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2
1312회. 샤이틴의 아들과 죄 많은 인간
아스타로이드는 상급 마족이다.
인간들에게 상급 마족은 소드마스터보다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급 마족은 마족들 세계에서도 상위 계층으로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다.
중급 마족이며 기간타스 전사들의 리더인 쿰이 개처럼 넙죽 엎드릴 정도다.
그런 상급 마족인 아스타로이드 전사가 인간의 가벼운 반격에 허리가 잘렸으니 놀라지 않으면 이상하다.
아네트뿐만 아니라 인간을 가축 정도로 인식하던 아스타로이드 전사들 모두 충격에 빠져 한순간 돌처럼 굳었다.
그러나 놀란 것도 잠깐.
이내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은 일제히 화염검을 뽑아 들고 아네트를 보았다.
숙련된 전사들답게 리더의 전투 명령을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네트는 공격을 명하지 못했다.
화염검을 부수고, 아스타로이드의 허리를 단칼에 베어 버리는 것은 상급 마족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니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분명히 인간인데…… 어떻게…….’
게다가 이런 상황에 엎드린 기간타스가 눈치를 보는 것도 이상했다.
그는 인간과 아스타로이드 모두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아스타로이드 앞에서 인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왜지?’
그녀는 일단 흥분한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을 뒤로 물렸다.
싸우기에 앞서 적의 정체를 파악하는 게 우선인 까닭이다.
“나는 아스타로이드의 일족인 아네트다. 너는 누구냐?”
“나는 엘리오 라고아. 보다시피 사람이고.”
“그 검은 너의 것인가?”
아네트는 인간이 가진 검에 관심을 보였다.
인간의 물건치고는 그 속에 담긴 힘이 너무 강해서다.
“맞아. ‘공허의 검’이라는 이름을 붙였지.”
“‘공허의 검’을 가진 인간이여. 너는 왜 침략자들과 함께 다니느냐?”
“침략자? 그건 설마 내 일행을 두고 하는 말이야?”
“그렇다.”
“잠깐, 기간타스들도 그렇고 아스타로이드도 그렇고 왜 인간을 침략자라고 하지? 인간은 기간타스를 상대하는 것도 벅찬데?”
본래 기간타스 족장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족장이 대화를 일방적으로 끝내고 사라지는 바람에 묻지 못했다.
그런데 상급 마족인 아스타로이드까지 침략자라고 하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은 마나 프트라스의 추종자들로 모두 침략자다.”
“마나 프트라스를 추종하면 침략자라고? 왜?”
“그건 마나 프트라스가 이 세계를 침략했기 때문이다.”
“뭐? 이 세계를 마나 프트라스가 창조한 게 아니었어?”
“흥! 마나 프트라스가 이 세계를 창조했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마나 프트라스는 도적이요, 침략자다.”
“그럼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 누군데?”
“샤이틴님이시다.”
엘리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역시나 마족이라고 악신의 이름을 들먹인다.
마족들이 악신을 섬긴다는 건 알았지만 창조신으로까지 떠받들 줄이야!
“뭐, 나는 신들의 역사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렇다 치자고. 하지만 나와 내 일행은 침략자가 아니야. 우리는 단지 누군가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마나 프트라스의 추종자들과 성산에 오른 사람의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믿든지 말든지. 해 지기 전에 헤카론을 만나야 하니까 빨리 진도나 나가자. 말로 하든, 칼로 하든 나는 상관없어. 어떻게 할까?”
엘리오의 말에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죽여야 합니다!”
“명령만 내려 주십쇼!”
“아네트 님!”
그러나 아네트는 여전히 망설였다.
무엇보다 아스타로이드 전사들 앞에서 인간이 보이는 여유가 마음에 걸렸다.
“하아! 네 말이 사실이라 치자. 네가 찾는 게 누구냐?”
“우샤스 운드라(금사). 그게 어디 있는지 가르쳐 주면 굳이 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돼. 당신은 우샤스 운드라가 어딨는지 알아?”
“그 박쥐 같은 신을 왜 찾는 거지?”
“…….”
뜻밖의 반문에 엘리오는 멍한 얼굴로 아네트를 보았다.
중급 마족인 기간타스족은 ‘의심과 모략의 신’이라고 했는데, 상급 마족인 아스타로이드는 ‘박쥐’란다.
심지어 아네트는 우샤스 운드라에 대한 반감마저 가진 듯했다.
“우샤스 운드라가 누군지 아나 보네?”
“알다마다. 박쥐처럼 마나 프트라스와 샤이틴님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신이지. 본래 마나 프트라스의 종들은 어비스를 출입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우샤스 운드라만은 예외다. 그는 뻔뻔하게도 어비스를 제집처럼 사용하고 있지.”
그러자 엘리오가 한마디 덧붙였다.
“인간들은 우샤스 운드라를 어비스의 주인으로 알고 있더라고.”
“주인? 후후훗! 우샤스 운드라는 그저 어비스 출입을 허락받은 박쥐에 불과하다. 박쥐를 주인이라니? 역시 마나 프트라스의 추종자들은 입만 열면 거짓이구나.”
“됐고. 그 박쥐가 어딨는지 알아?”
“모른다.”
“그럼 비켜. 헤카론에게 물으러 가는 길이니까.”
“…….”
아네트는 머뭇거렸다.
인간이 성지에 온 목적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비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아스타로이드 전사가 죽었기 때문이다.
“왜? 더 할 말 있어?”
“너는 왜 아스타로이드 전사를 죽였느냐?”
“왜냐니? 그 마족이 먼저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나는 살기 위해 반응한 것뿐이야. 그럼 내가 마족 칼에 맞아 죽었어야 한다는 거야?”
인간의 반문에 아네트는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얼굴들이다.
인간의 일격을 본 것으로는 충분치 않은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아네트의 입술이 열렸다.
“피는 피로만 씻을 수 있다.”
말하면서도 그녀는 내심 인간이 사죄하기를 바랐다.
상급 마족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인간을 상대로 싸우려니 영 찜찜해서다.
하지만 인간은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죽는 게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순간 아네트는 분노와 두려움의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울컥한 그녀는 개처럼 엎드린 기간타스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컥!”
묵직한 신음과 함께 죄 없는 쿰의 몸이 한쪽으로 날아갔다.
이윽고 아네트가 손가락으로 엘리오를 가리키며 명했다.
“죽여라!”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이 화염검 손잡이를 두 손으로 말아 쥐고 튀어 나갔다.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 엘리오도 ‘공허의 검’을 들어 올렸다.
고오오오―.
하늘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압력에 아네트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헉! 저 검이 왜 하늘에?’
그때 공허의 검들이 빗살처럼 떨어져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에게 박혔다.
퍼퍼퍼퍽―!
달려가던 아스타로이드 전사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곧이어 아스타로이드 전사들 잔해가 아네트의 주위에 맥없이 떨어졌다.
후두두둑! 철퍼덕―!
엘리오가 망연자실한 얼굴로 서 있는 아네트에게 ‘공허의 검’을 던졌다.
깜짝 놀란 아네트가 화염검으로 공허의 검을 쳐 냈다.
콰직―!
불길한 소리와 함께 잘려 나간 화염검 조각이 허공으로 튀었다.
그와 동시에 ‘공허의 검’이 벼락처럼 아네트의 목으로 날아갔다.
그걸 본 쿰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안 돼!”
그 급박한 외침에 시원하게 뻗어 가던 엘리오의 검결지가 멈칫했다.
아네트의 목에 닿은 ‘공허의 검’이 더 나가지 않고 멈춰 섰다.
엘리오가 쿰에게 고개를 돌렸다.
“뭐가 안 돼?”
“그분은 아스타로이드족 족장의 딸이다. 아스타로이드족의 원수가 되면 헤카론 님도 그대를 돕지 못한다.”
“흐음!”
잠시 생각하던 엘리오가 검결지를 까딱이자 ‘공허의 검’이 돌아왔다.
싸움도 끝났는데 굳이 그녀를 죽여 아스타로이드족과 원수가 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이! 일어나. 우리를 헤카론인지 헤카톤인지한테 안내해야지. 기어서 갈 거야?”
그제야 쿰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윽고 그는 착잡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단 일검에 십여 명의 상급 마족을 죽일 수 있는 군주가 몇이나 될까?
문득 쿰의 시선이 상급 마족인 아네트에게로 향했다.
가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넋 나간 얼굴로 서 있던 아네트가 신경질적으로 손을 떨쳤다.
꺼지라는 뜻이다.
쿰은 그녀에게 묵례를 해 보인 후 산 정상을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쿰과 인간들이 사라지자 아네트도 어디론가 달려갔다.
잠시 후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해 지기 전에 도착하려는 듯 쿰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쿵! 쿵! 우드득! 우득!
거침없는 쿰의 걸음에 나무 허리가 뚝뚝 부러져 나갔다.
한편 엘리오 일행은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의 초입에서는 파비안, 하워드 솔론 남작, 크레아만 그랬다.
하지만 중간 지점, 정확히는 아스타로이드족과 헤어진 이후부터 라르바 오마르 백작도 여유롭지 않았다.
안개처럼 기화해서 피어오른 어둠의 에테르로 인해 산 정상 부분은 가만히 숨만 쉬어도 어질어질할 정도였다.
결국 단 한 사람도 입을 열지 않고 ‘작은 하늘 회로’에 집중했다.
노력으로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아슬아슬 위태롭던 크레아가 기어코 픽 고꾸라졌다.
그녀의 얼굴이 회색빛으로 물들어 갔다.
하워드 솔론 남작은 실신한 그녀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라고아 경.”
파비안이 쥐어짜는 소리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불렀다.
후미에 있던 엘리오가 급히 앞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치료사도 아니고, 어둠의 에테르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그에게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고민하던 엘리오는 혹시나 하고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애석하게도 어둠의 에테르는 강기막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다.
물리력이 아니니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주파해(邪呪破骸)의 주문은 통할까?’
밑져야 본전이다.
엘리오는 즉시 속으로 ‘천계멸유(天計滅類) 신력일하(神力一下)’의 주문을 외웠다.
그러나 사악한 주박(呪縛)이 아니니 통할 리가 없다.
어둠의 에테르는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더욱 몰려들었다.
급기야 크레아의 얼굴이 먹물처럼 시커멓게 변했다.
이제는 누가 봐도 큰일이 생길 것 같은 모양새다.
다급해진 엘리오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신신주(淨神神呪)를 외웠다.
지금은 ‘정신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영보천존 안위신형(灵宝天尊 安慰身形)……. 시위신형 급급여율령(侍卫身形 急急如律令)! 나가! 나가라고!’
주문의 힘인지, 엘리오의 의지 때문인지, 호신강기 안쪽에 어른거리던 어둠의 에테르가 서서히 밖으로 밀려났다.
“오마르 경, 크레아 씨의 ‘작은 하늘 회로’를 돌려 주세요.”
자신은 영기 수련자라 크레아의 마나와 충돌하니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부탁한 것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크레아의 등에 손을 대고 ‘작은 하늘 회로’를 돌렸다.
그제야 시커멓던 크레아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변했다.
어둠의 에테르를 차단하자 크레아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한동안 자력으로 ‘작은 하늘 회로’를 돌리던 크레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젠 괜찮은 것 같아요. ‘작은 하늘 회로’가 이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돌아가요.”
순간 조마조마한 얼굴로 지켜보던 하워드 솔론 남작과 파비안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 그녀가 한 사람 몫을 하게 된 것이 기뻤다.
멀뚱멀뚱 인간들을 내려다보던 쿰이 엘리오에게 말했다.
“가도 되나?”
“아니, 근데, 대체 얼마나 더 가야 헤카론을 만날 수 있는 거야? 해 지기 전에 도착한다고 하지 않았어?”
쿰이 머뭇거릴 때 산 위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샤이틴의 아들이 왜 죄 많은 인간과 더불어 나를 찾아왔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