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19
1319회. 파비안을 아들로 삼으라고요?
부라퀴족 대족장인 라자 코트라가 남기로 하자 발리족 족장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엘리오 라고아 군주는 ―출발은 하위 마족이었으나― 신위에 도달한 존재.
그동안 그를 믿지 못해 한 짓을 생각하면 가란다고 갈 수는 없었다.
맨자민 리마가 주변에서 얼쩡거리자 엘리오는 라자 코트라를 불렀다.
“어이 대족장, 발리족 족장은 왜 저러고 있어?”
“군주님을 모시게 해 달랍니다.”
“모셔? 내 종이 되고 싶다는 거야?”
“그보다는 군주님의 잠자리 시중을 들고 싶어 합니다.”
“잠자리 시중? 설마 나랑 자고 싶다는 거야?”
“예.”
“누구 맘대로?”
“예?”
라자 코트라는 군주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맨자민 리마는 여성체 마족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움을 가졌다.
그래서 인간형과 거리가 먼 마족들까지 그녀에게 군침을 흘렸다.
그는 군주도 남자라면 그녀를 마다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아무 여자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발리족 족장은 당신과 그렇고 그런 사이잖아.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도 되는 거야? 내가 군주라서?”
“아닙니다.”
고개를 젓던 라자 코트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군주님. 외람된 질문이온데 타메이온에는 발리족이 없습니까?”
“그건 몰라. 일단 나는 만나 본 적 없어.”
“아, 그러셨군요. 부라퀴족 남자와 발리족 여자 사이에는 사랑이나 지조 따위의 개념이 없습니다.”
“없다고?”
“예, 발리족 여자는 임신을 목적으로 부라퀴족 남자를 이용하고, 부라퀴족 남자들도 그걸 알기에 즐기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맨자민 리마와 관계하던 라자 코트라가 감정의 동요 없이 군주에게 맨자민 리마의 바람을 전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요상한 관계네?”
“심지어 잠자리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부라퀴족 남자를 죽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라퀴족 남자에게 발리족 여자는 암사마귀 같은 존재입니다.”
“허!”
암사마귀라는 말에 엘리오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손만 원하는 발리족 여자와, 책임 없는 쾌락을 즐기되 목숨이 위태로운 부라퀴족 남자라니.
부라퀴족 대족장 라자 코트라가 뻘쭘한 얼굴로 군주를 보았다.
“나하고 그럴 일 없으니까 가라고 해.”
“예.”
라자 코트라가 맨자민 리마에게 가서 뭐라고 하자 그녀는 아쉬운 얼굴로 엘리오를 보더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파비안이 엘리오에게 슬쩍 다가와 물었다.
“라고아 경, 부라퀴족 대족장은 왜 남겨 둔 겁니까?”
“그가 있으면 어지간한 하위 마족들은 접근하지 못할 테니까. 발리족 족장 같은 하위 마족이 계속 온다고 생각해 봐. 귀찮잖아.”
“아!”
파비안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귀 끝에 똥 나온다고 하위 마족들이 꼬여서 좋을 건 없었다.
한동안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들쑤시던 파비안이 지나치듯 말했다.
“우샤스 운드라를 죽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뭐가 어떻게 돼?”
“고향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잖습니까? 바로 가시는지 궁금해서요.”
“일행을 어비스에 남겨 두고 갈까 봐?”
“헤헤.”
정곡을 찔린 파비안이 머리를 긁적였다.
“쯧쯧! 나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 아니다. 제국령까지 데려다주면 되겠냐?”
“그러면 감사하지요. 더불어 영지 문제도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영지에 무슨 문제가 있어?”
엘리오가 시치미를 뚝 떼고 파비안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그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다.
영주가 실종되면 왕국에서 영지를 회수 할까 봐 그러는 것이리라.
“라고아 경이 갑자기 사라지면 봉토도 흐지부지 국왕 손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런가? 그런데 어차피 소드 익스퍼트가 되면 너도 작위와 봉토를 받잖아.”
“소드 익스퍼트라고 다 봉토를 받는 건 아닙니다. 봉토는 대귀족들의 눈에 띄는 큰 공을 세워야 받을 수 있습니다.”
“너 정도면 눈에 띄는 공을 세운 거 아냐? 천공성과 어비스의 비밀을 너만큼 아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건 개인적인 일이라 공적에 반영이 안 됩니다. 왕국 발전과는 관계가 없잖습니까.”
“그래? 봉토를 받는 게 어려운 일이구나?”
“당연하지요. 조상 대대로 명문 가문이 아니면 꿈도 못 꿉니다.”
“명문 가문은 봉토를 얻기 쉬워?”
“대귀족들이 서로 밀어주고 끌어 주고 하니까요. 자기들 소유의 땅을 나눠 주겠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네. 영지를 쪼갤수록 상대의 힘이 약해진다고 믿기에 방관하는 경우가 더 많지.”
“아, 그렇습니까? 여하튼 대귀족이 아니면 영지를 하사받기가 어렵습니다. 그건 맞지요?”
파비안의 물음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영주의 등장을 좋아하는 대귀족은 없네. 그가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권력의 향방이 바뀔 수도 있으니까.”
“들으셨습니까? 소드 익스퍼트가 되어 봤자 기사단밖에 갈 곳이 없다니까요. 기사단에도 자리가 없으면 용병이 되어야 하고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내 영지를 달라고? 나도 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잖아.”
“있습니다.”
“내 영지를 받을 방법이 있다고?”
“예.”
“어떻게?”
사람들이 일제히 파비안을 쳐다보았다.
그들 역시 남작에 불과한 파비안이 무슨 수로 백작의 영지를 받겠다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저를 라고아 경의 양자로 삼아 주십쇼. 그렇게 하면 라고아 경이 실종되었을 때 제가 영지를 승계받을 수 있습니다.”
“미친…… 너 몇 살인데?”
“스물넷요.”
“나 스물여덟이야. 너랑 나랑 네 살 차이밖에 안 나. 그런데 내 아들이 되겠다고?”
“법적으로 문제 없습니다. 그럼 되는 거 아닙니까?”
“야,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해도. 너를 내 아들로 삼으라고?”
“안 그러면 라고아 경의 영지를 도로 왕국에 반납해야 한다니까요. 저는 그런 꼴 못 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요.”
“와아. 미치겠네. 너희 부모님은 어쩌고?”
“법적으로 양자가 되는 거지, 부모님을 버리겠다는 게 아니잖습니까.”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에게 물었다.
“오마르 경, 저게 지금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파비안 경이 라고아 경의 영지를 승계받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은 제국의 영지는 거론하지 않았다.
자작령인 북부 영지와 달리 제국의 영지는 백작령.
제국에 아무 연고도 없는 파비안이 욕심을 내 봐야 강탈당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파비안을 아들로 삼으라고요?”
“왕국법에 의하면…… 영주의 실종 뒤 십 년간 적법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영지는 다시 왕에게 귀속됩니다. 파비안 경이 소드 익스퍼트가 된다 해도 라고아 경의 영지를 봉토로 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까 영지를 왕에게 반납하지 않으려면 파비안을 양자로 들여야 한다는 겁니까?”
“라고아 경이 혼인을 하면 남겨진 배우자에게 승계됩니다. 후손까지 보신다면 더더욱 걱정하지 않아도 될 테고요.”
그러자 파비안이 한마디 했다.
“결혼은 안 하실 거잖습니까. 그럼 저를 양자로 들이셔야 합니다, 아버지.”
“하지 마, 이 새끼야!”
아버지 소리에 놀란 엘리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심통을 빼닮은 파비안의 아버지라니?
그건 정말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엘리오가 펄쩍 뛰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파비안 경에게 영지를 승계하느니, 왕국에 돌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신다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마르 경, 그런 말씀 하지 마십쇼. 라고아 경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저에게 영지의 운영을 위임하셨습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영지의 운영과 승계는 결이 다른 문제라 드린 말씀일세.”
“…….”
라르바 오마르 백작의 지적에 파비안은 반박하지 못했다.
가볍게 시작된 이야기였지만 분위기가 자못 심각해졌다.
하워드와 크레아는 감히 끼어들지 못하고 세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황당한 얼굴로 파비안을 보던 엘리오가 결심한듯 말했다.
“파비안.”
“예?”
“살아서 어비스를 나간다면, 네 뜻대로 해 주겠다. 그러니 죽지 마라.”
“예, 아버…….”
“닥치고.”
“…….”
“한 번만 더 아버지 소리 하면 국왕에게 헌납한다. 그리고 제국의 영지는 꿈도 꾸지 마라. 네 실력으로 그것까지 삼키려다가는 입이 찢어져 죽을 거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라고아 경이 고향으로 가시면, 저도 북부로 돌아갈 겁니다.”
“제국의 영지는 백작 작위와 함께 황제에게 반납하고 가야겠다. 너도 침실에서 제국의 암살자들을 만나고 싶지는 않지?”
“예.”
파비안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은 황제가 괘씸하게 생각할 테지만, 엘리오의 실종 이후를 생각하면 그편이 나았다.
엘리오가 문득 하워드를 돌아보았다.
파비안만 챙겨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워드 너는? 어비스를 나가면 어떻게 할 거야? 무슨 계획이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엘리오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문에서 축출되어 모험가로 떠도는 그를 보니 불현듯 ―집에서 도망쳐 세상을 떠돌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슬쩍 파비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비안과 함께 지내면 어떨까도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파비안과 하워드 일행을 품기에 북부의 영지는 너무 작았다.
한편으로 남부에서 살던 하워드 일행이 북부의 차가운 기후에 적응할 것 같지도 않았다.
엘리오 라고아 백작의 안색을 살피던 하워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와 크레아는 용병단을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용병들을 모으려면 돈이 꽤 들어가지 않아?”
“십 년 정도 용병 생활을 하면서 모으려고요. 둘이 모으면 더 짧아질 수도 있고요.”
“돈만 있으면 되겠네?”
하워드의 경지는 소드 비기너 최상급으로 곧 소드 익스퍼트에 오를 것이다. 그 정도면 용병단을 만들기에 충분한 무력이었다.
하워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머쓱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걸 본 엘리오가 무심코 중얼거렸다.
“사티로스의 뿔이 그렇게 비싸다고 했지?”
“어이쿠! 사티로스의 뿔은 생각도 하지 마십쇼. 어비스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게 우선입니다.”
“아, 그야 당연하지. 나도 뭐가 우선인지는 잘 안다고. 그냥 생각만 해 본 거야.”
하워드와 크레아가 미심쩍은 눈으로 엘리오 라고아 백작을 보았다.
물론 사티로스의 뿔이면 십 년의 세월을 단축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살아서 어비스를 빠져나가는 게 우선이었다.
엘리오 일행과 라자 코트라는 모닥불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밤을 보냈다.
가볍게 코까지 골며 잠에 빠진 엘리오와 달리 라자 코트라는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부라퀴족 군주가 왜 인간들과 다니는지?
그리고 타메이온의 군주가 왜 어비스 깊숙한 곳까지 왔는지?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서 뭘 어쩌려는 것인지?
하지만 아무리 알고 싶어도 감히 군주에게 먼저 물을 수는 없었다.
‘설마 나쁜 일로 우샤스 운드라를 만나려는 건 아니겠지?’
최근 어비스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은 우샤스 운드라다.
샤이틴님의 오른팔인 안타르 신이 우샤스 운드라 신전의 건축에 자신의 종인 사티로스들을 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