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09
1309회. 의심과 모략의 신
리더가 생각을 바꾸지 않자 기간타스 전사들의 시선이 투토를 향했다.
투토가 한마디 해 주기를 바라는 눈빛이다.
그러나 투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더 이상 리더인 쿰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
기간타스는 키가 5미터나 되는 거인족이다.
인간에게 그들의 수군거림은 가히 천둥소리에 비견될 만큼 컸다.
시끄럽던 기간타스가 조용해지자 하워드 솔론 남작이 엘리오에게 말했다.
“갑자기 조용해졌네요?”
“마족들 서열이 확실해서 그래. 다들 인간과 제대로 싸워 보자고 하는데, 리더가 족장에게 데려간다고 정리했어.”
“아.”
고개를 끄덕이던 하워드 솔론 남작의 시선이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가슴으로 향했다.
“그건 혹시 아티팩트입니까?”
“어, 마족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아티팩트야.”
“그런 아티팩트도 있습니까?”
하워드 솔론 남작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검은 수정 목걸이를 보았다.
마족의 언어를 통역해 주는 아티팩트라니!
눈으로 목격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 헛소리로 치부했을 게다.
“세상에 뭔들 없겠냐.”
“마탑은 정말 못 만드는 게 없군요.”
마탑에서 제작한 게 아니지만 엘리오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마족 군주가 된 것까지 알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크레아가 말했다.
“목걸이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어비스에 어울리네요. 다른 모험가들에게 어비스에서 발견한 보물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정말 그러네. 보기 드문 검은 수정도 그렇고. 진짜 어비스의 물건이라고 해도 되겠는데?”
하워드 솔론 남작이 동조하자 엘리오는 검은 수정 목걸이를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두 사람의 말마따나 풍기는 분위기가 딱 어비스다.
수정에 담긴 기운 때문에 어비스와 어울린다고 하는 것 같았다.
‘마력의 근원이 카오스니 그럴 수밖에…….’
카오스의 존재를 몰랐을 때 마력은 영 생뚱맞고 불길했다.
실체를 모르는 힘인 까닭이다.
하지만 어비스에 온 뒤로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찾아왔다.
마력은, 아니 카오스는 이 세계의 질서인 마나와 다른 힘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힘은 ―지하 깊숙이 있는― 어비스에 충만하다.
그리고 어비스의 미개척지에는 마족이 살고 있다.
‘북부 타메이온에서 본 마족이 왜 남부의 땅 밑에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몰라.’
자신은 우샤스 운드라를 죽이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엘리오는 들고 있던 트레듀서를 상의 속으로 집어넣었다.
마족과 작별하면 마하담에 넣고 다시 꺼내지 않을 생각이다.
세 시간 후 기간타스 전사들은 유독 날카롭고 험준한 산의 초입에 멈춰 섰다.
“여기가 우리 부족이 사는 곳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다면 잡지는 않겠다.”
쿰(기간타스 전사들의 리더)의 말에 엘리오가 말했다.
“안내나 해 줘.”
“나는 몇 번이나 경고했다. 이제부터 일어나는 일은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다.”
“나도 미리 말해 두는데 나와 싸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칼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거든.”
“그건 무슨 뜻이냐?”
“아는 마족이라고 사정 봐주기 어렵다고. 살고 싶으면 알아서 도망치라는 소리야.”
“크하핫! 대단한 자신감이로구나! 다른 건 다 별론데 그 점 하나는 마음에 든다. 네가 침략자만 아니라면 나는 너를 적대시하지 않겠다.”
“아까부터 침략자 침략자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인간은 이곳에 발을 디딘 적이 없다고. 그런데 왜 자꾸 침략자라고 하는 거야?”
“그건 족장님을 만나면 알게 될 것이다.”
말을 마친 쿰이 기간타스 전사들과 함께 빠르게 산으로 진입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속도에 엘리오 일행은 마나를 이용해 달려갔다.
기간타스 전사들은 무려 한 시간이나 산을 달려 올라갔다.
산 중턱에 오르자 거대한 분지가 나타났다.
분지 중앙에 마을이 조성되어 있는데 나무와 바위를 이용해 만든 집들의 크기가 마치 영주의 별궁을 보는 듯했다.
기간타스 전사들의 뒤를 따르는 인간을 본 거인들이 길거리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거인들이 인간을 가리키며 난리 법석을 떨었다.
손가락질은 기본이요, 심지어 어떤 거인은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기간타스 전사들은 자신들의 성과를 다른 거인들에게 넘겨줄 마음이 없었다.
기간타스 전사들이 무기를 빼 들고 눈알을 부라리자, 거인들도 포기한 듯 뒤로 물러났다.
크레아가 놀란 얼굴로 하워드 솔론 남작에게 물었다.
“지금 우리를 먹겠다고 저러는 거예요?”
“분위기가 그런 것 같다.”
“우리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그러자 파비안이 말했다.
“우리 라고아 경이 화를 내면 한순간에 정리되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아서…….”
“북부에서는 마족들이 이보다 백배 천배 많았지만 무사했다. 오히려 마족들이 라고아 경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라고아 경이 북부에서 마족 군단을 물리쳤다는 소문은 들었어요. 그런데 여긴 전쟁터가 아니라 마족의 마을이라…….”
“고작 마을 가지고 쫄 거 없다. 마족 군주의 성이라고 다를 것 같냐?”
코디악(몰록의 성이 있는 곳)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파비안은 피식 웃었다.
파비안이 여유를 부리자 크레아와 하워드 솔론 남작도 안정을 되찾아 갔다.
기간타스 전사들은 마을 중앙에 있는 거대한 목조 주택 앞에서 멈춰 섰다.
마을 입구부터 따라온 거인들이 목조 주택 앞으로 모여들었다.
기간타스 전사들과 인간을 남겨 두고 리더인 쿰이 족장의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쿰과 화려한 복장의 늙은 거인이 밖으로 나왔다.
늙은 거인, 카락이 짐짓 무심한 얼굴로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인간이 곰팡이처럼 어비스 한구석에 피어난 것을 알고는 있었다.
침략자들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 사냥을 하더라도 산지를 벗어나지 말라고 명했는데, 자신의 대에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한참 만에 카락이 입을 열었다.
“인간이 무슨 일로 이곳까지 왔느냐? 너희가 믿는 신의 뜻이냐? 아니면 너희의 일탈이냐?”
그러자 엘리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당신이 족장인가?”
묻는 말에 답하지 않고 되묻자 기간타스 전사들이 악을 써 댔다.
“죽고 싶으냐!”
“건방진 인간! 카락 님 물음에 답해라!”
“침략자를 죽여라!”
“카락 님! 명령만 내려 주십쇼!”
주위가 소란스러워지자 카락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제야 거인들이 입을 다물었다.
“마족의 말을 하는 인간은 처음 보는구나. 나는 족장 카락이다. 너는 누구냐?”
“나는 엘리오 라고아. 누군가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 여기까지 왔다.”
엘리오는 자신이 마족 군주이기에 족장에게 존대를 하지 않았다.
당당하다 못해 오만하기까지 한 엘리오의 태도에 카락은 눈을 찌푸렸다.
한낱 인간 따위가, 기간타스 족들의 앞에서 저런 행동이라니?
“인간이여. 내가 너희를 침략자라고 하는 순간 너희는 죽는다. 너는 우리 기간타스의 전사들이 두렵지 않으냐?”
그러자 엘리오는 마하담에서 ‘공허의 검’을 꺼내 지면에 꽂고 말했다.
“내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해?”
곧이어 그는 꾹꾹 눌러 두었던 투기를 한순간 개방했다.
고오오오―!
기간타스 족이 경험해 보지 못한 투기가 분지를 휩쓸고 지나갔다.
움찔했던 거인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러나 침략자를 죽이라던 조금 전과 달리 긴장한 눈으로 카락만 쳐다보았다.
인간이 마족 군주들과 같은 투기를 뿜어 대니 움츠러든 것이다.
카락이 기이한 눈으로 인간을 보았다.
다른 인간들은 몸에서 침략자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유독 저 인간만 달랐다.
대저 생령이 있는 만물은 영기를 가진다.
그 상태에서 태고신의 축복을 받은 게 마족과 마물, 마수들이다.
태고신의 축복을 얼마나 받았느냐에 따라 계급이 갈린다.
그런데 저 인간은 놀랍게 태고신도, 침략자인 마나 프트라스의 축복도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마족 군주에 버금가는 영기를 가졌다고?’
정말 인간이 맞기나 한지 모르겠다.
끝내 호기심을 참지 못한 카락이 물었다.
“너는 인간이냐?”
“맞아. 그런데 너희는 왜 자꾸 우리를 침략자라고 해? 어비스에 정착한 사람들 때문이야? 마족들의 힘으로 그 사람들을 쫓아 버릴 수 있잖아?”
엘리오는 늙은 거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북부에서의 경험에 의하면 마족이야말로 침략자다.
그런데 어비스에서 만난 마족이 인간을 침략자라고 하니 조금은 황당했다.
마족의 힘이면 어비스에 인간이 발을 못 디디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활동을 구경만 하면서 왜 자꾸 피해자인 척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을 침략자라고 한 것이 아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몇 번이나 들었는데. 조금 전에도 마족들이 ‘침략자를 죽여라’라고 소리 질렀잖아.”
“인간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침략의 주체는 마나 프트라스다.”
“…….”
늙은 거인의 말에 엘리오는 눈만 끔뻑거렸다.
여기서 왜 마나 프트라스의 이름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마나 프트라스가 침략의 주체라니? 마나 프트라스는 창조신인데, 창조신이 어디를 침략했다는 거야? 설마 어비스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어비스에는 마나가 아니라 카오스의 힘만 가득하다고!”
“작은 인간이여. 너는 이 우주의 비밀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구나! 그러니 마나 프트라스의 추종자들과 함께 다니는 거겠지.”
“아, 됐고. 그래, 나 무식하다. 우주의 비밀을 알고 싶지도 않아. 내가 알고 싶은 건 딱 하나야. 당신은 우샤스 운드라가 어디 있는지 알아?”
“의심과 모략의 신을 찾아다니는 건가? 바위같이 단단한 결속도 한순간에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만든다는?”
엘리오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창조신 마나 프트라스를 ‘침략자’라고 하는 마당에 ‘꿈과 환상의 신’을 ‘의심과 모략의 신’이라고 하는 게 뭐 대수라고.
“그래, 뭐라고 불리던 상관없어. 우샤스 운드라가 어디 있는지 안다면 말해 줘. 그럼 내가 어비스를 돌아다닐 일도 없다고. 당신도 인간들이 어비스를 헤집고 다니는 게 싫을 거 아냐?”
“그대의 말대로다. 알고 있다면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의심과 모략의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어비스에 당신들만 살고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왜 묻나?”
“우샤스 운드라가 어디 있는지 알 만한 마족이 있을까 싶어서.”
“다른 마족들이 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멀리 가서 찾을 것 없다. 우리 기간타스들의 대족장이신 헤카론 님이 모르는 것은 없으니까. 그분이라면 ‘의심과 모략의 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계실 것이다.”
카락은 어쩌면 마나 프트라스의 첨병일지도 모를 저 정체 불명의 인간을 대족장에게 보낼 심산이었다.
대족장의 지혜라면 저 인간의 정체와 목적을 간파할 수 있을 테니까.
고개를 주억거리던 엘리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순수한 호기심으로 묻는 건데, 마족들도 신을 믿나?”
“물론 믿는다.”
“혹시 ‘의심과 모략의 신’도 마족이 믿는 신들 중에 하나야?”
“그건 헤카론 님에게 물어보아라. 쿰이 안내해 줄 것이다.”
말을 마친 카락은 미련 없이 돌아서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