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Inquisition Sword RAW novel - Chapter 132
132회. 나는 아니라니까
머리는 맑아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연적하의 앞에는 죽어 가는 흑마 장단평도 있지만 분노에 찬 백마주 유심도 있었다.
주유심은 연적하가 장단평에게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복수에 눈이 먼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연적하를 몰아세웠다.
본래 환영신마 웅재귀가 원한 것은 ‘목숨 걸고 싸우지 말고 힘들면 물러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간만 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암혼귀살 사도영과 장단평이 치명상을 입음으로 모든 게 틀어졌다.
설상가상 홀로 남은 주유심마저 분노로 이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웅재귀의 지시와 반대되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그는 연적하가 장단평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러는 동안 숨이 끊어진 장단평의 몸에 예의 변화가 찾아왔다.
후두둑. 투득.
뭔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장단평의 피부에 쩍쩍 금이 갔다.
곧이어 그의 몸을 찢고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검붉은 피부 사이로 연기가 모락모락 흘러나왔다.
처음 남양상방에서 상대했던 대력귀 때와 비슷한 모습이다.
“크르르르!”
장단평의 입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연적하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주유심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장 아우! 장 아우 맞는가?”
주유심은 죽었던 의제(義弟) 장단평이 시커먼 괴물로 변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장단평의 시선이 주유심으로 향했다가 이내 연적하에게 고정됐다.
“크아아!”
장단평의 시커먼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괴물로 변한 뒤에도 자신의 적이 누군지 확실히 아는 것 같았다.
팟.
유령처럼 사라진 장단평이 연적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붉은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화르르륵!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연적하는 놀란 기색 없이 검을 휘둘렀다.
사 식 풍화겁륜의 검기가 회전하며 화염을 밀어냈다.
그리고 막 반격을 하려는데 옆에서 주유심의 검이 찔러 왔다.
어쩔 수 없이 연적하는 그의 검을 먼저 상대해야 했다.
채앵-.
주유심의 검이 뒤로 튕겨 났다.
그사이 장단평의 두 손이 연적하의 머리로 다가왔다.
‘정신없군.’
연적하의 검이 비룡승천의 수법으로 날아올랐다.
츠츠츠-.
세 가닥 검기가 장단평의 두 손에 꽂혔다.
“크읏!”
장단평이 괴성을 흘리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연적하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으며 연신 검격을 쏟아 냈다.
펑. 펑. 펑.
장단평의 몸에 수차례 검이 박혔다.
한창 연적하가 장단평을 몰아붙일 때다.
“크라라라라-!”
멀리서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오자 연적하의 얼굴이 굳었다.
힐끔 고개를 돌리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심통이 죽인 자가 정수리에 뿔이 돋아난 괴물로 변해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었다.
‘난리 났네!’
하지만 급한 마음에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연적하는 이를 악물고 더 세차게 검을 휘둘렀다.
건곤번천에 이어 운룡풍호를 펼치자 장단평의 몸이 용권풍에 갇혔다.
외뿔 괴물로 변한 사도영은 하늘을 우러러 소리를 내지른 후에 심통에게 고개를 돌렸다. 붉은 손끝에 한 뼘이나 길게 자라난 하얀 손톱이 심통을 향했다.
그 모습에 찔끔 놀란 심통이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아니야. 나는 너의 상대가 아니야.”
“크륵!”
사도영이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심통에게 달려들었다.
“아니라니까!”
그러나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다.
사도영이 쾌속하게 손을 휘젓자 길게 자란 손톱에서 반월형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쉬잉. 쉬잉. 쉬잉.
심통은 유엽도로 하나를 가른 뒤 옆으로 몸을 뺐다.
콰직. 콰직.
강기가 지면을 때리자 얼어붙은 땅이 쫙쫙 갈라져 나갔다.
곧이어 사도영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섬뜩한 느낌에 심통이 홱 돌아섰다.
역시나 칼날 같은 손톱이 목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대경실색한 심통이 유엽도로 손톱을 쳐냈다.
채챙-.
날붙이와 손톱이 마주쳤는데 쇳소리가 났다.
뒤로 튕겼던 사도영의 손이 다시 심통의 목으로 뻗어 왔다.
챙챙챙챙-.
심통은 연신 뒷걸음질 치며 사도영의 손톱을 막아 냈다.
워낙 손톱에 실린 힘이 강해 심통은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궁지에 몰린 것을 본 남궁연이 합류했다.
바람처럼 달려온 남궁연은 사도영의 등에 제왕검형을 쏟아부었다.
퍼퍼펑!
강한 충격을 받은 듯 멈칫하던 사도영이 돌아섰다.
남궁연이 덤비라는 듯 손가락을 까닥였다.
“크륵! 크르륵!”
뭐라 외치던 사도영이 바람처럼 몸을 날리며 연신 손을 휘둘렀다.
쉬잉. 쉬잉.
남궁연은 건곤무종보를 밟으며 원을 그리듯 옆으로 이동했다.
반월형 강기가 허공을 갈랐다.
몇 번이나 헛손질하던 사도영이 우뚝 멈춰 섰다.
“크르르. 큭. 크륵.”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던 사도영은 다시 심통을 향해 돌진했다.
“이런 젠장! 나는 아니라니까.”
심통은 남궁연처럼 고절한 보법을 배우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손해를 보면서도 정면으로 맞받을 수밖에 없었다.
채채챙-.
심통과 사도영이 어우러지자 다시 남궁연이 지능적으로 끼어들었다.
남궁연 덕분에 연적하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또 하나가 잠잠하다?
연적하는 검격을 날리면서 힐끔 고개를 돌렸다.
주유심이 놀란 얼굴로 괴물로 변한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넋 나간 표정을 보니 십두마병의 변화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이다!’
뜻밖의 사태에 그가 머뭇거리는 동안 눈앞의 괴물을 처리해야 한다.
가가가각-.
용형검기가 장단평의 몸을 휘감아 돌았다.
“크아아!”
고통에 버둥거리는 장단평을 향해 연적하의 검이 빠르게 날아갔다.
몸부림치던 장단평이 주먹으로 검을 쳐 냈다.
그러나 구천구검 이 식 행지무강은 나비처럼 그의 주먹을 피해 끝내 가슴에 박혔다.
“크악!”
장단평의 찢어지는 비명에 주유심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차!’
뒤늦게 자책이 든다.
지금은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닌데 연적하에게 기회만 제공하고 말았다.
연적하의 검에 꿰인 장단평이 보였다.
“…….”
너무도 달라진 외형과 괴상한 소리에 이젠 차마 ‘장 아우’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그 뒤에 일어났다.
푸스스-.
장단평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주유심은 급히 흑암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동안 열넷이 죽고 살아남은 이는 고작 여섯에 불과했다.
흑암대 대주인 사도영도 시커먼 괴물이 되어 미쳐 날뛰고 있다.
이를 악물던 주유심이 흑암대 고수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그리고 자신도 몸을 돌려 자리를 빠져나갔다.
연적하는 괴물이 늘어나면 안 되는지라 굳이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주유심이 사라지자 여섯 명의 흑암대 고수도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
사도영만 홀로 남아 심통과 남궁연을 상대로 반월형 강기를 뿌려 댔다.
그는 심통과 남궁연에게 정신이 팔려 상황을 알지 못했다.
연적하는 무방비하게 열려 있는 사도영의 등으로 쾌속하게 날아갔다.
그의 손에서 현녀강림의 수법이 펼쳐졌다.
푸욱-.
어찌나 강했던지 등에 박힌 검 끝이 사도영의 가슴으로 튀어 나갔다.
“큭!”
열 개의 손톱을 바짝 세우고 한창 공세를 퍼붓던 사도영이 멈췄다.
곧 검을 뽑던 연적하가 부르르 떨었다.
구천구검으로 이 괴물들을 상대할 때면 구천기가 움직였다.
단전에서 일어난 구천기는 검 끝을 통해 발산된 뒤에 다시 고요해졌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하나의 과정이 더해졌다.
기묘한 기운과 함께 검을 타고 돌아와 가슴에 머물다 잠잠해졌다. 마치 이질적인 기운을 강제로 끌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가슴에 뭐가 있다고……. 설마?’
연적하가 가슴 부위를 더듬었다.
겉옷 아래로 딱딱한 팔주령이 만져졌다. 며칠 전에 남궁연이 매어 준 것이다.
‘저 괴물을 죽이면 팔주령에 기운이 쌓이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남궁연이 가슴에 팔주령을 달아 주기 전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다.
팔주령만큼이나 구천기도 신비한 것 같다.
푸스스스-.
사도영의 검붉은 몸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연적하는 하늘하늘 날아오르는 파란빛 덩어리를 멍하니 보았다.
지금 보니 빛 덩어리는 모두 열 개였다.
팔주령을 차고 난 뒤에 눈이 밝아졌는지 빛 덩어리의 숫자까지 셀 수 있었다.
게다가 전과 달리 슬픔과 기쁨의 감정까지 전해졌다.
왠지 저 파란 빛마다 나름의 사연이 담겨 있을 것 같다.
‘역시 팔주령과 관계있는 거겠지?’
십두마병과 열 개의 빛 덩어리…….
‘설마, 아니겠지.’
연적하는 머리를 흔들어 불길한 생각을 털어 냈다.
싸움이 끝나자 마차 뒤에 숨어 있던 이사가 나와 눈치를 살폈다.
시체가 가득한 곳에서 음식을 먹자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다.
경험 많은 남궁천이 설차수와 유근식의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대충 싸맸다.
그리고 주변을 맴도는 이사에게 말했다.
“일단 빨리 식사를 하고 움직입시다. 후와촌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계속 가는 게 더 빠르겠지요?”
“그렇기는 합니다. 지금까지 온 거리가 있으니 앞으로 한 시진(2시간) 이상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다들 서둘러 식사를 마칩시다. 의원을 찾아가야 할 것 같으니. 적하야, 연아, 그리고 다른 분들도, 빨리 먹고 움직입시다.”
설차수는 경상이지만 유근식의 경우 의원의 치료가 필요했다.
“예, 예.”
사람들이 하나 둘 모닥불로 모여들었다.
아까와 달리 솥단지에서 탄내가 났지만 아무도 그걸 거론하지 않았다.
연적하는 절반은 탄 죽을 받아 들었다.
강호행에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마음이 착잡하다.
고작 일각(15분) 만에 모든 게 뒤집혔다.
조금 전까지 건강하던 사람들이 핼쑥한 얼굴로 힘겹게 죽을 먹고 있다.
그나마 남궁천과 남궁연, 심통이 다치지 않은 게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그걸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간의 동행으로 설차수 일행과도 정이 쌓인 까닭이다.
사람들은 급하게 식사를 마치고 마차에 올라탔다.
연적하는 다른 사람이 나서기 전에 먼저 마부석 옆자리로 이동했다. 가장 튼튼한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침묵 속에 마차가 움직였다.
달가닥. 달가닥.
이사는 마음이 급하다고 말들을 다그치지 않았다.
한겨울의 얼어붙은 땅에 자칫 바퀴가 깨지거나 말이 잘못될 수도 있어서다.
그는 오직 쉴 시간을 아껴서 움직일 뿐이었다.
다행히 반 시진(1시간)쯤 달리자 장옥촌이라는 마을이 나왔다.
하늘이 도왔는지 마을 규모도 제법 커서 객잔은 물론 의원까지 있었다.
***
보은의원.
설차수와 유근식의 치료가 끝나자 진설하가 의원에게 물었다.
“의원님, 상태가 어떤가요?”
오십 대로 보이는 의원, 장문진이 잠시 생각한 후에 답했다.
“흠, 어깨의 부상은 칠 일 정도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런데 등은 상처가 깊어서…….”
“위중한가요?”
“처음에 일행분께서 좋은 금창약을 발라서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나으려면 최소한 한 달은 움직이지 않으셔야 할 겁니다.”
“아! 다행이네요.”
진설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녀와 달리 유근식이 얼굴을 찌푸렸다.
“한 달이나 움직일 수 없다는 겁니까?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데.”
그는 이번 일에서 빠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한평생의 자랑이 될지도 모를 협객행인 까닭이다.