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7
1307회.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나?
현재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이 대치하고 있는 곳은 토플라 공국의 어반이다.
토렌스를 빼앗긴 제국군은 산업 도시인 어반의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다.
남부 왕국군에서 무려 열다섯 기의 강철 골렘을 투입했지만, 어반을 사수하겠다는 제국군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비록 강철 골렘이 지상 최강의 병기인 것은 사실이나, 도시를 점령하려면 어쨌든 남부 왕국군이 진격해야 한다.
그런데 남부 왕국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도시인 어반을 점령하지 못했다.
주요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제국군의 전략에 말린 탓이다.
전선에서 밀린 제국군은 남부 왕국군 후방으로 특작 부대를 보내 보급로 차단에 나섰고, 이에 남부 왕국군은 세 기의 강철 골렘을 전선에서 빼내 보급로를 지키게 했다.
수리 중인 강철 골렘이 세 기.
나머지 아홉 기의 강철 골렘으로 ―제국군이 필사적으로 사수하고 있는― 어반을 점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전선은 어반을 가운데 두고 몇 달간 고착 상태였다.
전황은 제국군에게 불리했다.
남부 왕국군이 보급의 문제를 뒤로하고 어반으로 진격해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부 왕국군 총사령관 클랜 바우처 공작은 신중한 성격이라 보급로의 안전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여겼다.
클랜 바우처 공작이 어반의 점령보다 보급로를 중시한 것도 이유가 있다.
행여나 제국군에 남부 왕국이 보낸 강철 골렘과 수리 부품을 탈취당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어차피 어반은 남부 왕국에서 강철 골렘을 추가로 더 보내 주면, 언제라도 점령할 수 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사이 제국군은 은밀하게 반격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토플라 공국.
산업 도시 어반.
시장 관저.
정오 무렵.
황태자이자 원정군 총사령관인 루이스 프레이저 3세는 원정군 참모장 레이드 코스탁 후작을 집무실로 불렀다.
잠시 후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황태자가 물었다.
“바탈리온 부대의 상황은?”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총병 삼백과, 골리앗 여섯 기가 대기 중에 있습니다.”
황태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세 기를 받고, 그다음 약속대로 석 달 동안 한 기씩 총 여섯 기를 받았다.
“여섯 기라…… 아쉽지만 그래도 강철 골렘의 눈은 확실하게 끌겠군.”
“현재 남부 왕국군에 있는 강철 골렘의 숫자가 아홉입니다. 골리앗을 보면 먹잇감인 줄 알고 달려들 겁니다.”
“내일 새벽, 총반격에 나선다. 바탈리온 부대가 강철 골렘을 무력화시키면, 단숨에 토렌스까지 적을 밀어붙인다. 칼라일 후작에게 선봉을 맡길 테니 패전의 수치를 씻으라 해라.”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바탈리온 부대에 감찰관을 파견하도록.”
“감찰관을요?”
“엑시티움을 총병들에게 그냥 믿고 맡길 수는 없지 않느냐.”
“외람된 말씀이오나 전투가 시작되면 감독이 되겠습니까?”
“상징적으로 보여 주려는 것이다. 엑시티움의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할 테니까.”
“아, 알겠습니다. 감찰관에게 하루에 한 번씩 엑시티움의 현황을 파악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골리앗 기술자는 서른 명인가?”
“그렇습니다.”
“백 명까지 늘리라고 해라.”
“골리앗의 숫자에 비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파괴된 강철 골렘을 수거해 연구하려면 그 정도 인원으로도 부족하다. 우리도 손에 넣은 강철 골렘을 써먹어야 할 거 아닌가.”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마탑에 마공학자들을 더 보내라고 하겠습니다.”
“마탑이 반발하지 않게 잘 구슬려야 할 것이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엑시티움이 총병들에게 보급된 뒤로 마법사들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벌써?”
“머리가 좋은 사람들 아닙니까. 엑시티움 총병이 전투 마법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걸 넘어서…… 군부의 눈치까지 보는 지경입니다. 이제는 엑시티움으로 무장한 총병이 두려운 거겠지요.”
황태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기야 엑시티움에 맞으면 마구스(7서클 대마법사)의 실드도 부서질 판이니 조심해야지.”
“전하, 하지만 그건 우리 기사들도 마찬가지라 웃을 일만은 아닙니다.”
“쯧쯧! 경은 하나만 알고 둘을 몰라. 엑시티움으로 이 세상의 신분 질서가 뒤집어질 것 같은가? 아니, 오히려 그 반대야. 엑시티움 앞에 신분 질서는 더 공고해질 거다. 두려워만 말고 엑시티움 총병이 누구 손에 있는지를 생각해 봐라.”
“아…….”
레이드 코스탁 후작이 존경의 눈으로 황태자를 보았다.
확실히 황태자는 비범한 사람이다.
모두가 엑시티움이 가져올 변화를 걱정할 때 그는 그걸 이용할 생각을 한다.
“오늘 바탈리온 부대를 방문해 크라노 바넥 자작을 격려해라. 강철 골렘을 상대하다 보면 사상자가 많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명대로 하겠습니다.”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황태자에게 군례를 올린 후 돌아서 나갔다.
***
다음 날 새벽.
전선에서 처음으로 골리앗을 목격한 제국군 진영이 술렁거렸다.
강철 골렘에 비해 왜소한 골리앗을 본 귀족들은 실망한 얼굴로 페론 칼라일 후작에게 달려가 한마디씩 했다.
“사령관 각하. 황태자 전하의 비밀 병기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어른과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골리앗은 강철 골렘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골리앗의 무장이 뭔지 아시면 웃으실 겁니다. 마력총이랍니다. 강철 골렘이 쏘는 ‘죽음의 빛’에 비하면 어린아이 장난입니다.”
“바탈리온 부대가 전멸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마나 유저는 부대장인 크라노 바넥 자작과 총병 중대장인 필로스 하우드 남작밖에 없답니다. 총사 둘과 총병 삼백 명을 선봉에 세우다니……. 그건 그냥 나가 죽으라는 소리 아닙니까?”
“총병들을 호위하는 방패 부대도 없더군요. 황태자 전하의 용병술이 뛰어나다는 게 사실입니까? 저희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주위가 소란해지자 페론 칼라일 후작이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다.
참모장인 호크 안드레 백작이 사령관에 앞서 잔소리를 했다.
“골리앗과 바탈리온 부대는 엑시티움으로 무장했으니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지 마라. 특히나 황태자 전하에 대한 불경스러운 소리를 다시 입에 올리는 자는 용서치 않을 것이다.”
뒤로 갈수록 참모장의 언성이 높어졌다.
토레스를 빼앗긴 처지에 황태자까지 비방한 게 알려지면 중벌이 내려질 게 뻔해서다.
참모장의 일갈에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페론 칼라일 후작이 나섰다.
“참모장의 말대로다. 결과는 곧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행여나 감찰부에 불려 다니고 싶지 않으면 입들 조심해라. 미리 말해 두지만 강철 골렘이 건재하면, 오늘의 총공세 또한…….”
그가 ‘없다’고 말하려는 순간, 전방에 강철 골렘 여섯 기가 출현했다.
남부 왕국군이 운용하는 강철 골렘의 숫자가 아홉 기니 제국군에 맞춘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조롱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그때 제국군 진영에 있던 여섯 기의 골리앗이 강철 골렘을 향해 달려갔다.
강철 골렘들도 마중을 나가듯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제국군과 남부 왕국군 진영 중간 지점에서 골리앗과 강철 골렘이 만났다.
페론 칼라일 후작의 부하들 말처럼 어른과 어린아이가 싸우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양측 다 순수하게 상대의 물리력이 궁금한지 몸싸움만 벌였다.
그걸 두고 양측의 마공학자들은 ‘골리앗과 강철 골렘이 상대의 기량을 측정하느라 그랬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골리앗과 강철 골렘 모두 자아를 가졌기에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이었다.
골리앗과 강철 골렘의 몸싸움은 싱겁게 끝났다.
애초에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먼저 강철 골렘 세 기가 골리앗 세 기의 허리를 두 손으로 접어 버렸다.
콰득! 콰득! 콰드득―!
남부 왕국군 진영에서 ‘푸하핫!’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가 강철 골렘이 골리앗을 박살 낼 것이라 여기던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위기를 느낀 골리앗들의 손등에서 마력총이 튀어나오더니 불을 뿜었다.
펑! 펑! 퍼엉―!
순간 강철 골렘의 장갑에 구멍이 숭숭 뚫렸다.
마력포에 맞아도 멀쩡하던 장갑임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세 기의 강철 골렘 장갑에 구멍이 났고, 그중 한 기가 작동을 멈추고 뒤로 나자빠졌다.
이번에는 제국군 진영에서 ‘와아아!’ 하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마력포에 맞아도 멀쩡하던 강철 골렘을 골리앗이 파괴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자아가 있는 골렘들답게 골리앗과 강철 골렘들 모두 판단이 빨랐다.
골리앗들의 손등에 달린 마력총이 두 발로 서 있는 강철 골렘을 향했다.
하지만 자아가 있는 건 골리앗만이 아니다.
강철 골렘들의 눈에서 일명 ‘죽음의 빛’이라 불리는 붉은 빛줄기가 뻗어 나왔다.
‘죽음의 빛’에 스친 골리앗의 팔이 몸통에서 분리됐다.
투두두둑―!
이윽고 강철 골렘들이 골리앗들에게 다가가 양손으로 몸통을 우그러트렸다.
남부 왕국군 진영에서 다시 한번 ‘와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국군 진영에서 삼백 명의 총병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바탈리온 부대가 움직인 것이다.
강철 골렘들이 들고 있던 고철 덩어리를 던진 뒤 제국군을 향해 돌아섰다.
그 순간 바탈리온의 총병들이 일제히 마력총을 발사했다.
퍼퍼퍼퍼퍼퍼펑―!
놀랍게도 골리앗에게 당할 때처럼 강철 골렘의 몸에 구멍이 뻥뻥 뚫렸다.
철탑처럼 서 있던 강철 골렘들이 밑둥 잘린 나무처럼 뒤로 넘어갔다.
인간과 강철 골렘의 싸움에서 마침내 인간이 승리한 것이다.
강철 골렘들이 쓰러지자 레이드 코스탁 후작은 롱소드를 뽑아 들고 소리쳤다.
“공격!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벼락 치는 듯한 그의 명령에 제국군 기사단이 앞으로 돌진했다.
뒤이어 제국군 전체가 파도처럼 남부 왕국군을 향해 밀려갔다.
강철 골렘들이 쓰러진 순간 전쟁의 승패는 이미 결정 났다.
남부 왕국군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 하고 단숨에 토레스까지 밀렸다.
거짓말처럼 전세가 역전됐다.
다음 날, 제국군은 남부 왕국군을 토플라 공국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그렇게 전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단지 겉보기만 그럴 뿐, 제국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
어비스 미개척지.
선두에서 산길을 걸어가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멈칫했다.
몇 걸음 앞서가던 파비안이 얼른 그에게 돌아갔다.
“무슨 일 있습니까?”
“이걸 보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손가락이 산길을 가리켰다.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파비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길을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맞네. 자네도 지금 길이라고 했지? 사람이 들어온 적 없는 미개척지대 깊숙한 곳에 길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어? 그러네요?”
파비안이 예리한 눈으로 산길을 살폈다.
짐승이 다니는 길이려니 생각했는데 오마르 백작의 말을 듣고 보니 수상쩍다.
어쩐지 그보다 훨씬 더 잘 다져진 느낌이다.
“미개척지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나?”
“그럴 리가요. 이런 곳에서는 소드 익스퍼트도 버티지 못할 겁니다.”
파비안은 고개를 저었다.
타메이온의 마족이라면 모를까? 사람은 단 하루도 살기 어려울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