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2
1302회. 총사들보다 큰 공을 세우라
론디니움 제국.
수도 페트로폴리스 중구의 고급 주택.
텅 빈 서재에 마력장이 생성되더니 이내 사람 하나가 허공에서 툭 튀어나왔다.
7서클 흑마법사 찰스 맨슨이다.
초장거리 텔레포트를 사용한 충격으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그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하아! 드디어 페트로폴리스로군.’
남부 대수림에서 중부 페트로폴리스까지의 텔레포트는 비록 세 곳을 거쳐 왔다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이 마구스라 불리는 최고의 마법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뿌듯함도 잠시, 이내 그는 옷을 갈아입고 고급 저택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찰스 맨슨은 서구의 파라바하드 마탑 앞에 나타났다.
파라바하드 마탑은 원소 마법에 매진해 ‘전투 마법사들의 성지’라 불리는 곳으로 입구부터 경비가 삼엄했다.
무심한 눈으로 경비를 보던 그는 가까운 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30분쯤 지났을까?
창가 자리에서 차를 마시는 그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파라바하드 마탑의 부탑주 카르앤 돌로레스다.
그녀는 중년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사한 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찰스 맨슨은 무덤덤한 눈으로 맞은편 빈자리를 가리켰다.
카르앤 돌로레스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사이에 대담해지셨네요? 대낮에 마탑 앞까지 진출하시고.”
“그만큼 다급하다는 거지.”
“운이 좋으시네요. 탑주님이 황궁으로 가신 지 여러 날 되거든요.”
“스승님은 아직도 날 원망하시느냐?”
“후사를 맡기려던 수제자가 샛길로 빠졌으니 원망하지 않으면 이상하죠.”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마 죽을 때까지 원망하실 거예요. 아시잖아요, 탑주님 성격.”
“젠장, 빨리 돌아가시기만 빌어야겠군.”
“이걸 어쩌나. 십 년 전에 바디 체인지를 하셔서 오래 사실 텐데.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로 나를 불러냈는지나 말해 봐요. 탑주님이 안 계셔서 더 바빠진 몸이라고요.”
애매한 얼굴로 찻잔을 매만지던 찰스 맨슨이 입을 열었다.
“내가 마탑에서 특별한 의뢰를 받았는데……. 일이 잘 안 됐다.”
“아직도 조직이 남아 있어요?”
카르앤 돌로레스가 황당한 눈으로 찰스 맨슨을 보았다.
의장인 웨인 케이시가 사형당한 뒤로 크레센트라는 조직도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의뢰를 받았다니 놀란 것이다.
“인맥으로 받은 의뢰다.”
“아하. 그런데요? 조직도 없는데 실패했다고 문제 될 게 있나요?”
“나에게 책임을 묻거나 할 사람은 없다. 다만 목표물이 내가 누군지 알게 되면…….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한다는 게 문제지.”
“숨어야 한다고요? 설마 크나우프 대공이라도 노렸던 거예요?”
“비슷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노렸었다.”
“북부에서 마족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그 기사요?”
“잘 아는구나.”
“잘 알 수밖에요. 황태자 전하가 벼르고 있는 사람인데.”
전투 마법사를 양성하는 파라바하드 마탑은 황궁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터라 마법사들 또한 황실과 가까웠다.
차기 황제가 될 황태자의 곁에 파라바하드 마탑 출신의 마법사들이 포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부탑주인 카르앤 돌로레스 역시 황태자의 근황을 알고 있었다.
“황태자가 그를 벼른다고?”
“북부를 상징하는 기사잖아요. 조만간 북부의 선봉에 설 기사를 죽이겠다는 거죠.”
“북부까지 전선을 확대할 생각인가 보군.”
“아직은 제국군이 밀리고 있는 상황인데 놀라지 않으시네요?”
“나도 마공학자들과 황태자가 손을 잡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역시! 마탑에 인맥이 있으니 정보가 빠르네요. 그 물건이 양산에 들어간 것도 알고 계시겠네요?”
‘그 물건’이 엑시티움이라는 걸 찰스 맨슨은 단번에 알아들었다.
“물론이지.”
그는 자신이 이미 엑시티움을 손에 넣었음은 말하지 않았다.
“황태자가 자신감에 차 있을 만하죠?”
“파라바하드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겠구나.”
파라바하드 마탑은 마공학을 연구하지 않는다.
자연히 정통 마법사인 파라바하드 마탑의 마법사들과 마공학자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탑주님이 황실에 가신 것도 그래서예요. 그곳에 있는 마법사들의 처우를 개선시키겠다고. 자칫 마공학자들에게 황실 마법사의 자리도 내주게 생겼다니까요.”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겠느냐?”
“아직 황실 분위기를 몰라서 그래요. 벌써 황실 근위 기사들을 모두 총사로 바꾼 거 알아요? 전투 마법사가 마공학자에게 밀려나는 날도 얼마 안 남았다니까요.”
“그래서 그걸 보고만 있을 셈이냐?”
“그럴 리가요. 탑주님이 가신 지 여러 날 지났으니 무슨 변화가 생기겠죠.”
“변화라…….”
어쩌면 황태자와 탑주 간에 모종의 거래가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하던 찰스 맨슨이 말했다.
“알아 둬라. 북부의 기사를 제거하려면 크나우프 대공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러자 카르앤 돌로레스가 찰스 맨슨을 힐끔 쳐다보았다.
“뭐예요? 그건. 설마 북부의 기사를 대신 처리해 달라는 부탁인가요?”
“황태자의 환심을 사려면 북부의 기사를 죽여야 할 테니 너희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다.”
“7서클 마구스께서, 아니 흑마법의 도움을 받았으니 8서클의 경지에 도달했겠군요. 그런 힘으로도 실패한 일을 해 달라고요?”
“양산에 들어간 신무기와 전투 마법사, 그리고 크나우프 대공이면 신도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북부의 기사가 그렇게 강하다고요?”
카르앤 돌로레스가 기막힌 얼굴로 찰스 맨슨을 보았다.
엑시티움과 전투 마법사들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크나우프 대공까지 끌어들이라니?
“과거의 하네스 크나우프 대공이 군신(軍神)이라면, 그자는 전신(戰神)이다. 카이저 크나우프 대공을 끌어들일 수 없다면 아예 건드릴 생각도 하지 마라.”
“무슨 그런…….”
아직 납득하지 못한 카르앤 돌로레스를 두고 찰스 맨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홀로 남은 카르앤 돌로레스는 한때 선배였던 흑마법사 찰스 맨슨이 남긴 말을 곰곰이 되씹었다.
‘북부의 기사를 상대하려면 크나우프 대공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그건 선배가 아직 엑시티움의 파괴력을 몰라서 하는 소리다.
기사와 마법사 들의 자리를 위협하는 엑시티움의 위력을 보았다면 달라졌으리라.
‘이럴 때는 엑시티움이 든든하단 말이지.’
아주 잠시 마공학자들에 대한 증오심 대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파라바하드 마탑.
황궁에 갔던 파라바하드 마탑 탑주는 닷새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그는 오자마자 부탑주인 카르앤 돌로레스를 불렀다.
잠시 후 부탑주 카르앤 돌로레스가 탑주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고생하셨어요.”
부탑주의 인사에 탑주 레그 데이비스가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내가 없는 동안 너도 수고 많았다.”
“황실 마법사들은 다들 잘 지내죠?”
“처우가 예전 같지는 않은 모양이더라.”
탑주의 말에 부탑주는 마음이 무거웠다.
어지간하면 인사치레로라도 ‘잘 지낸다’고 했을 텐데 사태가 심각한 모양이다.
“많이 안 좋은가요?”
“코르보 마법 병단이 패한 뒤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코르보 마법 병단의 전투 마법사들 태반이 파라바하드 마탑 출신이다.
그러다 보니 코르보 마법 병단의 승패에 따라 파라바하드 마탑의 위상도 오르내리곤 했다.
“너무들 하네요. 고작 토렌스에서 한 번 패배한 것뿐인데.”
“그야 누가 모르느냐. 다만 남부 왕국의 강철 골렘을 상대로 다시 싸워 이길 가능성이 없으니 그러는 것이지.”
“황실 마법사들은 뭐라고 해요? 아예 마법사들의 마법 공격이 안 통한대요?”
“마법에 직격당해도 끄떡없으니 안 통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들 한다.”
“마법 공격에 끄덕이 없었다고요?”
“그래서 더 강한 힘으로 타격하겠다고 꺼내 든 게 엑시티움 아니냐.”
“엑시티움으로 성과를 보면 마법사와 기사의 자리가 더 좁아지겠네요?”
“벌써 총사대 모집 창구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단다. 아카데미에서도 기사와 마법사의 정원을 줄이고, 총사대를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니……. 쯧!”
늙은 탑주 레그 데이비스는 세태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찼다.
“황실 마법사의 정원도 줄어들겠네요? 근위대도 총사로 바뀌었잖아요.”
“엑시티움의 여파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남부 왕국과 전쟁이 끝나도 가라앉지 않을 게다. 총사를 배출한 가문에서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겠느냐?”
“기사들은요? 그들도 엑시티움이 보급되는 걸 싫어하잖아요.”
“지금 분위기에서 엑시티움을 반대하는 건 역적이나 마찬가지라……. 누구도 대놓고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세를 뒤바꿀 수 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네요?”
“특히나 우리 마법사들에게는 더욱 좋지 않지. 우리만 할 수 있던 일들을 앞으로는 총병이 대신하게 됐으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황실에 갔더니 그런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탑주 레그 데이비스가 한숨을 흘렸다.
황실의 대접부터가 달라졌다.
과거 자신이 황궁을 방문하면 황태자가 달려와 맞이했는데, 이번에는 황실 마법사를 몇 차례 보내서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황실 마법사들의 처우 개선은 어떻게 됐나요?”
“황태자 전하께서 총사들보다 큰 공을 세우라고 하신다. 그럼 자연히 처우가 개선될 거라고.”
“예에? 황태자가 그런 소리를 했다고요? 황실 마법사를 총사에 비교하다니!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요?”
“지금 황실의 분위기가 그렇다. 엑시티움의 양산에 들어가면서 뿌리부터 바뀌고 있다. 이 끝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다.”
부탑주 카르앤 돌로레스가 황망한 눈으로 스승인 탑주를 보았다.
파라바하드 마탑에 입문할 때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전투 마법사가 총사 따위에 비교당하다니!
총사가 누군가.
마나의 축복은 받았지만, 칼부림이 무서워 마력총을 잡은 얼간이들 아니던가.
황실 마법사가 그런 사람들보다 못한 평가를 받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카르앤 돌로레스가 물었다.
“스승님, 황태자가 말한 큰 공이라는 게 뭔가요?”
“남부 왕국에 있는 북부의 기사를 처단하라고 하셨다.”
탑주가 ‘북부의 기사’라는 별칭으로 부를 만한 사람은 딱 하나다.
“설마 북부의 영웅인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죽이라는 건가요?”
탑주인 레그 데이비스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륙을 지킨 영웅이라 칭송하며 백작 작위까지 내려 놓고, 죽이라고요?”
“엑시티움이 양산되기 전에는 북부 눈치를 보느라 그런 거고. 이젠 미래의 적이 될 게 분명하니 싹을 자르겠다는 거지.”
“싹이라고요? 그랜드 마스터를 누가 싹이라고 하나요?”
“다른 마탑에서 마력총과 엑시티움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다른 마탑’이라는 말에 카르앤 돌로레스가 눈을 찌푸렸다.
“다른 마탑요? 혹시 타불라 마탑인가요?”
“맞다. 타불라 마탑의 마공학자들이 만든 마력총을 최고로 친다니……. 우리가 하는 일에 미력하나마 도움이 될 게다.”
레그 데이비스는 전투 마법사의 자존심에 ‘미력하나마’를 덧붙였다.
순간 카르앤 돌로레스는 찰스 맨슨이 자기 앞에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가 암살에 실패하자 타불라 마탑이 황태자를 들쑤셔 파라바하드 마탑을 끌어들인 것이다.
찰스 맨슨이 거기까지 알고 찾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벌써 황태자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건 아니죠?”
“그래도 그랜드 마스터를 암살하는 일을 즉흥적으로 처리하면 안 되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잘하셨어요.”
부탑주 카르앤 돌로레스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찰스 맨슨은 ‘크나우프 대공의 협조를 얻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큰일에 고작 황실 마법사의 처우 개선 따위를 걸어서야 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