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4
1314회. 운명은 거스를 수 없어
엘리오는 일행들에게 헤카론과 나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들은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이 어비스 모처에 세워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툼스톤과 엑소도에 퍼져 있는 ―특별히 어비스와 관계된― 우샤스 운드라의 소문을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었다.
엘리오가 파비안에게 말했다.
“마족들이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을 짓고 있다는 거야. 이상하지 않아?”
우샤스 운드라는 이 세계에서 꽤나 유명한 신이다.
그런 신의 신전을 마족들이 만들고 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볼만하리라.
“별로요. 그보다 ‘어비스에 마족들이 살고 있었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살 수도 있지. 타메이온에도 살고 있는데.”
“마족들이 타메이온으로 이주한 기록은 고대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땅 밑 까마득한 어비스에 마족이 살고 있는 겁니다. 여긴 이주가 불가능한 곳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지금까지 타메이온을 마족의 세계라고 배웠는데…….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거에 비하면 마족이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을 세우는 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그러자 하워드 솔론 남작이 끼어들었다.
“저도 아카데미에서 배운 것과 너무 차이가 나서 어질어질합니다. 이제는 어비스에 대해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닌지라 엘리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기야 미개척 지역에서 경험한 일들에 비하면 ‘마족이 우샤스 운드라의 신전을 세워 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긴 하다.
선두에서 묵묵히 걷던 쿰이 멈춰 섰다.
파비안 등과 이야기를 나누던 엘리오는 급히 거인에게 다가갔다.
“쿰. 무슨 일이야?”
“사티로스들이 앞을 지나고 있다.”
“사티로스?”
“하위 마족으로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체는 염소를 닮았다.”
“하위 마족이라며? 너는 그들보다 높은 중위 마족인데 왜 숨어?”
“숫자가 많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헤카론 님이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해서다.”
“사티로스라도 숫자가 많으면 감당이 안 돼?”
“사티로스는 안타르 신의 종이다. 숫자가 많고 적음을 떠나 그들과 싸우면 안타르 신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특히나 안타르 신을 섬기는 대족장이 마족과 시비를 일으키지 말라고 한 지금, 사티로스는 무조건 피해야 했다.
쿰이 몸을 사리자 엘리오는 나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과연!
저 멀리 사람과 염소를 섞은 듯한 마족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숫자가 무려 삼백여 명.
다시 쿰의 옆에 떨어져 내린 엘리오가 물었다.
“사티로스들은 원래 저렇게 떼거리로 몰려다녀?”
“그렇지 않다. 전쟁에 동원된 게 아니라면 뭉쳐 다니지 않는다.”
“전쟁? 마족들끼리도 싸우나?”
“푸흐흐. 싸우냐고? 먹고, 자고, 싸는 일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게 싸움이다. 마족들의 지위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사티로스들이 싸우러 간다는 거야?”
“그건 아닌 것 같다.”
“전쟁을 하기에는 적은 숫자라서?”
“사티로스들의 태반이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아하.”
엘리오는 생각보다 사티로스들의 숫자가 많아서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삼백여 명의 사티로스들은 바쁠 게 없다는 듯 느긋하게 움직였다.
머리 숫자가 많아서 그런지 긴장이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바람에 엘리오 일행은 한참 동안 자리를 지켜야 했다.
쿰과 나란히 서 있던 엘리오가 문득 물었다.
“어이, 쿰! 켄티우스 분지까지는 얼마나 걸려?”
“사흘.”
“거기는 카르나크 산지가 아닌가 봐?”
“켄티우스 분지는 랄파하드 산지 초입에 있다.”
“어비스에서 카르나크 산지와 랄파하드 산지의 크기는 어느 정도나 돼?”
“무슨 소리냐?”
엘리오는 두 손끝이 맞닿게 원을 만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비스를 대충 이 정도 크기라고 한다면, 카르나크 산지와 랄파하드 산지는 어느 정도냐고.”
“모른다.”
“모른다고?”
“나는 지금까지 카르나크 산지에서 멀리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어비스가 얼마나 넓은지 모른다.”
“마족은 자주 싸운다며?”
“카르나크 산지는 외곽에 있어 다른 마족들의 관심이 덜하다.”
“그렇군.”
엘리오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카르나크 산지가 어비스 외곽이라니 얼마나 넓은 거야?’
개척 지대와 눈으로 본 미개척 지대만 해도 하나의 왕국 크기다.
그런데 그게 외곽에 불과하다니 기가 막혔다.
사티로스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쿰은 걸음을 떼어 놓았다.
한참 쿰과 걷던 엘리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이, 쿰. 왠지 우리가 사티로스들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야?”
“맞다.”
“설마 사티로스들도 켄티우스 분지로 가는 건 아니겠지?”
무장을 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어째 느낌이 싸했다.
때마침 쿰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살짝 굳었다.
대족장은 ‘인간과 마족들이 만나지 못하게 하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출발부터 이 모양이라니.
쿰이 침묵하자 엘리오가 다시 말했다.
“혹시 사티로스들도 신전 건축에 동원된 거 아니야? 왠지 느낌이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아직 갈 길이 멀다. 사티로스들과 잠시 가는 방향이 같았을 수도 있다.”
“그런가?”
엘리오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사흘이나 멀리 떨어진 곳이라면 방향이 겹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날 밤.
저녁 식사를 마친 엘리오 일행은 여느 때처럼 파이어 스톤 불 앞에 모여 앉았다.
엘리오는 일행들에게 그들의 앞에 사티로스라는 하위 마족들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렸다.
그의 말이 끝나자 크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래서 가다 서다를 반복했군요. 사티로스의 뿔이 연금술사들에게는 보물이라던데.”
무심코 한 그녀의 말에 엘리오가 눈을 반짝였다.
“뿔이 보물이라고요?”
“네, 그래서 용병들이 사티로스의 뿔을 찾아 고대의 유적지를 뒤지곤 했어요.”
“고대 유적지에 뿔이 있어요?”
“고대에도 연금술의 재료로 사용됐을 테니 혹시나 하고 찾아보는 거죠.”
“그래서 발견한 용병은 있고요?”
“소문만 무성했어요. 보물과 관련된 일이 원래 그렇잖아요.”
“사티로스들이 미개척지에 살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볼만하겠네요.”
“사티로스는 마족치고 전투력이 약해서 한동안 시끌시끌할 거예요.”
듣고 있던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그러다 카르나크 산지에 와 보고 꽁지가 빠지게 달아나겠지.”
하워드와 크레아가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티로스를 만나려면 아스타로이드와 기간타스가 있는 카르나크 산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엘리오는 사티로스의 뿔에 관심을 보였다.
“사티로스의 뿔과 마도 시대 유물 중에 뭐가 더 잘 팔릴까요?”
“사티로스의 뿔요.”
“그야 당연히 마도 시대 유물이죠.”
“사티로스의 뿔입니다.”
세 사람의 의견이 살짝 갈렸다.
크레아와 하워드는 사티로스의 뿔, 파비안은 마도 시대 유물이라 답했다.
“무슨 소리야? 마도 시대 유물이 더 잘 팔리지. 강철 골렘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해?”
파비안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하워드와 크레아를 보았다.
그러자 하워드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형님. 비싸기로 치면 강철 골렘이지만, 그건 거래가 제한되어 있잖습니까. 반면 사티로스의 뿔이라면 마탑에서 무조건 사겠다고 할 겁니다.”
“하워드 오라버니 말이 맞아요. 마탑뿐 아니라 용병단에서도 매입한다고 나설걸요? 지금까지 용병단에서만 사티로스의 뿔을 취급해서 정확한 시세는 그들만 알고 있어요. 중개를 하겠다고 나서기 딱 좋은 상황이죠. 이래저래 사티로스의 뿔은 매입하겠다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강철 골렘은 아무리 비싸도 개인 간 거래가 막혀 있어서.”
“개인 간 거래가 안 되면 왕국이나 제국에 팔면 되지.”
파비안은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크레아도 만만한 여자는 아니었다.
“오라버니. 왕국 광산이나, 용병단 광산이면 모를까? 개인이 발굴하는 강철 골렘이라고 해 봐야 파츠(parts)에 불과하잖아요. ‘강철 골렘 파츠’보다는 ‘사티로스의 뿔’이 더 비쌀 거예요.”
대화가 심도 있게 진행되자 파비안은 더 고집부리지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개인이 강철 골렘 완전체를 발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철 골렘의 파츠와 사티로스의 뿔이라면, 확실히 사티로스의 뿔이 더 비쌀 터였다.
뻘쭘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던 파비안의 시선이 엘리오에게서 멈췄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설마 사티로스들에게서 뿔을 뽑으려는 건 아니시겠죠? 그러지 마십쇼. 그러면 진짜 난리 납니다.”
어비스는 넓으면서도 좁은 곳이다.
그 일로 마족들이 들고일어나면 일행 중에 사상자가 나올 수도 있다.
그는 ―사티로스의 뿔이 아무리 비싸다 해도― 돈에 목숨을 걸고 싶지는 않았다.
“왜? 쫄려?”
엘리오가 장난스럽게 되묻자 파비안이 진지하게 말했다.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 마십쇼. 저는 사지 멀쩡하게 어비스를 나가고 싶습니다.”
“오해하지 마. 나도 사티로스의 뿔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파비안.”
“예?”
때마침 산 위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에 쓸린 숲의 나무들이 이리저리 몸을 흔들어 댔다.
“나무를 봐. 가만히 있고 싶지만 바람이 와서 흔드니 흔들리잖아.”
“하지만 라고아 경은 나무가 아닙니다. 그 바람조차 뜻대로 할 수 있는 분이잖습니까?”
“나도 사람이야. 내가 바람을 어떻게 내 맘대로 해? 못 해.”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높이 봐 주는 건 고마운데, 못 하는 건 못 하는 거야.”
“사티로스가 바람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잖습니까.”
“어.”
“바람이 라고아 경을 흔들면…… 분명히 박살을 내실 테고요.”
“내가 원래 받은 대로 돌려주는 사람이잖아.”
“그럼 저는 뿔이나 주워 담으면 되겠군요.”
말이 통하지 않자 파비안은 자포자기한 얼굴로 화답했다.
“형님.”
“오라버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하워드와 크레아가 파비안을 불렀다.
웬만하면 참으시라고 할 줄 알았는데 뿔이나 주워 담겠다니 놀란 것이다.
울컥한 파비안이 하워드와 크레아에게 소리쳤다.
“아, 왜! 받은 대로 돌려주시겠다잖아. 그럼 주인 잃은 뿔밖에 더 남냐고!”
하워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끝까지 참으라고 하셔야죠. 거기서 뿔을 주워 담겠다니요.”
“제가 괜히 뿔 이야기를 꺼내서. 죄송해요. 모두 저 때문이에요.”
크레아가 고개를 푹 떨궜다.
그제야 파비안은 변명하듯 말했다.
“라고아 경은 가끔 말씀을 엇나가게 하실 때가 있어. 그래서 장단을 맞춰 준 것뿐이야. 내가 진짜 뿔을 주워 담으려고 그런 말을 했겠냐? 마족들이 바글거리는 어비스에서? 그렇죠? 라고아 경?”
당황한 파비안은 다급하게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끌어들였다.
그러나 엘리오는 그런 파비안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파비안, 운명은 거스를 수 없어. 바람이 나를 흔들면, 우리는 부자가 될 거야.”
“아, 제발요. 얘들은 진짜로 알아듣는다니까요. 대부분은 머리를 거치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하시는 말씀이잖습니까.”
“어이, 어이. 그게 무슨 소리야?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하다니? 개가 그냥 짖는 것 같아도 소리마다 다 뜻이 담겨 있다고. 나를 개만도 못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겠어?”
파비안은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죽일 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