는데 고작 총병 따위에게 목숨을 잃다니?
허탈한 듯 푸들푸들 웃던 그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죽어 가며 하늘을 보는 타인록의 눈에 별처럼 많은 검이 보였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검술이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의 육신 위로 ‘검의 화신’이 무심하게 내리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